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식단공개 할 때마다 덧붙이는, 다음부턴 좀 더 자주 글을 쓰겠다는, 인사말이 무색하게도 이번 역시 몇달만에 식단공개를 하게 됐네요.

평소엔 사진 업데이트의 압박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스압절정의 식단공개를 하곤 했는데 이번엔 식단공개를 하고 싶어도 미처 찍어둔 사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다이빙에 미쳐서 제주에 거의 살다시피 하느라 집에서 해먹은 밥이 몇 끼 안됐었거든요.

분명 저번 식단 공개때 또 다이빙 하고 왔다는 말은 쓰지 않길 바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올해 상반기는 서울에서 보낸 날보다 제주에서 지낸 날이 더 많을 지경이니 이를 어찌해야 좋을런지:-/

열흘씩 보름씩 실컷 다이빙 하고 서울 올라와 놓곤, 또 다이빙이 하고 싶어서 일주일도 채 못견디고 제주에 다시 내려가기를 몇 번.

자주 가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 언니가 공부는 언제 할거냐며, 2차 시험 끝날 때까지 방 안내준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냈습니다.

 

뭐 짬짬이(!) 서울에 올라올 때 한끼씩 무언갈 만들어 먹기는 했었죠.

 

 

토마토 치킨 수프, 구운 두부 샐러드, 수란, 수제 양배추 피클, 바나나 반쪽, 우유 한 잔.

 


 

닭가슴살 사와서 샐러드를 할까 했는데 닭 한마리를 통째로 사는게 더 싸길래 수프를 만들어 봤었죠.

토마토 페이스트가 떨어져서 생토마토를 넣고 끓였더니 생각보다 조금 묽게 된것만 빼면 아주 맛있게 만들어졌답니다.

 

제주에서는 해지면 할 일이 없어서 낮에는 다이빙-밤에는 음주, 파도치면 낮에도 음주-밤까지 음주인 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서울에 올라와서는 되도록 담백하게 먹으려고 노력 했어요.

 

 

 

 

.....한끼만요.

 

서울에 올라오면 그간 못본 친구 만나 술먹고, 제주 내려가면 제주 왔으니까 술먹고...

 


친구가 와인을 사와서 차려본 저녁. 카프레제에 안심 스테이크예요.

미친 기지배가 서울 올라와서 코빼기도 안 비추고  또 제주 간다고 욕을 욕을 하길래 특별히 초까지 켜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해장을 위해 소고기국 끓이고 반찬할 시간이 없었기에 찬은 간단히.

묵은 달래장 꺼내고 두부 부쳐 두부전 하고요. 김치에 깻잎장은 원래 있던 것이고 브로컬리 데치고 계란찜 만들어 조촐한 아침 한상 차려줬습니다.

그렇게 친구1의 불만을 겨우겨우 달래고


 

남은 안심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모 요리 사이트에서 스테이크 소스 레서피가 인기를 끌고 있길래 실험차 만들어 본 저녁.



암만 찬양 일색이라도 실제로 만들어서 먹어보면 별로인 레서피들이 워낙 많아서 딱히 기대 안하고 만들어 봤는데 의외로 먹을만 했어요.

아몬드 샐러드에 수제 피클, 안심 스테이크. 구운 양파와 토마토, 올리브. 와인 없이 요것만 먹었습니다. 정말이예요.




토마토, 양파, 청양고추가 주재료인데 만들기도 간단하고 맛도 괜찮습니다.

원래 레서피엔 미림이 들어가는데 집에 미림이 없기도 하고 굳이 안넣어도 될 것 같아 매실청으로 대신 했지요.

 

 

제주에서 회랑 해산물을 너무 먹었더니 서울에 오면 맨날 고기반찬만 먹었네요.


싱겁게 끓인 된장국에 제육덮밥.

반찬은 열무김치, 마늘 장아찌, 배추김치, 푸성귀가 다인 단촐한 저녁.




싱겁게 먹으려고 고추장을 조금만 넣었더니 색깔이 별로네요.

 

 

 

 그리고 다시 잠깐 제주 이야기.

 

작년에 한참, 올레를 걷고 한라산엘 가고, 제주 구석구석을 걸어서 돌아 다니는 재미에 빠져 두달에 한번 꼴로 제주에 다닐 때

제주가 그리 좋으냐는 질문 아닌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그럴때면 농담삼아 정신과 대신 제주에 다닌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성취없이 방향 잃은 패배감만 가득했던 시기에, 내면의 격랑 속에서 어떻게 갈피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을 때

작년 삼월 모슬포 바다에 저는 있었고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걸었습니다.

열적은 고백이지만 흙을 밟고 땀을 흘려가며 하루 온종일, 보름을 타박타박 걷기만 하면서

알량한 자기연민과 사소한 고통을 지옥이라 과장했던 시간에 겨우 결별을 고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누수를 알리는 신호음이 들려 올때면 제주를 찾았고 고여서 흘러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막막함들을 떠나 보내고 왔습니다.

 

어쩌면 음식을 하는 것도 비슷한 궤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먹여 살려야 하는(!) 동생도 있고, 자취를 하는 마당에 매끼마다 사먹을 수는 없으니 음식을 해야만 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재료를 다듬고, 어떤 것은 데치고 어떤 것은 볶아서 가지런히 접시에 담아 내는 과정은 

걷는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하고 마음 속의 파고를 가라 앉히는 명상 같은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우연히 접한 다이빙.

하루가 온전히 죽어 있는 것 같기만 할 때 물 속에서 호흡하는 소리를 듣는 일은 제 삶을 방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물 속에서는 오로지 지금 내가 죽지 않고 사는 것에 몰입하면 그만입니다. 살아서 수면 위로 다시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모든 감각을 지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면 아래에서는 내가 지금 살아 있고, 내 몸에 피가 돌고 심장이 뛰고 있단 사실이 그 어느때보다 투명하게 느껴지죠.

그 어떤 곳보다 고요하고 그 어떤 곳보다 정적인 곳이 바로 수면 아래였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채로 그간 해왔던 공부와는 무관한 무언가를, 그것도 몸으로 배우는 일 또한 제게 청신한 낙관과 건강한 긍정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이빙에 답은 없지만 안전한 다이빙을 위해서 추구하는 자세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 움직임 없이 뜨지도 가라 앉지도 않는 훈련이 포함됩니다.



머리에서부터 무릎까지는 일자로 유지한채 아래위로 흔들리지 않고 십분이고 이십분이고 보내는 시간은 어쩌면 지루할지 몰라도 제겐 또다른 명상의 시간이었고 색다른 성취였습니다.

 

중급 이상의 교육 과정에서, 다이버가 수면위로 상승할 때 주변의 배와 본인이 타고 왔던 배에 다이버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부표를 띄우는 스킬을 배우게 됩니다.

이 부표를 SMB라고 하고 다이버들끼리 통상적으로 소세지라고 하는데 수면위로 떠오른 모양이 소세지와 닮았기 때문이라나요.

소세지는 수면 아래 있는 다이버의 위치를 알려서 보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혹시나 다른 다이버들과 헤어져 혼자 상승하게 되었을 때 조난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비닐이나 천으로 만들어진 소세지 입구엔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수면 아래에서 호흡기나 입으로 공기를 불어 넣으면 풍선처럼 소세지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소세지는 다이버가 손에 쥐고 있는 릴에 연결 되어 있고 공기가 들어간 소세지는 릴이 풀리면서 상습합니다.

소세지 안에 공기가 들어가면 다이버에게 그만큼의 부력이 생기기 때문에 소세지와 함께 뜨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릴이 갑자기 풀리면서 몸을 감거나 다른 다이버에게 걸릴 수도 있고 소세지와 다이버 손에 있는 릴 사이의 줄에 의지해 안전정지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소세지를 띄우는 연습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반복하며 진행해야 합니다.

 

처음에 소세지를 띄울때 릴과 소세지를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다이버가 많기 때문에 바닥에 릴과 소세지를 내려놓고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막상 수면 아래에서 소세지를 띄우려고 하는데 바닥 자체가 없는 수심일 경우가 있기에 저는 처음부터 중성부력 상태에서 소세지를 띄우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스스로의 부력을 맞추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의지할 것 하나 없는 드넓은 바다 아래에서 양성부력이 생기는 소세지와 다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여러번의 연습을 거쳐 중성부력 상태에서 소세지를 띄울 수 있게 됐을 때의 뿌듯함이란.



그렇습니다.

저는 트림 자세를 잡고 소세지를 띄울 수 있게 되었다는 자랑을 하기 위해 이 기나긴 청승을 떨고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소세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 놓은겁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일필휘지로 쓰는 바낭이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썼고, 7월의 다이빙만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을 영상으로 남기겠습니다.

 

영상을 찍으신 분이 말미에 잠깐 욕설을 하시니 불편하시면 플레이를 자제해 주세요.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2A33BEAF6ACB870ADB3C0C6D1B1808F8CCED&outKey=V1224030a8bc7342d4d3307cb795d7fc6ac7c1476370f05d4cac207cb795d7fc6ac7c&width=720&height=438

 

(네이버 동영상이라 그런지 오류가 나서 링크로 대체 합니다.)

 

저는 제주 성산에서 다이빙을 배우고 거기서만 로그(다이빙 횟수) 70회를 채웠는데 운이 나빠 한 번도 요녀석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성산에서 한달에 두어번 정도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영상을 찍으신 강사님은 하도 돌고래를 많이 봐서 마지막에 그만 찍고 가자는 말씀을 하시네요.

다음에 가서는 기필코 이 녀석들을 만나고 말겁니다.

 

 

 

들뜨고 애달았던 제주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고 돌연히 서울에서의 삶이 다시 시작된 것은 유감이지만

일상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요리로 소일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래도 여전히 즐겁습니다.




여름이니 열무김치 한번 담는 것은 인지상정.


열무에서 풋내가 스며나오지 않게 하려면 보리를 삶아 그 물과 보리를 넣어주면 됩니다.

사진에 하얗게 나온것이 보리.


 

냉동실에 방치되고 있던 갈비감 꺼내 갈비찜도 해먹었네요.



핏물을 빼주고


배 하나 다 갈아넣은 양념장에 재웠다 쪄주면 완성.

압력밥솥으로 만드는게 더 맛있지만 설거지가 귀찮아 그냥 냄비로 했습니다.


죽어가는 오이 꺼내 피클도 만들고요.




역시 냉장고에 너무 오래 둔 덕에 묵은내 나는 김치는 꺼내서 한 번 볶아줬습니다.



묵밥 할때 넣어 먹을거예요.


더워서 입맛 없으면 오리백숙도 만들고요


 

여름비 쏟아지는 날엔 친구 불러 와인 한 잔 하기도 했네요.




친구는 안심 스테이크를 주고 저는 새우채소볶음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아몬드 샐러드에 체리. 죽어가던 오이로 만든 피클.

양파, 가지, 아스파라거스, 마늘, 토마토 있는 재료 대중없이 때려넣고 만든 새우볶음.

간은 소금과 후추로만 했어요.




친구는 안심 스테이크에 양파랑 아스파라스, 마늘만 구워 대충 한접시.

 

 

아침부터 찾아와 밀린 스터디 자료를 줄테니 소세지 부침과 된장국을 내놓으라는 친구의 말이 구지가의 한대목처럼 들렸지만


동생처럼 호박선이 먹고 싶네 집에서 돈까스를 해먹으면 좋겠네 하는 것도 아니고

된장국에 소세지 부침이니 해주기로 하고 같이 아침을 먹은 날도 있었네요.


소세지 부치고 남은 계란물로 계란말이 하고요, 만들어뒀던 볶음 김치 꺼내고 열무김치도 맛이 들어 담아 냈습니다.

마늘 장아찌랑 구운김은 서비스.

 


아침 먹었으면 곱게 집에 가야지 기출문제집 나눠보자며 점심때까지 집에 눌러 붙은 친구에겐 짠지만 가득한 점심상을.




현미밥에 추어탕.

열무김치, 갈비찜, 부추김치, 곰취 장아찌입니다.

 

추어탕은 엄마가 끓여서 보내 주신거라 냉동된 국 끓여내기만 했고


갈비찜도 하루 전에 만들어 뒀던거라 재고 정리차원에서 담아주고


곰취 장아찌는 예전에 담그면서 간을 잘못 맞췄는지 싱겁게 맛이 들어 얼른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내놓았네요.

 

 

그리고 또 어떤날 아침.


현미밥에 감자탕.

반찬은 딱봐도 성의가 없습니다만...

배추김치, 열무김치, 생토마토, 오이에 풋고추, 양상추 샐러드에 계란말이입니다.


너무 거창해서 우습기까지 했을, 요리하면서 명상 운운은 다 어디로 가고

더우면 급격하게 초라해지는 찬들입니다.

불 앞에 서있기 힘들어서 생채류와 짠지가 대부분이네요.


감자탕이야 올려 놓으면 익으니 뭐:-)

 

 

 

 

 

오늘의 지난한 바낭과 식단공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어김없는 스압에 대놓고 궁상까지 떨어 글 올리는 마음이 영 편치는 않습니다만 뭐 어쩌겠어요.

변함없는 인사말로 마무리 해야죠.

 

다음 식단공개는 좀 더 자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다들 여름날 잘 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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