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생이랑 월드 워 Z를 보고 집에 와서 재밌다고 떠들어댔더니 엄마가 상당한 관심을 보이시길래 아빠랑 같이 보러 가시라고 예매를 해드렸습니다.


부모님은 영화는 좋아하시는 편이지만 대부분 집에서 티비로 보시고 극장엔 두어달에 한번쯤, 거의 100%가 저랑 동생이 끌고(이거 재밌을 거다! 꼭 봐야 된다!) 가는 편이고

두분이서 스스로, 자기주도적으로 가는 경우는 제가 아는 바론 최근 10년간 없었습니다.(친구랑 가신 적은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두분만 보내는 게 좀 신경이 쓰여서 퇴근길에 영화관에 들러서 표를 발권하고, 집에 와서 어느 영화관인지 알려드리고,

노안 때문에 혹시나 표에 적힌 자리를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까 싶어서 영화표에다가 네임펜으로 9층 7관 I열 10, 11번이라고 크고 또렷하게 적어드렸고요.


그렇게 유난을 떨면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는데, 다행히 두분다 굉장히 재밌게 보셨다면서 매우 만족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관심을 보이셨던 엄마는 난 좀비 나오고 이런 거 싫어하는데 이건 진짜 재밌더라면서 보러 가길 잘했다면서 흡족해 하시더군요.

뭔가 효도 인증하는 글 같이 읽히지만 그런 게 아니고, 좋아하는 걸 남한테 추천하는 취미가 있어서 좋은 결과가 나오니 굉장히 신났습니다.


어린 시절엔 아빠가 영화를 챙겨서 보여주셨는데 지금은 제가 부모님보다 영화를 몇배 많이 보니(극장에서 매년 70편 이상 보거든요)

몇년 전부터는 항상 제가 먼저 보거나 찾아보고 이건 엄마아빠도 재밌어 하겠다 싶은 걸 골라서 영화관에 같이 보러 가거나, 보내드립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로빈 후드(리들리 스콧 거요), 이번 월드 워 Z처럼 보람 찬 결과가 나올 때도 있지만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보다가 잤다(셔터 아일랜드), 낮잠 자다가 영화 시간 놓쳐서 못 보러 갔다(광해) 뭐 이런 허무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어요.


그래도 어쨌거나 어린 시절에 부모님 덕에 이 영화 저 영화 본 기억이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영화 추천 및 공급을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양들의 침묵을 못 보게 하신 것 말고는 영화 관람을 제지한 적 없으셨고(비디오 가게 직원이 '어차피 아빠랑 와서 빌려갈 거 잖아요'라고 할 정도)

여튼 여러모로 지금처럼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 된 건 부모님, 특히 아빠 덕이 큰 것 같아요.


글 쓰다가 생각이 난 건데 15년도 더 전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방송한 적이 있었어요.

아빠는 일요일만 쉬시기 때문에 출근을 하면서 예약 녹화를 해놓고 가셨고, 늦잠을 자고 일어난 제(당시 초등학생)가 티비를 틀어보니 

녹화 설정 채널에선 이미 영화가 끝났고 광고를 하는 상태인데도 계속 테입이 돌아가길래 영화 다 끝났으니까 녹화 그만둬야지- 이러고 녹화를 강제 종료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나중에 퇴근해서 오셨고 다같이 화기애애하게, 사운드 오브 뮤직을 아주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여튼 그렇게 엄청 즐겁게 영화를 봤는데 이게 1부 끝난 이후로 녹화가 안 된 겁니다. 물론 범인은 저고요. 당장 비디오 가게에 가서 2부 빌려와서 이어봤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공중파에서 해줄 때를 노려서 2부를 녹화해서 온전한 세트로 비디오를 갖춰서 돌려봤고, DVD 시대가 도래한 후엔 DVD도 샀고요.

지금도 이 작품은 베스트 10에 꼭 넣을 만큼 좋아하고, 올 초에 영화의 전당에서 할 때도 신나서 날뛰며 보러 갔는데 역시 큰 화면으로 보니까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월요일을 앞둔 늦은 밤인데 영화가 땡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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