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 등의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불편한 이유는 폭력과 섹스 등의 금기를 굉장히 잘 다룬다는점입니다.

그런 부분이 사실 여전히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 그런데 또 이 감독들의 장점이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지라…….

 

이번 설국열차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성적인 코드와 폭력성은 꾸준히 드러나던데요. 성적인 코드는 조금 은밀하게 폭력성은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점을 활용하여 씨줄과 날줄을 잘 엮는 것이 봉준호 감독의 특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감독은 관객의 예상을 비틀고 감정을 증폭시키고 확대하여 몰아붙입니다.

 

 

이하 위와 같은 생각을 토대로 개인적인 감상 적어봅니다.

 

 

 

 

1. 성적인 코드(1)

 

성적인 함의는 노골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작품 안에서 은근하고 꾸준하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여러 매체의 감독의 인터뷰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본인 스스로 변태를 선언한다던가, 인터뷰에서 보이는 각 인물 간 애정관계의 서브설정, 폐쇄적 공간을 관통해 나가는 남성성의 질주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묘사는 배제하였지만 곳곳에 살짝살짝 숨겨두고 그 존재를 알립니다.

 

다만, 원작이나 시나리오에 있었다는 매음굴은 역시 뉘앙스만 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예산의 한계도 작용했겠지만 그 이상의 수위로 올렸으면, (투자금을 생각했을 때) 국내 1000만 관객 이상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한국의 독보적인 배급력을 자랑하는 CJ이라도 상영등급을 15세 관람가로 받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봐요.

(아참, 해외에서 상영등급은 정해졌나요? 쓰다 보니 이 부분이 궁금해집니다.)

 

 

 

 

2. 폭력(1) : 팔을 얼리는 징벌과 그 이후 등장하는 길리엄과 그 추종자들. 

 

어느 정도 예상 했지만 역시 폭력의 비주얼이 강하던데요.

우선, 보여지는 앤드류의 팔 얼리는 징벌은 731부대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역사에 존재했던 인체실험의 잔학성을, 징벌이라는 형태로 그대로 구현해 놓았었던 것 같아요. 열차 내부가 비인간적임을 관객들에게 처음부터 인지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곧바로 팔 다리가 온전하지 않는 성자 길리엄과 그 추종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앞씬의 앤드류의 상황에 비추어 관객들로 하여금 길리엄이 저항 세력으로 느끼게하기에 꽤 훌륭한 장치였습니다. 그런데 또 관객들이 이해하는 그 분위기는 온전히 가지고 가면서도, 그들의 팔다리가 성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후반부에 가서 밝혀지듯이 다른데 있다는 거죠.  

 

 

 

 

3. 폭력(2) : 총알의 멸종 그리고..

 

감독은 지난 폭동 진압을 위해 총기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자신들을 지배하는 열차 안에 총알이 멸종했다(?)는 설정을 초중반 커티스의 대화를 통하여 영화 안 꼬리 칸의 혁명 주역들과 영화 밖 관객에게 알려줍니다.

기본적으로 총의 존재는 폐쇄된 공간에서 그 가진 자가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게 됩니다. 하물며 숨을 곳도 없는 기차 안 좁은 공간에서는 뭐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총알을 모두 소모했다.'는 가정을 설정해둠으로 인해서, 몸과 몸이 부딪히고 칼과 도끼, 횃불 몽둥이가 난무하는 잔혹액션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감독의 의도대로 좁은 공간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피를 튀기며, 원시적으로 부딪히는 날것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거죠.

진압군과의 대치에서 그 정점을 찍네요. 이로써 박찬욱의 올드보이 복도 망치씬이 다수의 군중을 통해 횃불과 도끼로 재현됩니다.

 

진압군의 물고기를 통한 사전의식 역시 그들의 야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몫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다른 동물, 즉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던 토끼나 아니면 다른 동물로 대체했다면 어땠을까요. 글쎄요. 비주얼은 좀 더 강렬하게 드러나긴 하겠지만, 동물애호 입장이나 등급 면에서 부적절했을 것 같습니다. 거대한 생선은 적절한 타협점이라고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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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반에 다시 설정을 비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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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생명이 충만한 어린이 교실에서, 임신한 선생님이 있는 곳에서, (생명 그 자체로 보이는 부활절 느낌이 나는) 달걀을 선물로 주면서, 감독은 시침을 뚝 떼고 앞선 설정을 뒤집어, 총알의 존재를 다시 영화전면에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꼬리칸의 주역들과 꼬리칸 주민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를 난사합니다. 샤워칸 이후 지저분한 장소, 기능적인 장소를 모두 벗어나고 살만하고 안심할 수 있는 지역으로 왔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는 도로 깨지고 극중 긴장감과 불안한 마음이 다시 생겨납니다. 진압군에 의한 학살이 일어나 꼬리칸의 성자 길리엄을 비롯한 대부분이 죽고, 주인공과 소수만이 살아남습니다.

그 후, 터미네이터(?)와 같은 진압군 리더 프랑코를 다시 부활시킵니다. 이로써, 이전까지는 전방만 신경 써야 했는데 다시 후방에서도 긴장감이 주어집니다. 협소한 공간의 특성상 근거리 액션에 매몰될 줄 알았는데, 추격자의 등장과 기차의 크게 꺽이는 노선은 원거리 액션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윽고, 감독은 비좁고 폐쇄된 열차 안에서는 불가능할 줄 알았던 원거리 총격씬을 보여줍니다.

 

 

 

 

4. 잔혹성(1) : 영화 중간에 들었던 생각.  단백질 블록을 왜 인육으로 하지 않고 바퀴벌레로 했을까.

 

바퀴벌레도 충분히 혐오스럽기는 하지만 폐쇄된 순환계라면 인육이 더 강렬하고 더 논리적이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이 커티스가 블록 만드는 기계의 안을 들여다보는 씬에서 잠깐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의 커티스의 대화씬을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앞의 바퀴벌레는 첫 번째 혐오단계이자 관객들에게 각오를 해두라는 일종의 전초전이고 후반을 위한 포석이다 싶었어요.  

또한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육의 재활용은 워쇼스키형제남매가 이미 매트릭스와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활용한 소재였기도 하거든요.

대신 프리퀄 단계의 열차안의 상황을 커티스와 남궁민수와의 대화 속에 풀어냅니다. (굳이, 회상씬등으로 재구성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말합니다. 꼬리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없이 방치되어 아비규환 혼란이 있었고 그 환경에서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사람들간의 배고픔으로 인한 살해와 어린아이의 인육을 먹어봤음을 고백합니다. 

 

결과적으로 바퀴벌레의 혐오성과 인육의 잔혹성을 강도를 더해가며 둘 다 골고루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커티스의 대화를 듣다보니 앞서 진압군과의 대립도 저절로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끼로 무장한 진압군이 있으면, 보통사람들이라면 주춤하고 저항을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혁명군들은 사실 일반사람들이 생각도 못하는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은 만렙의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육체의 능력은 진압군보다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오히려 깡은……. 

 

 

 

 

5. 잔혹성(2) : 인간과 기계

 

이제 인육에 대한 생각은 극초반 잡혀간 어린이들에게까지 미쳐서, 월포드가 먹고 있는 스테이크 역시 그런 끔찍한 산물이 아닐까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미 열차란 곳은 승객의 대부분이 제정신으로 살 수 없는 곳임이 드러났으니 열차의 절대자인 월포드는 충분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추리가 아닌 가정일 뿐이니까 커티스와 그와의 대화중에 살짝 지워지기도 했어요. 보다 충격적인 사실들인 '나 월포트는 애초에 길리엄과 연대가 있었고, 네가 이제 이 열차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들을 풀어내면서 어린아이의 존재를 잠시 망각하게 만듭니다.

 

커티스는 월포드의 말에 넘어가서 지도자의 운명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한편, 뒤 칸에서는 약에 취한 사람들과 그리고 최종보스 터미네이터(?)인 프랑코와 사투를 벌이던 남궁민수가 있습니다. 남궁민수는 장비의 장판교(?)의 싸움이 무색하게 일당백입니다. (내가 장비익덕이다!!!) 서있는 공간 내부의 기차의 동력시스템의 비주얼은 참으로 괴랄 해서 무식한 기계의 톱니가 그대로 드러나 보입니다. 장판교(?)를 사이에 두고 그곳에 떨어진 사람들은 가차 없이 잔인하게 죽습니다. 마치 오래된 영화 속에서 용암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무기력 하게 죽는 사람들처럼…….

 

네, 몰입이 풀어지려 하면 자꾸 자극적인 긴장감을 투입합니다. 계속, 계속 넣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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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장면이 나뉘어 괴리되어 있던 두 씬을 이어주며, 요나가 성냥을 얻기 위해 커티스를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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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방심했던 주인공과 관객에게  마음의 준비할 틈 없이, 기계부품 대신 쓰이고 있는 어린 아이. 가장 순수하고 소프트한 존재인 아이가 몰가치적이고 강철로 된 기계의 부품이 되어 있는 모습을  요나가 바닥을 열어젖혀 그 실상을 보여줍니다.

커티스는 그 순간, 잔학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과 과거의 깨달음을 재반복했을 겁니다. 약탈을 통해 인육을 먹던 그 시절이나 열차를 이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아이를 부품으로 활용하는 미래의 지도자는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머릿속에 모든 것이 리셋된 그가 이때 취할 수 있던 행동은 길리엄의 숭고한 행위 -길리엄에 관한 신뢰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였나봐요. 주저 없이 팔을 기계 톱니에 끼워 팔을 희생하고 아이를 구해냅니다. 커티스는 이전에 행하려다 실패한 자신이 빚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면서, 제 머리 속에 그 와중에 잠깐 스쳤던 깨알 같은 생각, '아~ 스테이크가 아이는 아니었어. 월포드는 그 정도까지는 미치지 않았군.'  '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부품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니 생각할수록 이 사람 미치긴 단단히 미쳤네.'  즉, 뭔가 해결된 것 같은데, 해결된 것 같지 않는,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알수 없는 찜찜한 여운이 생겼습니다.  

 

 

 

 

6. 다시 성적인 코드(2)
 
폭약에 의해 폭발한 열차는 눈사태를 일으키고, 열차는 전복됩니다. 전복되기 직전, 두 아버지(?)의 부성에 힘입어 품 안에서 두 명의 어린 남녀가 그 난리 통에 새로 태어나 살아남습니다. 오랜 기간을 열차에서 지내다가 세상에 다시 태어난  나온 두 생존자는 앞으로도 주욱 살아남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두 아이를 통해 …… 인류는 살아남을 겁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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