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굉장히 셉니다. 장난 아닙니다. 유혈이 낭자하는건 기본이고 우리가 비유처럼 쓰는 관용어구가 비유가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폭력이 나타날 만큼 극한 상황이었기에 설득력이 있고, 카타르시스 또한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과연 이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주제 - 타인에게 무관심한 원자화된 현대인들의 풍자 - 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 정도까지의 폭력이 필요했나, 라는 점입니다. 마치 오열하면서 '그러니까 우측통행 하란 말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모양새입니다. 사실 영화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갈등 구조와 억압, 그리고 그에 깔려있는 이데올로기와 구습은 굉장히 뻔하고 지금까지 많이 반복된 것들입니다. 이 갈등 구조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매우 쉽고, 실제로 이 영화는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하고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게 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구도가 너무나 뻔한 클리쉐였습니다. 발상의 안이함이 아쉽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해가면서 쓰고 싶어서 더 이상 구체적으로는 못 쓰겠네요.

 

 영화 전체적으로 지루한 장면 없이 2시간 내내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은 큰 장점입니다. 사실 이건 기본이긴 합니다만, 이 정도도 안 되는 영화들도 많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너무 급작스럽다거나 질질 끈다는 느낌 없이 이 영화는 깔끔합니다. 물론 잔혹한 장면이 많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러티브로 잘 엮이지 않은 맥락없는 폭력은 아무리 그 강도가 세더라도 지루하니까요.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좋습니다. 악역을 맡은 배우들은 나중에 다른 영화에 다른 인물로 등장해도 호감을 갖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주연배우의 연기도 좋습니다.

 

 정리하자면, 기본기가 탄탄한 볼만한 영화입니다. 전체적인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고, 몰입하게 합니다. 다만 이 정도로 극단까지 갔을 때에는 보는 이는 그에 상응하는 차원까지 파고 들어가는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점, 그리고 안이한, 관습적인 갈등 구도에 의존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Ps.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정도의 단순한 구도가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다면 그것도 영리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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