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들기 전에  Before I Go to Sleep


영국-프랑스-스웨덴, 2014.        ☆☆★★


Written and directed by: Rowan Joffe 

Based on a novel by: S. J. Watson 

Cinematography: Ben Davis 

Production Design: Kave Quinn 

Editor: Melanie Oliver 

Music: Ed Shearmur 

Executive Producers: Lonnie Ramati, Ridley Scott, Trevor Short, Boaz Davidson, Kristina Dubin, Carlo Dusi, Jenny Borgars 


CAST: Nicole Kidman (크리스틴 루카스), Colin Firth (벤 루카스), Michael Strong (내쉬 박사), Anne-Marie Duff (클레어), Adam Levy (뺨에 흉터 있는 남자), Deam-Charles Chapman (애덤), Ben Crompton (창고지기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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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겪는 질환이나 불행 중, 현실세계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더 압도적인 빈도로 발생하고, 또 그 묘사가 실제 세계의 그것에 비교해서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형태로 그려지기 쉬운 것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마도 (흔히 "이중인격" 또는 "다중인격" 이라 불리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解離性正體感障碍] 보다 더 자주 사용되는) "기억상실" 을 들 수 있지 않을까. 기억의 둔화는 그야말로 나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노쇠 과정 중 가장 흔하고도 전형적인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연의 사고나 기타 이유로 인해서 심각한 양의 기억의 일부를 뭉텅 잃어버린 캐릭터들은 한국 TV 막장 드라마부터 영미 고전소설에 이르기까지 빈번하게 등장한다. 문학이나 영화에 나오는 기억 상실의 양상이 현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전자의 경우 어떤 트라우마나 사고, 폭력적인 사태를 경험한 (머리를 크게 다쳤던 어쨌건) 캐릭터가 그 일보다 시간적으로 전에 겪었던 자신의 경험의 기억을 못하는 "역행성 기억상실증" --자신이 어저께 얘기를 나눈 간호사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자신의 이름은 기억 못한다던지-- 을 압도적으로 다루어 왔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는 그런 사태를 당한 이후의 일을 기억 못하는 "순행성 기억상실증" 도 마찬가지로 발생하지만, 드라마화가 쉽지 않은 점도 있고 어쨌든 각광을 받지 못해왔다. 


재미있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80년대 이후가 아닐까 추측되는데) 영화에서도 순행성 기억상실증-- 즉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등은 기억하지만, 사태 이후에 만난 사람이 누구였는지, 병원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등은 기억하지 못하는-- 을 드라마의 도구로써 다루게 되었다는 점이다. [니모를 찾아서] 에서 나오는 도리는 물고기니까 음… 좀 사정이 다르지만, [메멘토] 의 주인공이 이러한 순행성 기억상실증의 극단적인 예를 스릴러에 적용한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내가 잠들기 전에] 도 역시 [메멘토] 의 셸비와 마찬가지로 순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에 관한 스릴러이다. 조지 클루니 주연의 [더 아메리칸] 과 [28주 이후] 의 각본을 쓴 로원 재피가 구상한 설정은, 니콜 키드먼이 연기하는 아직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 모종의 머리를 크게 다친 사고로 인하여 단 하루만 기억이 유지되는 상황에 들어선 채 10년이 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24시간 이후에 잠이 들면 사고 이후에 축적된 기억뿐 아니라 그 사고 전의 기억, 즉 자신이 누구고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까지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설정이니, [메멘토] 의 주인공이 겪고 있는 순행성 기억상실증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 작위적인 증세다. 


이러한 설정이라면 관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니콜 키드먼이 연기하는 크리스틴 루카스의 정체성이나 그녀에 가까운 누군가의 정체성에 관한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메멘토] 라는 괴물 같은 명작과 자꾸 비교해서 안됐지만, 그 작품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쓸데없는 반전이나 스토리의 결말 (아내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에 집착하는 대신에 관객들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옭아들이는, 복잡하면서도 명쾌한 서사 구조를 쌓아 올리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내가 잠들기 전에] 의 재피 감독은 중간에서 다시 모두의 시퀜스로 돌아가는 트렌디한 구조에 이르기까지 정석적인 스릴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사의 구조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메멘토] 의 경우 주인공 셸비가, 관객들에게는 아무리 비극적인 뻘짓거리를 하면서 나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과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능동적으로 서사의 중심에 서서 움직이는 반면, [내가 잠들기 전에] 의 크리스틴은 수동적으로 상황에 휘둘리는 캐릭터를 연기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즉, 어느 시점에서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진실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끔 보따리를 푸느냐, 또한 쓸데없는 트릭이나 연연하지 않고 서사를 통제하느냐 라는 문제에 대한 선택을 잘 해야만, 주인공 크리스틴이 좀 머리가 나쁜 여성이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나머지 어리석은 선택을 자꾸 저지르는 답답한 여성으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재피 감독은 이러한 측면에서는 카메라와 편집을 다루는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평균점을 겨우 넘어서는 정도의 실력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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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키드먼과 콜린 퍼스의 커플 연기가 어딘지 모르게 화학작용이 부족한 것도 문제. 퍼스는 전반부에서 매 아침마다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 못하는 크리스틴을 보살피느라고 정신적으로 녹초가 되어있는 중년 남성의 피로함과 초조함 (물론 영화를 끝까지 보면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하도록 배려를 한 연기다) 을 잘 그려내고 있지만, 왜 애초에 크리스틴이 이 사람에게 느꼈을 성적 매력-- 좀 더 밝고 기운찬 모습, 아니면 구렁이같이 음흉하게라도 매혹적인 모습-- 을 전달해주지 못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연기자 분께서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무래도 퍼스의 카리스마의 한계라기보다는 감독의 연기지도의 미숙 내지는 무관심이 요인인 듯 하다. 


더 큰 문제는 재피감독이 니콜 키드먼을 다루는 방식인데, "나약" 하거나 "불안" 하다는 인상을 크게 넘어서, 처음 봤을 때 헉 하고 놀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핏줄이 선 눈동자의 클로스업부터 시작해서-- 초췌함을 강조하는 묘사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리 키드먼 자신이 정신적으로 힘들고 괴로운 여인을 연기하기 위해 그러한 묘사를 고집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니콜은 여전히 46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전신 나체를 드러내는 몸을 던지는 열연을 보여주고, 또한 여전히 아름답다) 이건 좀 지나치지 않는가. 관객들로 하여금 키드먼이라는 스타의 초췌한 모습을 걱정하게 만든다는 것은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에게 그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 


솔직히 조금씩 진상이 드러나는 후반부에서 크리스틴이 일반 스릴러에 나오는 여성주인공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안심이 되더라. 난 키드먼의 팬도 아닌데, 그녀가 정말 빗자루 살처럼 갈라지고 흐트러진 붉은 머리를 하고 온통 패닉에 시달리는 주름살이 깊게 패인 얼굴로 발가벗은 채 침대에서 덜덜 떨고 있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악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그녀의 팬이시라면 재피 감독을 그냥 몽둥이 들고 때려잡고 싶어지실 것 같다. 이 두 주연에 비하면, 만년 악역배우인 마이클 스트롱과, 크리스틴 친구역의 앤 매리 더프가 상대적으로 덕을 보는 역할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태의 "진상" 은 미스터리 장르 팬이신 분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는데, 클레어가 아는 "또 한 남자" 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크리스틴에게 전화 한 통도 안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식의 "무책임하고 부조리한 상황" 은 현실 세상에서도 충분히 생길 수 있으니-- 아파트에서 급사한 채 그 시체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형제, 자식 등 직계 가족 그 사람의 안부에 대해 아무도 체크를 안 했다던지-- 그냥 넘어가 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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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그렇게 잘 못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주연배우들의 원용에 있어서 뭔가 계산 착오가 있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막상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대상고객이 되어야 할 니콜 키드먼의 열성 팬들께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오히려 추천 드리기가 거북하다.


PS: 여러 나라가 자본금을 댄 유럽영화인데, 로케이션은 일괄적으로 영국에서 했다. 키드먼도 상당히 독한 영국 액선트를 구사하는데, 그 동안 미국에서 너무 오래 활동을 해서 그런지 약간 어색하게 들린다. 뭔가 퍼스나 더프처럼 입에서 찰지게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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