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겐프리: 격리된 마을 What We Become 


덴마크, 2015.     

 

A Meta Film Production. 화면비 1.85:1, 1시간 27분. 


Written and directed by: Bo Mikkelsen 

Producer: Sara Namer 

Cinematography: Adam Morris Philp 

Production Design: Thomas Bremer 

Music: Martin Pedersen 


CAST: Troels Libby (디노), Mille Dinesen (페로닐레), Benjamin Engell (구스타프), Marie Boda (소냐), Therese Damsgaard (안나), Ella Solgaard (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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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엽서에 나오는 것 같은 화면, 금발과 푸른눈의 어린이들 (조명을 어떻게 했는지, 초반부의 등장인물들의 눈 색깔이 마치 아크릴로 그린 것 같아 보일 정도다), 티셔츠와 진즈를 입은 우람한 사내들과 풍만한 여인네들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제 1세계 중산층 교외의 모습. 너무나 노골적으로 이러한 묘사로 시작하는 [소르겐프리] 는 덴마크 영화인데, 보통 한국인이나 미국인들은 알 수 없는 무슨 백스토리가 있는 것도 같다. 모두에 촬영된 소르겐프리 (실제 존재하는 곳) 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소르겐프리 지방정부에서 관광에 도움이 되는 PR 을 하겠습니다 라고 약속하고 제작비를 따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인데, 막상 영화의 내용은 식인 좀비영화니 말이지. 하기사 [곡성] 의 곡성도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고, 그런 무시런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그 덕택에 관광산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맞죠?) 하니… 


[소르겐프리] 는 [팔로우 (잇 팔로우스)] 와 대비되는 한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편 다 고색이 창연한 70-80년대적 서버반 ("교외") 북미호러의 설정을 고대로 가져다가 21세기형으로 업데이트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인 이유로 존 카펜터 작품을 끌어들여서 비교 언급했던 [팔로우] 와 달리, [소르겐프리] 의 보 미켈센 감독은 진짜로 존 카펜터의 연출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심지어는 마르틴 페데르센의 전자음악까지도 카펜터의 미니멀리스트 스코어와 흡사하다). 그 결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점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어깨 힘이 들어가는 일이 없이,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스킬을 습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의 장남 구스타브가 검은 플라스틱으로 봉인된 집에서 탈출해서 군대가 점령한 도시를 탐색하는 시퀜스에서 그의 어깨 높이에서 딱 붙어서 같이 이동하는 카메라의 스무스한 움직임이라던지, 아버지 디노가 유일하게 사냥총을 구비한 친구와 함께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구하는 장면의 편집의 리드믹 하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컷 이라던지, 여러모로 파운드 푸티지나 오줌 싸기 일보 직전인 사람이 들고 찍는 것 같은 경련하는 핸드헬드 카메라 등의 최신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고전주의적 연출이 돋보인다. 


반면 스토리는 너무나 전형적이라서 구태여 언급을 할 필요까지도 없을 정도다. 이 분야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로메로의 원조 [산송장들의 밤] 의 설정과 캐릭터 배치까지 고대로 가져다가 써먹고 있으니. 마치 미켈센 감독이 "이 영화는 철저하게 고전적 좀비영화임. 스토리 반전 그런 거 없음!" 이라고 이마에 문신이라도 새겨 넣고 만든 것 같다. 자기만 살려고 버둥거리면 결국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이타적으로 남들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버티는 그런 스토리가 실제 상황에 더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한편에서는 그냥 [산송장들의 밤] 의 파멸주의적 플롯을 답습하면서, 맨 마지막의 니힐리스틱한 코다만 빼놨다. 


뭐 이러한 고전주의적인 태도도 사실 나름대로 존중해 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소르겐프리]에서는 결국 지루함과 짜증을 유발하고 마는데, 그 큰 요인은 유감스럽게도 미켈센 감독의 연기자들을 다루는 미숙함에서 온다. 그 중에서도 문제는 메인 가족의 반항아 장남과 그 맞은편 집에 이사온 소녀 역의 두 배우-- 벤야민 엥겔과 마리 보다-- 가 정말 한심하게 연기를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 관객들이 연기자들보고 "발연기" 라고 자주 그러는데, 이 두 연기자들이 이 한편에서 피로하는 종류의 "연기" 가 진짜 "발연기" 다. 그냥 뛰어다니거나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거리거나 (아 또 있다, 섹스신 중에서 뽀뽀하고 끌어안고 그러는 거) 하는 "동작" 이외에는 아무런 감정적 기복을 느낄 수가 없는데 어쩔 것인가. 감정을 과도하게 보여주는 오버액팅 이라던가, 대사를 오물오물 금붕어처럼 부자연스럽게 읊는다던가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 두 배우들 때문에 엄청난 서스펜스가 옥죄어와야 할 클라이맥스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니… 아아 한숨. 


약간 흥미로왔던 것은 "신자유주의" 가 깽판치는 (또는 친다고 한국 먹물들은 생각하는) 미국의 좀비영화에서는 사태를 수습-장악하려는 국가, 군대, 경찰측과 일반 시민측의 양쪽에서 바라본 상황이 그려지는 데 비해서, 훨씬 사회주의적이어야 할 덴마크의 좀비영화인데, 군대는 "셋 셀때까지 안꺼지면 죽인다" 라는 걸 "경고" 랍시고 던지고는, 아무리 봐도 좀비가 아닌 민간인한테 기관총을 갈기질 않나, 감염자들을 마을 학교에 몰아서 학살하지를 않나, 정부는 [부산행] 의 언론발표만큼 절라 거짓부렁을 쏟아놓질 않나, 국가-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기사 사회민주주의 국가라고, 북조선이 아닌 담에야, "우리 군대는 좀비와 끝까지 싸워 줄거야!" 식의 설정을 고집하겠냐만은 (북조선에서 만든 좀비영화, 의외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헉;;; 덴마크도 징병제고 삭막한 총력전 대비 무장국가다! 언제나처럼 말씀 드리지만, 호러 영화를 통해서 참 배우는 게 많습니다 여러분. 


로튼 토마토 지수는 [판데믹] 등보다 훨씬 싱싱한데 나에게는 솔직히 [판데믹] 이 더 조잡할 지는 몰라도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단지 보 미켈센 감독은 헐리웃에서 중급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발탁할만한 실력은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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