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ered States 변화된 상태  


"궁극적인 진실이란 궁극적인 진실이란 없다는 거였어. 진실이란 허망한 것이고, 사람의 삶이야말로 실재하는 것이야." 


미국, 1980.        


A Warner Brothers Production. 화면비 1.85:1, 1시간 43분. 


Director: Ken Russell 

Screenplay: Paddy Chayefsky 

Producers: Stuart Baird, Howard Gottfried 

Executive Producer: Daniel Melnick 

Cinematography: Jordan Cronenweth 

Production Design: Richard McDonald 

Music: John Corigliano 

Special Effects Makeup: Dick Smith, Carl Fullerton, Craig Reardon 

Special Visual Effects: David Domeyer, Larry Fuentes, Robbie Blalack, Bran Ferren, Jamie Shourt 

Time Lapse Photography: Louie Schwartzberg 


CAST: William Hurt (에디 제섭), Blair Brown (에밀리 제섭), Bob Balaban (아서 로젠버그), Charles Haid (메이슨 패리쉬), Thaao Phenglis (에체베리아), Miguel Godreau (원시인), Dori Brenner (실비아 로젠버그), Drew Barrymore (마가렛), Megan Jeffers (그레이스), Charles White-Eagle (기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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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의 나도 지금에 못지 않은 영화광이었지만, 당시의 내가 보아도, 그리고 지금의 내가 보아도,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거장의 호칭에 적합한 영화만듬이가 있는가 하면, 당시에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면 거장이었구나, 라고 새삼 새로이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영화만듬이도 있다. 반면, 당시에는 무척 좋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게 아니었네, 내가 어려서 표면적인 매력에 빠졌었던 거구나, 라고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감독이나 영화는 의외로 별로 없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튼 후자의 내가 어려서 몰라뵜던 거장 중의 한 사람이 켄 러셀 감독이다. 러셀 감독은 카톨릭으로 자란 나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게 심기를 건드리는, 반교회적이면서도 동시에 카톨릭 문화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위악적 취향 (일면 그의 걸작인 [The Devils] 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여흥으로 적당히 뚜닥거려 만든 것 같은 [백사의 굴] 같은 마이너 호러영화에서도, 전신을 가랑이 사이에서 어깨까지 말뚝으로 관통당한 수녀들의 시체들의 모습을 환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때문에도 그렇고, 강렬하게 느끼한 (버터를 마구 처바른 음식같이 거의 육감적인 느끼함이다) 묘사의 필체가 쌀밥 먹고 자란 나에게는 뭔가 아니다, 라는 부정적 분위기로 다가오고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최근까지는, 실력이 뛰어난 분인 줄은 알지만, 좀 멀리해왔던 작가였다. 


SF나 호러라면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VHS 로 빌려다 보았던 80년대 초반에 이 [변화된 상태 (Altered States-- 이 제목은 마약 같은 것을 섭취한 결과 삐용하고 맛이 가버린 상태, 즉 "의식이 변화된 상태"를 점잖게 학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를 봤을 때의 당시의 솔직한 감상은 "뭐야, 이게 다야?" 였다. SF 영화라면 지금 막 [스타워즈] 와 [클로스 엔카운터] 가 세상을 바야흐로 석권하고 [에일리언] 과 1978년도판 [신체 강탈자의 침략] 이 공개된 시점이었는데, 이게 무슨 대마초 빨고 똥폼잡는 60년대식 히피 헛소리람? 라는 평가도 일부 평론가들의 글 중에서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당시의 2류 극장상영 당시의 화질과 음질을 상회하는 깨끗한 퀄리티의 블루 레이로 다시 감상을 해보니, 여전히 SF 작품으로서의 위대함을 논하기에는 저어되지만 (단, 내가 VHS 시절에 미루어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의 헬렐레뽕스럽고 사이비 과학적인 측면은, 대부분이 러셀 감독이 아닌 각본가 패디 차예프스키의 탓임을 알게 되었다) 시청각 리셉터를 만개하고 받아들였을 때의 한 편의 "영상예술" 로서 보자면 거장의 솜씨가 배어있는, 우수한 작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전술한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과 필립 카우프만의 [신체 강탈자] 리메이크에 비해 그렇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변화된 상태] 의 기본 전제는 1960년대에 하바드대학에서 티모시 리어리가 LSD를 비롯한 싸이케델릭 약물로 심리학 실험을 하다가 파면당한다는, "히피 문화" 의 방아쇠가 되었던 사건에서 시작하고 있는 듯 한데, 약물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감각박탈탱크 (sensory deprivation tank)-- 피실험자를 물속에 띄우고 청각, 시각을 비롯한 오감을 완전히 차단한 가운데 심리상태를 관찰하기 위한 장치-- 는 존 C. 릴리라는 리어리와 동세대의 심리학자가 국가정신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에서 1950년대에 발명한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하바드와는 직접 관계는 없다. 물론, 릴리 자신도 감각박탈탱크안에서 싸이케델릭 약물을 복용하고 유체이탈을 비롯한 여러가지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으므로, 전반적인 과학사적인 선례는 충분히 존재하는 셈이다. 문제는 [마티] (1955), [호스피탈] (1971) 과 [네트워크] (1976) 로 아카데미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성난 코끼리" 패디 차예프스키가 쓴 각본인데, 전후사정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것이 도저히 1980년 당시의 감각으로는 영화화할 수가 없는 물건이었던 가보다. 나는 어찌어찌 차예프스키가 자신의 각본을 원용한 소설의 일부를 도서관에서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 30페이지 정도 읽다가 기권했다. 아마존 닷컴의 리뷰어들이 혀를 내두르듯이, 실제로 한 단락이 끊김이 없이 한 페이지 반을 넘어서는 개소도 있고, 대사들은 그냥 "부자연스럽다" 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굴착기로 드드드 골을 까는 "연설문" 들이고, 무엇보다도 SF적인 설정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지극히 60년대적으로 찜뿡깜뿡하고 난잡한 유사과학적 아이디어들을 엄청나게 진지한 태도로 이어붙여 놓은 꼴이, [인간지네] 하고 [미녀와 액체인간] 사이의 어딘가에서 헤매는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심층심리에 도달하는 싸이케델릭한 약물을 통한 실험을 한 결과, 과학자 에디 제섭이 육체적으로 몇 백만년전의 원시인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뿐 아니라 아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생명의 기원" 이라는 시점에 도달한다는 아이디어가 완전 뽕맞은 넌센스다. 그리고 오리진 포인트에 도달했으면 뿅하고 티끌로 사라져야지, 무슨 핵폭탄처럼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연구실 안에 거대소용돌이를 발생시킨다는 건 또 뭔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차예프스키는 원래 감독으로 기용되었던 아서 펜 ([보니와 클라이드], [작은 거인]) 에게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각본 고대로 영화를 찍을 것"을 종용했으며, 펜 감독이 "도무지 뭔 질알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라고 고백한 후 감독직에서 하야하고, 러셀이 대타로 들어온 다음에도 계속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결국 불만의 표시로 "시드니 아론" 이라는 가명을 크레딧에 올리게 되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멀쩡하게 생긴 연기자들이 맥주 마시고 대마초 피우다가 벌떡 일어나서 "봐라, 우주는 영원이요 영원은 삶이며 삶은 우주다! 오호 통재라!" 라는 식의 대사를 흥분해서 읊어대는 약간 어처구니없는 분위기는 러셀 감독이 차예프스키의 각본에서 그대로 가지고 왔음을 알 수 있다. 


러셀의 독창적인 터치는 그의 거의 뮤지컬적이고 회화예술가적인 시청각 감각의 구상과 실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에디 제섭이 감각박탈탱크 안에서 그리고, 멕시코에서 원주민들의 극약성분이 들은 버섯을 먹는 종교의식에 참여해서 보는 환상의 구체적인 묘사에 강렬하게 이단적이고도 정통 카톨릭적 성격-- 선악과대신에 아이스크림을 떠 먹고, 거대한 뱀에 시달리는 에밀리와 에디, 에디의 아버지의 임종과 여러 개의 눈이 달린 염소의 머리를 지닌 예수를 닮은 인물 등-- 을 부여함과 동시에, 일상적인 대화와 드라마의 장면에도-- 에디가 처음으로 에밀리를 만나는 로젠버그 아파트의 파티 씬에서, 에디가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그를 배경에서 비추는 빛을 눈여겨 볼 것-- 조명과 미술 설계등을 이용한 멋진 비주얼 디자인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러셀이 완전히 장악해서 수미일관하게 통제하는 [변화된 상태] 의 영화내 세계는 아름답고, 신화적이며, 때로는 영화의 사상성을 충실히 반영하는 싸이케델릭한 양태를 보여준다. 


감탄스러운 것은 그의 이러한 전광석화적인 연출 방식이 80년 당시의 기준으로 압도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캐스트의 진솔하면서도 편집적으로 파고드는 연기를 전혀 희생시킴이 없이, 오히려 그것을 받춰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으로 실질적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로 [거미여인의 입맞춤], [부족한 신의 아이들], [빅 칠] 등을 통해 80-90년대의 연기파 톱 스타로 알려진 윌리엄 허트의 "낭랑 (朗朗) 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 같은 청초하고도 명료한 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왠지 모르지만 탑스타가 되지 못했던 블레어 브라운과 스필버그 영화의 명 조연 밥 발라반, 악역과 TV 출연으로 더 잘 알려진 찰스 헤이드 등도 자신의 전신을 쥐어짜다시피 해서 최고 레벨로 비등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라서 좀 쑥스러운데, 러셀의 영화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나체가 거의 공격적인 방식으로 화면 가득히 캔버스처럼 펼쳐지고는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불쾌감을 조장할 정도로 육감적이지만 (메밀국수 먹으러 온 고객한테 꼼장어를 구워서 내놓는 것 같다), 이 한편에서 허트와 브라운의 나체는 글자 그대로 상아로 만들어서 살아 움직이는 조각처럼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연기자들의 대사의 굴림과 거의 같은 수준의 정서적 파워를 지녔다. 


러셀은 매트 페인팅 등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특수효과를 싫어하고, 물리적인 특수효과를 선호했다고 하며, [엑소시스트] 의 악마 메이크업 및 [작은 거인] 의 노인 분장 등으로 명성을 떨친 딕 스미스를 기용해서, 통제를 잃어버린 채 마구 증식하는 세포로 여기저기가 이그러지고 부풀어오른 에디의 모습과, 그냥 고릴라나 침팬지의 모습을 복사했을 뿐인 통속적인 "유원인" 모습과 전혀 차별되는 원시인의 용자를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대파 콘서트 작곡가였지만 영화음악에는 관여한 적이 없었던 존 코릴리아노를 고용해서, 당시 대 유행하던 존 윌리엄스의 고전적인 사운드와 또는 제리 골드스미스나 제리 필딩 등의 무조 (無調) 음악을 기조로 한 서스펜스 중심의 사운드와도 현격히 다른, 드라마틱하면서도 이색적이고, 격조가 있는 스코어를 구비하였다. 이 스코어는 사운드 디자인과 함께 오스카상후보에 올랐다 (참고로 러셀이 [변화된 상태]의 템프 트랙-- 최종편집이 안된 푸티지에 임시로 붙여놓는 음악-- 은 스트라빈스키와 바르토크였다고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현대음악 작곡가인 코릴리아노가 이 한편의 에밀리와 에디의 관계를 위해 쓴 러브 테마는 80년대 장르 영화음악에서도 최고로 로맨틱하고 감미로우면서도 품격있는 멜로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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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1980년대 당시에 관람했을 때에는 뭔가 거창한 주제를 다루면서 [2001년 우주 오디세이]처럼 끝날 것 같았던 영화가 맥아리없이 막을 내려버린다고 느꼈었는데, 결말을 이미 아는 상황에서 다시금 보자니, 이 엔딩이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인 흐름의 매듭이라는 점에서나 괜찮은 결말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차예프스키의 현학적인 잡소리로 가득찬 각본에 이 "사랑이 진실이다" 라는 "통찰" 보다 더 세련된 사상적 주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하고. 무엇보다도 러셀의 연출에는 명료하고 합리적으로 전달이 가능한 것을, 기어이 "예술가" 의 에고로 똘똘 뭉쳐서 일부러 난해하고 복잡하게 만들어놓는 그런 아집이 없다. 에디가 주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느끼는, 세포와 난자, 흩어지는 빛의 입자 등의 몽환적이고 싸이케델릭한 영상도 그 감정적인 효과는 여실하고, 궁극적으로는 신비스럽고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변화된 상태] 는 보고 난 다음에, 우리의 인생철학이 다 뒤집혀 바뀌고, 뭐 그런 어마어마한 사상적인 파워를 지녔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런 영화는 사실 백편이나 이백편 중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거다. 그러나 러셀 감독이 핀치 히터로 고용된 이 한편은 SF-판타지적 세계의 현대적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독보적인 역사적 위치를 획득했고, 그 명성에 충분히 대응하는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워너 브라더스에서 2012년에 예고편만 달랑 수록된 싸구려 블루 레이 판본으로 출시했다. 압도적으로 거지 같은 카버디자인에도 불구하고 화질과 음질은 아주 우수하며 VHS 는 물론 DVD 버전과도 비교할 바는 아니다. British Film Institute 에서 최근 [더 데빌스], [발렌티노] 등 켄 러셀의 일련 작품들을 블루 레이로 내놓고 있는데, 언제라도 좋으니 워너 브라더스에서 판권을 얻어다가 특별판으로 출시해 주었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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