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최고의 블루 레이 리스트 듀나게시판에 올린다. 물리적으로 2016년에 구입한 타이틀로 한정한다. 원래는 디븨디와 블루 레이를 동시에 연말 리스트에 넣기로 했었는데, 워낙 마음에 드는 디스크가 많아서 스무 장을 골라내기가 보통 힘들지 않았고, 그 중에 특별 고려의 결과 한 두 장 정도 디븨디를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도 덤테기로 머리가 아픈지라, 그냥 블루 레이로 통일하기로 했다. 통계상으로는 여전히 DVD 가 모든 구입한 디스크의 한 23% 수준에서 적어지지 않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나는 콜렉터 중에서는 디븨디 홀드아웃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영어 자막이 없는 일본 고전 영화라던가, 한국의 최근 출시작인데 블루 레이로 안나오니 울며 겨자먹기로 디븨디를 구입하던가, 그런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의 신작 같은 경우는 솔직히 광학 디스크 매체로 출시를 아예 안 할 거면 모르겠는데 낼 거라면 블루 레이로(도) 출시 하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블루 레이 플레이어 보급률이 저조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뭔가 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분석을 누가 해주셨으면 고맙겠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최고" 라는 표현은 영어에서 말하는 My Favorite 의 번역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이 리스트에 올라간 영화들의 명성이나 우수성과 왜 이 타이틀들이 선발되었는가 사이에는 일정한 정도의 상관관계 밖에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북미의 경우, 나름 고전영화를 잘 안다는 열성팬들, 평론가들, 영화계 종사자들, 심지어는 희소가치가 뛰어난 세계 영화들의 블루 레이와 디븨디를 출시하는 레벨을 소유하고 거기에서 일하는 "컬트 영화 전문가" 들 사이에서 연말 "베스트 텐" 리스트를 선출한다 해도, 서로의 리스트들 사이에 타이틀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봤자 두 서너 편에 불과하다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목도하고 있다. 블루 레이 타이틀만 해도 이제는 한 사람의 콜렉터가 한 해에 출시된 대다수의 "영화 팬이라면 이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어쩌구" 스러운 작품들을 다 긁어 모으기에는 턱도 없는 (이것은 단순히 자본금의 문제가 아니다) 상황이 도래한 지 오래되었고, 이런 리스트에다가 "왜 누구누구가 출시한 이런저런 작품이 빠졌느냐" 라는 시비는 걸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지 오래다. 2016년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걸작, 명작, 희귀작 들이 세계 곳곳에서 여러분들이 들어 본 적도 없는 회사에서 온갖 경위를 거쳐서 출시되었으며 내가 쌩돈을 지불해서 끌어 모은 숫자는 그 극히 일부의 또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 일부의 일부 안에서도, "뭣이여 이런 영화가 여지껏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허걱 ;;; 이것은 내가 40년전에 AFKN에서 흑백으로 본 영화 아니여?!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칼라 활동사진이었단 말인가…!" "워매 블루 레이로 보니까 옛날 부지직거리고 담배 자국이 여기저기 난 필름으로 동시상영관에서 본 거랑은 완전 딴 명품이네." "아아… 이러한 걸작을 내가 눈이 썩어서 여지껏 몰라뵜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기타 등등, 온갖 종류의 감탄사를 유발시키는, "발견" 과 "재발견" 의 즐거움과 충격을 주는 타이틀들, 또한 "씨네필" 적이거나 "평론가적" 시점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는 종류의 애정과 관심을 쏟아 붓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타이틀들을 정말 어거지로 부득부득, 오만과 편견을 무릅쓰고, 스무 편 선출한 것이 밑의 리스트다. 그러므로 이 스무 편에서 제외된 2016년의 출시작들이 복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또는 불후의 명작이나 경악스러운 컬트작들이 아니어서 빠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예를 들자면, 타르코프스키의 제 작품들과 키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 도 작년에 블루 레이로 나왔는데, 내 리스트에는 없다. 키슬로프스키의 경우는, 새삼스럽게 왜 연말 베스트 리스트에 이런 누구나가 훌륭한 작품이라는 걸 알고 있는 영화를 꼭 넣느냐 라는 허황되고도 김빠지는 이유로 제외했다. 타르코프스키의 경우는 [솔라리스] 의 블루 레이가 작년에 세계에서 처음 나왔다면 그것은 올렸을 테지만. 그리고 이 리스트를 읽은 분께서 아니, [데칼로그] 는 없는데 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은 들어있어? 라고 시비를 거셔도 거기에 대한 대답은 없다. 내 맘이다. 


기타 제외된 작품들에 대해 몇 마디 더 부친다. 영어 자막이 없는 일본판 블루 레이와 디븨디는 일부러 제외했다. 예를 들자면 쿠로사와 키요시 감독의 [크리피] 와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들불], 그리고 2016년에 쏟아져 나온 [테츠오] 를 위시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그 중요성과 임팩트로 따지면 할 말이 엄청 많지만, 영어 자막을 포함한 서플이 포함된 다른 판본의 블루 레이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 이외의 다른 곳에서 출시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연말 리스트에는 넣지 않았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영상자료원에서 출시하는 디븨디와 블루 레이도-- [홍길동/차돌바위와 호피], [종각] 등-- 꼬박꼬박 손에 넣고 있으며 학문적으로는 둘도 없이 귀한 자료이지만, 이 연말 리스트가 나에게 요구하는 감정적인 규격과는 어딘지 맞지 않는 데가 있는 듯 하다. 몬도 마카브로에서 출시한 [깊은 밤 갑자기] 블루 레이를 손에 넣었더라면 아마도 리스트에 진입했을 터인데, 한정판은 이상하게 연이 안 닿아서 놓쳤다. 내년 2월에 일반판이 출시된다고 하니, 구입하게 되면 2017년의 베스트 리스트에 아마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사라는 관점에서 논하자면, 결코 이 리스트에서 빠져서는 안될 콜렉션 패키지가 영국영화원 (British Film Institute) 에서 출시한 알란 클라크의 BBC TV 영화 및 드라마 작품 전작집일 터인데, 자그마치 일곱장의 디스크에 1969년부터 1989년까지의 20년 동안 TV 라는 매체가 허락할 수 있는 예술성과 사회성의 극한에 도전한 한 영상작가의 노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엄청나다" 라는 수사로는 한참 모자라는 타이틀이다. 그러나 [Penda's Fen] [The Firm] [Psy-Warriors] 등의 작품들을 관람해보니, 가히 충격적으로 아방가르드적이고 흥미를 돋구는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개인적인 연말 리스트에 넣기에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TV 라는 가장 상업적인 매체에서 극단적인 작가주의적인 영상실험을 계속했던 반골 아티스트의 압도적인 인생의 무게에 압도당한 일개 엔터테인먼트 영화팬의 치졸한 반항심일까? 아마도 2017년을 내내 두고 계속 탐구해도 끝판이 나지 않을 타이틀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끝내 연말 리스트에서는 제외하였다.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 등 최신작들의 블루 레이도 내용과 사양 (仕様: 이건 사실 일본말인데) 이 대단한 것들이 꽤 있었지만 이 리스트에는 올리지 않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삼부작] 블루 레이 같은 경우는 내가 그렇게까지 위대한 한편이라고 여기지 않는 [판의 미로] 가 포함되어 있다는, 뭔 심술이 뻗친 웃기지도 않는 이유 때문에 탈락시켰다. 기타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손에 넣지 않거나, 손에 넣고서도 아직 포장도 뜯어보지 않은 크라이테리언, 애로우 비데오, 트와일라이트 타임 기타 다른 레벨들의 출시작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아니 크라이테리언에서 나온 [벌거벗은 섬] 이 왜 이 작자의 베스트 리스트에 없지?!" 라는 식으로 분개하시지 마시라. 그 한편 나도 한국에서 옛적에 출시된 디븨디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무척 좋아하는데요, 리스트에서는 결국 빠졌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세 레벨들이 다른 스튜디오 출시작들에 비해 가격을 비싸게 먹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은 이들도 점차 깜짝 반액 세일 같은 행사를 하기 때문에, 사실 싸게 구할 기회는 적지 않아 있다. 한국에서 구매하시는 분들은 그렇다 치고, 미국에서 내 바깥분과 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러 나가려 하면, 파킹 값 빼고도 최소 3만 3천원은 잡아야 한다. 아마존에서 25% 할인된 크라이테리언 블루 레이 한편 값이다. 그러니 나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디븨디, 블루 레이 값이 아깝다는 것은 엄살이다. 혼자서 팝콘을 밥 대신 드시면서 아트시네마에서 영화 순례 하시는 학생이나 솔로 프로페셔널 분들이라면 블루 레이 사느니 그 돈으로 영화를 보겠다 하는 선택지가 말이 되실 수 있겠다만. 


그러면 최종 20편 리스트로 진입한다. 영어 버전도 있고, 곧 Q Branch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다. 영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은 10위 이후의 초이스들이 미묘하게 다른데, 이것도 내가 매년 동원하는 꼼수 중 하나다. 영화의 타이틀은 될 수 있는 한 네이버에서 확인한 한국 공개 제목을 가져다 썼고, 특정한 경우에는 괄호속에 원제의 직역을 삼입하도록 했다. 


20. 챌린지 (도전) The Challenge (1982, CBS Broadcasting/Kino Lorber,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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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이 한편은 또 어떻게 블루 레이로 등장을 하게 된 것인지. 소공동에서 불법비데오로 돌려 보던 시절에 "미후네 토시로가 나오는 현대 미국영화? 엥 감독은 존 프랑켄하이머? 엥엥 음악은 제리 골드스미스?! 허걱, 저 저 저 지금 일본도로 베인 저 엑스트라의 내장이 흘러나온 것 아냐?!?" 라고 혼자 "비명"을 질러대고 손톱을 자근자근 씹으면서 감상했던 한편이다. 뉴스위크인가 어디에서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두통을 유발시키는 (왜 이 표현을 썼는지는 영화를 끝까지 보시면 알 수 있다) 괴작" 이란 투의 악평을 읽은 것이 기억난다. 걸작은 아니지만 어떻게 이런 영화의 존재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 넓게는 쿠로사와 아키라라는 한 영화인이 드리운 그림자가 정말 세계 자체를 감싸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 좁게는 존 프랑켄하이머 같은 장인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는 헐리웃의 영화 감독의 경우에 있어서도, 언제고 미친 듯이 폭발할 수 있는 "오타쿠 기질" 이 그들의 영화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인자 중의 하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일본도와 호치키스, 제록스 복사기가 난무하는 액션신은 이 영화 말고 딴 데 또 있을 지 몰라도, 그런 액션신에 다이코를 미친 듯 두들기는 광란의 제리 골드스미스 액션 스코어가 달린 작품은 이 [도전] 이 유일무이하다. 


네이버 영화란의 시놉시스를 읽으면 무슨 [카라테 키드] 같은 가족이 모여 앉아서 볼 수 있는 알콩달콩한 작품을 연상하게 되는데, 전혀 아니니까 그리 아시길. 절라 싹막한 한편임. 


19. 아들을 동반한 검객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늑대) 시리즈 子連れ狼シリーズ/Lone Wolf and Cub (1972-1974, Criterion Collection,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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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크라이테리언에서 [자토이치] 전작을 블루 레이로 내놓은 다음에도 과연 이 시리즈까지 전작을 블루 레이로 내줄까 의심이 들었는데, 마침내 나왔다. 그것도 미국에서 희한하게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재미있게) 재편집된 다이제스트 버전 [쇼군 아싸신] 까지도 부록으로 포함해서… 대단하네요. 


부연하자면 나는 원작 만화의 팬은 아니다. 좀 극단적인 표현을 쓰자면 파시스트 미학의 경향이 다분하다고 생각하고, 원작의 오가미 잇도는 사실 자기를 죽이러 오는 야규우 집안의 암살자들보다도 싹막하게 미친 녀석이다 (여기서 "파시스트" 미학이라는 것은 반드시 정치이념에 있어서 흔히 말하는 "우파" 적인 정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의가 필요하다). 난 솔직히 오가미가 죽건 말건 응원을 할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아. 비겁하고 더러운 수단으로 자기 적 들을 처참하게 죽여놓고 "우리 부자는 이미 사바세계를 떠난 마귀의 도를 걷는 바…" 어쩌고 연설을 늘어놓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혓바닥을 뽑아 주고 싶어진다. 흥미 있는 것은, 영화판이 원작의 잔인성이나, 봉건적 사상의 강도를 특별히 약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만화보다 훨씬 휴머니즘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측면은 만화나 소설에 비해서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모든 것을 콘트롤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18. 크라임 오브 패션 Crimes of Passion (1984, Arrow Video, Region A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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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러셀이 당대의 최고의 스타이자 "연기가 되는 미인배우" 라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여성혐오적이기 이를 데 없는 레벨이 달렸던 캐스린 터너와 협업하여 제작한 한편으로, 발표된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논란과 찬반 토론의 대상이 되어온 문제작. 플래티눔 블론드 가발을 둘러쓰고 강간 판타지를 비롯해서 온갖 추잡한 남성들의 섹스 판타지를 실현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차이나 블루" 라는 LA 의 한 성매매 여성과, 그녀의 이중 생활을 본의 아니게 알게 된 또라이 중산층 전기제품업자, 그리고 차이나 블루를 "구원" 한다는 명목하에 스토킹하고 다니는 싸이코 목사 이 세 사람이 거의 뮤지컬 무대만큼이나 양식화된, 보랏빛, 핑크빛 네온 색깔이 번쩍이면서도 너저분한 LA 의 거리를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80년대 미국의 성에 관한 담론을 읊고, 소꿉장난 같은 부부싸움을 벌이고, 칼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딜도와 짜꾸가 달려서 가랑이가 열리는 팬티 등 치명적으로 위험한 도구들로 서로를 할퀴고 찌른다. 1984년 공개 당시에 [원초적 본능] 같은 한편을 기대하고 관람했다가, 완전히 머리통부터 타격을 당하는 충격을 먹고 멍하게 되어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새롭다. 생뚱맞고, 한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착취적인 영화이거나, 또는 "진정성"과 "입바른 말"의 극한치를 보여주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예술작품이거나: 대부분의 관객으로서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가 불가능한 한편이다. 


애로우의 스페셜 에디션은 켄 러셀과 각본가 배리 샌들러의 코멘터리, 샌들러가 다시 2016년 시점에서 들려주는 회고, 러셀의 [리스토마니아] 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록 스코어로 재편성한 적이 있었고 이 작품에서 다시금 러셀과 협업한 작곡가 릭 웨이크먼의 인터뷰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80년대식 "분칠" 룩과 암부가 거칠게 들어나는 네온 조명의 휘황함이 눈에 쑥 들어오는 2K 트랜스퍼를 과시한다. 


17. 10 번가의 살인 10 Rillington Place (1970, Columbia Pictures/Twilight Time,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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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차에 쓴 글을 재사용하자면, "겉으로는 연속살인범 영화지만 사회적 안전망과 교육의 부재가 한 인간을 완전한 파멸로 몰아넣는 과정을 마치 곤충도감처럼 차가운 필치로 관찰" 하는 한편이다. 내가 평생 이때까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사법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지니게 만드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즐거운 날에 주말의 명화 보는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했다가는 며칠 지속되는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한편이니 접근에는 주의를 요한다.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은 이 리스트에 수록된 또 하나의 걸작 [보스턴 교살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밀도 자연주의 기법으로 (실제로 살인사건이 벌어진 집을 굳이 찾아내서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는 등) 관객들의 숨통을 틀어쥐고 서사를 풀어나간다. 거기에 더해서 호떡처럼 두루뭉실한 인상의 연속 강간 살인마를 극도로 절제된 필치로 묘사하는 리처드 아텐보로 경, 그의 마수에 걸려드는 어린 임산부 역의 주디 지슨,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문도, 출신 배경도, 하다못해 악다구니를 부릴 기력도 없이 그저 멍청하고 답답하게 착하기만 한 젊은 아버지 역의 존 허트의 뛰어난 연기가 관객들을 옴쭉 달싹 못하게 얽어맨다. 재판정에 서서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자신의 몸에 닥쳐오는 끔찍한 불의를 감당해야 하는 허트 연기자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너는 왜 이렇게 바보니? 왜 그렇게 당하기만 해!" 라고 소리 지르며 화면 속으로 들어가서 흠씬 패주고 싶은 분노와 눈물을 흘리면서 그 앞에 꿇어앉아 영국 사회를 대신하여 그에게 사죄하고 싶은 욕구라는 두 가지 감정에 시달려서 화면을 제대로 응시하기 힘들어진다. 


비싼 값으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계약해온 고전 작품들을 별 사양 없이 블루 레이로 내놓으면서, 어느 정도의 악평을 감수해야만 하는 트와일라이트 타임 레벨 출시작 치고는 드물게도 존 허트와 주디 지슨의 코멘터리라는 서플멘트가 수록되어 있다. 작년 말에 영국 레벨 인디케이터에서 출시된 리젼 B 판본이 있는데 그것에도 거의 같은 내용의 부록영상이 들어있는 듯 하다. 


16. 딥 레드 Profundo Rosso (1975, Arrow Video, Regio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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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여지껏 현존해서 활동중인 고전호러영화의 명장들 중에서 디븨디시절에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은 분은 아마도 다리오 아르젠토일 것이다. 최근의 작품들이 죽을 쑤면서 과거의 영광과의 격차가 심해져 간다는 아이러니는 피할 수 없지만, 어쨌든 블루 레이로 넘어가면서 [서스페리아] 가 그다지 좋지 못한 화질로 출시되는 등 다소 난항을 겪은 바 있었는데, 애로우가 블루 언더그라운드로부터 바통 터치를 하면서 바야흐로 본 궤도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일본 등지에서 다 짤려나간 축약본으로 [서스페리아 2] 라는 모멸감 드는 타이틀로 공개되었던 이 한편도 2시간 7분짜리 이탈리아어 극장판이 세계시장에서 "정본"으로 인정받은 지 이미 10년 가까이 흘렀다. 이제 새삼스럽게 블루 레이로 출시된 들 별 감흥이 있을까 보냐 하고 한번 보아 봤는데, 어쩐 일일까? [인페르노] 나 [페노미나] 의 경우보다도 이 한편이 새롭게 다가오다니. 무엇보다도 감독이 지알로 장르에 대한 말하고 찍고 싶었을 모든 것들이 추리소설적-탐정소설적인 군더더기가 다 떨어져 나가고 아주 정련된 형태로 딱 맞추어져 있다는 인상을, 요번에 애로우 비데오의 2K 트랜스퍼 블루 레이로 보고 처음으로 받았다. 


물론 애로우가 명성을 걸고 출시한 디스크인지라, 디븨디 시절부터 전해 내려오는 서플들에 새로 또 추가한 학구적 분석 다큐멘타리며 새 아르젠토 인터뷰 등 여러 종류의 부록 및 부가 영상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채워졌음은 물론이다. 


15. 잡을 테면 잡아봐라 Try and Get Me! (1950, Paramount Pictures/Olive Films,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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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필름즈에서 꾸준히 출시하는 필름 느와르를 중심으로 한 미국 고전 영화들 중 금년의 대표작은 이 한편. 조셉 로지와 더불어 50년대 미국에서 빨갱이로 찍히면서 영국으로 이민가서 [수수께끼의 섬 Mysterious Island], [줄루], [칼라하리의 모래] 등의 인기작들을 감독한 시릴 (사이) 엔드필드 감독이, 한국 전쟁이 막 시작되는 시기에 대담히 내놓은, 아마도 빨갱이로 찍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리라고 여겨지는 한편. 사상적으로 그리고 주제의 측면에서도 [10번가의 살인] 과 공통되는 요소가 있는데, 진짜 악당인 제리 (제프의 아버지이자 당대의 TV 스타 로이드 브리지스) 의 꼬임에 넘어가서 어찌어찌 하다가 그의 범죄 파트너가 되어버린 어리숙한 하워드 (40년대 필름 느와르의 단골 프랭크 러브조이) 가 미디어, 사법시스템 그리고 "쪽수가 많으면 곧 정의" 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성난 군중들" 의 포퓰리즘의 합작으로 뜨거운 아스팔트바닥에 뱉은 가래침처럼 흔적도 없이 뭉개지기까지의 과정을 엄정-냉혹하면서도 휴머니즘의 근본을 잃지 않는 시선으로 끝까지 관망해낸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한 시간도 안 떨어진 산 호세 (한국 신문들이 "새너제이" 라고 필기하는) 에서 1933년에 발생했던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50년대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래도 시스템을 믿어야지" 투의 사상적 타협이 완벽히 배제된 강렬한 엔딩을 위시해서, 당시의 주류 언론과 권력층이 트릿한 눈으로 꼬나 보지 않을 수 없었을 사회파 필름 느와르의 역작이다. 


14. 반사하는 살갗 Reflecting Skin (1990, Soda Pictures, Regio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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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가의 살인] 등의 작품과는 성향상 극단적인 반대측에 서있는 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절대로 존재 했을 수 없는, 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Wyeth 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극도로 인공적이고 몽환적인-- 비현실적인 황금빛으로 빛나는 밀밭이 한도 끝도 없이 지평선을 독점하는 그러한-- 2차대전 직후의 아이다호주 미국을 배경으로, 여덟살짜리 소년 주인공이 핵폭탄과 관련된 경험을 한 채 귀향한 군인 형, 흡혈귀일지도 모르는, 선글라스와 검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옆집 미망인, 그리고 소년들만 골라서 희생되는 연속 납치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아름답고, 비참하고, 신경이 거슬리면서도 감동적인… 이걸 호러영화라고 불러야 되나 마나? 많은 수의 호러 광팬이라고 자부하시는 분들도-- 비고 모르텐센이 또 벌거벗고 등장하는^ ^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한편이 존재한다는 것 조차도 모르고 계신다. 다음과 네이버 DB에는 당연히 없고. 그나마 왓차에는 항목이라도 있구나. 


지난 10년 동안 꾸준하게 명성은 들었지만 제대로 된 판본으로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역시 꾸준하게 좌절감을 맛보게 해준 타이틀인데, 마침내 소다 픽처즈라는 레벨에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2K 복원판 트랜스퍼와 더불어, 감독 필립 리들리와 비고 모르텐센을 포함한 주요 관계자들이 참여한 두 편의 도큐멘터리, 그리고 리들리가 1987년과 1988년에 찍은 단편영화가 수록된 복원판을 내놓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리젼 B 인코딩이다. (유럽전용 플레이어에서만 재생 가능) 유럽영화 특히 호러영화의 팬들께서는 이 기회에 지름신에 굴복하시고 코드 프리 블루 레이 플레이어를 구입하심이… 


13. 커터의 길 Cutter's Way (1981, MGM/Twilight Time,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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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휘하의 신자유주의 80년대로 들어가는 순간의 "LA 처럼 썩은 범죄자의 소굴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잘사는 도시 산타 바바라가 무대다. 상류층 여성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 주면서 대충 대충 인생을 살아가는 "비치 범" 리처드 본과 월남전에 참전해서 한 눈, 다리와 팔을 잃은 이후로 독기만 남은 채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듯 한 커터, 커터의 내연의 처이자 알코올중독자인 모린의 세 사람이, 본이 그 고장의 대부호이자 정치세력가인 코드가 한 소녀를 성폭행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면서, 음모에 휘말려 들어간다… 이렇게 시놉시스를 정리해 놓자면, 마치 [차이나타운] 같은 필름느와르를 연상시키지만, 동유럽에서 이민 온 아이반 패서가 감독한 이 한편은 그런 장르적 재미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 대신에 60년대의 혁명적 열기가 완전히 쇠퇴하고, 마약과 알코올과 월남전의 상이군인만 남은 채, 겉으로는 흥청거리며 잘 먹고 잘 사는 80년대 미국 사회에서, 불발탄 혁명의 후유증으로 망가져 가는 인간 군상,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끝없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권력체계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비관적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는 질문을, 냉정하면서도 공감을 잃지 않는 시각으로 던진다. 이 답답하고 도덕적으로도 무수한 흠결이 있는 캐릭터들에게 우리가 긍휼함과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 그 감정의 대부분은 그들을 연기하는 제프 브리지스 (제프 브리지스는 신이다! 고무신 신이 아니라 귀신 신 神!), 존 허드, 리사 아이크혼 등의 이 세대의 미국 배우들의 공력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또다시 트와일라이트 타임 출시치고는, 반갑게도 이 레벨의 주요 스탭인 줄리 커고와 닉 레드먼의 오디오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스타맨] 의 스코어도 맡았던 잭 니체의 특이한 음악을 따로 스코어 트랙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트와일라이트 타임이 원래 사운드트랙 CD 전문 레벨로 시작된 만큼, 이 분야에 관해서 만큼은 철저한 관리의 태세를 갖추었다) 


12. 한밤의 방문객 The Night Visitor (1971, VCI Entertainment,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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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편은 북미에서도 출시된 회사와 나만 알고 있는 것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어떤 다른 연말 리스트에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타이틀이다. (네이버와 다음 데이타베이스도 당연히 이 영화의 존재 자체에 대해 무지하다) 사실 이 제목을 아마존에서 봤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알랭 들롱의 [쾌걸 조로]와 마찬가지로, 북미판에서는 디븨디는 커녕 VHS 로도 찾을 수 없었던 한편인데, 덜커덕 블루 레이로 출시되었으니. 옛날 AFKN 에서 흑백으로 본 기억은 분명히 나는데, 이런 영화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내 기억을 의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추억 속의 환영 중의 한편이었던 [한밤의 방문객] 은, 막스 폰 시도우, 리브 울만, 페르 오스카르손이라는 잉그마르 베르이만 제 작품들을 비롯한 스웨덴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자들이 출연해서 그야말로 북구형으로 음산하고도 정교한 연속살인사건 미스터리를 영어로 연기하는, 이건 뭐 내가 아무리 공상력을 발휘해서 구라를 쳐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악스러운 기획이 "실제로 이루어진" 한편이다. 거기다가 음악 담당자는 자그마치 헨리 만시니 (뭐?!?). 사악한 사이코 살인마 범인인데도 어찌나 열심히 노력을 하면서 정교하게 트릭을 짜는지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범인을 응원하게 되는 (미스터리 팬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듯), 그런 두뇌를 풀하게 가동시켜야 하는 정통 미스터리가, 덜 녹은 눈이 질척하게 쌓여있는, 보기만 해도 으스스하게 떨리는 겨울 덴마크의 풍광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크라이테리언이니 애로우니 하는 화려한 레벨들에 밀려서 풍전등화, 언제고 쫄딱 망할 것 같은 VCI 레벨인데, 웬걸, 연말 정산을 할 때면 VCI 에서 내놓은 타이틀이 반드시 하나는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레벨이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마라 영화팬들이여! 트랜스퍼는 솔직히 중에서 중 또는 중에서 약간 하 정도의 퀄리티지만, 브루스 할렌벡이라는 작가가 잊혀진 미스터리의 역작으로써 본편을 분석하는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나 말고도 한 사람 이상의 팬이 있는 작품이긴 한 가 보다. 


11. 보스턴 교살마 The Boston Strangler (1968, Twilight Time,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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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번가의 살인] 의 감독 리처드 플라이셔가 2년전에 20세기 폭스사에서 헨리 폰다를 필두로 한 메이저 스튜디오의 연기진을 풀로 동원해서 만든 또 하나의 연속살인범에 관한 영화이지만, [10번가의 살인]과의 공통점은 음악을 거의 쓰지 않는 극자연주의적인 접근 방식과 소재의 유사성 정도고, 영화를 만든 방식은 이것이 과연 같은 감독인가 하고 의심이 들 정도로 다르다. [보스턴 교살마] 는 서유럽의 극단적인 예술영화들이 써먹던 "주관적인" 표현주의적 미상젠과 극단적으로 잡아늘인 와이드스크린을 복잡하게 여러 부분으로 자르는 분할화면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예술영화” 적 기법들이 “미국식” 인 자연주의적 경찰 수사 드라마와 전혀 충돌이 되지 않고, 후반부에 진입해서는 토니 커티스가 연기하는 살인 용의자 1호인 보일러 수리공 알버트 데 살보의 정신적 고뇌와 광기를 거침없이 그려나간 다는 점이다.  헐리웃의 중진으로 알려진 플라이셔 감독이 몸소 “어떠한 영화매체를 위한 실험적인 기법이라도 서사의 전개와 캐릭터의 이해를 위해 원용될 수 있다”라는 진리를 실천해 보이는 양상이, 그 자체로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10. 올드보이 Oldboy (2003, PLAIN Archive,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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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플레인 아카이브 타이틀을 올릴 수 있어서 기쁘기 그지없다. [올드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뉴 코리안 시네마 작품 중 탑의 위치를 구가하는 한편인데도 불구하고, 디븨디와 블루 레이가 이 작품을 제대로 구현해주는가 여부에 있어서 계속 구설수의 대상이 되어 왔다. 크라이테리언이나 애로우가 (상업적인 의미에서라도, 그들도 탐을 내는 타이틀임에는 틀림없다) 대대적으로 출시해준다고 하기 전에는, 이러한 논쟁의 “끝판” 적 출시작이 플레인 아카이브의 판본이라는 데 최소한 나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천년대 초반에는 대한민국이 디븨디 패키지를 세계에서 가장 공들이고 예쁘게 하는 나라 중 하나였다. 마치 그 시대에서 날아온 것처럼, 수공업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인 플레인 아카이브의 패키지를 받아보는 순간, 무척 행복해지기도 하고, 또 동시에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렇다. 


서플먼트의 다양함과 철저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 중에서도 특기할 한편은 한선희 제작자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 제작-감독한 [올드 데이스] 라는 도큐멘타리다. [올드 보이] 제작 당시의 날 모습을 기록한 귀중한 자료 필름들과 함께, 미술 감독 류성희, 강혜정 연기자, 유지태 연기자 등 스탭과 캐스트, 그리고 물론 박찬욱 감독의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감회가 수록되어 있다. 절대 추천! 


9. 페닉스호의 비행 Flight of the Pheonix (1965, Eureka! Masters of Cinema, Regio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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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올드리치가 감독한 "각 분야의 엑스퍼트들이 힘을 합해서 절대절명의 위기를 탈출하는" 액션영화 서브 장르의 걸작인데, 실제로는 디즈니 모험영화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보기 시작한 관객들을 완전히 엿 먹이기에 충분한 싸이코시스, 강박, 분노 그리고 부조리의 연속인 플롯과, 그에 또 걸맞는 캐릭터들의 핵분열 폭발 때문에 객석에서 휘날려 가버릴 지경이다. 그 차분한 리버럴 리처드 아텐보로 경이 (이 무렵에는 아직 "경" 은 아니었지만) 클라이맥스의 어처구니 없는 반전의 내용을 듣고 "아~무 걱정 없어! 잘 될 거야! 크하하하하하하!" 하고 완전히 맛이 간 눈으로 광기에 휩싸인 홍소를 터뜨리는 한편이니, 말 다했지.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고 나면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감을 근원적으로 복원해주는 통쾌함도 같이 던져준다. 이 괴이하면서도 모순된 멋짐! 


올드리치는 연이어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대가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는데, 마스터즈 오브 시네마에서 출시된 블루 레이는 서플멘트는 양적으로 약하긴 한데, 닐 시냐드 평론가가 집필한 소개글을 비롯해서 분석적인 접근 방식은 여전히 뛰어나다. 


8. 협녀 狹女/A Touch of Zen (1971, Criterion Collection,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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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금전의 대표작 [협녀] 에 관해서는 소개 글 비슷하게 늘어놓을 만한 말이 없고, 이 블루 레이를 틀었을 때 처음 아무런 캐릭터가 나오지 않고 그야말로 "뫼와 물 (山水)" 을 카메라가 탐닉하듯이, 또한 파노라믹하게 몇 분에 걸쳐 비치는 모두에 벌써 넋이 쑥 빠졌다는 말만 하련다.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벅차서 노래 부르듯이 묘사하는 카메라라니. 이런 활동사진이 예술이 아니면 뭐가 예술인 것인지? 장 뤽 고다르가 요즘 만드는 그런 사진들이 예술인 모양이지 (rires mocqueurs, k-k). 


크라이테리언의 4K 복원판이 [협녀] 의 다른 판본에 비해서 별 거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정색을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 돌았는가? 아니면 눈이 삐었는가? 색맹이냐? 그냥 크라이테리언같은 시시 chi-chi 한 레벨에서 "무협영화"를 출시하는 게 재수없어서 시비를 건다고 고백해라. 


7. 슬픔의 벨라돈나 Belladonna of Sadness (1973, Cinelicious Pictures,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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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출시된 복원판 고전 명작중에서도 특별히 경악스러운 초이스 중 하나였다. 일본 아니메이션의 고전작품들은 내가 평소에 목청껏 출시해다고, 해다고 라고 부르짖어도 실현이 잘 안되는 분야중의 하나인데, 시넬리셔스라는 원래 아니메하고는 연관이 별로 없던 레벨에서 [우주 소년 아톰] [흰사자 레오] 등의 성공으로 갑자기 비대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창의적인 측면에서 심각한 내홍과 분규를 겪었던 70년대의 무시 프로덕션의 최후의 실험적 장편 아니메이션이라고 알려진 한편을 내놓기로 한 것이니, 이게 어찌 놀랄 일이 아닐 소냐. 후카이 쿠니 화백의 뚜렷하게 서 유럽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기조로 구성된 영화 자체도 모순덩어리이고, 보고 난 다음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서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감정의 충돌로 인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 예술인가, 두 눈을 뜨고 보기 힘든 여성착취의 극단인가? (주인공인 잔느가 잔인하게 성폭행을 당하자, 그녀의 몸이 문자 그대로 두 조각으로 찢겨지면서 붉은 빛으로 물드는 시퀜스는 전혀 리얼하지 않은 "그림" 일 따름이지만, 아마도 금년에 내가 본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충격적인 여성의 성폭행의 묘사일 것이다) 일본적인 악취미가 예술가의 기백을 잠식해 버린, 흐트러진 혼돈의 격탕인가, 아니면 프랑스나 미국 세계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과 활동사진의 새롭고도 위대한 조합인가? 한 번 봐 가지고서는, 경악의 결과로 땅바닥에 떨어진 턱주가리를 줏어다 윗턱에 끼어맞추기 바쁘고 이런 질문들에 대답은커녕 제대로 반추해 볼 여유도 없다. 왜 블루 레이라는 매체가 필요한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공개 당시 검열당해 잘려나간 8분 가량의 필름을 어떻게 했는지 복원해서 4K로 트랜스퍼해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후카이 쿠니 화백, 감독 야마모토 에이이치, 작곡가 사토오 마사히코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시넬리셔스 레벨의 구입 책임자이자 아메리칸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래머였던 데니스 바르토크가 집필한 장문의 소개글이 완전 쩐다. 이렇게 된 이상 [천일야화] 와 [클레오파트라] 도 철저 복원, 출시해 주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6. 영혼의 카니발 Carnival of Souls (1962, Criterion Collection, Blu Ray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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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하는 얘기지만 미국영화는 그 보수적인 종교-사상체제와 상업적인 헤게모니에도 불구하고 그 저변이 끝없이 넓으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영화 아이디어는 이미 미국의 누군가가 지난 110 년이라는 활동 사진의 유구한 역사 동안, 최소한 시도는 해봤다고 여기는 것이 좋다. [영혼의 카니발] 은 캔서스 시골에서 산업용 교육영화를 찍던 일군의 팀이 느닷없이 솔트 레이크 시티라는 호러와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도시에서 로케이션을 해서 찍은 한편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한편은 없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고딩 학예회 수준의 메이크업과 캔서스의 시골에서 데려온 작가들의 친지, 아는 사람들로 구성된 스탭과 캐스트로, 이런 꿈속에서나 나올 만한 기괴하고도 몽환적인 작품을 만들었을지, 허크 하비 감독과 존 클리포드 각본가 자신에게 물어봐도 본인들도 대답을 할 수 없는 듯 하다. 순수하게 악몽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묘하게 어린애들 장난 같은 부자연스러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감 나는 압도적인 임양감도 포함해서) 이렇게 잘 전달해주는 한편도 드물다. 55년전에 만든 흑백 영화라고 설렁설렁한 태도로 접근하면 큰 코 작은 코 다 다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크라이테리언에서는 단순히 2000년대 초반 디븨디 시절의 (스탭과 캐스트 중심의) 서플을 재구축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이 복원된 4K 트랜스퍼를 위시해서 평론가 데이빗 케언스, 작가 데나 굴드 등의 2016년 시점에서의 이 한편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부록도 삼입되어 있다. 


5. 한밤중의 차임벨 Chimes at Midnight/Falstaff (1965, Criterion Collection,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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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즈가 스페인에서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한 이 한편이 미국에서 공개되었을 때 [뉴욕 타임즈] 를 포함한 언론계에서는 시큰둥한 반응밖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와서는 도저히 믿기지를 않는다. 2016년에 공개된 작품 중 한국이나 북미의 평론가들과 인터넷 글쟁이들에게 "별 볼일 없다" 라고 찍혀서 스러지는 영화들 중에 과연 몇 개가 수십 년 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될 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요즘 트렌드의 맥락상에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30년 이상 앞서가는, 5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2백개가 넘는 짧은 쇼트로 구성된 전투 장면 때문에 평론가들의 상찬을 받는 감이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완벽하게 영화라는 매체로 소화해냈다는 점에서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해놓은 한편이라는 수사가 원 밀리그램도 과장이 아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생존했던 가장 위대한 셰익스피어 배우인 존 길거드가 연기하는 헨리 4세가 대사를 읊을 때마다 비추어지는 조명과 카메라의 시야가 그 자체로 충격적이고 감동적인데, 이런 장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오 이 명민함이여! 


영화의 위대함을 이렇게 현현 (現顯) 해 보인 유일무이한 천재를 돈이 아까와서, 제작비를 함부로 쓴다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엎어버리고, 유럽의 떠돌이로 만들어 버렸다니. 후회해도 소용없고, 그이가 떠나 버린 다음에, 남기지 못한, 만들어지지 못한 걸작들을 가슴을 치고 아까와 하는 것은 오로지 어리석은 그들의 자손인 우리의 몫이라. 


4.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枯嶺街少年殺人事件/ A Brighter Summer Day (1991, Criterion Collection,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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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창 (양 더창, 에드워드 양) 감독은 과작이고, 5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타이완 영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는 아직도 활동을 하시는 후 샤오시엔이나 차이 밍량에 뒤지지 않는 양 감독이지만 정작 그의 영화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걸작이라고 칭하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은 세시간 57분이라는 기를 팍 죽이는 런닝타임 때문에서도 (2시간 반짜리 축약본이 있기는 하다만 누가 요즘 세상에 축약본을 보나) 실제로 본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보존 상태도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마침내 크라이테리언이 4K 디지털로 복원해서 출시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미치도록 근사한 화질의 블루 레이로 한달음에 감상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 "예술영화적" 인 외연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존경한다는 양 감독의 언설에서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딴판으로-- 그 내용은 너무나 "미국적" 이고 또 "한국적" 이었다. 아니면 단지 그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에 다가가는 정도 (精度)가 그토록 대단한 것일까.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가 연상되었고,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들이 생각났으며, 심지어는 [대부] 와 [속 대부] 가 한 가족의 개인사를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기축으로 한 전후사를 조명하는 시각까지도 떠올랐지만, 감독이 스카웃한 아마추어와 프로 배우들이 촘촘하게 얽혀서, 즉물적이고 계산이 따르지 않는 “연기”와 "영화스러운" 연기가 미묘하게 섞이면서 "자연주의" 적인 일상의 묘사와 "드라마" 적인 서사의 전개가 병행되는 구조는 다른 영화에서 본 일이 없는 독창적인 그 무엇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대하소설"을 읽는 것 같으면서도,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마치 친한 친구가 자기의 경험을 몇 시간에 걸쳐 술자리에서 얘기해 준 것과 같은 친밀하고도 직설적인 감정적인 반응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게 되니, 이것을 어찌 설명해야 좋을는지. 극중의 젊은 깡패 "허니" 가 주인공 샤오쓰에게 말하는 것처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무협소설"로 완독하는 경험이란 이런 것일까. 이것 역시 영화의 마법으로 치부해 버리고 끝나야 되는 것 인가. 


 이 한편을 아직도 못 본채, 앞으로 4시간을 들여서 관람할 여유와 기백이 있는 영화팬들은 복되도다. 


3. 겨울의 라이온 (겨울 사자) The Lion in Winter (1968, Studio Canal, Regio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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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원 스타 워즈 스토리] 를 지금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는 감독은 한국에 많이는 아니더라도 너더섯 사람 이상은 충분히 있다. 심지어는 [아르고] 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획력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비판정신이 모자라서 [스포트라이트]를 만들 수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극이라는 장르에 한해서 말하자면, 1969년에 만들어진 [겨울 사자] 같은 역사드라마는 2016년의 한국에서는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 교육과 대중들의 역사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위선적이기 이를 데 없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흠뻑 빠져서, "고증" 이라는 허깨비에 얽매인 채 근세사를 양반놈들의 "위인전"으로 전락시키고, 이씨조선 (그래 이씨조선!) 의 왕 들이 노무현 닮았냐 이명박 닮았냐 그런 천박한 시사놀음이 "비판정신" 이라고 칭찬을 듣고,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에 "충실" 하면 "정통사극" 이라는 렛떼루가 붙여지고, 이 아무개 같은 사기꾼 새끼들이 개똥 같은 "사관" 소리를 읊어쌓으면 마치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뭔가 이해하는 것처럼 행세할 수 있으면서, 박사학위 받은 역사학자들을 죽일 놈 살릴 놈 씹어댈 수 있는, 그런 세태에서 벗어난 다는 것을 말한다. 즉 [겨울 사자]와 같은 영화가, 예를 들자면, 태종에서 양녕대군, 효령군 그리고 충녕군 (후의 세종)으로 넘어가는 왕위계승의 구도를 두고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아직 멀고도 멀고도 멀고도 멀고도 멀고도 멀고도 멀었다. 


지금은 그냥 [겨울 사자] 같은 작품을 보고 즐기고 배우는 수밖에. 스튜디오 카날에서는 모처럼 힘 좀 써본 블루 레이 특별판인데, 특히 존 배리의 압도적인 아카데미상 수상 스코어가 천둥과 같이 스피커를 다 날려버릴 것 같은 박력으로 들려오는 것이 장쾌하다. 감독 안소니 하비의 코멘터리, 안소니 홉킨스 경, 편집자 존 블룸, 피터 오투울의 비교적 짧은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티모시 돌튼의 인터뷰가 정말 듣고 싶었는데. 뭐 어차피 다른 데서 출시되면 중복 구입할 것이 뻔한 타이틀이니까. 


2. 길다 Gilda (1946, Criterion Collection,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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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디븨디 블루 레이 콜렉터의 입장에 서서 정직하게 생각해 보건대, 내가 태어난 해 이전에 만들어진 흑백 고전 미국영화를 새로이 감상하는 재미에 비견할 만한 다른 종류의 재미가 없다. 한 세대 전의 미국인들에게는 리타 헤이워드가 그 붉은 머리타래 (흑백영화이므로 금발이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고 붉은 색깔은 보이지 않지만) 를 휙 넘기면서 미소를 짓는 첫 등장 씬으로 잘 알려진 한편이지만, 나에게는 명료하고 깔끔하게 끊어지는 대사와 플롯뿐만 아니라, 그것에 가려진 채 영화 수면하에서 움틀거리는 욕정과 사상을 가늠하는 재미가 말할 수 없다. 글렌 포드는 보면 볼수록 뛰어난 연기자고, 왕년의 서부극 스타였던 조지 매크레디는 공작새와 같은 깃털에 뒤덮인 채, 입을 벌리면 바늘 같은 이빨이 쫙 달린 육식공룡 같은 악당이며, 헤이워드는 문자 그대로 주책없고 정신없는 남성들을 도발하고 파멸로 빠뜨리기 위해 사탄이 디자인한 존재 같다. 스튜디오에서 어거지로 삼입한 "해피 엔딩" 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멍하게 영화 안에 완전 몰입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제 1위의 한편만 아니었더라면 [한밤중의 차임벨],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겨울 사자]같은 무시무시한 세계적 걸작들의 중압감에도 굴하지 않고 [길다] 가 2016년 최고의 타이틀로 군림하였을 터인데… 


1. 사랑하는 여인들 Women in Love (1969, British Film Institute, Regio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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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게도 내 마음은 이미 대문호 D. H. 로렌스의 소설을 켄 러셀과 래리 크레이머가 각색한 [사랑하는 여인들] 에게 뺐긴 것을 어찌하랴. 언제나처럼 매해 내가 사랑한 출시작 리스트의 탑 타이틀—[투우사와 여인], [딥 엔드] 등— 에 도달하면 갯뻘에서 썰물이 빠지듯이, 할 말이 없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요번에도 예외가 아니구나. 


이 한편은 알란 베이츠와 올리버 리드가 남성 성기를 다 내놓고 빨가벗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로 끌어안고, 지르고, 던지면서 레슬링 (베이츠는 일본에서 “스모” 를 배웠다고 주장하는데 막상 하는 것은 종합격투기 + 유도 + 한국식 씨름 같은 그 무엇…) 을 벌이는 장면때문에 유명한데, 막상 그 장면을 영화 안에서 보게 되면, 그 활기찬 명랑함 (?) 과 더불어 무엇인지 가늠할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에로틱한 에너지 때문에 완전 최배달에게 돌려차기 당한 것처럼 나가 떨어지게 된다. 난 정말이지 이 한편이 완전 무삭제 상영되는 극장에서 이 장면을 처음 맞닥뜨린 한국 남성 관객들의 표정을 누군가가 하나도 남김없이 사진을 찍어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글렌다 잭슨! 오 여신이여. 


이 타이틀의 유일한 약점은 거지같은 카버 디자인. 아아, 이것만은 애로우 비데오가 해줬어야 하는데.  저게 뭐냐 이 한편이 얼마나 휘황찬란한 칼러작품인데...


그렇게 2016년도 지나갔구나! 정치적으로는 세계가 바야흐로 지옥으로 진입하는 거 아닌가 의심되는 한 해 였지만 최소한 고전 영화의 콜렉터라는 입장에서는 굉장한 한 해였다. 부디 2017년에는 세상도 덜 미치게 돌아가고, 온갖 장르와 시대의 복원작 블루 레이와 디븨디도 계속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기를 기원한다. 


올해의 레벨상: [알란 클라크 전집] 이 리스트에 들어갔더라면 압도적으로 BFI 가 이겼을 테지만, 비록 최고의 타이틀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여인들]만으로는 부족하니, 금년에는 선선히 크라이테리언 Criterion Collection 에게 최고의 자리를 드리겠다. 


올해의 영화인상: 여기서도, 켄 러셀에 드리고 싶지만 러셀은 아직도 그의 진정한 대표작들이 블루 레이로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리처드 플라이셔 

Richard Fleischer에게 드린다. 


올해의 카버 디자인상: 최고의 스무장 리스트에는 아깝게 진입하지 못했지만 애로우 비데오의 회심작 [피묻은 나비 The Bloodstained Butterfly] 를 2016년 내가 모은 타이틀 중 가장 멋진 카버 디자인으로 선출한다. 많이 팔려봐야 몇천장 나갈까 하는 이런 특화된 디븨디나 블루 레이의 카버를 위해, 새로이 끝내주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고안하고 또 제작하는 미술가 분들께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nP2m0l.jpg  


아이쿠 힘들어라. 이 리스트 작성하는 데만 이틀 반 족히 걸렸네. 


언제나처럼 이 리스트를 읽으시러 와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 여러분들의 고전 영화 사랑에 일말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며, 다시한번 명심하시길 바란다. “옛날 영화” 를 사랑하지 않는 영화계는 언젠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2017년에도 반드시, 여러분이 태어난 해보다 예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한달에 한 편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된 화면비로, 될 수 있으면 블루레이나 HD 트랜스퍼가 된 디븨디로, 또는 신용할 수 있는 리바이벌 극장에서,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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