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타스틱 4 Fant4stic (2015)

2017.01.28 16:50

Q 조회 수:1583

판타스틱 4   Fant4stic (Fantastic Four)  


"이게 내가 하는 일이지." (벤 그림)


미국, 2015.      


A Constantin Film/Marvel Entertainment/TSG Entertainment/Kinberg Genre Films/Moving Pictures Company Production, distributed by Twentieth Century Fox Corporation. 화면비 2.35:1, 1시간 39분. 


Director: Josh Trank 

Screenplay: Josh Trank, Simon Kinberg, Jeremy Slater 

Executive Producers: Stan Lee, Bill Bannerman 

Cinematography: Matthew Jensen 

Costume Design: George L. Little 

Music: Marco Beltrami, Philip Glass 

Special Visual Effects: WETA Digital, Moving Pictures Company, Pixomondo, fX3X, Rodeo FX, BOTVFX 

Stunt Coordinator: Jeffrey Dashnaw 


CAST: Miles Teller (리드 리처즈), Kate Mara (수 스톰), Michael B. Jordan (쟈니 스톰), Jamie Bell (벤 그림), Toby Kebell (빅터 폰 둠), Reg E. Cathey (프랭클린 스톰 박사), Tim Blake Nelson (알렌 박사), Dan Castellaneta (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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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작품들은 리뷰를 잘 올리지 않는데, 막상 올리게 된 작품이 또 모든 마블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폭망한 한편이라니, 독자 여러분들께서 나를 마블의 안티로 여기셔도 할 말이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지속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뛰어나게 우수하거나 또는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성취도를 이뤄낸 작품들만 다루게 되지는 않는 것이 정상이다. 이 [판타스틱 4] 가, 한편의 영화로서 즐길 수 있는 매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망작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히 재능과 의욕을 지닌 스탭과 캐스트가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듯 처참한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탐구심을 자극하는 바가 있다. 특히 조쉬 트랭크의 전작 [크로니클] 을 좋게 본 한 사람으로서, 그 전편의 취의(趣意)를 여러 형태로 계승하는 이 한편이 왜 그렇게 정반대의 실패로 귀결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트랭크가 감독으로서 프로덕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20세기 폭스사의 반응은, 1억2천만달러가 넘는 거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메이저 스튜디오가 응당 그렇게 할 것이라는 예상의 범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문제가 생긴 프로젝트를 "수선"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층위에서 간섭을 진행했지만, 그들 역시 이 한편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이 [판타스틱 4] 는, 각본단계에서 이미 그 정체성과 목표의 조율에 실패한 프로젝트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이 한편이 가진 문제는 단순히 특수효과가 구리고 디자인이 어설프다는 정도의 레벨에서, 돈을 더 퍼붓거나 시간을 더 벌었더라면 "수리"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거꾸로, 트랭크가 처음에 기획했던 대규모의 액션 신들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각본에 배태된 결함을 어쩌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물론 트랭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결론은 섣부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30분이 채 안돼서, 이렇게 짜증나는 캐릭터들을 데리고 도대체 무슨 놈의 수퍼히어로 영화를 찍겠다는 말인가? 라는 아주 근본적인 의문이 나의 의식세계를 점거하고 말았다. 특수효과니 액션 신이니 하는 얘기는 부차적인 이슈인 거다. 


트랭크가 애초에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는, 파편화된 세트 피스들을 호치키스로 찍어서 연결시켜서 나열한 것 같은 본작을 통해서 파악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나, 추측을 해본다면, 아마도 [크로니클]처럼 초능력을 우연히 지니게 된 젊은 캐릭터들이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에 맞서서 투쟁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는, 지극히 성장드라마적인 서사를 기본으로 삼고, 고딕적이고 암울한 디자인과 심리 묘사를 더해서 마블 고유의 힙스터적인 "가벼움"을 지양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이 한편을 보고 나니 [크로니클]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청소년들의 행동과 동기의 묘사는 대부분이 맥스 랜디스의 각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막역한 친구 사이인 중상층 집안 출신의 리드 리처즈와 노동 계급 집안의 벤 그림의 어린 시절의 우정을 그리는 부분부터가 도무지 신빙성이 없을 뿐 더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느끼기는커녕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전개를 보이기 때문이다. 천재 소년 과학자로 등장해서 성장통을 겪으면서 관객들의 애정을 독차지해야 할 리드 리처즈는 신경질적인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책임감이라고는 1 밀리그램도 없는 놈이고, 벤 그림은 처음에는 이런 무책임한 "친구" 에게 이해할 수 없는 충성심을 보이다가, "더 씽"으로 변화한 후에는, 백 퍼센트 뒤집어져서 적개심에 가득 찬, 네안데르탈적 단답형 (短答型) 대사를 던질 뿐, 캐릭터로서의 내면적인 복합성은 완전히 배제된 상황이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이게 내가 하는 일이지" 라는 대사를 뜬금없이 내뱉고 빅터 폰 둠을 줘 패러 출진하는 모습이란... "그러셔?" 라고 비꼬는 응수도 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 리처즈역의 마일즈 텔러와 벤 역의 제이미 벨 둘 다 연기를 통해 캐릭터를 구축할 기회가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둘에 못지 않게 문제적인 것이 마이클 조단을 쟈니 스톰으로 캐스팅하고, 그 누나인 수 스톰을 쟈니의 아버지가 세르비아인지 어디에서 입양한 백인 소녀로 만들어놓은 설정이다. 조단은 [크로니클]에서 그와 그 친구들이 갑자기 지니게 된 초능력에 대해 가장 정상적이고 건실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캐릭터를 연기했고, 그가 연기한 오바마적인 흑인 소년의 죽음이 모든 상황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국면을 가져다 주었었다. 마찬가지로, 카리스마와 "건강적인 매력"을 모두 갖춘 조단에게 가장 적합한 역할은 사실 리드 리처즈였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트랭크 또는 제작진은 흑-백 커플의 탄생이라는 버거운 상황을 만들어놓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천재 과학자였던 리처즈를 아무런 사회관계의 융통성이 없는 기크로 그려야 된다는, 그 역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스테레오타이프에 기초한 강박 때문에 그랬는지, 도무지 개연성이라고는 1퍼센트도 없는 "흑인 쟈니가 백인 수와 남매지간이다" 라는 설정을 고집했다. 이런 이상하게 억지를 부린 역할들에 연기자들을 가둬놓고, 뭔가 자연스러운 화학작용이 벌어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수 중의 무리수라고 할 밖에. 


이렇게 연기자들의 발에 철추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이상한 캐스팅 아이디어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 토비 케벨이 연기하는 찌질하기 이를 데 없는 빅터 폰 둠이다. [크로니클] 적인 성장드라마의 관점 덕택에 둠이 리드 리처즈-수 스톰 커플과 삼각관계를 양성하는 "동반자적 기크" 로 강제적으로 자리매김 당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그것 자체도 이미 심각하게 둠의 위엄을 훼손하지만), 둠이 수퍼빌런으로 등극하게 된 백스토리가, 리처즈의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아무튼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고들은 리처즈가 시골 집에서 가만히 찌그러져 있었으면 벌어지지 않았다!) 이차원 탐사를 하다가 제일 뒤쳐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 엑토플라즘에 잡혀 먹힌 과정에서 방호복과 육신이 합체한 결과라니, 이게 무슨 50년대 SF 팔다 남은 찌꺼기를 우려낸 사골 국물 발상이란 말인겨. 아니, 전 미국 만화의 악당 100명 선발에서 3,4위를 다투는 (디씨로 환원해서 생각하자면 조커나 투 페이스와 맞먹을) 존재를 이런 식으로 다루어 놓고, 1억몇천만달러라는 남의 돈으로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는 말인가? 배포도 크셔라. 제시카 알바판 [판타스틱 4]와 그 속편도 이리저리 욕을 얻어먹으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최소한 그 작품속의 쥴리언 맥마혼이 연기한 둠은 요언 그리피드가 맡은 리처즈보다 잘생겼다! 


정리하자면, [판타스틱 4] 가 거꾸러진 기본적인 이유는 매력적이고 공감을 유도하는 캐릭터의 구축의 실패에 있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네 명의 초능력을 그려내는 특수효과와 그들이 탐사하는 이차원 세계의 시각화를 위한 도안 등이 평균적인 마블 영화의 그것에 비해서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점은 트랭크의 비전 (라는 게 있었다면 얘기지만) 이 일관성을 지니고 적용될 수 있었다면 괜찮을 수도 있었다. 최소한 나 자신은 50년대 싸구려 영화식의 약간 너절한 이차원의 묘사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음을 밝혀두고 싶다. 그리고 마르코 벨트라미가 필립 글래스가 창출한 몇 개의 테마를 원용해서 작곡한 스코어 등, 제대로 돌아가는 부위도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들의 성취들은 결국 목적과 방향성 자체를 제대로 못 잡은 기획과 통제를 벗어난 난잡한 프로덕션에 말아먹힌 채 끝나고 말았다.


최후에 네 명의 히어로들이 우리 팀의 이름을 뭘로 정할까 하는 이슈를 가지고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보아도 이들이 "뼈아픈 시행착오를 거쳐서 인류의 장래를 짊어질 재목으로 성장한" 주인공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마약과 섹스가 난무하는 파티 다음날 아침에 "예이, 우리 안 걸리고 살아남았어!" 라고 지분거리면서 하이 파이브를 하는 미국 애들로 보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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