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바 El Bar (2017) <부천영화제>

2017.07.31 03:47

Q 조회 수:1260

El Bar


아르헨티나-스페인, 2016.    


An Atresmedia Cine/Nadie es Perfecto/Pampa Films/Pokeepsie Films Co-Production. 1시간 42분, 화면비 2.35:1 


Director: Alex de la Iglesia 

Screenplay: Jorge Guerricaechevarria, Alex de la Iglesia 

Cinematography: Angel Amorros 

Special Effects Makeup: Pedro Rodriguez 

Costume Designer: Paolo Torres 


CAST: Blanca Suarez (엘레나), Mario Casas (나쵸), Carmen Machi (트리니), Secun de la Rosa (사투르), Jaime Ordoñez (이스라엘), Joaquin Climent (안드레스), Terele Pavez (암파로), Alejandro Awada (세르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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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에서 특별전을 성황리에 마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작을 한 편이라도 리뷰 하려고 했었는데 워낙 생업에 바쁘다 보니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의 최신작이고 부천에서도 걸렸던 [더 바] 가 한국의 유료 VOD 서비스에 풀린 것을 (혹시 모르니까 첨언하는데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둠의 경로를 거친 파일로 본 작품은 듀게의 리뷰에 올리는 일은 없다. 이런 영화 혹시 모르시겠냐고 질문하시는 것은 환영인데 한국이나 미국에서 돈을 지불하고 볼 수 없는 작품에 대한 감상문은 쓰지 않을 것이다) 발견했으니, 7월이 다 가버리기 전에 추천하는 글을 하나 써볼까 한다. 


물론 추천한다고는 했지만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영화들은 상당히 취향을 탄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분의 영화를 볼 때 턱이 떨어져나갈 만큼 폭소를 터뜨리면서 관람하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사람의 십이지장을 뒤틀어 놓는 블랙 유머의 향연을 어김없이 매 작품마다 푸짐하게 벌여놓는 다는 점에서, 데 라 이글레시아 선생만큼 믿음직스러운 영화작가는 이 세상에 별로 많지 않다). 이 분께서는 다른 먹물 깨나 드신 감독 분들이 풍자적이고 상징적인 블랙 유머 판타지를 만든다고 뽀다구를 잡으면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요오이, 땅 (일본말 써서 미안합네요. "간지" 도 일본말입니다 아시죠?), 하고 달리기를 할 때, 우사인 볼트의 다리에다가 로케트 엔진을 장착하고, 관람객들을 충격파로 수박을 망치로 까듯이 으깨버리고 초음속으로 질주를 하는 그런 존엄한 분이시거던. 영화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써먹은 고전적인 아이디어들의 막 나가는 혼합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러한 혼성적인 아이디어들을 풀어나가는 화법에 있어서는, 관객분들께서 정신줄이 순식간에 화르르 타 없어지는 기막힘과, 자신들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헐헐거리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는 어이없음을 동시다발로 느낄 수 밖에 없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괴작의 포스를 발휘하시는 것이다. 


단, 그의 작품에서는 온갖 종류의 화장실 유머와 생리적 불쾌감을 돋구는 저질스러운 묘사들도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니까 그 부분에 대한 일정의 각오가 필요하다. 또한, 영미계의 "과묵한" 장르영화의 패턴에 익숙하신 분 들께서는 스페인언어권 영화의 일반적인 따발총 대사들보다도 훨씬 앞서가는 데 라 이글레시아 영화에서 쏟아지는 발칸속사포 대사에 완전히 질려버리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페인-포르투갈어 활동사진들 중,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작품에 준하는 속도와 양의 따발총대사를 그나마 볼 수 있는 타이틀들은 페드로 알마도바르 감독의 초-중기 작품 정도가 될 것이다. 좀비한테 잡혀 먹히든지 말든지, 은행강도가 권총을 겨누고 있든지 말든지,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캐릭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종류의 카톨릭적 저주의 언사니 시시콜콜한 잡학지식이니 뻘소리니 신세타령이니를 끝도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더 바] 에서는 확실히 그의 초기 작품들보다는 "잡소리" 들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 한국영화 관객들이 익숙한 수위를 한참 넘어서고 있다는 점도 일단 지적을 하기는 해야겠다. 이런 식의 대사 굴림을 싫어하시는 분들께서는 지옥의 경험을 맛보시게 될 것이다.


[더 바]는 소처럼 우직한 종업원 사투르를 마구 부려먹는 마귀할멈 같은 암파로가 주인인 마드리드의 어딘가에 있는 바 (라기보다는 미국에 가면 볼 수 있는 "다이너" 처럼 생긴 커피나 간단한 계란과 조식요리 같은 것 해먹는 후줄근한 가게)에, 소개팅을 하기로 되어있는 젊은 여성 엘레나, CF계통에서 일하는 턱수염을 기른 너드인 나초, 괜시리 가게에 구비된 슬롯머신을 돌리는 짓을 반복하는 할일없는 중년여성 트리니,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는 홈레스 이스라엘, 전직 형사고 알코올중독자인 안드레스, 편집증적인 법률가 세르지오, 이렇게 여덟명의 캐릭터들이 모이면서 시작된다. 아니, 원래는 열 명인데 이 중 두 사람은 바에서 나가자마자 누군가에게 총을 맞고 살해된다. 여덟 고객들은 바에 갇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길거리는 생쥐 새끼 하나 없는 완벽한 정적에 싸인 채, 총에 맞은 두 사람의 시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서 자국도 없이 사라졌고, TV에서는 그들의 상황에 대한 아무런 뉴스도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캐릭터들은 각자 진상에 대한 그럴싸한 해석을 내놓으면서 서로 싸우고 탈출 방안을 모색하지만, 서로에 대한 편견 때문에 선뜻 협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돌파구를 찾지도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할 뿐이다. 이 전반부의 바에 갇힌 군상들의 묘사는 어떻게 보자면 루이스 부뉴엘의 [절멸의 천사] 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기도 하지만,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은 의외로 미국산 필름 느와르처럼, 캐릭터들의 어두운 심상이 의심암귀로 발전해서 합리적인 선택지를 못하게 막아버리는 종류의 안타까우면서도 흥미진진한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결국 이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1/3 에서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밝혀지는데, 진상은 사실 온갖 곰팡이, 기생충, 벌러지들의 (최고 기분 나쁘게 생긴 미생물인 물곰 Tardigrade 이 아가리를 쩍 벌린 모습도 당연히 나온다) 확대 영상들로 구성된 크레딧 타이틀을 유심히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정도만 말해두겠다. 더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반 정도 지나고 바의 지하실로 밀려난 캐릭터들이 모든 존엄성에 대한 고려를 헌신짝 버리듯이 집어 던지고 광기에 휩싸인 탈출을 시도하는 시퀜스부터, 아이고 선생님의 십팔번 나오셨군요, 라고 뇌까리고 싶어지는 수준의 싹막하게 맛이 간 묘사들의 향연이 벌어지는데, [클로버필드 10번지] 와도 일견 비슷한 상황이지만, 캐릭터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스페인 사회의 특정 전형들을 막장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이, 역설적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희석시키고 공감도를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스라엘 (요셉이 천사와 씨름하고도 살아남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라서 이 홈레스에게 붙인 것일까? 아니면 설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알력을 희화화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겠지) 캐릭터의 포물선도 종래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수준에 맞추어보면 약간 뻔하다는 감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단지, 문자 그대로 아… 분뇨가 흐르는… 시궁창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의 서스펜스는 전형적인 스릴러 공식을 답습하는 깐에는 효과적이었고, 허무주의적이지만 어딘지 긍휼함이 느껴지는 엔딩도 좋았다 ([마녀 사냥꾼]처럼 여성혐오적인 기본 골격에다가 적당히 알리바이 붙여서 끝내지 않을까 의구심이 계속 들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그렇지는 않았다). 


결국 [야수의 날]이나 [페르디타 듀랑고] 처럼 진짜 어떻게 제정신으로 이런 영화를 찍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작은 아니었지만,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독특한 취향과 광기의 포스를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한편이다. 


사족: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만 그런 것은 아닌데, 스페인 호러-스릴러영화에는 항상 묘하게 영국 추리소설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이 한편도 왠지 모르게 [쥐덫] 이나 [그리고는 아무도 없어졌다] 같은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구성이나 캐릭터들의 상호 작용을 떠올리게끔 한다. 이것은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이 일부러 그런 취향을 드러낸 다는 의미가 아니고, 정말 DNA 레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문화적인 심층부에서 스며 나오는 가스의 냄새 같은 것이다. 


사족 2: 이건 그냥 순수한 의문인데 "사투르" 라는 이름 반마반인 (半馬半人) 사튀로스에서 나온 것인가?! 검색을 해보니 스페인 남성들 중에서는 그렇게 희귀한 이름은 아닌 것 같다. 누가 아시는 분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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