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덩케르크 Dunkirk (2017)

2017.08.01 22:19

Q 조회 수:1388

덩케르크 Dunkirk


영국-프랑스-네덜란드-미국, 2017.     ☆ 


A Syncopy/Dombey Street Productions/Warner Brothers/Kaap Holland Film Co-Production with participations by Canal+, Ciné+, Rat-Pac Entertainment. 1시간 47분, 화면비 1 :1, 1.43:1 (IMAX 70mm), 2.35:1 (35mm) 


Director & screenplay: Christopher Nolan 

Cinematography: Hoyte van Hoytema 

Producer: Emma Thomas, Christopher Nolan 

Editor: Lee Smith 

Music: Hans Zimmer 

Production Design: Nathan Crowley 

Costume Design: Jeffrey Kurland 

Special Effects: Paul Corbould, Ian Corbould, Scott R. Fisher, Andrew Jackson, Pranav Gangapurkar, Double Negative. 

Spitfire pilot: Dan Friedkin 


CAST: Fionn Whitehead (토미), Aneurin Barnard (깁슨), Harry Styles (알렉스), Tom Hardy (패리어), Mark Rylance (도오슨), Jack Lowden (콜린스), Barry Keoghan (조지), Kenneth Branagh (볼튼), Tom Glynn-Carney (피터), James D'Arcy (윈넌트), Cillian Murphy (격침된 배에서 혼자 살아남은 영국장교), Jochum ten Haaf (네덜란드인 뱃사람), John Nolan (맹인 노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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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의 사상성에 대한 의문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동안 서사, 즉 스토리텔링의 기법과 의미에 대한 실험을 자신이 특기로 하는 매체를 통해 지속적이고도 성공적으로 행해왔으며, 또한 영상과 음향의 결합이라는 방식으로,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고 오감을 통한 지각 (知覺)의 세계의 경계를 뚫고 나가려는 난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전위적인 대중예술의 하나의 전범을 이루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나는 이미 [인터스텔라] 가 사상적으로나 영화적으로나 [2001년 우주 오디세이] 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언명한 바 있지만, 사실 이러한 비교우위성 발언들처럼 쓸데없는 언사들도 별로 없으리라. 스탠리 큐브릭이 크리스 놀란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라고요? 니예 니예, 그렇심다. 누가 뭐래나. 나야 뭐 대한민국과 미국을 통틀어서 놀란빠돌이 상위 1퍼센트에 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 점을 일단은 고려에 넣으시는 것이 좋겠다. 


예전에는 리뷰가 너무 길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1 부와 2부로 나누어서 쓰기를 획책하기도 했는데, 지금 듀게와 M의 데스크에 올라간 글들을 훑어보니 실제로 1부에서 예고된 2부 리뷰가 완성된 작품은 [다크 나이트] 한 편 밖에 없다는 창피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고로, 리뷰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면, 2부를 쓰겠다고 공수표를 날리지 말고 따로 크리스 놀란 특집을 엮어서 거기에 집어넣든지 하려고 한다. 


놀란은 이미 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지닌 마약에 취하는 것 같은 극단적인 재미와, 오슨 웰즈가 [시민 케인] 과 [심야의 종소리]를 통해 구현하려고 했던 것 같은 종류의 압도적인 영상예술과, 우리 두뇌의 뚜껑을 뜯고 그 안에 마이크로 수술을 하는 것에 견줄 만한 두뇌 게임의 자극이 한 편의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질 수 있다는, 절대로 불가능한 작업을 [다크 나이트] 나 [인셉션] 을 통해 구현해 보였다. 그러므로 그가 놀랍게도 실제로 벌어졌던 2차대전 전쟁중의 에피소드, 그것도 영국인들에게는 이율배반적인-- 패배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국적인 구조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일체감과 프라이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뒹케르크 철수작전을 영화화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뒹케르크는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해변의 이름이고, 영어 발음은 "던커크" 이니 한국말 제목인 [덩케르크]는 마치 대마도(쯔시마)를 제 3국인이 "쯔시마도" 라고 표기하는 셈이다. 이런 것들은 이제 지적해 봤자 내 컴퓨터의 비트만 낭비지만) 내가 얼핏 머리 속에서 그렸던 것은 [인터스텔라] 가 우주탐험 SF 에 대해 시도한 것과 같은 작업을 "스펙타클 전쟁영화" 에 대해 벌이는,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압도적인 초대규모의 전쟁영화였다. 말하자면 만듦새와 효과에 있어서는 경이스러운 놀란 브랜드의 파워를 제대로 보여주지만, 기본 골격에 있어서는 [지상 최대의 작전 (1962)] 이나 [머나먼 다리 (1977)] 같은 올 스타 캐스트 2차대전 영화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상상했던 것이다.


나는 아둔했다! 나는 이렇게 놀란빠돌이가 된 이후에도 이분의 실험적-예술적 정신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 놀란 감독이 만들어낸 한편은 전혀 위에서 말한 "스펙타클 전쟁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 않다. 먼저 [던케르크] 의 런닝 타임은 놀랍게도 배트맨 3부작 중 어느 한 편보다도 무려 40분 이상이 짧은 1시간 46분이며 (심지어는 [프레스티지] 도 2시간 10분이나 된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캐릭터들이나 상황에 관한 설명 (exposition) 이 모두에 나오는-- 굉장히 절박하다는 느낌만 전해주고 디테일은 얼마 없는-- 자막을 제외하면 거의 제거되어 있다. 이것은 블록버스터의 기준으로 보자면 굉장한 모험이자, 실험이다. 관객들을 거의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짜고짜 전투에 진 상황에서 초조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군인들의 한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이나 진배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의 호러영화의 스코어에 달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신경을 긁는 한스 지머의 음악에 맞추어 펼쳐지는, 마치 사막의 한가운데처럼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보이지 않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해변가에 종대로 늘어선, 햇볕에 말리고 소금에 절인 육포같이 초췌해진 영국군들의 모습이다. 


놀란은 주인공 토미 (토미라는 이름은 영화 안에서는 나오지도 않는다) 가 결사적으로 독일군의 포화에서 도망치는 모두의 원 테이크에서 이미 [풀 메탈 자켓] 의 스탠리 큐브릭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의 스티븐 스필버그와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접근 방식을 선언한다. 나는 전쟁영화에 관한 한 논문을 쓰려고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포함한 2차대전의 가장 격렬했던 작전에 직접 참여한 군속 영화인들이 찍은 도큐멘터리에 나온 전투 장면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나온 것처럼 지옥의 카오스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스필버그의 작품이 역사상의 사실을 "왜곡" 하거나 "과장"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영화의 전투 묘사는 어디까지나 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군인의 주관적인 시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관적 시점이라는 것은 철모에 카메라를 붙들어 매고 파운드 푸티지 식의 마구 흔들리는 영상을 찍는 그런 기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한 사람의 감각기관을 통해 전해지는 공포와 혼란의 극대화된 상태-- 1초전만해도 멀쩡했던 옆의 동료의 머리가 박살이 나서 산산조각으로 흩어지고, 총알이 퓽퓽하는 굉음과 함께 귓전을 지나가는 그 지옥의 경험-- 를 입체적이고 총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놀란의 전략은 다르다. 전투 중의 인물들의 주관적 체험에 관객들의 말하자면 "주체"를 "이입" "동화" 시킴으로써 그들에 대한 공감을 극대화하는 스필버그의 90년대 전략 (요즘의 스필버그는 사상적으로는 여전히 중산층 리버럴리즘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러한 영화 만드는 기술에 있어서는 당시보다 훨씬 덜 "조작적 [manipulative]" 이다) 대신, 놀란의 카메라는 항상 관객의 입장에서 토미와 그 동료들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응시한다. 우리는 그러므로 지옥에 떨어진 병사의 입장에 동화되어서 괴로워하고 치를 떨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대신에, 그들의 고독, 괴로움, 공포 그리고 용기를 마치 우리의 눈에 박힌 카메라 렌즈로 도큐멘타리를 찍는 것처럼 초근접 거리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감정이입은 어느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놀란은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주인공들의 느낌과 체감을 극대화해서 우리에게 느끼도록 조작하는 반면, 그들의 "마음속"은 절대로 완전히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막아낸다. 그런 연유로, [던케르크] 의 캐릭터들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할 지 우리는 예상을 할 수 없다. 영웅이 따로 없고, 자기만 살겠다고 내빼는 비겁자가 따로 없는 것이다. 오로지 살아 남기 위한 발버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용기 있고 훌륭한 행위는, 2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거의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저질러지는", 거의 발광에 다다른 사람처럼 막무가내로 보일 정도로 내리는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덩케르크] 에는 고급 예술영화 또는 아주 끔직한 호러영화에만 나올 수 있는 관객에게 비수를 지르는 "비인간적" 장면들이 여러분이 기억나시는 것 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 한 예를 들자면 토미와 깁슨 (이 친구도 진짜 이름은 깁슨이 아니다), 알렉스 세 명이 피로에 지친 채 주저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한 병사가 철모를 벗어 던지고는, 군복을 벗지도 않은 채 바다에 그대로 걸어 들어가서 자살을 하는 장면. 이 신은 그야말로 던져지듯이 별 액센트도 없이 지나가는데, 세 사람의 어린 병사들은 (토미는 열 몇 살인 애인 것이 너무나 명백하고, 나머지들도 많다고 해봐야 스무살 안팎이다) 자기 전우의 자살을 그냥 맥없는 표정으로 멀거니 바라볼 뿐이다. 화면의 밑이 아니라 옆으로부터 검은 물이 차 올라오면서 "살려줘! 사람 살려!" 라고 부르짖는 병사들을 거대한 아메바가 먹이를 포식하듯이 집어삼키는 선박의 침몰 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끝도 없이 확장되는 바다와 해변에 내던져진 인간의 왜소함과 초라함을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신들도 무섭고 처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영화적으로는 이러한 장면들은 문자 그대로 awesome 하게 "우주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미미하고도 하찮은) 존재" 를 상기시키는 데, 그 압박감에서 관객들을 비로소 해방시키는 것이 패리어가 모는 스핏파이어가 연료가 다 떨어진 채 비행하는 장면-- 더 이상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그만 하겠지만-- 이라는 점은 배트맨 3부작과 [인터스텔라]에도 연결이 되는 방식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좌절과 실패의 실상을 발사대로 삼아 이상의 세계로 날아오르는" 놀란의 비극적이면서도 강력한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놀란은 이러한 극한상황에서 (이젠 이거나 저거나 다 "극한상황" 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들은 사실상 역사적 의미를 잃어가고 있긴 하지만) 단지 "생존" 에 매진하는 이외에는 정의, 명분 그리고 목적이 탈색된 군인들을 영화의 중요한 에피소드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그의 사상적 입장을 분명히 한다. 나는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이름도 모르는 해군 장교 (나더러 [덩케르크] 에서 가장 중요한 연기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려운 선택이 되겠지만, 아마도 헐리웃 스타라면 선뜻 고르기가 힘들었을 이 역할을 맡은 머피에게 월계관을 증정할 것이다) 가 등장했을 때 그가 영화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이 간다고 여겼지만, 그가 연루된 스토리라인이 그렇게 처절한 방향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으며, 또 그 결말이 일반적인 영웅서사를 기대하는 관객들의 뺨을 그렇게 날카롭게 때리는 도전적인 것일 줄도 몰랐다. 물론 마크 라일런스와 케네스 브라나를 위시한 선배 연기진의 압도적인 공력과, 비행 마스크에 가려서 얼굴도 제대로 안 나오지만 약간의 찡그림과 머리를 휘젓는 모습을 통해 수많은 대사가 카버해도 못 다할 양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톰 하디의 미세외과 수술같은 연기 들도 훌륭하면서, 또한 토미 역의 핀 화이트헤드 같은 젊은 신인들과의 앙상블에 비교하여 절대로 튀지 않는다. 유명 스타들을 대거 기용해서 그들로 하여금 에피소드와 시퀜스를 하나씩 부여하는 방식의 [머나먼 다리] 식의 전쟁영화와는 대극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철저하게 통제된 앙상블 연기에서 배어나오는 영화의 주제와 사상, 그것은 "전쟁에 보내진 군인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는 생존하는 것" 이라는 것이며, 영화 안에서 마크 라일런스가 연기하는 도오슨이 결연히 말하는 대사, "어린 친구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것은 우리 어른들이니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오!" 에 함축된, 반전 (反戰)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 지 몰라도, 전쟁의 목적과 의도만 바라보고 그 결과는 바라보지 않는 "애국주의" 와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확언하건데, [덩케르크]보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몇 배 더 고전적인 애국심 고취 영화-- 이렇게 잘 만든 프로파간다는 "국뽕" 이라는 표현을 구차스럽게 쓸 필요가 없다. 마약을 안 쓰고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취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데?-- 이고, 난 처칠의 연설문이 영국의 "국민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음악을 배경으로 낭독되는 엔딩에도 불구하고 이 한편이 대영제국 찬미영화고 국뽕 영화라는 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그런 국뽕 영화였다면 놀란은 이 한편의 최후의 이미지를 그 두 샷으로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 역시 스포일러가 되니까 언급하지 않겠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내가 무슨 샷을 언급하는 지 아실 것이다. (오히려 이만희 감독의 고전 [돌아오지 않는 해병] 과 장훈감독의 [고지전] 의, 반전 [反戰] 으로 수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슬픔과 좌절감에 기조를 둔 태도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보다 [덩케르크] 의 그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고지전] 은 여전히 문제가 많지만 한반도전쟁을 다루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어쩌고 하는 감상주의적 주류 관점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획기적인 한편이라고 평가해도 좋다) 


[던케르크]를 화제로 삼는 모든 사람들이 언급하는 "세 가지의 다른 시간축을 따라가는 서사" 라는 구조에 대해서는 내가 구태여 분석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솔직히 이런 평론글들이 이러한 서사의 트릭을 마치 [덩케르크] 가 훌륭한 영화인 가장 중요한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놀란 영화에서 이런 서사상의 기교가 항상 놀라운 이유는 그의 압도적인 스토리텔링과 편집의 스킬 때문이지, 그의 아이디어가 놀랍도록 독창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천영화제에서 본 [킬링 그라운드] 같은 오스트레일리아산 저예산 슬래셔 영화도 처음 보아서는 금방 파악할 수 없는 꽤 세련된 시간 경과를 다룬 서사의 트릭을 구사하는 판인데? IMAX 와 2.35:1 화면으로 변화하는 화면비 등의 이슈도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덩케르크] 에서 과거의 놀란 영화보다도 더 종적인 (vertical) 큰 움직임-- 차례차례 징검다리 건너듯이 지면과 수면에서 폭발하는 독일 공군이 떨어뜨리는 폭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삐라, 삽시간에 찌그러진 통조림처럼 병사들을 으깨버리면서 침몰하는 구축함 등-- 들이 눈에 띄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새삼스럽게 말하지만 스핏파이어를 중심에 둔 공중전은 정말 엄청나고, 스콜세시의 [에비에이터] 같은 고수의 작품들도 얼마나 이 한편에 비하면 실제 비행기의 비행이 아닌 비데오 게임같이 보이는 지 확 깰 정도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지난 20년간의 필르모그래피는 그가 코엔 형제들, 리들리 스콧, 데이빗 핀처, 마이클 만 등 그를 능가하는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아온 영미권 감독들의 작품들보다도 훨씬 더 실험적이고 "작가적" 이어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놀란이 만드는 영화마다 미국시장에서만도 수 억 달러를 거뜬히 벌어들이고 제작비를 간단히 환수하는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평론가-저널리스트-학자들이 그를 애써서 무시하고, 마치 돈을 많이 버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예술을 만들지 못한다는 정리라도 있는 것처럼 구는데, 자신들의 편견을 고수하고 사는 것은 좋지만, 그런 아집을 영화라는 매체를 이제 배우기 시작한 어린 분들에게 강요하는 뻘짓은 하지 마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덩케르크] 는 아름답고 무섭고 감동적이며 경외스러운 한 편의 예술작품이다. 여러분들께서 뭉청 보러 가시든지 말든지 그 내재적 역사적 가치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도 결국은 그림을 보시는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니 이 한편도 보시는 것이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족: 이 한편에서 아마도 가장 보편적으로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케네스 브라나가 연기하는 볼튼 중령 (나는 Commander 가 "사령관" 이라고 자막에 번역되어 있는 대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중령"-- 영국 해군의 커맨더는 중령이고 제임스 본드도 이 계급이다-- 이 정확한 번역인 듯 하다) 이 바다에 펼쳐진 장관 (이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면 스포일러!) 을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응시하면서, 윈넌트 대령의 "무엇이 보이시오?" 라는 질문에 짧게 "Home." 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한국어 자막에서는 "조국이 보입니다" 라고 번역했다. 이것이 어찌 보자면 "기술적으로는 딱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한국어로 옲기는 과정에서 많은 함의를 상실하게 되는" 번역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히 "조국" 도 볼튼이 말하는 Home 의 일부에 해당되었겠지만, 이 장면에서 그가 느꼈던 감동이 과연 "조국애" 라는 개념으로 일괄적 처리를 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을까? 한국어에서 쓰는 "집," "고향," "가정," "가족," 그리고 "조국" 이라는 단어들을 다 포괄할진대,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조국"을 고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딱히 틀린 번역이라고 책을 잡을 수도 없는, 그런 어려운 케이스고, 이러한 간결하고 드라이하지만 엄청난 함의를 지닌 대사들이 크리스 놀란 영화에는 여러 군데 포진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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