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Columbus 


미국, 2017.    


A Superlative/Depth of Field Co-Production in association with Nonetheless Productions, 1시간 44분, 화면비 1.85:1 


Director & screenplay: Kogonada 

Cinematography: Elisha Christian 

Music: Hammock 

Production Design: Diana Rice 

Art Direction: Adriaan Harsta 


CAST: John Cho (진), Haley Lu Richardson (케이시), Parker Posey (엘레노어), Rory Culkin (게브리엘), Michelle Forbes (마리아), Jim Dougherty (아론), Erin Allegretti (엠마), 

Joseph Anthony Foronda (진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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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영화제에서 크게 띄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언제 모르게 우리 동네 극장에 걸렸다. 건축 관계 영화를 좋아하는 바깥 분 때문에 같이 보러 갔는데, 디지털 상영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가타부타 일언반구도 없이 30분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덕택에 관객 분들 기분이 좀 안 좋게 상영이 시작됐지만, 다행스럽게도 영화가 왠지 오래 뜸을 들인 다음 보기 시작하는 것에 적합 (?) 한 분위기의 한편이었다. 


예상외로 바깥 분보다 내가 더 좋아한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우리 바깥 분에게는 말하자면 배경이 전경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한편, 그렇게 다가오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정서적 몰입이 잘 되지 못했던 것 같고, 나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각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 지에 대해 관객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서도, 점잖게 그러나 민첩하게 관객들의 의표를 찌르는 코고나다 감독의 연출솜씨에 매료된 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콜럼버스] 는 마치 투명한 유리 같은 제재로 만들어서 안의 톱니바퀴와 용수철이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설계된 정교한 마술 도구에도 견줄 수 있다. 분명히 신기한 마술을 눈앞에서 보여주는데, 그 안의 "장치" 들이 눈에 뻔히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마술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까이서 집중해서 보면 볼 수록, 그 장치들이 재깍재깍 돌아가는 모습들을 이리 맞추고 저리 따져서 분석해봐도, 그들 역시 결국 마술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여러분들께서는 실망하실 것인가, 아니면 마술사의 교묘한 수법에 감탄하실 것인가?  


코고나다 감독은 서울 출신의 한국인이고, 예명은 오즈 야스지로오의 각본가 파트너 노다 코오고 [野田高梧] 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분은 원래 오즈, 브레송, 히치코크, 테렌스 말릭, 스탠리 큐브릭 등의 작품군들을 편집의 기교를 통해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도 시적이면서 동시에 분석적으로 해석해내는 비데오 에세이들 (vimeo 에 올라가있는데 이제는 kogonada.com 에 일괄적으로 수집되어 있다) 로 유명해진 바 있다. 이분의 놀라운 수준의 정교함과 더불어 거장들의 작품들로부터 추출되어 재편집된 동영상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히치코크의 눈들" 같은 경우는 시치미 떼고 넌지시 삼입하는 유머의 센스도 상당하다), 이러한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무엇인가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기고야 마는 견인 광선 같은 매력은 그의 장편 데뷔작에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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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것도 없이 [콜럼버스] 의 "내용" 은 한국 드라마 같으면 한 편당 처음의 20분 정도로 카버할 수 있을 정도로 빈약하다. 미국에서 크게 대성한 한 한국인 건축학 교수가 예일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수제자 엘레노어를 데리고 인디아나주 콜럼버스시의 건축물들을 관상하다가 갑자기 쓰러진다. 그의 아들 "진" 은 원래 미국에서 살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번역 관계 일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는 소원해진지 오래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응급 사태에 대응해서 콜럼버스에 도착한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건축에 무관심하지만, 어쩌다가 아버지의 특강을 들으려고 신청했다가 사고 때문에 헛발걸음을 하게 된 동네 소녀 케이시 ("카산드라" 의 애칭) 와 인연이 생긴다. 케이시는 진과는 달리 스스로 "건축 너드" 라고 부를 정도로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오타쿠적인 지식과 집착을 지녔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담배를 계속 뻑뻑 피워댄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소녀는 그러나 메스 크리스탈에 중독된 전력이 있는 엄마를 사실상 돌보느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시 도서관 (클레오 로저스 기념 도서관이라는, I. M. 페이가 설계한 실재하는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왠지 [고양이를 부탁해] 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이 둘은 콜럼버스 시내의 건축물들을 순례하면서 여러 대화를 나눈다. 그게 영화 내용의 전부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두 주인공들의 인생에 변화가 있기는 한데, 특별히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 변화 자체도 영화를 보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콜럼버스] 는 오즈 야스지로오나 그의 후계자적인 계보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코레에다 히로카즈 (도서관에서 케이시가 대학에 진학한 고등학교 시절 베프를 우연히 만나는 장면에서는 "리버스 샷" 공식을 무너뜨렸던 오즈의 "같은 방향에서 서로 말하기" 미장센을 의식적으로 구축해 보이기도 한다) 등의 함부로 나대지 않는, 정적인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연상작용에도 불구하고 코고나다 감독이 누군가의 영향권내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인상은 들지 않는데, 이러한 참조된 다른 작가들의 스타일과 접근 방식이 자신의 화법에 완전히 녹아 들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샷에 일정한 수준의 뚜렷한 형식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호텔에서 길거리로 나오는 뒷골목을 찍은 프레임 같은 스토리 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샷 에서도 미적 긴장감이 느껴진다. 오즈 영화를 베낀 게 아니라 "오즈 스타일로 요리한 다른 무엇" 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접근 방식이다. 


그러한 긴장감은 또한 우리가 예상하기 힘든 멋진 방식으로 이완되기도 하는데, 진이 케이시 에게 왜 건축물들이 그렇게 좋은지, 그것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얘기해보라고 제시하는 장면을 예로 들자면, 케이시는 숙고 끝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막상 영화에서는 그녀의 대사는 뮤트 처리되어서 우리는 그녀의 "설명"을 들을 수 없고, 그 대신에 잔잔한 음악이 깔린다. 카메라는 그녀의 제스처와 표정을 잡아낸다. 케이시가 한 말의 "내용"을 우리는 모르지만, 코고나다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케이시의 몸짓과 표정에 나타난 감정이 중요하다고 암시하는 듯 하다. 그녀의 존재는 내면적인 어떤 자아의 작용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형식적" 인 부분, 그녀의 모습, 행동, 그리고 공간적인 존재 그 자체에 의해서도 규정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마치 이 모든 건축물들이 "사람 사는 집, 병 고치는 병원, 책 읽는 도서관" 들이면서 동시에 그것뿐인 것은 아니듯이. 극중에서 진이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어로 남긴 노트를 케이시와 함께 읽으면서, "인간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모더니즘"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영화를 한번 밖에 못 봐서 죄송. 나중에 다시 보게 되면 정확한 대사로 수정 예정) 이라는 식의 알쏭달쏭한 표현에 대해 말하는데, 사실 [콜럼버스] 가 천착하고자 하는 주제도 그게 아니었을까? 형식미가 제일 인간적인 곳으로 나아가는 티켓일 수도 있다는 거다. 껍데기는 가라고? 알맹이만 중요하다고 우기는 것도 껍데기만 찾는 것처럼 천박하고 우매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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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바깥 분의 "배경이 전경보다 더 중요한 영화" 라는 의견이 틀린 얘기는 아닌 게, 어떤 경우는 칼로 베는 것처럼 모더니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좀이 쑤시게 "옛날 좋았던 시절 미국" 적인, 콜럼버스 시내의 건축물들이 조연급 캐릭터들을 능가하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건축물들은 너무나 아름답고도 선명하게 도시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 숨쉬는 모습으로 영상화되어 있으며, 이들에 대해 진과 케이시가 나누는 대화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은유가 아니라, 그대로 건축물들 자체를 대화의 파트너로 끌어들여서 전개된다는 느낌을 준다. 제임스 폴셱이 설계한 콜럼버스 지역병원 정신과 병동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시퀜스를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또한, 케이시가 자기 엄마의 마약 중독 전력과 그것이 10대 중반 무렵의 자기 인생을 어떻게 말아먹었는지를 고통스럽게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퍼스트 파이난셜 은행의 번쩍이는 유리 상자 같은 모습이 기이하지만 중후한 모습으로 배경을 장식하면서, 마치 케이시의 고백을 진중하게 들어주는 제 3의 대화 상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존 조 캐릭터가 재미있는 것은, 팩트만 떼놓고 따지자면 한국 막장드라마의 주인공과 크게 차이나는 점이 없다는 점인데 (심지어 벌거벗고 샤워하는 신도 나오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한드의 주인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으로 찍혔다), 섬세한 감정 연기를 잘 하는 것은 물론이고, 코고나다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육체적인 피로와 좌절감이 싸아하고 느껴지는 "몸쓰임" 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실제 나이만큼 먹어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배우들은 왜 그렇지…).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역시 헤일리 루 리처드슨 이라고 봐야 하겠다. [지랄발광 17세] 에서 이미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 작품처럼 속이 다 푹푹 썩어도 겉으로는 흐흥 하고 가볍게 웃고 넘기는 표정을 짓고 (썩은 속은 담배연기로 태워 보내기… 다행스럽게도 영화 끝날 때에는 담배 끊는다. 후유 ^ ^) 넘어가는 "정적" 인 캐릭터를 맡아서도 강약자재의 출중한 연기를 보여준다. 같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가브리엘 (로리 쿨킨… 헉 매콜레이 쿨킨의 동생이 벌써 ;;;) 과의 담담하면서도 미세한 밀당의 긴장이 느껴지는 우정의 묘사 같은 것은 지극히 "미국적" 이고 일상생활적이면서도 이런 걸 찍어보라면 뛰어나게 잘 하는 감독들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최근 들어서 가장 궁금한 외국영화다. 화면에 펼쳐지는 영화의 형식적 아름다움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해 본 일이 없거나, 그딴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시겠는 분들께도 당연한 얘기지만 추천드릴 수 없다. 단지, 한국에도 이러한 오즈적이고 모더니스틱한 "휴먼드라마"를 내심 선호하는 분들은 내 짐작보다는 많지 않을까? 물론, 한국에 사시는 건축 너드 여러분들 입장에서 보자면, 천국의 우물에 담가졌다 나올 수 있는 한편이니 학수고대하시는 게 좋을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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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존 조가 상당한 양의 한국어 대사를 구사하는데, 주로 "편집장" 과의 국제전화다. 억양이나 발음은 다소 어색한데, 아주 또박또박 말을 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반면 놀란 것은 엘레노어 역의 파커 포지가 계속해서 한국어로 진의 아버지에게 말을 거는 도입부였다. 여기서 포지의 한국어는 존 조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색한데, 역시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하기에는 별 지장이 없다. 미국에서 30년 이상을 산 내가 보기에는, 존 조 캐릭터는 개연성이 충분하고 그의 한국어 구사력도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고 여겨지니까, 제발 그런 거 가지고 시비걸지 말자.  


사족 2: 영화 도중 진이 케이시에게 자기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후손들이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귀신이 되고 어쩌고 라면서, "한국의 전통적 믿음"을 설파하는데,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된다, 뭐 이런 종류의 소리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영어로는 상당히 이상하게 들린다. 존 조는 [엑소시스트] 시즌 2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모양인데, [검은 사제들] 같은 영화를 당당하게 제작할 수 있을 만큼 카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가 한국인데도, 또 뭔가 제작진의 한국의 "전통" 에 대한 무식을 드러내는 방식의 이상한 "캐릭터 배경" 이 주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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