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미국, 캐나다, 영국. 2017.      


An Alcon Entertainment/16:14 Entertainment/Columbia Pictures/Sony Pictures Releasing/Scott Free Productions/Torridon Films Co-Production, distributed by Warner Brothers. 2시간 44분, 70mm, 화면비 2.39:1 


Director: Denis Villeneuve 

Screenplay: Hampton Fancher, Michael Greene 

Producers: Bud Yorkin, Andrew Kosove, Cynthia Sikes, Broderick Johnson. 

Cinematography: Roger Deakins 

Production Design: Dennis Gassner 

Costume Design: Renee April 

Editor: Joe Walker 

Special Makeup Effects: Rita Hovarth, Jason Collins, Autonomous F/X. Special Visual Effects: Double Negative, MPC, Framestore, BUP, Atomic Fiction, Stereo D 

Animation Supervisor: Eric Bates 

Concept Artists: Kamen Anev, Steve Jung, Scott Lukowski, Ed Natividad, Jeremy Paillotin, Peter Popken, Tajima Koji. 


CAST: Ryan Gosling (K/조), Harrison Ford (덱카드), Jared Leto (니안더 월레스), Ana de Armas (조이), Sylvia Hoeks (러브), Robin Wright (조시 경위), McKenzie Davis (마리에트), Carla Juri (스텔라인 박사), Lennie James (미스터 코튼), Edward James Olmos (개프), Sean Young (레이), Bakhad Abdi (너구리 박사), David Bautista (모튼), David Dastmalchian (코코), Tomas Lemarquis (레플리칸트 기록원 직원), Hiam Abbas (프레이사), Loren Peta (레이철 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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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블레이드 런너 2049] ("런너" 라는 표기를 본문 안에서는 고집할 것임) 가 공개되었다. 나는 이 기획에 대한 얘기는 거의 20년이 넘도록 각종 루트를 통해 간간히 접하고 있었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종판" 이 내가 선호하는 "극장판" 을 회람의 루트에서 떨구고 "정본"으로 득세한 이후, 그리고 해리슨 포드가 릭 덱카드로 다시 출연하는 속편을 만들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사실상 기대를 접었었다. 내가 쓴 본편의 리뷰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덱카드가 레플리칸트냐 인간이냐 하는 이슈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덱카드가 레이철과 도망간 이후로 잘 먹고 잘 살았는지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여부에도 사실 관심이 없었다. 물론 [블레이드 런너] 의 광팬들 중에서는 덱카드의 그 이후의 운명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워너 브라더스를 위시한 제작진이 굳이 덱카드가 등장하는 속편이라는 방향성을 잡은 것은, 해리슨 포드라는, 70이 넘은 지금에서도 여전히 대스타의 공력을 발휘하는 연기자를 끌어들임으로써, 이 한편에 블록버스터적인 "정통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물론 이것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기억" 에 기초를 둔 전략이었으니, 오리지널 [블레이드 런너]는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실패작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기록을 보면 1982년 미국 국내 흥행성적은 1위가 당시 돈으로 3억 5천9백만달러 […. ;;;;] 를 벌어들였던 [E. T.] 이고, [블레이드 런너] 는 2천 7백만달러를 기록하면서, 나찌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 한 문예영화인 [소피의 선택] 과 심지어는 [13일의 금요일 제 3편] 에도 뒤처지는 27위에 안주해야 했다 (같은 필립 K. 딕 소설의 영화화 작품 중에서도 스필버그가 만든 [마이너리티 리포트] 와 베르후번의 [토탈 리콜] 에 완벽하게 밀리고 있다. 지난 40년간의 기록을 감안할 때, 스콧 감독이 여전히 영화적 실력이 뛰어난 분이라는 의견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분이 스필버그에 비해서 SF 를 잘 이해한다는 따위의 의견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블레이드 런너] 도 이 의견의 방증으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의심스러우신 분들께선 [BD] 하고 [프로메테우스]를 한번 [마이너리티 리포트] 및 [A. I.]와 꼼꼼히 비교를 해보시던가). 해리슨 포드의 스타 파워는 그 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10월 9일 현재의 박스 오피스 성적을 보아하니 [BD 2049] 의 흥행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정직하게 말해서 이대로 가다간 아주 거하게 폭망하게 된다. 미국 관객들에게는 이미 받아들여지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인터스텔라] 의 경우처럼 중국과 한국의 상대적 박스 오피스 성적이 궁금해지는 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어쩌면 이렇게 오리지널과 신기할 정도로 흡사한 양가적인 반응을 나한테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BD 2049] 는 워너 브라더스라는 거대 스튜디오가 1억 5천만달러라는 대규모 제작비를 때려박은 한 편 치고는 너무나도 전편을 꼭 닮은, 너무나도 쿨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동시에 또한, 너무나도 답답하고, 젠체하고, 온갖 폼을 재다가 플롯상의 여러 매듭들을 풀 지 못한 채로 내팽개쳐버리는, "천천히 움직이는 예술영화" 인 것이다. 심지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버릴 수가 없는 매력이 들끓고 있다는 점까지도, 그 아버지 (나이 차이가 35년이나 나면 인간의 경우는 세대 차가 한참 나겠지만) 를 빼닮았다. 허어, 참 신기할 손일세. 


[시카리오] 와 [컨택트 Arrival (여담인데 이미 Contact 라는 영제의, 이것도 외계인과의 만남에 관한 영화가 존재하는 데, 굳이 컨택트라는 제목을 단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Contact 의 한국 제명은 [콘택트] 란다. 농담인지 뭔지…)] 의 감독인 드니 빌뇌브가 이 기획을 맡은 것에 대해서는, 리들리 스콧이 다시 메가폰을 잡는 것 보다는 (요즘 미국의 블록버스터 감독들도 메가폰 쓰나?)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여겨지긴 했다. 그러나 이 분의 경우 전작들을 참조할진대, 오리지널의, 대놓고 얘기하자면 약간 싼티나는 펄프적인 요소를 다 도려내버리고, 척박하고 황량한 디스토피아에 관객들을 조난시켜 버리고 계속 갈구어대는, 바싹 졸인 한약 같은 한편을 만들 것이 염려되었다. 물론 그런 예상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부분도 있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BD 2049]는 오히려 원작을 능가할 정도의 완성도로 필름 느와르와 SF 장르를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서 합성해내고 있다는 점이 놀라왔다. 그 전의 작품들에서는 항상 자의식 강한 "영화작가" 들이 관객들에 대해 지닌 무관심이랄까 무성의함이 조금씩 느껴졌던 빌뇌브 감독인데, 이 한편에서는 2시간 40분이 넘는 장대한 길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태도는 감지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햄튼 팬처와 마이클 그린이 작성한 각본에서 기원한 새로이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생동감이 있고 매력적이라는 점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페미니스트 비평적 시각을 적용한다면 반드시 좋은 말을 할 수 만은 없겠지만, 이 한편의 여성 캐릭터들은 원작 [블레이드 런너] 의 여성들에 비교해서 필름 느와르의 전형-- "주인공을 도와주는 비서/애인," "악녀/팜 파탈,"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쥔 미스터리 여성" 등-- 에 충실하면서도 그 전형의 규격을 확장하고 또는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쥬세페 토나토레 감독의 [베스트 오퍼] (2013) 에 출연했던 실비아 획스가 연기하는 "러브" 는 팜 파탈 캐릭터에서 남성 중심적인 성적 위협이라는 요소가 탈색된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겠는데, 빌뇌브의 연기지도인지 아니면 각본상의 미세한 설정인지 모르겠으나, 단순한 위협적인 존재를 떠나서, 인간 (남자 상사!) 의 명령에서 결코 해방 될 수 없는 "유능한 여성" 의 울분 같은 것이 아주 강렬하게 느껴진다. 잔혹하며 냉정하기 짝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분노" 에는 무엇인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들어있고, 이것이 그대로 관객들에게 (최소한 나에게는) 전류처럼 전달되어 온다. 


그 대극에는 주인공의 "비서" 및 "힐링 에이전트" 역할인 "조이" 가 서 있는데, 그녀는 원래 코믹 릴리프나 하드 보일드한 내용에 숨통 터주기 역할로 설정된 마이너 캐릭터로 구상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영화를 실제로 보면, 무려 일라이 로스의 [노크 노크] (2015) 에 나왔던 스페인 배우 아나 데 아르마스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자칫하면 "섹스용 여자로봇" 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었던 "홀로그래픽 걸프렌드" (그것도 영화 안의 설정은 소니[…;;;]가 디자인해서 시판하는 프로그램이다) 캐릭터에 감탄스러운 수준의 인간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실 조이는 전 영화를 통해서 가장 그 포물선이 가슴에 와 닿는 "인물"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심지어 물리적인 실체도 없는 프로그램인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영화 전체를 통해서 다른 캐릭터 (K) 의 실존적 문제점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물질화되고 싶은 "욕구"를 몸소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가장 "인간적" 인 (주인공인 K 보다도 훨씬)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연이자 "신형" 레플리칸트 (이것은 스포일러 아님. 영화 시작하자마자 주어지는 정보이므로) 역의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는 자주 비교되는 스타인 조지 클루니의 느와르 적인 연기 (예를 들자면 [더 어메리칸] 에서 보여준 것 같은) 보다는 오히려 [동방의 약속] 에서 비고 모르텐센이 보여준 좀 더 허무스럽고 씁쓸한 질감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제이리드 레토가 맡은 니안더 월레스는 그가 등장하는 장면의 조명과 미술이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지라, 막상 그의 존재감은 많이 희석되었다는 느낌인데, 그것보다도 나는 이 캐릭터가 세계 경제를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그런 신적인 존재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터렐 박사에 대한 질투심으로 창자가 배배 꼬여 있는, 돈 버는 것은 잘 하지만 실력은 존나 부족한 2류 유전자 디자이너가 월레스의 정체인지도? 그렇다면 레토의 신경 거슬리는 대사 굴리는 방식도 납득이 가긴 한다. 


사실, 나의 예상을 뒤엎은 것은 이러한 새로운 캐릭터들의 강렬한 인상에 비하여 해리슨 포드의 덱카드가 취약한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포일러가 되므로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K가 덱카드를 만나는 시점이 영화의 준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도록 구획되어 있는데, 최소한 나에게는, 이 부분에서 갑자기 문자 그대로 영화가 다른 세계로 진입한 것 같은 분위기를 가져다 주는 것은 그렇다 치고, 덱카드라는 캐릭터가 사실 그렇게 잘 구축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시킨다는 약점이 불거지는 것처럼 보인다. 덱카드와 K의 대사의 굴림이 예고편에서는 마치 최고의 연기 대결인 것처럼 홍보되고 있는데, 나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이렇게 서로 총 겨눈 남자들끼리 째리면서 주먹을 날렸다가, 위스키 마시면서 또 계속 째리면서 대사를 툭 툭 던지는 그런 (한국 영화에서도) 수도 없이 봐 온 "연기대결"보다는, K 와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의 관계들, 심지어는 K와 자신의 상사이자 레플리칸트에 대한 편견을 지닌 조쉬 경위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 아름다우신 로빈 라이트 ㅠㅜ) 와의 약간의 성적 긴장을 동반하고, 우정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인간적" 인 신뢰가 은연중 감지되는 그런 관계의 묘사가 훨씬 더 훌륭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차분하고 정치하게 플롯을 쌓아 올라가면서, [아키라] 나 [공각기동대] 등의 최고급 일본 SF 아니메이션처럼 비주얼을 통해 여러 층위의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던 영화가, 그 부분부터는 갑자기 의무방어적으로 스토리의 해결점을 향해 흘러가버린다는 인상이 좀 든다. 내가 가장 흥미있고 공감했던 캐릭터들에게서 초점이 니안더-러브와 K-덱카드의 대결 국면으로 옮겨간다는 것이 지나치게 전형적인 선택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햄튼 팬처-마이클 그린 각본의 구조 탓인지, 빌뇌브 감독이 라스베가스에서 너무 어물쩡 거리다가 헐레벌떡 최종본 편집을 하느라고 이런 결과가 되었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해리슨 포드가 라이언 고슬링과 스크린 타임을 이런 비율로 공유해야 한다라는 따위의 영화외적인 요소가 개입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한 2/3 정도까지의 [BD 2049] 에 비해서 마지막 1/3은 약간 실망스러웠다는 점을 적어둔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필름 느와르 장르와 SF 의 합성이라는 아젠다에 있어서는 원작을 능가하는 성취도를 보여주는 [BD 2049] 인데,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스카이폴], [시카리오]),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니스 가스너 (라스 베가스 시퀜스의 퇴락한 아름다움은 이분이 역시 미술감독을 담당한 워렌 비티 감독의 [벅시] 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진격의 거인] 실사판에서도 실력을 발휘한 바 있는 더블 네거티브의 타지마 코오지 등의 아티스트들이 대거 합류한 컨셉 아트와 디자인 팀 등, 그야말로 최고의 북미 스탭이 최고로 실력을 발휘해서 그려낸 미래 세계의 모습은 한마디로 굉장하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스칼렛 요한슨판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 과 비교하면 그쪽도 칼러풀하고 멋지긴 하지만 이 작품의 압도적인 박진감에 비하면 모조품적인 얄팍함을 노정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기술적인 수준에서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화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래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유기적으로 하나의 독립해서 존재하는 "세계" 의 질감을 전달해주는 것이 원본 [블레이드 런너]의 혁신적인 성취 중의 하나인데, 그런 의미에서 [BD 2049] 는 원작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림빨이 좋다" 라는 표현을 이 한편에 대해 쓴다면, 이 한편의 영상미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압도적으로 현실감이 넘치는 비행차 스피너의 디자인과 기능의 묘사, 지표에서는 거의 인공위성과 맞먹는 수준으로 하얀 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수퍼 드론에서의 미사일 공격의 황당한 급작스러움과 파괴력등,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지만, 레플리칸트들에게 인공적 기억을 만들어 심어주는 "기억 디자이너" 인 스텔라인 박사가 직접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라는 행복한 "기억"을 3차원적으로 제작하는 시퀜스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 그 SF 적 상상력의 우수함과 또한 그 압도적인 미적 박진감 때문에 거의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이런 시퀜스야말로 오시이 마모루나 사토시 콘 같은 초일류 아니메이션 창조자들이 아니면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장면 아니었나? [BD 2049] 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유일하게 굉장함에 도달하지 못한 부분은 한스 짐머와 벤저민 월피시 ([덩케르크])의 음악이었는데, 원작의 방겔리스 ("반젤리스" 는 프랑스식 독법 아닌가?) 의 혁신적인 전자음악 에 비하면 아무래도 통상적인 21세기적 SF 영화에 달린 "웅장한 노이즈" 형 스코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 하기사 이런 정도 스케일의 SF 에 걸맞는 수준의 음악이라는 것을 찾다 보면, 짐머가 그나마 믿고 맡겨 볼 수 있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고 제리 골드스미스 작곡가의 한창 시절에 이 기획이 주어져서, 그가 이 어마어마한 황소의 뿔을 붙잡고 거꾸러뜨리는 장관을 감상… 아니 감청할 수 없는 것이 실로 유감이다. (이 한편에는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진 않겠지만 [혹성탈출]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사실, 나는 [BD 2049] 를 보고 난 후, 통상적으로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고 극장을 나섰을 때의 감동과는 현격히 다른, 마치 죽여주게 아름답고도 미스터리어스한 미술작품과 행위예술/ 인스털레이션 아트 작품들을 미술관 하나 가득하게 감상하고 길거리에 나선 것 같은 종류의 "얼얼함"을 맛보았다. 나도 이러한 감상 평이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이 한편이 느려터지고 똥폼잡는 후진영화" 라는 표식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블레이드 런너] 와 [BD 2049]는 그야말로 똑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성공적인 속편이라고는 해도 원작과는 별로 닮지 않은 영화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 과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스] 는 둘 다 우수한 작품들이고 연속된 세계관에 속해 있긴 하지만, 영화예술로서 닮은 구석이라곤 별로 없다) 이것도 이 후속편의 "운명" 일진저. 


당연한 얘기지만 완벽한 영화는 아니고, 2시간 4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볼 수 없으실 수도 있겠지만 (설마 또 "한국 공개용 편집본" 을 트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화면비가 통상 2.35:1 보다 길다는 점도 유념하시길 빈다. 마스킹 등이 걱정되면 그냥 아이맥스관에서 보시길 추천한다. 70밀리로 촬영한 만큼, 아이맥스로 부풀려도 해상도에 관한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것 같다), 명색이 SF 팬이라면 극장에서 보시는 경험을 거부하실 핑계는 없을 것이다. 마음을 열고 사랑할 수는 없는 영화일지라도, 이 한편이 엄청난 미적, 예술적 성취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려는 분들께서는 상당한 찌질성 에너지를 동원하는 노오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밑에서는 약간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사족적인 관찰을 적어놓는다. 워낙 이 영화가 주는 정보량이 많은 지라 미디어에서 많은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스포일러들을 남발할 것이 예상되는데, 영화 개봉을 학수고대하시는 분들께서는TV 의 연예가 중계 뭐 이딴 것들과 웬만한 리뷰도 철저하게 차단하시길 바라고, 점선 친 밑의 내용도 영화 보시고 나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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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한편을 보고 있자니 [BD 2049] 는 아무래도 "우리" 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평행우주-- 아마도 1989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제한 핵전쟁이 미국 국내에서 발발된 적이 있는-- 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설정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이 세계에는 여전히 일본이 중국에 대해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중국어 특히 간략체 중국어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반면, 기계장치의 A. I. 는 K 의 영어 질문에 대해 일본어로 응답을 한다), 실제 세계에서는 없어진 Pan American Airline사의 선전 홀로그램이 존재하고 (아타리 게임의 경우도 좀 이상하다. 아직 존재하기는 하지만, 2049년에는 저렇게 "소니" 나 "코카 콜라" 를 능가할 정도로 거대한 선전 홀로그램을 돌릴 만한 회사가 됐다는 얘긴가?), 발레 댄서의 거대 홀로그램에는 러시아 대신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제명이 달려 있다. 


라스 베가스가 폐허가 된 이유는 환경파괴뿐 아니라 더티 봄 (방사능 재를 일부러 오래 남겨놓는 제한핵전쟁용 핵무기) 때문이라는 식의 대사가 나오는데,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없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추측의 영역을 넘지 않지만, 이것도 2019년의 현재 세계로부터 추산하기 보다는 평행세계 안에서의 불완전한 냉전구도에서 파생된 비극의 역사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는지 (그야말로 북조선이 ICBM을 쏴 올려서 떨어뜨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 전편에서도 그렇지만 레플리칸트의 설정에는 여러가지 모순적인 정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모두에 K가 처치 명령을 받은 레플리칸트 도주자의 안구를 스캔해서 인식번호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 간단히 스캔하면 알 수 있는 레플리칸트를 왜 보이트-캄프 테스트라는 복잡한 검사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최초에 나오는 모튼은 넥서스 8 인 모양이니 (원작의 로이 배티와 일당은 넥서스 6), 원작에서 나온 모델 이후의 신형부터 보이트-캄프 조사를 폐기하고 눈에다가 인식번호를 새겨 넣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안구 스캔" 신은 스토리 상 전혀 필요가 없었다. 왜 자꾸 제작진들이 어떤 캐릭터가 레플리칸트라는 것을 이런 "약식 방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을 못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3. 레플리칸트냐 인간이냐 하는 구분의 문제는 사실 [BD 2049] 에서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육체를 가지지 않은 조이가 이 한편에서 가장 "인간적" 인 캐릭터로 자리매김 된 이상, 원작에 비해서도 훨씬 더 의미가 엷어진 상태이고, 나는 그 문제가 마치 [블레이드 런너]를 [우주전쟁] 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천박한" 작품들에 비해 숭고하고 장엄한 SF 예술로 발돋움하게 해주는 사상적 내용인 것처럼 다루는 평론가들과 기자들의 (그리고 스콧 감독의) 태도에는 쓴 웃음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아 그래, 덱카드가 레플리칸트 맞는가 보더구만. 월레스가 그런 것처럼 말하니 그런 가 보지 (그런 대기업의 총수가 거짓말을 했겠어 설마?). 그 질문의 답이 궁금해서 자라목을 뻗으시고 이 한편을 보러 오신 관객분들의 숫자가 전 지구 규모로 몇 명이나 될런지 모르겠다만. 


4. 전편에서 계승된 문제이지만, 기업이나 공안 계통의 권력자들이 몽조리 백인인 것은 그렇다 치고, 2049년의 로스안젤스와 샌 디에고 지역이라는 곳에 이렇게 히스패닉계, 동양인과 흑인이 적은 것은 사실 2017년에 만든 영화의 입장에서는 좀 문제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 필요하다. 힌두어, 한국어, 러시아어 간판이 여기저기 달려 있고, 길거리 국수 파는 사람들이나 집세 걷는 욕쟁이 건물주가 동양인인 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유색인종들은 다 중산층 이상으로 진입해서 오프 월드로 이민 가버렸나? 아니면 트럼프주의자들이 득세해서 인종청산 정책을 펼치기라도 했는가? 우리 팀에서는 미래 세계를 다룰 때에는 인종 문제는 신경 안 씁니다, 라고 말하려면 최소한 인종이 마구 섞이는 바람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라는 전제라도 하든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 판타지 세계에서 벌어지는 [스타 워즈] 에 비교해서 (이미 대부분의 주요 캐릭터들이 흑인, 남아시아인, 동양인과 태평양 원주민으로 구성된 [The Expanse] 같은 SF TV 시리즈는 아예 거론도 하지 않겠다), 이미 다인종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된 캘리포니아의 30년 이후를 다룬 SF영화가 더 인종적으로 백인중심이라는 사실은, 원래 이 문제에 둔감했던 나라도 이제 더 이상 어물쩡 넘어가기 힘든 사안이다. 이제부터는 좀 신경을 써줄 것을 촉구한다 (사실 빌뇌브보다도 제작자인 리들리 스콧의 태도가 문제라고 나는 짚고 있지만… 이분께서 일본까지 가서 제작한 [블랙 레인]의 웃기지도 않는 "인종 정치학"을 생각하면, 이런 사추 [邪推: 일본말이다]를 안 하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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