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하우스 골렘   The Limehouse Golem

 

영국, 2016.   


A Number 9 Films/New Sparta/Day Tripper Films/Hanway Films/Lipsync/Stephen Wooley/Elizabeth Karlsen Co-Production, distributed by Lionsgate (UK)/RLJ Films (US). 1시간 49분, Todd-AO 35mm, 화면비 2.35:1 


Director: Juan Carols Medina 

Screenplay: Jane Goldman 

Based on the novel "Dan Leno and the Limehouse Golem" by Peter Ackroyd 

Producers: Stephen Wooley, Elizabeth Karlsen, Joanna Laurie 

Cinematography: Simon Dennis 

Production Designer: Grant Montgomery 

Music: Johan Søderqvist 

Editor: Justin Krish 


CAST: Bill Nighy (킬데어 경감), Olivia Cooke (리지 크리), Douglas Booth (댄 리노), Daniel Mays (조지 플러드 경사), Sam Reid (존 크리), Maria Valverde (애벌린 오르테가), Henry Goodman (칼 마르크스), Morgan Watkins (조지 기싱), Eddie Marsan (토미 파), Damien Thomas (솔로몬 웨일) 


THE-LIMEHOUSE-GOLEM.jpg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를 포함하는 스페인어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굉장히 고전적인 영국식 (때로는 그대로 예전의 영국이나 미국을 시대배경으로 삼는) 고딕 호러나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들어서 영어권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전통이 의외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처럼 미국에서 일류 감독의 자리를 꿰찬 분께서도 [크림슨 피크] 같은 칼러풀하지만 고색창연한 고딕 호러 영화를 제작하신 바 있고, 최근에는 [줄리아의 눈] 의 각본가인 카탈로니아 출신의 오리올 파올로 감독이 아가사 크리스티나 J. B. 프리스틀리 등의 고전 추리소설에서 보이는 트릭을 현대적으로 가공한 [인비저블 게스트] (2016)같은 꽤 괜찮은 정통 미스터리 작품도 공개된 바 있다. 어째서 스페인어 배경인 분들이 "영국식" 미스터리 스릴러에 이런 몇 세대에 걸친 집착을 보여주시는 것인지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흥미있는 얘기가 아닐 수 없는데, 아무튼 요즘 들어 영화로 정통적인 미스터리나, 잭 더 리퍼와 셜록 홈즈가 결투를 벌이는 따위의 시대극적 심리 호러 중 잘 빠져나온 작품들을 보시고 싶으신 관객들께서는, 영국이나 미국보다는 라틴 아메리카나 서유럽의 영화인들에 기대하시는 쪽이 좋을 성 싶다. 


본작 [라임하우스 골렘] 은 [악마의 등뼈]처럼 스페인 내전의 아픈 역사를 호러 장르에 반영시킨 수준작 [페인리스 Insensibles] (2012) 의 감독인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해왔지만 본적은 미국 플로리다 출생으로 히스패닉계 미국인인 모양) 가 [킥애스] 와 [킹스맨] 시리즈의 각본가인 제인 골드먼이,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등의 영문학의 거두 연구가로도 잘 알려져 있고, 디킨스의 생애를 추리소설처럼 풀어낸 [찰스 디킨스의 미스터리] (2000) 를 집필한 피터 애크로이드의 소설 [댄 리노와 라임하우스의 골렘] (1994) 을 각색한 각본을 감독한 한편이다. 영미권의 SF, 미스터리와 호러에서는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역사와 공상적인 허구의 (대체 역사적이거나 아니거나 여부와는 관계 없이) 스토리를 엮어서 하나의 복합적인 세계관을 구성하는 작풍이 하나의 흐름으로서 존재하는데 (쇼우타임의 시리즈 [페니 드레드풀, 2014-2016] 같은 경우는 유명 소설이나 영화의 캐릭터들-- 드라큘라라던가, 늑대인간 래리 탈봇,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인조인간 등-- 을 새로 창조해낸 존재들과 버무려낸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부류에 속한다), 액크로이드의 원작 소설은 1880년의 동부 런던의 빈민가 "라임하우스" (석회석-- "라임스톤" --을 철강공업에 필수 물품이었던 생석회로 가공하는 도가니에서 파생된 이름. 영국인들을 비하할 때 "라이미" 라고 부르기도 하는 데 이 멸칭도 라임하우스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에서 연속 살인을 저지르는 "골렘" (유대인들의 전설에 등장하는 진흙으로 만든 인조인간) 의 정체를 당대의 유명 뮤지컬 코미디언이었던 댄 리노 (1860-1904) 가 밝혀낸다는 내용인데, 당시에 런던에 거주했던 만년의 칼 마르크스 (!) 와 자연주의스타일과 노동자문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소설가 조지 기싱 (1857-1903) 등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라임하우스 골렘] 은 실재로 존재했던 역사상의 인물 댄 리노의 악극단이 리노가 직접 여장을 하고 여주인공 리지 크리로 등장하여 그녀의 인생을 극화한 무대극을 올리는 액자구조로 시작된다. 동부 런던의 빈민가에서 성매매 여성, 어린이 둘을 포함한 양복집 주인 가족, 유태인 학자 등을 차례로 눈알을 도려내고 성기를 자르는 등 엽기적인 수법으로 살해한 연속살인범 "라임하우스 골렘" 을 뒤쫓는 스코틀랜드 야드의 킬데어 경감은,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결혼 안하고 남자를 밝히는 타이프" 라는 뒷공론에서 드러나는 그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여론과 미디어의 희생양으로 "발탁" 된 자신의 씁쓸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 라임하우스 출신의 경찰관 조지를 오른팔로 삼은 킬데어는 한 때 리노의 극단에서 여성 코메디언으로 인기를 누렸으나 결혼한 후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가, 갑자기 남편이 급사하는 바람에 그의 독살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엘리자베스 (리지) 크리라는, 재능이 넘치면서도 독립심이 강한 한 여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실패한 극작가였던 그녀의 남편 존 크리의 정체가 라임하우스 골렘이었고, 나아가서 그의 정체를 깨닫게 된 리지가 그를 작심하고 독살했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신을 착취하고 이용하기만 했던 주류 영국 사회에 대해 그녀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심증을 지니게 된다. 


애크로이드의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써는 제인 골드먼의 각본이 얼마만큼 원작에 충실한지 추측의 영역을 넘지 못하지만, 메이킹 오브 도큐멘터리에 의하면 원작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댄 리노였으나, 경찰 측 인물인 킬데어를 관객들의 시점을 반영하는 "탐정" 의 위치로 격상시킨 것이 골드먼의 공헌이라고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전편을 통해서 빅토리아조 영국의 계급사회에서 하층계급의 여성이 겪었던 고통과 구조적 모순을 명징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이 한편의 페미니즘적인 시각도 역시 그의 공헌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든다. 메디나의 연출은 딱히 재기가 넘친다고는 할 수 없지만, [페인리스] 에서 보여준 것 같은, 리얼리즘의 판도를 조금씩 벗어나는 표현주의적인 터치가 플롯의 여러 갈래를 흥미롭게 구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칼 마르크스를 위시한 용의자들로 하여금 한 명씩 골렘의 페르소나를 킬데어 경감의 상상속에서 대입시켜, 잔혹한 살인의 수법을 재현하게 만드는 것이 그 한 예인데, 딱히 참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객의 주의를 끌어들이는 박력은 충분히 과시하고 있다. "신용할 수 없는 화자"의 언설을 교묘히 이용한 화술의 트릭을 위시해서, 대부분 유명 미스터리에서 한 번씩은 써먹힌 기억이 나는 기법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매끈하게 펼쳐내 주면 불평할 건덕지는 별로 없다. 


막판의 "반전" 도 괜찮은 편인데, (이런 미스터리의 진범 맞추기 에서는 거의 95퍼센트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우리 바깥분은 45분 조금 넘었던 시점에서 그냥 얘기가 굴러가는 패턴을 유추해서 진범을 알아 맞출 수 있었으니, 그렇게 맞추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진상" 의 "놀라움" 보다도 그 진상의 함의가 전편을 관통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 주는가에 대해 관객들의 의견이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자세하게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그만 하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써 놓은 것만 가지고도 고수들은 "진상"을 충분히 추리할 수 있을 거다), 나 자신은 그 "반전" 에 의해 본편의 페미니즘적 위상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만 적어두자. 


여느 영미권 고전적 미스터리 영화와 마찬가지로, 결국 [라임하우스 골렘] 의 최고의 매력 역시 캐스트의 연기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킬데어 경감역을 맡은 빌 나이는 TV 조연을 주로 맡다가 40이 한참 넘어서야 [언더월드] 시리즈나 [러브 액추얼리] 같은 대박 영화에 출연하게 된 분인데, 도덕적으로 도무지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일말의 페이소스와 더불어 처연하게 맞서서 굽히지 않는, 그런 백전노장적인 캐릭터에 아주 잘 어울린다. 깔끔하면서 우울하게 보이는 용모도 거꾸로 명랑하면서도 투박하게 보이는 조지 플러드 경사역의 대니얼 메이스와 아주 잘 어울린다. 여주인공 올리비아 쿠크는 무려 [베이츠 모텔]에서 지병 때문에 산소탱크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소녀 엠마역으로 출연했던 바로 그 배우라서 깜짝 놀랐는데, 이러한 고딕 스릴러적인 분위기와는 아주 인연이 없어 보이는 밝고 활달한 느낌의 젊은이 (93년생이다) 지만, 한 10년전의 에바 그린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의 몸을 내던지는 열연을 보여주고 계신다. 구태여 비교를 하자면 차예련 형이라기 보다는 심은경 형인 연기자인데, 그 때문에 아무래도 리지 역에 잘 어울린다고는 보지 않는 관객들도 계실 지 모르겠다. 사이즈가 무척 작은 선원복을 입고 남장 뮤지컬 코메디를 선보일 때의 귀여운 매력이 상당한데, [메리 포핀스] 같은 종류의 옛날 디즈니 영화 같은 기획에 누가 기용해주면 좋을 듯싶다. 


[인비저블 게스트]등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도면 같은 구성력의 매력은 좀 부족하지만, 단순한 두뇌운동용 미스터리를 넘어서, 캐릭터들의 윤리적 선택과 그들이 놓인 구조적인 상황에 대해 관객들로부터 상호모순적일 수도 있는 여러 갈래의 심정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나름 만만히 볼 수 없는 공력을 지닌 한편이다. 추리 소설과 고딕 스릴러의 팬들께 추천 드린다. 


단지, 전체적인 영화는 "성인용" 적인 감이 태부족인 반면, 고어 묘사만 돌출적으로 강한 곳이 있기 때문에, 한국 배급사/당국에서 수입할 때 15금으로 받아놓고 그런 부분만 (예를 들자면 유태인 남성에서 잘라냈다는 것이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리얼하게 묘사된 절단된 남성 성기라든지) 블러 처리하는 따위의 만행을 저지를 까봐 걱정된다. 


사족: 영화에서 살인범이 라임하우스 골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의 설명이 나오는데, 이 시퀜스에서 유태인 학자가 살해당했을 때 읽고 있던 책에 실린 골렘의 삽화 (실제로는 골렘의 전통적인 묘사가 아니고 윌리엄 블레이크가 1819-20년에 그린 [벼룩의 유령] 이라는 기괴한 회화가 원용되었다. 여기서 "벼룩" 이란 "흡혈충" 이라는 의미로 쓰여짐.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라는 뜻)가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그런데 영화를 주의깊게 보다 보면 한 캐릭터의 등장 신에서 바로 이 블레이크의 그림이 겹쳐져서 나오는 곳이 있다. Subliminal messaging 을 통해서 진범의 정체를 암시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첫 번째 봤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두 번째 봤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도 영화 보실 때 한번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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