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Black Panther   


미국, 2018.    ☆☆☆☆


A Marvel Studios/Walt Disney Pictures Co-Production. 화면비 2.39:1, Arri Alexa XT Plus, Panavision Primo Lenses. 2시간 14분.


Director: Ryan Coogler

Screenplay: Ryan Coogler, Joe Robert Cole

Based on the characters created by Stan Lee & Jack Kirby

Cinematography: Rachel Morrison

Production Design: Hannah Beachler

Music: Ludwig Göransson

Costume Design: Ruth E. Carter

Editors: Debbie Berman, Michael P. Shawver

Special & Visual Effects: Quantum Creation, Scanline VFX, Stereo D, RISE, Legend, The Third Floor, Method Studios, Industrial Light and Magic, Double Negative, Trixter.

Executive Producers: Stan Lee, Nate Moore, Victoria Alonso, Jeffrey Chernov, Louis D'Esposito


CAST: Chadwick Bosman (트찰라), Lupita Nyong'o (나키아), Michael B. Jordan (에릭 스티븐스/킬몽거), Angela Basset (라몬다), Letitia Wright (슈리), Danai Gurira (오코요), Forest Whitaker (주리), Winston Duke (므바쿠), Daniel Kaalyua (우카비), Andy Serkis (율리시즈 클로오), Michael Freeman (로스), Florence Kasumba (아요), John Kani (트차카), Sterling K. Brown (느조부), Atandwa Kani (젊은 시절의 트차카), Denzel Whitaker (젊은 시절의 주리), Nabiyah Be (린다), Alexis Rhee (자갈치시장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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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는 이제까지 마블이 내놓은 수퍼히어로 영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고 [다크 나이트] (2008) 이래 수퍼히어로라는 존재를 이용해서 내놓은 미국 영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며, 무엇보다도 2016년경부터 지속적으로 제작, 공개되어온 라이언 쿠글러 감독 자신의 전작인 [크리드] 를 포함한 일련의 흑인 중심 영화 트렌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 조던 필의 악마적으로 머리가 좋은 호러 수작 (한국에서도 히트했음) [겟 아웃], 흑인이고 과학자들이면서도 주류 사회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한 인간 컴퓨터들을 다룬 [히든 피겨스], 디 리스의 넷플릭스 드라마 [치욕의 대지] (촬영감독 레이철 모리슨이 [블랙 팬서] 도 담당했고 현재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와 있음)-- 의 하나의 정점을 찍는 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적으로야 이 한편이 이제 미국에서 범접할 수 없는 "별격" 의 우주에 들어서 있는 [스타 워즈] 리부트 두 편을 제외한 마블-디즈니의 어떤 작품들보다도 더 돈을 많이 벌어들일 것으로 보이는 판국이니, [원더 우먼] 의 DC 에서의 최고 성공과 더불어, 헐리웃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데 그 테이프를 끊는 역할을 할 것이 확실하다. "흑인들이 나대는 영화는 돈을 못 번다"는 오래된 영화계의 불문율을 완전히 짓밟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흑인들이 나대는 영화는 그래도 미국 안에서 무식한 도회지의 흑인 놈들이 우루루 보러 가니까 돈 좀 벌겠지만 (우리 백인들처럼 흑인들 솔까 싫어하는 관객이 대다수인) 외국에서는 어림없다" 라는 벼룩이 남성성기 같은 상또랑이 백인 제작자-자본가들의 "불문율" 도 아주 통쾌하게 자근자근 짓밟는 중이다. 아직 [2월 22일 현재]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는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영국, 한국 (^ ^), 멕시코, 브라질 등지에서 선전한 결과 총 박스오피스 성적이 5억 2천만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순수하게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이 2억9천만달러를 약간 상회) 이대로 가다간 곧 마블의 역대 최고 성적인 [어벤저스] 를 넘어서게 된다 (역시 한국에서 로케이션을 해서 큰 화제가 되었던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은 같은 날짜의 성적 대비로 옛날에 따돌렸음).


나는 내 글을 계속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마블의 팬이 아니다. 나는 그들의 상업영화를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은 사상적으로나 (나름 22년 가까이 캘리포니아의 주립대학에서 교수짓을 해온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특히. 물론 내가 생각하는 "역사학자" 는 "역사" 가 아닌 "위인전"을 어린 친구들 앞에서 휘저으면서 "왜곡되지 않은 역사" 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고-- 니가 역사 "왜곡" 하는 거는 괜찮고 일본놈들 중국놈들이 "왜곡" 하는 거는 죽을 죄지?--, "무슨 무슨 사관" 이라는 레벨을 자기보다 공부를 더 한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붙이고 씹어대는 데 인생을 소비하는 그런 종류의 할일 없는 먹물들은 아니다), 영화적으로 보나 내게 커다란 만족을 안겨다 준 적은 별로 없다. 나름 적역으로 캐스팅된 우수한 연기자들이 읊는 대사들은 웃기고 재미있지만, 너무나도 "이건 엔터테인먼트다" 라는 인식이 뚜렷한, 힙스터의 가벼운 스텝 밟기를 우위에 둘 수밖에 없는 "세계관" 이랄까, 그런 것들이 결국은 나로 하여금 지겨워지게 만든다 (이것은 한국식으로 생각하는 "보수" 와 "진보" 구분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이 실제로 영화를 뽑아내는 "실력" 에 있어서는 마블보다 뒤쳐지는 DC 를 계속 선호하게 만들었고, [배트맨 대 수퍼맨] 같은 거의 실패작에 가까운 어리석은 한 편까지도 [어벤저스] 나 [시빌 워] 처럼 훨씬 더 말끔하게 빠져나온 마블 작품들보다 선호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그러한 마블에 있어서도 넷플릭스 시리즈인 [데어데블 (고백하자면 마블의 히어로 중에서 그나마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제시카 존스], 그리고 [루크 케이지] 를 보면서 "어이쿠 마침내 여기에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마블이나 디즈니가 갑자기 "진보적"으로 물갈이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수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젊은 백인 남성 주도의 사회에서 서서히 벗어나려고 하는 소비자층의 지층적인 데모그래픽 변화를 반영하는, 미국 문화계의 필연적인 진화 과정의 모습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스타 워즈]에서 캐스린 케네디가 루카스필름을 주도하게 되면서 레이와 핀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되는 등, 최근의 세 편을 관통하는 변화를 생각해보라. 솔직히 말해서 90년대에 루카스가 주도했던 프리퀄들에 배태된 "사상" 이란 백인 남자 아색기 구세주 서사의 얼치기 라이트노벨 버젼 같은 짜증나는 수준의 물건들이었다. 그나마 자 자 빙크스가 대놓고 동양인을 연상시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사회 문화적 변화는 지금 똥통간에서 기어나온 살찐 구더기 같은 존재인 도날통 (이 인간이 국회위원들과 만나는 공식석상에서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똥통 같은 나라들" 이라고 비하한 것이 기억에 새롭다. 자기 얘기하고 자빠졌네) 이 대표하는 백인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여성 혐오론자 세력, 지네들 돈이 아깝고 사회적 지위가 아까워서 그놈들의 나라 망쳐먹는 지랄을 방관하고 돕는 공화당의 "멀쩡한" 인간들, 그리고 이런 놈들에게 빌어 붙어서 무슨 PC 리버럴들이 스타워즈 망쳤네 마블을 망쳤네 라고 주접떠는 팬보이들 (그리고 이런 백인 팬보이들을 지극히 [짝]사랑하고 걔네들 닮고 싶어서 안달이 나신, 무슨 콩나물 위키인지 뭔지 그런데 단체로 서식하시는 걸로 보이는 대한민국의 팬보이분들 ^ ^) 이 뭐라고 난리를 쳐도 거스를 수가 없는 대세다.


나는 지난 한 주 동안 한글로 쓴 [블랙 팬서] 평들을 읽고 "어유 씨… 내가 보스턴에서 자라고 캘리포니아에서 결혼하고 학생들 가르치라 미국인이 완전히 돼서 이런 건가?  아니면 결국 한국에서 살면  [블랙 팬서] 같은 경천동지스러운 작품도 이렇게 밖에는 볼 수 없는 건가?" 라고 약간 의기소침한 반응을 했었는데, [겟 아웃] 과 마찬가지로 실제 한국 내 박스 오피스 레코드를 보니 3백만을 넘어간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이게 단순히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로케이션을 했다는 호기심으로 설명이 되는 상황일까? 내 생각에는 실제 [블랙 팬서] 를 보는 (여성들을 크게 포함한… [블랙 팬서] 의 북미 관객들의 45 퍼센트가 여성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국 관객 분들 중에는 나처럼 캐릭터들에 미치게 감동 드시고, 와칸다에 이민 가시고 싶으신 ^ ^ 분들이 꽤 되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든다. 말하자면 [씨네 21] 같은 내가 평소에 지극히 응원하는 매체의 평론가들도 "한국식 진보 관점" 의 명백한 역사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게 아닌지, 그리고 이미 "주류 진보 관점" 에서 한참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일반 관객들의 실질적인 선호마저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게 아닌 지 의심스럽다.


물론 [라스트 제다이] 때에도 한 얘기지만, [블랙 팬서] 가 완벽한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액션영화의 기준으로 본다면, 예를 들자면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아방가르드할 정도로 창의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헐리웃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대단한 코리오그래피와 특수효과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런 것도 아니다. CGI를 비롯한 특수효과에는 당연히 디즈니와 마블에서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은 것이 확실한데, [시빌 워] 때에도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안전빵적인 선택으로 기울어져 있다. [라스트 제다이] 의 기발하고 약간 기괴하기까지 한 전투 장면과 결투 신들의 미적 선택에 비하자면, CGI 코뿔소 등의 액션은 그냥 웬만한 수준에서 멈추어 있다는 느낌이다.


부산에서 로케이션한 장면이 플롯 상으로 상대적으로 중요하고 척수도 의외로 길었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 그냥 관광명소를 비추어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의 서울 장면들이나 아예 한국이 주된 배경인 [콜로썰] 등 보다는 훨씬 제대로 유기적으로 환경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도 눈에 띄지만 (그런데, 자갈치시장 이면에 그런 비밀 국제 카지노가 있다는 설정 가지고 불평을 할 거면, 내가 전에 얘기 한 거지만 50년 넘게 해먹으면서, 대한민국 남자들의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었고,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으며, 심지어는 SF판타지 도 아닌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한편 한편의 설정으로 상정된 곳에 실제 사는 사람들이 "와 존나 이게 우리 동네 맞아?" 라는 식의 푸념 내지는 실소를 동반한 코멘트를 얼마나 수없이 했을 지 상상을 조금만 해 보시기 바란다… 설마 [스카이폴] 에서 나온 코모도 드래곤이 어슬렁거리는 카지노가 실제로 홍콩에 존재한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부산의 좁아 터지고 네비게이션도 항복시키는 언덕 골목길을 이용한 카 체이스도 로케이션을 제대로 이용 잘 한 편이라고 본다. 그리고 루피타 뇽오 그 정도면 한국말 대사 잘 해냈다. 한국말이 얼마나 배우기 어려운 말인데…


[블랙 팬서] 가 다른 마블 영화에 비해 라이언 쿠글러의 의향이 강렬하게 반응되어 있다고 여겨졌던 부분은, 사실 액션이나 CGI 가 아니고 의상 디자인, 음악, 미술/프로덕션 디자인이었는데, 이러한 부분은 비주얼 아티스트적인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확신이 드는 크리스토퍼 놀란 수준은 아니더라도, 쿠글러가 자신이 신뢰하는 스탭-- [문라이트] 도 담당한 한나 비츨러 프로덕션 디자이너, [말콤 X] 등 스파이크 리의 작품들로부터 시작해서 조스 웨든의 [세레니티],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 등 주류 헐리웃 영화에서도 실력을 발휘한 루스 카터 의상 디자이너,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현 오스카상 후보자 레이철 모리슨 촬영감독을 위시해서, 2010년대의 헐리웃 영화에서도 감독이 남성인 영화에서 주 스탭들이 이렇게 여성으로 구성된 예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의 능력을 최고한도로 뽑아내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보인다. 특히 아프리카의 각 지역의 문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의상 및 분장과, 로케이션 촬영과 서구적인 감각에서 현저히 벗어났지만 또한 현대적인 보편적인 아름다움에도 호소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인테리어와 건축 디자인-- 대표적인 예가 통나무들을 수평으로 걸어놓음으로써 위엄과 친근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자바리족 추장의 왕좌-- 은 감탄스럽게 아름답고, 또한 와칸다라는 가상 공간에 뚜렷한 역사성과 공간성을 부여한다. 쿠글러의 협력자 중 하나인 스웨덴 출신 작곡가 루드비히 괴란슨의 음악 또한 익숙한 마블 스코어들의 경쾌하게 재빠른 영웅성을 강조하는 "액션 스코어" 접근법을 완전히 갈아엎고, 오히려 캐릭터들의 셰익스피어적인 고뇌와 슬픔에 초점을 맞춘 진중한 스코어다.


이 모든 와칸다의 시각화와 청각화에 있어서 실제 아프리카 전문가 및 그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보면 인식할 수 있는 문화적인 코드와 미래지향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적당히 버무려져 있으면서도, 그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인 통합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블랙 팬서]의 대단한 점이다. 마블 영화는 고사하고, 헐리웃 SF판타지라는 장르 내에서, 언제 이런 식으로 북미 대륙이나 유럽 이외 지역의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한 나라를 엄청난 제작비를 때려 붓고, 그 분야의 최고봉들이 모여서 공들여 묘사한 적이 있었나? 그런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가상국인 와칸다라는 게 그렇게 밸이 꼴리시는 한국분들 께서는 그러면 22세기의 미래를 배경으로 가장 잘살고 가장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고 가장 기술적으로 앞선 통일 대~한민국을 영화가 아니라 웹툰이나 비데오 게임이라도 좋으니까 한번 정교하고 디테일 넘치게 묘사해 보시던가? 


이것은 내가 거의 40년이 가깝게 "우리도 한번 해보자" 라고 부르짖어온 대중 문화 프로젝트인데. 난 이제 목이 쉬었다네 여러분들. [블랙 팬서] 에서처럼 주요 여성 스탭을 데리고, 여성 캐릭터들에게 반 이상의 주연급 역할을 주면서 이런 걸 세계 사람들이 누가 보더라도 탄성을 뱉을 수 있는 수준으로 해낼 자신이 과연 있소, 대~ 한민국의 문화계 남성 여러분들?


라이언 쿠글러가 괜히 혜성같이 나온 게 아니다. 포레스트 위테커, 안젤라 바세트, 덴젤 워싱턴 같은 위대한 흑인 연기자들이 자신들의 에고와 문화권력을 기꺼이 희생해가면서 채드윅 보스웰, 마이클 조던, 쿠글러, 배리 젠킨스, 조던 필 같은 차세대 재원들을 30년, 40년동안 지속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제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난 것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전세대의, 백인들 (또는 새로 들어온 이민자인 한국인들처럼 "만만한" 대상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타도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백인들에게 인정받는" 유일한 또는 선택된 "흑인 영화작가"로 군림하면서 문화 권력을 누리고 싶어하는 흑인 영화인들 (스파이크 리가 그 전형적인 예다) 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흑인들의 설움만큼 성소수자들, 여성들, 소외된 계층의 백인들의 설움도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도시의 빈민가 이런 데에는 가보지도 못한 잘사는 집의 어린 백인 아색기들이 힙합이나 이런 것을 듣고 흉내내는 "쿨"함이나, 또는 백인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동시에 "삼삼한 깔치들 따먹는" 여혐 가사나 부르고 자빠진 자기혐오에 가득찬 "내면화된 식민성" 에서 벗어나서, 세계의 사람들과 보편적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작가들로 성장했다.


많은 진정으로 뛰어난 스토리텔러들이 그러하듯이, 쿠글러는 자신이 빚어낸 캐릭터들을 결코 과보호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내팽개치는 일도 없다. 그의 작품에서는 플롯상으로서는 별 볼 없이 지나쳐간다고 여겨지는 조연들도, 그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하나 따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데, ([블랙 팬서] 이외의 영화를 예로 들자면, [크리드] 에서 테사 톰슨이 연기한 뮤지션 비앙카가 그러한 캐릭터다. 웬만한 감독 같았으면 그녀의 청각장애를 멜로적 플롯으로 울거먹거나 나좀보소 상징주의의 일환으로 써먹었을 것이다. 쿠글러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을뿐더러, 그녀는 주인공 아도니스에게 복속된 캐릭터도 아니다. 그가 복서로서 잘 되거나 말거나, 그와 얽히거나 말거나, 비앙카는 그녀의 독립된 인생을 계속 살아 나갈 것이라는 진실이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그러한 점에서는 [제 3의 사나이] 의 대감독 캐롤 리드의 작풍을 연상시키는 점도 있다. [다크 나이트] 의 가장 놀랍고도 감동적인 장면들이 조커와 다른 캐릭터들, 그리고 배트맨과 고든, 투 페이스등의 캐릭터들이 나누는 *대화* 의 장면들이었듯이, [블랙 팬서] 에서도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장면들은 트찰라 및 악당이고 주적인 킬몽거를 포함한 다른 캐릭터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장면들에는 미국 사회에서 소수인종으로 자랐으면서도, 그래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으로 서른 한살이라는 나이에 업계의 탑에 올라갔음에도, 여전히 자신보다 더 힘들고 고되고 희망이 박탈당한 같은 경우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쿠글러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에릭이 자신의 아버지가 쓰던 아파트에 들어가는 "환영"을 보는 장면을 상기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서 글을 쓰기를 중단해야 한다. 트찰라가 그의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재회했을 때 표범이 느긋하게 몸을 드리운 거목의 뒤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보랏빛 (아프리카의 많은 문화권에서 보라색은 왕가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오로라. 에릭이 그 아버지와 환영 속에서 재회했을 때에, 그 보랏빛 오로라는 아파트의 창문 밖에 있지만, 그는 그것을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그 아파트의 방에서 나갈 수 없다. 그리고 아버지 느조부는 애정과 슬픔이 가득 담긴 얼굴로 장성한 에릭-- 미국에서 다른 나라를 뒤집어 엎고 요인을 암살하는 기술을 훈련받은 살인 전문가 킬몽거가 된, 그래서 사람 하나를 죽일 때 마다 몸에 생채기를 하나씩 새김으로서 육체적으로 제국주의의 사악함의 표식을 달고 다니는 남자가 된-- 을 바라보고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눈물 안 흘리니?" 자기 아버지의 싸늘한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던 어린 꼬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에릭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한다, "모두 다 죽잖아요." 느조부는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한다. "우리는 둘 다 고향을 잃어버렸구나. 여기에 이렇게 남게 되었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괴물로 자라난 에릭은 웃기지 마시오 라는 식의 건방진 눈으로 아버지를 쏘아보지만, 그의 눈에서는 결국 애써 부정했던 눈물이 흐른다.


이 마이클 조던과 스털링 브라운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들은, 모든 사람들의 말을 끝까지 듣는 신중한 리더 트찰라가 분노에 찬 일갈을 터뜨리는 대상이 자신의 주적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와 같았던 멘터 주리와 그리고 실제로 그토록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아버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트찰라의 장면들과 댓구를 이룬다. 그가 킬몽거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와칸다라는 백인들의 제국주의에서 아프리카인들을 지켜낸 위대한 조국의 위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의 실망과, 분노와, 깊은 슬픔. 이 슬픔이야말로 [블랙 팬서] 의 전신을 관통하고 설렁설렁한 힙스터 엔터테인먼트를 까마득히 넘어서게 해 주는 "진정성" 을 확보해주는 열쇠이다. 트찰라는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 하며, 자신이 옳음이라고 믿었던 것이 이미 그름에 의해 타협된 가치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처음 트차카는 아들의 환영 속에서 "옳은 일을 하려는 사람은 훌륭한 왕이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라고 말한다. 여느 영화 같았으면 트찰라는 "와칸다의 국민들을 위해서" 또는 "대의명분을 위해서" 힘든 결정을 내리고 (자기편을 일부러 희생시킨다든지) 그것이 지도자로서 자라는 데 필요한 "성장통" 으로 자리매김되었을 것이다. [블랙 팬서]는 그러한 선택-- "국가와 민족을 세우고 지켜낸 아버지들의 선택" 을 완벽하게 거부한다. 진정으로 와칸다를 위하는 길은 세상 어느 곳에나 있는 불행한 사람들-- 와칸다의 지속적인 안전이라는 "대"를 위해 희생당한 "소" 인 에릭과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을 위하는 길이라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트찰라가 옳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그의 가족과 나키아, 오코요라는 여성 지도자들-- 결코 트찰라가 남성으로서의 절대 권력을 얻기 위해 어물쩡거리는 캐릭터들이 아니고, 트찰라가 죽어 없어져도 스스로의 독립된 서사를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 존재들-- 이 절대적인 필요임은 명백하다.


1992년 인종 차별의 심각성에 몸살을 앓고 있던 오클랜드 (내가 20년동안 산 곳의 바로 옆 동네고 이제는 우리 장모님이 사시는 곳이기도 하다) 에서 한 어린 소년이 수심에 찬 눈으로 와칸다의 호버크래프트를 올려다 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2017년의 오클랜드에서 한 어린 소년이 트찰라에게 "당신 누구에요?" 라고 묻는 장면으로 끝나는 [블랙 팬서]는, 그러므로, 수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다.


 이 한편은 미국의 영혼에 관한 드라마이고, 이 구더기 같은 도날통 정권 밑에서 세상을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것인가를 주제로 삼아, 한 재능이 넘치면서도 항상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자신의 과제로 삼은 한 젊은 영화예술가와 그 동료들이 혼신을 다해서 그려놓은 장엄한, 그러면서도 보고 있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동시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어지는 거대한 벽화 (뮤럴 페인팅) 와도 같은 한 편이다.


[블랙 팬서]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영화에 있다는 것을 세계 방방곡곡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제부터 그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표범의 표효다.


Wakanda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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