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 Revenge 


프랑스-벨기에-모로코, 2017.    


A M.E.S./Monkey Pack Films/Charades/Logical Pictures/Nextus Factory/Umedia Co-Production, 1시간 48분, 화면비 2.35:1 


Director and Screenplay: Coralie Fargeat 

Cinematography: Robrecht Heyvaert 

Editing: Jerome Eltabet, Bruno Safar 

Costume Design: Elisabeth Bornuat 

Music: Robin Coudert 

Makeup Artist: Laetitia Quillery


CAST: Matilda Lutz (제니퍼), Kevin Janssens (리처드), Vincent Colombe (스턴), Guillaume Bouchède (디미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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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개를 했는지 아니면 공개 예정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왓차에서는 일단 평점이 매겨져 있는데 낮은 편이다 (2.7점). 그런데 북미의 평론가들 점수는 높다. 로튼 토마토에서는 무려 92% 고 (비교하자면 [아벤저스 인피니티 워]와 [데드풀 2]가 83%-- 관객 평점은 좀 더 짠데, 그래도 64% 이니 왓차보다는 높다), 긍정적인 리뷰도 극찬이 아니면 점수를 깎아서 매기기 때문에 썩토보다 성적이 낮아지는 메타크리틱에서도 81점이다 ([인피니티 워] 는 68점이고 [데드풀 2] 는 61점). 이런 북미-한국간 평가의 격차를 보이는 영화를 보게 되면 유감스럽지만 보통 나의 취향, 가치관, 영화에 대한 접근방식이 얼마나 더 일반 (남성) 한국 관객보다 "미국인 평론가" 쪽에 가까운 사람인지 보여주는 결과가 나오는데, 요번에도 그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허기사 캘리포니아에서 30년을 영화광 슬래쉬 먹물 짓을 하고 살았으니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긴 하다. 


아무튼, 왓차의 항목을 일별하니 좋아요 클릭이 많이 된 상위코멘트에 뚜렷한 패턴이 보이는데 대사가 후졌다, 말이 안 된다, 개연성이 없다, 등의 비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개중에는 남자 악당이 왜 성기를 덜렁거리면서 홀딱 벗고 나오느냐라는 불평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코멘트도 있는데, 아무튼 이 묘사를 포함해서 영화 자체가 한국남성으로 추정되는 관객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남자 악당의 풀 프론탈 누드 얘기는 밑에서 다시 끄집어내 보기로 하고, 듀나게시판이나 M의 데스크에서 내 리뷰를 상당수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러한 비판의 패턴은 사실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친근 (?) 한 형태인데, 주로 이탈리아계 호러영화들로 대표되는, 서스펜스나 미스터리 장치 ("반전" 이라던가) 에 별 관심이 없는 장르영화들의 일군에 영락없이 이러한 비판들이 상당수 퍼부어지곤 한다. 그러나 [마터스] 처럼 비인간적인 고어와 잔인성을 (주로 젊은 여성들에게) 마구 발휘하는 그런 영화더라도, 그걸 만든 작가가 "이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따위의 사상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만 하면 "씨네필" 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인지, 같은 종류의 개연성 없다, 말이 안 된다 식의 비판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나 [인페르노] 를 위시해서 기타 이탈리아 호러영화들에게는 하나마나한 소리일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비판이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적어도 미스터리 장르에서 볼 수 있는 단서와 해결의 논리적인 정합성 같은 것을 어느 정도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라면, 뜬금없이 엉뚱한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등의 행태는 지나치게 남용하면 문제가 있다. 다시금 아르젠토의 예를 들자면 그의 "동물 3부작" 과 [디프 레드] 등은 미디어나 인터넷 등지에서 일부 떠들어대는 것 과는 달리, 범인찾기 미스터리로서도 큰 하자가 없다 (심리적인 동기의 설명이 과학적으로 엉망진창이라는 결점이 있긴 하지만, 그거야 히치코크 같은 대감독의 경우도…). 


[리벤지] 에서는 여주인공 제니퍼가 범인들에게 일단 죽임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 한국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저 정도 상처면 그런대로 살 수 있겠다"적인 인식에 부합하는 상황을 확실히 뛰어넘는 과격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녀가 숨을 갑자기 쉬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완전히 영화에 대한 신빙성을 잃어버리는 관객들도 있겠다. 그런 분들을 구태여 참을성이 없다고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단, 이런 정도의 "논리적 비약" 이 개제된 유명한 호러영화나 스릴러는 세상에 쌔고 쌨다는 것은 내가 구태여 언급을 안 해도 아시리라 믿는다. 하물며 이 한편처럼 아주 의식적으로 과격하고 감각적인 비주얼을 스토리나 캐릭터보다 우위에 놓기로 작정한 한 편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감독 코랄리 파르자는 2014년에 [리얼리티 플러스] 라는 가상현실 게임에 관한 SF장편을 만들었다나 본데, 주인공 제니퍼가 스탠리 큐브릭의 [롤리타] 를 연상시키는 선글라스와 옷차림을 하고 등장하면서, 헬리콥터에 같이 앉은 남주/악당 리처드의 거울안경에 사막의 경치가 반영되는 [웨스트월드] 적인 신부터 시작해서, SF-호러-스릴러 고전들을 폭넓게 탐식한 장르영화 열성팬으로 자신을 위치시키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 한편을 재미 없게 보신 분들 (아니면 사상적인 이유 때문에 떨떠름하게 보신 분들) 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르덴 형제] (2015) 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벨기에인 촬영 감독 로브레히트 헤이배르트 (발음 맞는지?) 이하 스탭들과 파르자 감독이, 아마도 표면상 제작비로 볼 때 예상할 수 있었던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서 잡아낸 영상의 아름다움이다. 사막의 독기가 서려 있는 듯, 수려하면서도 악랄한 풍광뿐만 아니라, 제니퍼가 페요테 (인디오들의 환각제)를 먹고 스스로의 옆구리를 수술하는-- 엄청 질알맞게 고어스러운-- 장면의 환상적이지만 또한 시척지근하게 퇴락한 금빛의 조명 등, 여러 곳에서 관객들의 구토감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매혹시키는 류의 비주얼을 선사한다. 편집과 미장센에 있어서도, 파르자는 지금까지 각종 호러영화에서 시도된 쇼크성 테크닉들을 자기 류로 변주해 보이는데, [캐리] 와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 에서 이미 패러디의 영역에 들어간 "꿈에서 깬 줄 알았는데 여전히 꿈속이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개그를 농담이 아니고 아주 진지하게-- 머리통 폭발 등의 고어 메이크업을 일부러 시전하면서까지-- 다시 써먹고 있다. 이 정도면 고전주의자라는 명찰이 어울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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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리벤지]의 회심의 카드라고 한다면, 이러한 고전적인 호러 스릴러들의 "여성착취적" 인 성향을 뒤집어서, 여성 주인공으로 하여금 남성 악당들을 사냥하게 만든다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만일 파르자가 단순하게 집단성폭행을 당한 후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는 여자라는 투의 전형성에만 매달렸더라면, 이 한편은 나를 포함해서 북미 평단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복수의 화신 여성" 캐릭터는 사실 [너의 무덤에 침을 뱉으리라] 이후 미국영화에서 하나의 클리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리벤지] 의 예상하지 못했던 강점은 감독이 이런 "폭력적으로 남성 가해자들을 죽이는 여성 피해자" 에서 보통 볼 수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을 뒤집었을 뿐인 착취적인 시각을 아주 면밀하고 주도하게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보시는 분들이라면, 특히 여성이 (성적)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최근의 한국 영화들과 비교해서, [리벤지] 의 차별점을 인지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먼저 제니퍼는 결코 "청순한 여성" 이 아니며 리처드와의 관계에서는 성적인 방만함을 과시해 보이는데, 이 부분의 그녀의 모습은 계속 남성 캐릭터들의 시각에서 보여지고 있지만 (그냥 눈으로 그녀의 신체를 "핣는" 것도 모자라 지근거리에 있는 그녀의 신체 부위를 망원경으로 확대해서 관음한다), 실제로 그녀가 리처드의 사냥 친구들에게 성폭행 당하는 장면은 전혀 착취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 또한 제니퍼는 서사가 종결될 때 까지도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힌 채 "괴물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냥꾼에게 쫓기는 작은 맹수 같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자와 맞서 싸우는 존재에 가깝다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는 [복수] 라는 타이틀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실제로 영화의 내용은 복수보다는 "사냥꾼이 된 사냥감" 이라는, 이것도 [가장 위험한 사냥감 The Most Dangerous Game] 이래로 하나의 유수한 서브장르를 형성하는 테마에 더 근접해 있는 듯 하다).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일종의 마카로니 웨스턴적인 분위기까지도 불러 일으키는 데, 특히 리처드가 옷을 벗고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살기를 느끼고 엽총을 부여잡고 집을 수색하는 신 같은 곳에서 감독의 교활하게 (좋은 의미로) 전복적인 계산이 살아난다. 나 자신 중년의 남성 관객으로써, 제니퍼에게 감정 이입해서 "저놈들 조져버려" 라는 식으로 그녀를 응원함과 동시에, 남성 성기를 가구에 부닥치면서, 엽총을 조준한 채 미친 듯이 자신의 멋드러진 별장 속을 제니퍼를 찾아 헤매는 리처드의 등짝에 바짝 따라가는 카메라를 따라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의 무엇인가가 뱃속으로 오그라드는 것 같은 직설적인 공포 내지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은 제니퍼 편이지만 내 남성 신체는 리처드의 몸의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노출 (얼마나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이러한 장르의 영화에서, 꼭 이런 식으로 발가벗기우고 "살인마" 의 관음적 시선과 칼 끝, 총 끝에 노출되어 있었는가 한번만 생각해보자) 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열적인 반응을 나 같은 호러영화의 남성 팬한테서 끌어낼 수 있다는 것 만해도, 벌써 [리벤지]는 그 유니크한 공력을 제대로 과시한 셈이다. 


전편을 통해서 평범한 관객들의 경우 악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한 지독한 고어묘사로 점철 되어 있지만, 이것도 바깥에서 인상으로 느끼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가장 관객들을 조지는 장면은 호러영화적인 신체 훼손이 아니라, 발바닥의 찢긴 상처 안에 들어가버린 유리 조각을 끄집어내는 신이다. 이러한 종류의 고어 묘사도, 몸의 일부가 오므라드는 것 같은 불편함과 헐헐 하고 흘러나오는 헛웃음이라는 이중적인 반응을 보는 사람에게서 발현시킨다. [13일의 금요일] 등의 일반 헐리웃 고어 영화처럼 신체 훼손 묘사를 하나의 스펙타클로 소비하기가 힘든 것이다. 


네 사람밖에 안 되는 연기진은 비교적 준수한데, 원래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이고 카톨릭 대학에서 심리학 전공한 재원인데 헐리웃에서 성공하고 싶어서 LA 로 옮아가서 웨이트레스 등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마틸다 루츠의 캐스팅이 성공의 관건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루츠 자신의 개인사와 경력이 반영된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한데, 엄청난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속옷 바람으로 사막을 먼지를 뒤집어 쓰고 헤매야 하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유명영화에서 발산되는 것 같은 여배우를 "리얼한 연기" 명목으로 못살게 조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포인트이지만, 제니퍼가 갑자기 어떻게 총을 저렇게 잘 쏘냐는 둥 그녀의 캐릭터의 발전적인 면모에 대해 시비를 거는 (한국 관객들의) 비판에도 하나도 동의할 수 없다. 미국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내게는 오히려 폭력적인 반격을 시도하기까지 적정 수위라고 생각하는 시점보다 훨씬 뜸을 들였다는 느낌이었고, 그녀가 갑자기 총기를 잘 쓰게 되는 그런 논리의 비약도 없다. 어디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버벅거리고 힘들어하고 고생하는 장면만 나오두만. 영화 안에 실제로 나오는 것만 가지고 씹던지 그러자 (한국 남성 관객) 여러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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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리벤지] 가 무슨 철학적으로 심오한 한편이라거나, 전투적인 페미니스트 영화냐 하면, 그렇게까지 주장할 생각은 없다. 어떻게 보자면 이 한편은 헐리웃에 내놓는 출사표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기과시적이고 상업적인 측면도 분명히 강하다 (루츠 연기자는 확실히 헐리웃 제작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을 듯). 그러나 나는 최근에 본 착취적인 소재를 정통으로 다룬 (은유나 알레고리로 다루지 않는 다는 의미에서) 막장 고어 스릴러 영화 중에서는 최고작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아,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루치오 풀치나 루게르토 데오다토 등의 이탈리아 감독들이 만든 아름답지만, 동시에 추잡스럽고, 일면 광기에 들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고전 유로호러작들을, 그냥 겉으로 여자 남자 역할을 바꿔치기 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정서적 효과들은 고대로 유지하되, 아주 철저하고 영리하게 여성혐오적이고 여성착취적인 시각을 발전적으로 해소해냈다는 점에서, 그 유니크한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편이다. 왜 그런지, 나는 [사던 리치] 같은 장엄하고 세련된 작품보다도, 루실 하지할릴로비치의 [Evolution] 이나 이 작품처럼, 위험하게 착취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그런 과격한 장르영화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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