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에 없었다 You Were Never Really Here    


영국-프랑스, 2017.    


An Amazon Studios/Lionsgate/Film 4 Production/Why Not Productions/British Film Institute Co-Production, 화면비 2.35:1, 1 시간 31분. 


Director & Screenplay: Lynne Ramsay 

Based on a novel of the same name by Jonathan Ames 

Cinematography: Tom Townend 

Sound Design: Paul Davies 

Production Design: Tim Grimes 

Stunt Coordinator: Chris Colombo 

Music: Johnny Greenwood 


CAST: Joaquin Pheonix (조), John Doman (맥클리어리), Judith Roberts (조의 어머니), Ekaterina Samsonov (니나 보토), Alex Manette (보토 상원의원), Alessandro Nivola (윌리엄스 지사), Dante Pereira-Olson (어린 시절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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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동안에 불과 네 편의 장편밖에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과작 (寡作) 이지만, 만드는 작품마다 평단의 지지를 받거나 최소한 주목을 꾸준히 받아온 린 램지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들 중에서는 드물게 강렬한 필치로 구형의 "작가주의적"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고, 내 생각으로는 주류 영국 보다는 프랑스에서 더 환영 받을 수 있을 스타일을 구사한다고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년도의 깐느 영화제에서 주역 조 역의 호아킨 피닉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주고 램지에게 각본상을 안겨주고 그랬던 모양이다. 이 상들은 "황금 종려상을 줄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의 영화 정말 좋았어!" 라는 깐느 그룹의 일종의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피닉스 연기자가 확실히 이 한편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오랜 경력 중에서도 [마스터] 나 [앙코르 Walk the Line] 같은 작품들에서 보여준, 범인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수준의 신들린 연기에 비하면 그렇게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보면서 참 깐느의 입맛에 맞는 "활동사진 (르 필름!)"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약간 쓴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관람 도중 역시 깐느에서 상 받은 것으로 (한국에서) 유명해지신 어떤 한국 감독 분의 초기 영화 두 편을 계속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 조가 다른 모든 무기를 마다하고 하필이면 장도리를 들고 액션을 벌이는 것 때문에만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나는 그게 뭐 우연의 일치일 확률을 배제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USF 의 스티브 최 교수님과 이 이슈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을 때에도 두 사람이 비슷한 결론을 내렸었는데, 박찬욱 감독은 아마 그 동세대 (63년생이시니까 나와도 동세대 ^ ^) 영화인 중에서는 지금 세계에서 다른 영화인들-- 특히 감독들-- 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작가"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것을 점차 확신하게 되었다. 램지 감독도, 히치코크의 [싸이코] 에 대한 언급이 넌지시 주어지고 있듯이, 비슷한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동세대 내지는 1.5 후발세대로서 박 감독과 "동류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예를 들자면 파스빈더의 작품에서 구도나 이미지를 가져와 변주시키면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듯이, 박 감독의 [올드보이] 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여러 요소들을 가져와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최근에 본 유럽-미국 영화 중에서는 [복수는 나의 것]을 가장 많이 연상시키는 한 편이었다 (이미 이 작품을 보셨고 다시 한 번 보실 요량이신 분들께서는, 한 번 속는 셈치고 이 영화가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린 "한국영화" 라고 여기면서 접근해 보시길 권해드린다). 


램지 감독은, 그의 전작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화를 비롯한 의사 소통의 사회적 인프라가 해체되거나, 각 개인의 자아의 불가지성에 의해 애초에 소통이 불가능한 그런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칼로 베는 것 같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사상과 주제라는 측면에서도 [복수는 나의 것]과의 분명한 연계점이 있다). 주인공 조 자신이 지극히 자기파괴적인 인물로, -- 그는 영화의 거의 모든 드라마적 분기점에서, 다음 단계의 행동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한번씩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나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과는 확연히 일선을 긋는 인물이다-- 거의 세상과의 의사 소통을 거부한 상태에서 과거의 트라우마-- 그것도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개저씨 아버지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해결사 작업 때 보게 된 끔직한 어린 소녀들의 죽음의 기억 들-- 에 짓눌려서 살아가고 있다. 홀로 돌보고 있는 어머니 (주디스 로버츠 여사님은 무려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헤드] 에 출연하셨던 분) 와의 너무나 꺼벙하게 추레한 일상의 묘사에서만 (나는 이 장면들의 묘하게 포근하고 떠있는 분위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혹시 조의 어머니는 이미 옛적에 세상을 떴고, 이 친구가 혼자서 엄마가 아직 살아계신 것처럼 일인극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을 정도이다) 그나마 "사회적 동물" 로서의 기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photo YOU WERE NEVER REALLY HERE- THE MANSION_zpsus8aszq6.jpg  


보통 남성적 범죄 영화의 주인공들은, 씨니컬하고 소외된 입장에서 출발하여, 특정 사건과의 연루를 통해 새로운 공감과 애정의 대상을 발견하고, 그 대상을 구제하기 위해 폭력과 부조리의 사회에 다시금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던 트라우마를 대면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인데,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경우, 조가 이러한 과정을 겪는 전개를 수미일관하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표현의 방식이 지극히 "예술영화적" 이며, 단적으로 말하자면 관객들이 선뜻 나서서 조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서사가 종결되는 시점에서, 최소한 영화적 화술과 어법의 특이함에 별반 관심이 없는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힘들다. 조가 결국은 니나의 이니셔티브에 의해서 자살을 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것이 결말의 "감동적인 메시지" 인가? 이 한편의 서사 자체는 (아마도 원작의 체계에 맞추어졌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완정한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영화에 우리가 기대하는 감정의 기복과 해소는 미미한 레벨로밖에는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이 한편에는 조와 그의 어머니를 제외하면 캐릭터라는 것이 없다. 심지어는 관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켜야 마땅할 악인들도 조에게 주어진 아주 제한된 정보와 거의 스냅샷 수준의 "인상" 으로만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조의 의식속에 존재하는 허상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 부분은 그렇다고 치고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폭력과 폭발적인 전개를 다루는 방식은 충분히 효과적이고, 그런 사항들을 가지고 시비를 걸면서 이 작품을 성에 안 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안목을 신용하기는 어렵다), 정작 조의 구원 서사의 대상이어야 할 어린 소녀 니나가 완전히 악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충실한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슬픈 표정의 구체관절 인형"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는 것은 좀 더 심각한 문제다. 니나가 무슨 김새론이나 김수안 연기자 같은 당찬 연기력을 과시하면서 복잡한 감정 연기를 피로하고 그럴 필요는 물론 없었지만, 그렇다면 왜 최후의 악당의 처리는 또 그런 방식으로 밀고 나갔을까? 조를 남성 구세주로 자리매김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사상적 메시지를 개입시키고 싶었다면 그렇게 모든 화면을 조의 주관적인 세계를 중심으로 직조하는 접근방법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온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아쉽게도 나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 에서 정서적 카타르시스-- 심지어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의 결말에서 느꼈던, 칼로 등을 푹 찌르는 것 같은 거의 비인간적인 아이러니에서 느꼈던 공포와도 흡사한 감정이라도 좋았을 텐데-- 를 얻어내지 못했지만, 이 한편이 우리가 평소에 영화를 보는 때 알게 모르게 적용하는 버릇들을 뒤집어 엎는 좋은 의미로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언뜻 일별하는 것으로는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파편화된 몽타주를 통해 조의 트라우마를 전달하는 연출 방식부터, 역시 [복수는 나의 것] 과 데이빗 린치 초기 작품을 연상시키는 굉장히 정교하면서 동시에 돌출적으로 관객들을 긴장 상태에 몰아넣는 사운드 디자인 (주로 영국 TV 와 도큐멘타리계에서 작업한 폴 데이비스라는 분의 담당), 그리고 주로 인물들의 허리춤이나 가랑이에 집중해서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는 토머스 터웬드 촬영감독 ([어택 더 블록])이 맡은 카메라의 시점, 엇박자인 듯 엉거주춤 한 듯 하면서 사실은 절묘하게 음악 및 사운드와 어울려서 나가는, 소외시키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객을 잡아 끄는 편집의 리듬 등, 특이하고 오리지널한 화법을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그 중에서도 출중한 것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강력한 조력자인, 라디오헤드의 쟈니 그린우드가 작곡한 스코어인데, 너무나 적절한 방식으로 개별 장면들의 질감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뿐 아니라, 음악 자체로서도 너무나 마블 영화 그런데 달린 일반적인 수준을 가뿐이 넘어서는 수작이라서, 뭐라고 토를 달 여지도 별로 없다. 제리 필딩과 하워드 쇼어의 이차원 세계에서 벌어진 콜라보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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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에게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 는 후기의 데이빗 린치 영화처럼, 실력 있는 예술가가 만든 물건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뜯어서 분석하는 재미가 총체적인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공력보다 우선하는 그런 한편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린 램지의 연출력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애써 부정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통상적인 헐리우드적 범죄 스릴러를 기대하시고 보시면 크게 실망하시기 십상일 것 같고, 오히려 [올드 보이] 나 [복수는 나의 것]를 가져다가 그 펄프적이거나 사상적인 과격함을 순화시킨, 그런 "예술영화적인 스릴러"를 상정하시고 보시는 것이 관람의 태도로서 한결 적합할 듯 하다. 


호아킨 피닉스의 팬들이시라면 물론 일견하실 가치가 있지만, 내가 위에서 말했듯이 아마도 헐리웃에서 활동하는 "몰입형" 연기자 중 탑 레벨 실력자중의 하나인 (그 때문에, 당연한 얘기지만, 보고 있노라면 스크린 안에 들어가서 멱살 잡고 주어 흔들어주고 싶어지는 류의 싸가지없는 괴연도 필르모그래피에 추가되어 있는 그런) 피닉스가 보여준 최고 수준의 연기라고는 보기 어려우니까, 그 점도 참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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