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Lizzie     


미국,오스트레일리아. 2018.        


Roadside Attractions Film, Saban Films and Powder Hound Pictures Present, A Solution Entertainment Group/Artina Films/Destro Films/Goldfinch Australia Limited Co-Production. 화면비 2.40:1, 1 시간 45분. 


Director: Craig William Macneill 

Screenplay: Bryce Kass 

Cinematography: Noah Greenberg 

Editor: Abbi Jutkowitz 

Costume Designer: Natalie O'Brien 

Supervising Sound Editor: Ruy Garcia 

Sound Effects Editor: Chris Foster 

Production Design: Elizabeth Jones 

Music: Jeff Russo 

Producers: Chloë Sevigny, Naomi Despres, Liz Destro 


CAST: Chloë Sevigny (리지 보든), Kristen Stewart (브리지트/매기 설리반), Jamey Sheridan (앤드류 보든), Fiona Shaw (애비 보든), Kim Dickens (엠마 보든), Denis O'Hare (존 모스), Tom Thon (우드 교수), Jeff Perry (제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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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은 1892년에 미국 매서추세츠의 폴 리버라는 도시에서 방직공장을 운영해서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양어머니를 무참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배심원단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으로 유명한 역사상 인물이다. 이 사건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에도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었고 ("리지 보든이 도끼를 가지고/엄마를 마흔 번 찍었다네/자기가 한 일을 본 리지는 다시/아빠를 마흔 한번 찍었다네" 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의미심장하게 풍자적인 동요까지 생겨났다), 미국의 대중 예술 창작자들과 실제 범죄 덕후들의 관심을 백 몇 십 년 동안 꾸준하게 받아왔다. 예를 들자면 리지 보든과 하녀 브리지트의 레스비안 관계를 살해의 동기로 추정한 것은 그 유명한 에드 맥베인이었고, 엘리자베스 몽고메리, 크리스티나 리치 등의 유명 여배우들이 보든으로 출연한 TV와 케이블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며, 리지 보든의 유령이 현대 여성에게 빙의한다는 내용의 호러영화도 존재하는 형편이다. 더 나아가서는 존 크로포드 주연의 [Strait-Jacket] 같은 구 헐리우드의 호러-스릴러 에서 여성 범인들이 바람 핀 남편이나 그런 적대관계의 인물들을 구태여 다른 흉기도 아닌 도끼로 장작 패듯이 찍어 죽이는 것도, 리지 보든의 문화적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1980년대 이후로, 리지 보든에 대한 해석은 그녀가 매서추세츠의 신흥 자본가 계급이라는 배경을 지닌 혼기를 놓친 30대의 여성으로서 성적, 사회적으로 겪어야 했던 억압된 삶을 재조명하는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반영되게 되었다. 심지어는 [워킹 걸스] (1986)같은 페미니스트 독립영화를 만든 감독 엘리자베스 보든은 아예 자신의 이름을 "리지 보든" 으로 법적으로 바꾸기도 하였을 정도이니까 (참고로 역사상의 리지 보든은 재판 당시 자신의 세례명이 처음부터 "엘리자베스" 가 아닌 "리지"-- "리즈" 처럼 보통 엘리자베스의 애칭으로 쓰이는 이름-- 였다고 주장하였다). 


본 작품도 각본과 감독을 비교적 신인인 남성들이 담당했지만-- 감독은 [The Boy] (2015)라는 꽤 흥미있는 미니멀리스트 심리 호러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 크레이그 윌리엄 맥닐인데, 넷플릭스 시리즈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의 에피소드들도 연출한 바 있다-- 사실상 프로젝트를 지도하고 그 성격을 규정한 "큰손" 은 이제 40대에 들어선 클로이 셰비니 연기자라고 할 수 있다. 나탈리 포트만, 엘렌 페이지, 에밀리 블런트 등의 중견 여성 연기자들과 더불어 직접 제작에 나선다는 트렌드에 동참하고 있는 셈인데, 최근 2, 3년간의 인터뷰를 섭렵해 보니 [소년은 울지 않는다] (1999)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후로 주류 영화계에 진입하지 않고, 뉴욕 패션 계통의 친구와 지인들과 계속 저예산 독립영화 쪽으로 커리어가 나가게 놔둔것을 솔직하게 약간 후회하고 있는 눈치가 보였다. 지난 10년간 (비평적으로 대성공한) [조디악] 이나 (폭망한) [스노우맨] 등의 헐리웃 대작들에 월트 위트먼, 베르너 헤르조크 등의 독립영화들과 병행해서 출연하게 된 것도 그런 자성의 심리가 반영된 것일 듯 하고. 이제는 제작과 감독 쪽으로 방향 선회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듯 하다. 따라서 자신이 스스로 감독으로 나서기 위한 견습 경험도 겸해서 제작한 것이 아닐지 추측된다.  그런 셰비니 입장에서 [리지] 는 지난 십 몇 년 동안 자신의 주연 작품으로 제대로 만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회심의 프로젝트였는데, 결국은 본인이 제작자로 나서서 돈을 직접 끌어들이고 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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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자체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성공율이 높은 편이라고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라면 리지 보든의 성적-사회적 억압을 정치하게 그려내고, 그녀를 미국 사회 가부장적 위선의 희생자 내지는 선구적 페미니스트적 인물로 규정하는 것이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었겠지만 (물론 여전히 현재에도 가부장제와 남성주의적 사고가 횡행하는 사회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런 80년대적인 감성을 가지고 2010년대의 관객들에게 어필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리지 보든 이라는 인물 자체가 현대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도끼를 사용한 존속살인이라는 센세이셔날한 사건에서 어떻게든 분리시킬 수가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흉기 살인을 묘사하느냐 마느냐, 묘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라는 문제가 항상 난점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도끼 살인을 현대적 메이크업 효과를 살려서 극명하게 묘사하면 황색저널리즘적인 천박함을 노정했다고 비판을 받을 것이고, 반대로 제목에 [리지] 라고 떡 걸려있는 영화에서 막상 살인이 부재한다면, 이것 또한 페미니스트 이념에 충실하느라 바쁜 나머지, 알맹이는 없는 쭉정이 같은 한편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을 것이다. 


물론 실제 역사상으로는 약간 어처구니 없이 간단하게 끝나버린 수사과정과 배심원단 (전부 장년 이상의 남성) 의 판결과정을 적당히 불려서 법정드라마로 구성할 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리지 보든의 무죄란, 당시의 미국 상류계층의 인물들이 지닌, 32세의 여성이 그런 무지막지한 (아버지의 경우는 범인이 얼굴에 열 한번 도끼를 내리찍어서 안구가 완전히 양단되고, 그런 처참한 시신을 보여주는 검시 사진이 자료로 남아있다) 살인을 저지를 만한 "담력" 이나 "잔인성"을 절대로 지닐 수 없었을 것이라는 편견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우리로서는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리지 보든이 정말 그런 살인을 저질렀는지, 했다면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이제 와서는 모두 추정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무슨 생화학적 기술의 발달이나 유전적 검사의 기술 발달로 해결을 시도할 수 있는 사건도 아니다. 살인에 쓰여졌다고 추정된 자루가 잘려나간 도끼에서는 인간의 혈액 대신 비둘기의 혈액이 검출되는 등, 검사측은 아무런 물리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고, 리지를 피의자로 규정한 근거는 죄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 및 본인 자신의 증언의 일관성의 결여 같은 상황증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상상 속에서 만들어서 밀고 나가지 않는 이상 (만일 그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역사가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허황된 가공물로 귀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좀 봐주기 힘들 정도로 지루하고 답답한 한편으로 귀착되었을 위험이 아주 컸다. 


결과물을 놓고 볼때, 브라이언 캐스의 각본은 이러한 난점들을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잘 피해나갔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물론 [리지] 는 그녀가 겪었던 사회적-성적 억압을 정면으로 다루는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을 대놓고 표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지의 캐릭터를 평면적인 "희생자"로 보고 있지도 않다. 이 한편에서는 도끼 살해의 "진상"을 영화가 어느 시점에서 보여줄 것인가, 또한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 적나라하게, 또한 리지에게 어떤 동기와 어느 정도의 의도성을 부여하면서--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한 미스터리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내용들을 내가 리뷰를 쓴답시고 다 까발겨버리면, "아, 이 소설의 범인은 기차 차장이었습니다" 라는 식으로 아직 읽지도 않은 독자분들께 스포일러를 터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는 리지역의 클로이 셰비니와 하녀 브리지트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사이의 (영화 안에서는 당연히 그랬던 것으로 다뤄지는) 레즈비언적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 관객들에게 "노출" 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조차도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19금적 섹스신 있습니다 (또는 없습니다) 라고 명언을 해버리면 크게 김이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이 부분에 있어서도 될 수 있으면 함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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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뛰어난 독자 분들께는 약도의 스포일러가 될 위험을 감수하고 한 마디 하자면, 전반부에서는 극도로 억압된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그것에 합당한 숨이 막힐 정도로 절제된 묘사를 보여주다가-- 주로 리지와 브리지트의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후반부에서는 미묘하게 카메라가 3인칭의 시점으로 이동하면서, 그 절제를 폭발적으로 허물어뜨리는 전개를 보여준다는 것만 말해 두겠다 (잉마르 베르이만의 [외침과 속삭임] 의 더 장르적인 버전? 그런 느낌도 약간 든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도 관객 여러분께 충고를 드린다면, 리지가 무죄를 선고 받는 상황에 도달해도 "해방감"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고, 상당수의 관객 여러분들께는 여전히 "답답하고 울적한" 영화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확인시켜 두겠다. 그 이유는 한 편으로는 전편을 통해서 맥닐 감독이 조장하는 억압과 통제와 무력감의 분위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리지의 캐릭터 자체에 여전히 설명이 안 된 부분이 남아있도록 각본이 짜여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태여 비교를 하자면, 이 영화의 리지 보든은 필름 느와르에 간혹 나오는 "남자 캐릭터들을 죽이거나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팜므 파탈" 의 대선배적 원형 같기도 하다. 따라서, 리지와 브리지트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부장제에서 해방을 도모하는 두 여성의 사랑과 연대" 라는 긍정적인 측면만 마냥 부각되는 것은 아니다. 브리지트는 아일랜드계의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노동 계급 여성으로서, 리지에 비교하면 착취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고, [리지] 는 그러한 사회경제적 요소에 대해 애써 눈을 감지도 않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클로이 셰비니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본편을 견인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셰비니가 스튜어트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관계를 발전시키는 대목 등에서는 통상적인 영화에서 연상의 남성과 어린 여성이 부적절하고 (결국은) 위험한 로맨스로 발전하는 구도를 셰비니가 "남성" 적인 위치에 서서 고대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셰비니는 사실 화면 위에서 무엇을 해도, 얼굴만 멍하니 보고 있어도 시선을 뗄 수 없는 막강한 카리스마의 주인인데, [뉴욕 특수 수사대] 의 제이미 셰리던, [나의 왼발] 등의 영국 출신 명연기자 피오나 쇼오 등의 절제되고 섬세한 조연과 잘 맞물리는 역시 절제되고 섬세한 연기를 피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스튜어트가 본령 발휘를 좀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각본이 그녀의 캐릭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망서리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끝난 양상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2.40 대 1 이라는 와이드스크린 구도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들의 클로스업이 굉장히 중요한 한편이고, 거의 모든 액션이 우중충한 빅토리아조 저택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노아 그린버그의 자연주의적 필치의 촬영도 효과적이지만, 삐걱거리는 문지방과 천장, 바닥에 깨진 사기그릇을 밟는 소리 등의 세밀한 사운드 디자인이 특별히 뛰어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아름답거나 영상예술로서의 스케일이 느껴진다고는 할 수 없다. 


[리지] 는 사실 대다수 관객들의 사랑이나 애정을 받을 수 있는 한편은 아니고, --[캐롤] 같은 영화를 기대하시면 아주 크게 실망 하실 것이다-- 끝까지 드라이하고 자연주의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으며, 리지 보든 캐릭터의 네오 느와르적인 해석에 대해서도 찬반으로 의견이 갈라질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 La Ceremonie] 나 장 피에르 드니의 [살인하녀들] 같은 작품들의 공력에도 못 미치지만, 나는 꽤 흥미 깊게 보았고,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봐도, 허구적인 작품의 상상력과 실제 사건의 자료에 바탕을 둔 합리적 해석의 균형을 잘 맞춘 편이라고 생각한다. 


미스터리물 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심리 호러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클로이 셰비니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팬들에게는 필견의 한편이다. 단,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하는데,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달착지근한 그런 장면은 단 1초도 나오지 않으니까 그리 아시길. 나는 모든 조건이 동일한 경우에는 로맨틱하게 따뜻한 영화보다는 차갑고 냉정한 영화쪽으로 기울어지는 편인지라, 나쁜 점수는 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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