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마를 가뒀다 I Trapped the Devil 


미국, 2018.     


A Yellow Veil Pictures, distributed by IFC Midnight. 1시간 22 분, 화면비 2.39:1 


Director, Editor & Screenwriter: Josh Lobo. Production Design: Karleigh Engelbrecht.  Cinematography: Bryce Holden.  Music: Ben Lovett. 


Cast: Scott Poytress (스티브), Susan Burke (카렌), A. J. Bowen (매트), Rowan Russell (벤), Chris Sullivan (남자), John Marrott (앨런), Jocelin Donahue (사라). 


발렌타인 Valentine: The Dark Avenger   


인도네시아, 2017.      


A Shout! Studios/Skylar Pictures Production. 1시간 37 분, 화면비 2.35:1. 


Director: Agus Hermansyah Mawardy.  Screenplay: Beby Hasibuan, based on the characters created by Sarjono Sutrisno.  Executive Producers: Sarjono Sutrisno, Aswin M.C. Siregar. 

Music: Izzal Peterson. Cinematography: Joel F. Zola. Special Makeup: Anastasia Dimitri. Special Effects: Epics FX. 


Cast: Estelle Linden (스리마야/발렌타인), Ahmed Affandy (움브라), Arie Dagientz (와완), Leroy Osmani (시암술 총경), Joshua Panderlaki (밤방), Nabila Putri (마이다), Aliza Putri (졸라), Matthew Settle (보노), Marchell Domits (루크만), Lily S.P. (스리야의 엄마), Mega Carefansa (샐리), Jeremy Thomas (영화 제작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이 두 편을 묶어서 비교적 짧은 리뷰를 쓰기로 한다. 두 작품 사이에는 어떤 주제나 장르적인 공통점도 없다. 둘 다 유명한 장르의 고전 또는 캐릭터를 노골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두 작품의 작자들이 대놓고 선전하고 싶은 요소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악마를 가뒀다] 는 대놓고 오리지널 흑백판 [환상특급/제 6지대 The Twilight Zone] 의 유명한 에피소드 하나를 거의 리메이크하고 있는 우화적인 성격이 강한 모던 호러이고, [발렌타인] 은 크리스 놀란판 [배트맨]의 염가 여성판이라는 인상을 주는 인도네시아 코믹스 캐릭터의 실사판이다. 둘 다 그럭저럭 흥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평균점 이상의 점수는 주고 싶지 않은데, 어떤 면에서는 [환상특급] 스타일의 콘셉추얼 호러나 서민형 수퍼히어로 장르에 특화된 장르의 팬들이라면, 나보다 훨씬 더 즐기실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photo I TRAPPED THE DEVIL- WAITING_zpslgxgytrg.jpg  

그런 측면에서는 [나는 악마를 가뒀다] 가 약간 더 유리하긴 한데, 아마 한국의 40대 이하의 관객 분들 중에서는 웬만큼 고전 미국 SF 영상물에 빠삭한 분들이 아니라면 1960년에 방영된 [제 6지대] 의 에피소드 [울부짖는 남자 The Howling Man] 를 보시지는 않았을 터이니, 이 영화의 설정과 전개, 결말 등을 좀 더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실 지도 모른다. [울부짖는 남자] 는 원전 트와일라이트 존의 가장 뛰어난 작가였던 찰스 보오몽이 스스로의 단편소설을 직접 각색한 소설인데, 많은 [환상특급] 의 에피소드가 그러하듯 대놓고 우의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는 한국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종류의 "개연성"을 따져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실 원작의 에피소드도 [환상특급] 의 기라성 같은 걸작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수상한 종교단체에서 지하실의 골방에 멀쩡한 사람을 가둬놓고 그 사람이 악마라고 주장한다" 라는 스토리를 놓고, 여러분 같으면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정말 아무 죄도 없는 멀쩡한 사람이었다" 라는 것을 "반전"으로 쓰시겠나?), 당시 (1960년) 의 좌파 자유주의 크리에이티브의 입장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냥 장르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선 주제적 무게가 느껴진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설정이 주인공이 1차대전 직후의 유럽을 방문하는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즉 2차대전의 대참상을 일으키도록 놔두었던 "방관자" 또는 "방조자" 미국인들의 자신들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반성이라는 역사의식이 저류에 흐르고 있는 한 편인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설정을 현대 미국에 이식해 오는 순간, 그러한 서브텍스트는 방기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자리에 새로운 어떤 주제의식을 담아서 재구성하면 될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각본과 감독을 쓴 조쉬 로보는 어떤 주제의식보다는 관객들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호러 스릴러로서의 자신의 기법의 발휘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때로는 지나치게 어두울 정도로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명, 크리스마스라는 배경을 집요할 정도로 아이러니칼하게 이용하는 미술과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일부러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 신경질적인 대사의 굴림 등을 통해 주인공인 스티브의 편집증적인 정신상태를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데는 일단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무리 이런 식으로 주연 배우 스콧 포이트레스를 갈구어봤댔자 처음 5분을 보고 나면 이 한편이 [울부짖는 남자] 의 기본 골격에서 1밀리미터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용이하게 예상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영화에서 가장 맛이 가고 혐오감이 드는 캐릭터들이 떠드는 망상이 결국 현실로 밝혀지고, 나름 남을 도와주려는 이타심을 지녔거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애꿎게 피 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 방식의, 미국 장르계에 짜증나게 많이 굴러다니는 "처음 5분을 보면 마지막 반전이 예상이 가능한" 호러 스릴러 서브장르의 한 편으로 귀결되고 있다. 


photo I TRAPPED THE DEVIL- CHRISTMAS TREE_zpsjdfonyn4.jpg  

단,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울부짖는 남자]를 보지 않으셨고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러한 설정과 전개의 스토리를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나보다 더 몰입해서 보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니, 그런 분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5점이나 10점 정도 별점을 상향조정 하시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 스토리의 명료함을 일부러 거부하는 것 같은 신경질을 돋구는 연기지도를 제외하면 구식 TV 에 비추이는 잡음의 방송 속에 은연중 보여지는 이미지군 등도 포함해서 서스펜스 연출의 실력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지루했다. 무언가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도록 만드는 그런 창의적인 전개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공식에서 벗어나거나 좀 원대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지 했으면 높게 평가해 줄 수 있었는데, 공식에 철저한 채로 끝나버린다. 그나마 결국 "악마"를 어떻게 표현했을 까 궁금해서 끝까지 버티고 보긴 했는데, 그것도 뭐 영화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각본에서 제대로 복선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참신하다고는 하기 어렵다. 모 유명 이탈리아인 명장에 대한 오마주라는 인상이 강하다. 


[발렌타인]의 경우, 굉장히 허접하고 촌티가 무럭무럭 넘치는데, 머리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비판하고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나름 매니악한 매력이 있는 한편이다.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첫 인상이 들었는가 하면, 마치 어떤 K팝 그룹의 광팬들이 모여서 댄스 카버 연습을 죽어라고 해서, 원래 그룹만큼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마추어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간 뒤에, 아예 크라우드펀딩을 해서 저예산으로 허접한 뮤직 비디오까지 만들어버리는 그런 결과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무도 [발렌타인] 을 보고 크리스 놀란의 [배트맨] 이나 심지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하고 같은 레벨의 프로덕션이라고 (사실 내가 자의적으로 부여하는 별점만으로 따지자면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한편보다 그렇게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긴 하다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이코 우와이스 같은 무술영화의 스타까지 배출한 상황에서 격투 액션영화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아도 그렇게 특별히 우수한 점수는 줄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설정은 [배트맨] 에서 조커와 배트맨으로 양분되는 선과 악의 적대적 공생관계 (임지현 교수가 쓴 학술용어이긴 한데) 라는 주제를 가져오고, [스파이더맨] 의 서민적인 기원담을 섞어넣은 것인데, 일면 쓴웃음이 나올 정도로 허술하긴 하다. 아무리 서민적이라도 그렇지 수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피치를 하기 위한 데모 영상 (실제 수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을 찍기 위해 실제로 두건과 망또를 두르고 슈퍼마켓 강도를 두들겨 패다니… 주인공은 뭐 맨션 같은 저택에 사는 것을 보니 충분히 취직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여건은 되는 모양이지만, 수퍼히어로 코스튬은 도대체 누가 돈을 대서 디자인하고 제작했다는 건가? 와완이 이런 실전에도 도움이 되는 코스튬을 자비로 제작할 정도의 수완이 있으면, 뭣땜시 보노 같은 백인 루저 감독과 계속 얽히고 있는 것인지. 


photo VALENTINE- ENTRANCE_zpsvogu1u1d.jpg 

거기다 더해서-- 이점에서는 사실 특정 작품들을 제외한 최근의 한국영화라고 딱히 더 나은 것은 아니긴 하지만-- 동남아 장르 작품에서 흔히 보는 프로덕션상의 클리셰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그것들을 가지고 좀 장난도 쳐보고 메타적인 재미를 강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자카르타의 구명 (舊名) 인 바타비아를 굳이 사용해서 "고담 시티"처럼 가상공간적인 도시로 만들어 놓고는, 실제로는 경찰의 부패가 어쩌고 서민들의 위안을 아무도 돌보지 않고 저쩌고 하는 보수적이고 답답한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는 데다가, 매튜 세틀이 연기하는 멜로드라마적인 캐릭터에는 쓸데없이 백인 연기자들을 고용하고, 와완 같은 실질적으로 알프레드 역할을 하는 더 중요한 존재는 게이 스테레오타이프를 적용시킨 코믹 릴리프로 소비하는 등, 딱히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고약하지는 않지만, 별로 칭찬을 해 주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강점이라면 주인공인 에스텔 린든이 그나마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보라색을 주된 색감으로 차용한 코스튬도 그렇게 못생기지는 않았다. 실랏을 원용한 무술 액션 신은 유연함과 우아함이 자못 배어나오는 지자 야닌 전성기 (지난 4-5년 동안에는 에이전트가 후졌는지 쓸모없는 조역으로만 출연하고 있는데, 한국에 와서 좀 괜찮은 작품에 출연해주시면 안될까? 언제 한번 한국에서 영화 만들면 좋겠는 외국 배우들 리스트도 한 번 만들어봐야 되겠다) 의 액션에 비하면 투박하고 힘이 너무 들어가 있지만, 나름 수퍼히어로로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에는 적합하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만듦새의 조악함이나 진부함보다도, 그대로 악당인 섀도우와 제대로 된 대결을 통해 결말을 가져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굳이 수퍼히어로 기원서사에 충실하겠다는 강박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경찰의 위선과 타락이 어쩌구 하는 멜로드라마에 범벅이 된, 그리고 하나도 놀랍지 않은 섀도우의 정체에 관한 "반전" 으로 매듭을 짓는, 김이 푸쉬쉬 빠지는 엔딩이 더 실망스러웠다. 나는 평소에 조악함을 마치 자랑스럽게 어필하는 것 같은 류의, 모든 것을 조크로 다루는 (실제로는 존중이 부족하고 비웃음을 기조로 하는) 일부 미국 영화인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혐오하는 편인데, 이 한편은 그와는 전혀 반대이지만 오히려 정체성에 걸맞지 않게 목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이, 감동을 불러오기 보다는 조잡함을 더 눈에 띄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말 해봤자 의미가 없겠지만,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특히 [다크 나이트] 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고. 


photo VALENTINE- THE SHADOW_zpsgcnz5lyc.jpg 

[악마를 가뒀다] 의 경우처럼, 난 이러한 수퍼히어로적 코믹 캐릭터의 실사화에 의외로 끌리는 매니악한 취향을 가지신 분들께서 계신 것을 아는지라, 그분들 역시 내가 준 비교적 짠 별점에 5점 정도를 더 가산해서 관람하실 것을 추천드린다. 


PS: 섀도우의 정체는 영화에 나오는 한 캐릭터의 이름에 단서가 주어져 있다. 영화를 거의 3분의 1 도 안된 상황에서 보다가 그 캐릭터의 이름에 생각이 미치는 바람에 "엥? 그럼 쟤가 섀도우?"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추측 고대로 결말이 나버렸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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