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Midsommar      


미국, 2019.             ☆☆☆★★


A B-Reel Films/Square Peg Co-Production, distributed by A24. 화면비 2.00:1, 2 시간 27분. 


Director & Screenplay: Ari Aster 

Cinematography: Pawel Pogorzelski 

Production Design: Henrik Svensson 

Costume Design: Andrea Flesch 

Music: The Haxan Cloak 


CAST: Florence Pugh (대니), Jack Reynor (크리스천), William Jackson Harper (조쉬), Wil Poulter (마크), Archie Madekwe (사이먼), Vilhelm Blomgren (펠레), Ellora Torchia (코니), Isabelle Grill (마야), Agnes Rase (댜니), Mats Blomgren (오트), Liv Mjönes (울라), Björn Andressen (단 노인). 


photo MIDSOMMAR- MY FAULT_zpsnxurbe6u.jpg


한국에서 [유전] 이라는, 모처럼 원 타이틀의 내용을 제대로 옮긴 한국어 제목이 달린 채 개봉된 화제작 [Hereditary] 의 각본 감독을 맡은 젊은 준재 (俊才) 아리 아스터의 차기작이다. [유전] 의 리뷰는 이 게시판에 이미 작성해 놓았으니 일독을 권해드린다. 이 한편은 사실 전작 [유전]과 비교해서 논의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같은 호러 장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지만, 단지 전편이 60-70년대 미국 영화의 편집증적인 호러 (주위의 "선량한 이웃" 심지어는 자신의 가족들이 나 내지는 나의 자식들을 사악한 목적을 위해 파멸로, 또는 육체적인 죽음보다도 더 끔직한 모종의 운명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공포감) 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본편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들만의 전통적 규율과 종교적 풍속에 맞추어서 생활하고 있는 공동체에 갇히면서 생기는 가치관의 충돌, 문화적 이질감과 개인의 선택지를 깔아뭉개는 공동체 집단의 폭력에 바탕을 둔 "민속 호러 (Folk horror)" 의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될 만 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유전] 이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는 편집증적 "가족 호러" 의 계보와는 달리 민속 호러라는 서브장르에는 그 작품을 넘어서는 것이 여러모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넘사벽적인 걸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반지의 제왕] 에도 출연하셨던 모 초 베테랑 영국 연기자께서 스스로 "내가 출연한 작품 중에서 (비록 [반지의 제왕] 이나 팀 버튼 작품들에 출연하시기 한참 전에 말씀하신 것이긴 하지만) 가장 위대한 영화" 라고 까지 언급했던 작품이고, 당연하지만 최근 들어서 미국에서 (처참한 퀄리티로) 리메이크 되었고 2011년에는 원작의 감독이 스스로 비공식적인 속편까지 만든 정도의 명작이기 때문에, 모두부터 같은 서브장르에 속해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선포하는 [미드소마] 가 이 고전 작품과의 비교를 피해 갈 수 있었을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종결과가 내 입장에서 만족스럽던 만족스럽지 않던 간에 창의성과 작가적 패기로 넘쳐나는 이런 한 편을 부동의 명성을 유지하는 과거의 걸작과 비교해서 이러구러 낮게 평가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독자 분들께서 [미드소마]를 통해 이 걸작에 대해 알게 되신다면야 고전 호러 영화 팬으로서 나에게는 무척 행복한 일이 되겠지만, 그렇게 고전 걸작을 여러분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한 도구로 본편을 써먹고 끝낸다는 것은 아리 아스터 각본가-감독을 비롯한 이 영화를 위해 피땀을 바친 스탭과 캐스트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또한 요즘처럼 인터넷에서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이 한편을 언급하는 그 자체로서 [미드소마] 라는 영화의 장르적 정체성, 어쩌면 그 내용까지에 대한 스포일러로서 기능하게 된 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런 고로 내가 작성한 과거 리뷰의 몇 편에서 한 것처럼, 이 걸작의 정체를 밝히고 피치 못하게 [미드소마] 와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부분은 점선 밑에서 스포일러로 다루기로 한다. 단지, 플롯의 구체적인 스포일러-- 특히 결말의 내용을 만천하에 밝혀버리는 행위-- 는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자제하였다. [미드소마]-- [유전] 이나 [어스] 같은 다른 최근 화제로 떠오른 호러영화들도 마찬가지지만-- 는 여러 모로 다각적이고 학문적인 분석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풍요한 시네마틱 텍스트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텍스트가 내포하고 있는 해석의 가능성을 충분하게 풀어내려면 피치 못하게 결말을 비롯한 플롯의 내용을 자세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을 터이고, 이 리뷰에서는 그런 접근방식은 취하지 않으려고 한다. 


먼저 아리 아스터 감독은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영화의 대부분이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시점에서, 주인공 대니 자신이 정신적 불안정이라는 요소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고 있으며, 또한 그녀로 하여금 친족의 정신질환과 그로부터 비롯된 극단적인 비극적 상황을 겪게 만듦으로써, 전통적 호러 영화의 여주인공에 흔히 볼 수 있는 "불안정한 화자"-- 즉 어떤 호러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것의 진실됨을 주위의 "합리적인" 조역들에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시킬 수 없는-- 로 대니를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스터 감독 자신이 인터뷰를 통해서 "이 영화는 한 잘못된 관계가 종결로 치닫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고 시사하고 있듯이, 실제 이 한편에 있어서 대니라는 캐릭터의 문제점은 그녀의 내면적인 심리 상태라기보다는, 자신의 인류학 대학원생 보이프렌드 크리스천과의 지극히 불건강한 연애관계로 수렴된다. 나는, 바로 이 점에 관해서,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고 난 후, 아스터 감독이 대니의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자 하는 비젼이 있었던 것인지 의문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나의 불만에 대해서는 밑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대니가 온갖 천박한 경쟁심과 질투심으로 범벅이 된 대학원생 남자 그룹으로부터 완전히 잉여인간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크리스천이 가져다 주는 (준다고 그녀가 착각하고 있는) 표면적인 정서적 지지를 희구한 나머지, 스웨덴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여름 축제의 전통 의례를 답사하기 위한 여정에 동행하면서부터, 이 마을에 도착한 후 딱히 공포스럽다거나 불안감을 조성하지는 않는 채로 조금씩 관객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풍속적 묘사" 가 중첩되는 전반부의 묘사는 압도적으로 훌륭하다. [유전] 에서도 여동생이 견과류 알레르기 증세를 보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시퀜스의 아스터의 연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력과 절제력을 보여주고 있는 바, [미드소마] 의 전반부에서도 그의 실력은 고스란히 발휘된다.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들의 사적 공간을 침범하는 것 같은 좋지 못한 상념을 불러 일으키는 부감 샷, 화면의 위아래를 180도로 뒤집어서 자동차가 녹색의 삼림을 머리 위로 하고 잿빛의 허공을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경도된 샷 등, 아스터 감독 특유의 필치가 눈에 들어오지만, 요번 작품에서는 특히 스웨덴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모든 시퀜스가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것을 방불케 하는 인공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 그 이후에는 거의 모든 상황들이 녹림을 배경으로 한 광활한 공간에서 벌어지게 되면서, 그 전까지 자신들의 내면 심리 상태를 "연극적" 인 "공식"으로 밖에는 표현할 줄 모르던 (미국인) 캐릭터들이 완전히 자신들의 행위의 (사회적-문화적) "맥락" 에서 격리되어 버린 채 점차 마을의 "전통 의례" 가 지시하는 대로 박제된 인형 같은 "상징적 존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퀜스들이 지향하는 불안감과 공포는 웬만한 호러영화의 경우 어떤 강렬한 공포의 대상-- "귀신," "악마," "연속 살인마" 등-- 을 더 효과적으로 부과시키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으나, [미드소마] 에서는 완전히 아스터 감독의 주된 관심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이 한편은 온갖 육체적으로 끔직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한 시퀜스는 다른 영화도 아니고 루치오 풀치의 악명 높은 수작 [오리 새끼를 괴롭히지 마세요] 의 얼굴과 관련된 초 엽기적인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데, 당연한 얘기지만 풀치의 이탈리아산 고전에 비해서 특수 메이크업 효과의 정도 [精度] 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되었다), 관객들로부터 일반적 "호러영화" 와는 다른 형태의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아스터 감독은 스웨덴에 도착한 이후에는 "어두움" 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제해버린 채-- 이 설정상의 선택은 "밤 아홉시 인데 왜 이렇게 밝아? 미쳤다" 라는 식의 대사를 실제로 캐릭터들로 하여금 주고 받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두고 있다-- 점차적으로 공포와 괴이함을 향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플롯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피신할 곳"을 남겨 두지 않는다. 어두움이란 흔히 무엇이 그 속에 숨어있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만, [미드소마] 의 경우, 모든 것이 백주의 대낮에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호러적인 상황들은 대니의 정신적인 불안감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관객들에게 어지럼증과도 닮은, 균형이 깨진 것 같은 불안정성을 가져다 준다. [미드소마] 를 다수의 관객들과 관람해 보면, 호러의 액선트가 주어지는 "빽 소리지르게 무서운" 장면-- [사이코] 에서 베이츠 부인이 사립탐정 아보가스트를 살해하는 시퀜스나 [엑소시스트] 에서 리건의 목이 360도 회전하는 시퀜스 등을 들 수 있겠다-- 을 통해 비명을 지르거나 탄성을 뱉는 개소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신에 관객들이 굉장히 불편한 심리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어이가 태양계 외로 날라가 버린 사람이 터뜨리는 웃음" 소리를 특히 후반부의 여러 대목에서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photo MIDSOMMAR- THE FINAL RITUAL_zpsctym4ms1.jpg  

역시 [유전]부터 아스터와 협엽했던 파벨 포고젤스키 촬영감독은 여전히 2.0대 1 이라는 독특한 화면비를 유지하고 있지만 [유전] 과는 달리 햇빛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색이 바랜 것 같은, 명징 (明澄) 함과는 거리가 한참 있는, 부적절하게 보이는 "밝음" 의 질감을 끌어내고 있다. 일급 현대 미국영화에 걸맞게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을 수준의 섬세한 "특수효과" 가 전편을 통해 원용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꽃이나 풀들이 숨쉬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잎파리를 벌름거리는 묘사들은 지나치게 "은유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스터 감독의 의도는 내가 감각적으로 반응했던 것처럼 단순히 관객들에게 범상하지 않은 부류의 징그러움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비판으로 넘어가자면, [미드소마]는 위에서 언급한 풀치영화를 연상시키는 시퀜스가 벌어진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온 캐릭터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약해진다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이 "외부" 캐릭터들에게 우리 관객들이 강력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아스터 감독의 각본의 구조는 대니가 "믿을 수 없는 (정신이 불안정한) 화자" 에서 "파이널 걸 (호러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서 "괴물" 과 대결하는 여성 주인공을 일컫는 말)" 로 변모하는 일종의 "성장 서사" 를 기대하게끔 방향성을 제시해 놓고는, 그 구조를 따라가지 않는다. 결국, 플로렌스 퓨의 섬세하고도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명연기에도 불구하고, 대니라는 캐릭터는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거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운명을 주도하지 못하고 끝난다. 


혹자는 이 한편의 미니멀리스틱하게 끝나는 엔딩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단순히 해석할 수 없는 반응이 대니라는 캐릭터가 "스스로 운명을 받아들였다" 라는 예시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만일 이것이 아스터 감독이 의도했던 바라면, 내가 보기에는 그의 요번의 선택은 실망스럽게 "예술영화적" 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다. 대니가 "악의 세력" 이 원하는 바를 능동적으로 취함으로 해서 주체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이는) 전개를 본인의 "긍정적" 인 자아의 발전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그냥 집단적인 광기에 휩쓸리면서 그나마도 취약했던 자아가 완전히 붕괴된 것으로 해석할 것이냐를 관객들에게 "의문"으로 남겨두고 싶었다면, 그러한 식의 "의도된 모호성" 이야말로 내가 이런 종류의 호러영화에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취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A24 회사에서 배급했고 역시 [유전]처럼 압도적인 호평을 받은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The Witch] 의 "마녀의 실존성에 대해 함구하는" 결말에 나는 비슷한 종류의 실망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 [미드소마] 는 기술적으로 또 미적으로 무섭게 잘 만들어진 한편이고,-- 영국의 엘렉트로닉 작곡가 바비 크를릭 또는 The Haxan Cloak (마녀의 망또?) 이 담당한 스코어도 관객들의 예상치를 추종함이 없이, 날카롭게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 게으름이 없다-- 미국영화지만 잉마르 베르이만이나 카를 드라이어의 일련의 스웨덴 작품들이 지닌, "신앙" 의 다른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요소들을 깨끗이 칼로 바르거나 끓어서 증류시켜버린 채 그 정수만 남겨 놓은 아름답고도 혐오스러운 (외경스러운?) 모습을 시선을 피함이 없이 응시하는 질감을, 배경 신앙을 "기독교" 에서 "민속 종교"로 옮기자 벌어지는 기괴한 왜곡을 묘사한 한 편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나에게는 [미드소마]는 [유전]처럼 미국 사회 (뿐만이 아닌 모든 위선적인 현대 사회)의 세대를 통해 은폐된 문제들의 그 구더기 들끓는 추악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놓는 미국 호러영화 고유의 공력이 부족한 한편이었고, 그런 면에서 여전히 고급 호러영화이자 예술작품이긴 하지만, 같은 레벨의 높은 평가는 줄 수 없겠다. 


그러면 여기서 한 줄을 긋고 위에서 언급한 포크 호러의 걸작과의 비교 및 더 스포일러성이 농후한 코멘트를 짧게 하겠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께서는 여기까지만 읽으시고, 밑의 문단들은 감상 후에 읽으시기를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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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MIDSOMMAR- THE JUMP_zpsys9v0vwc.jpg


문제의 작품은 크리스토퍼 리의 팬이신 분들이시라면 익히 잘 알고 계실 [윅커 맨 The Wicker Man] 이다. 로빈 하디가 1973년에 감독한 이 한편은 한때 완전판의 네거티브와 프린트가 영원히 유실되었다고 알려져 있어서 오슨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 와 맞먹는 레벨의 "전설의 잃어버린 영화" 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었는데, 아직 VHS 가 완전히 망하지 않았던 디븨디의 초창기 (2001년)에 당시로서는 첨단 개척자 레벨이었던 앙커 베이가 헐리웃의 전설 로저 코어먼 감독의 전면적인 협력 하에 특별 복원판을 내놓았었고, 그 이후로 신세기에 들어오면서 새로이 명성을 되찾은 걸작 장르영화의 반열에 반드시 올라가는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저한테 리뷰 리퀘스트 하십시오 ^ ^) 


그래서 아마 이 한편을 보신 독자분들 또는 그렇지 않은 분들께서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실 듯이, 나는 [미드소마] 가 [윅커 맨] 이 기독교적 가치관 또는 합리적인 근대사회가 지닌 규율성과 정면 충돌하는 전통 종교의 농경 사이클을 따라서 수확을 위해서는 반드시 번제 (燔祭)에 공양을 바쳐야 하는 ("번제" 라는 것도 따지고 들자면 기독교-유대교의 하느님도 원래는 받아들이던 제사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에피소드를 상기할 것) 생활 양식의 대립을 호러 장르라는 틀 안에서 다루어낸 실적에 더하여, 나름대로의 21세기적 변주, 또는 대니라는 여성 주인공을 배치함으로써 현대 세계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등의 참신한 시각을 가져오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 한편의 후반부는 그런 의미에서 실망스러웠다. [윅커 맨] 보다 덜 "사변적"이면서 약간 과할 정도로 마을의 의례와 풍습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드소마]의 캐릭터들은 한마디로 약하게 다가왔다. [윅커 맨] 의 지역 유지인 섬머아일 경이나 [이퀄라이저] 로 미국에서 스타가 된 영국의 중견 연기자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연기한 주인공처럼 자신의 사상적-신앙적-도덕적 위치에 굳건히 서서 끝까지 캐릭터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는 결코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지라도 캐릭터(들) 의 행동이 그 내재적 논리를 따라가면 나름대로의 납득이 가도록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아스터 감독만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2시간 27분이나 들여서 관객들을 갈구었으면 통상적인 도덕관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최소한 하나의 끝맺음을 동반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해 보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스터 입장에서는 지금 존재하는 판본의 엔딩이 (나중에 모종의 "코다"를 첨부된 확장판 내지는 감독판이 공개된다면, 그 시점에서 다시 해석이 바꾸어질 지도 모르겠다. 감독들의 이러한 수정주의적 시도에 대해서는 나는 보통은 굉장히 비판적이지만, [미드소마] 에 한해서는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한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면서 동시에 관객들 자신의 "그것 쌤통이다" 라는 직설적인 반응에 대한 자성적 고찰을 유발하는 "꿩 먹고 알 먹는" 효과를 기대한 것처럼 나에게는 보인다. 그 의도에 맞아 떨어지게 반응하신 관객 분들께서도 계실 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꿩도 놓치고, 알은 이미 양계장에서 먹어 본 맛이더라 는 결과였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러한 "공동체 중심적 가치관에 따라 멀쩡한 외부의 사람을 갈아 마시는" 부류의 호러는 잘 안 맞는지도 모르겠다. [윅커 맨] 에서는 아까도 말했지만 주인공 (악역을 포함) 들의 캐릭터가 끝까지 자신들의 가치관과 주체성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 또한 대극에 위치한 주인공들의 포지션을 가늠하면서 그 극의 동선을 따라 공감도의 강약을 조절할 수가 있다. 이와는 달리, [미드소마]의 후반부에서는 나에게는 미국측 캐릭터들은, 대니를 포함해서, 공동체에 의해 운명이 정해진 "꼭둑각시" 에 지나지 않는 양태가 된 것으로 다가왔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이브에게 갖다 줘야만 하는" 뱀의 위치에 극히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나 같은 인간한테는 [윅커 맨] 이 아마도 이런 종류의 작품으로써는 하나의 임계점의 지표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더 "쎄지면" 나로서는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그냥 입맛이 쓴 기분이 들게 되는 것 같다. 나 같은 인간에게는 생글 생글 웃으면서 멀쩡한 사람을 약 먹이고 죽이고 토막내면서 "이게 다 우리가 원래 그렇게 살아 온 거에요" 라고 납득하라고 강요하는 그런 행위는 공동체의 규율이고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고 나발이고 그냥 집단 광기, 또는 사악함의 결정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질알들은 스웨덴의 무슨 시골 마을에 가지 않더라도 2019 년의 한국 미국 일본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생활 양태인걸 어쩔 것인가. 그런 지옥 같은 공동체에서 살지 않으려고 소수의 개인들이 죽을 힘을 다해서 발버둥 치다가 소위 근대 문명이라는 것이 발전한 것 아니겠음? 


마지막으로, 모두에 언급되는 90년에 한번 이 마을의 축제가 벌어진다는 설정을 의미 심장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미드소마] 는 의외로 20세기 서구 근대사에 대한 비틀어진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9라는 숫자를 넣고 싶어서 90년이라고 한 것 같지만, 2019년부터 90년 전이면 1929년이 되는데, 주지하다시피 이때부터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시작되고, 파시즘과 초국가-민족주의가 정치세력으로 강화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의 스웨덴은 현존하는 선진 복지경제의 기초를 닦음과 동시에, 2차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선언하고 독일과 전쟁을 벌인 노르웨이의 나찌의 점령 정책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현지의 "양심적인" 역사가들이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폭로하는) 역사가 있다. 말하자면 이 시대에 [미드소마] 의 마을에서는 "농사가 잘 되게 해주소서" 라고 빌기 위해 외부인을 데려다가 희생시킨 전적이 있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이것이 아마도 "대놓고 파시즘 정부를 가져다 놓지는 않았지만" 얼마든지 자기네들의 안위와 풍족함을 위해서는 "소수의" 외부인들을 잔인하게 희생시킬 수 있는 "평화스러운 공동체" 의 위선을 암시하며, 또한 21세기의 현대 세계에서 얼마든지 눈에 들어오는 온갖 "외부인들과 격리시키고자 하는 공동체" 들의 "방긋 방긋 웃으면서 외부인들 (성소수자들, 마이너리티 인종들, 여성들, 난민들, 기타 등등) 을 찢고 뭉개 죽일 수 있는" 집단 광기를 미루어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닐까? 나로서는 이러한 읽는 방식이 찌질스러운 보이프렌드를 맛이 간 민속촌 사람들의 손을 빌어 처치하는 복수담이라는 식의 해석 보다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 납득이 간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 의견은 어떠신지.


PS: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 에 출연해서 천하의 미소년으로 이름을 떨친 비외른 안데르센 연기자가 꽤 중요한 역할로 출연한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수염과 주름에 뒤덮인 할아버지시지만.  나는 2016년도 부천영화제 리뷰의 일환으로 리뷰한 [Shelley] 에서도 뵌 적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금방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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