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9년 최고의 블루 레이 스무 편

2020.01.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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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구입한 장편영화 블루 레이 타이틀 중에서 스무개를 선정하여 짧은 소개글과 함께 올린다. 집안의 상(喪)을 포함한 많은 개인적인 사태와 사건들이 있었고 (모든 일들이 다 불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건강상태도 연말이 다가오면서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3주일이 넘게 기침감기가 빠지질 않고 있는데, 그냥 환절기 독감이 아닌 뭔가 다른 병인 듯 하다), 바야흐로 2019년이야말로 이 리스트를 작성하기를 최초로 포기하는 해가 되겠구나, 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2020년 1월도 반을 훨씬 넘긴 (한국 달력으로는 구정이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 여전히 리스트 작성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덧없는 짓이고, 뼈깎고 허리 부러지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란 없는 작업이며, 단기적 혹은 중기적인 시각에서 볼 진대 시간 낭비도 이런 시간 낭비가 없는 일이지만, 누가 권총을 관자놀이에 들이밀고 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요, 학수 고대하고 있다 언제 올라오냐는 재촉을 받은 것도 아닌데, 여전히 현지시간으로 새벽 2시가 되도록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임 (?) 은 오로지 나에게 있을 뿐이다.


설교조의 꼰대적 언설을 먼저 늘어놓어서 치워버리자. 나는 나이로 보나, 사회적 기능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명실상부한 꼰대니까 꼰대답게 굴어야지. 2019년에는 [기생충]이 골든 글로브를 비롯한 수많은 (진짜 수십개의) 북미의 영화상들을 휩쓸고, 오스카상에 6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아마도 이변이 없는 이상 그 중 하나 이상을 수상하게 될 것이라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우리들 (Koreanfilm.org 의 집필진)처럼 지난 15년 이상이 되는 세월을 한국영화의 우수성 (물론 “천만영화” 나 알탕액션영화들이 다 우수하다는 얘기는 아니고, 외국에서 크나큰 인기를 끄는 한국영화중에서는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싶지 않은 작품들도 당연히 있다)을 “광야에서 부르짖어온” 자들에게는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2020년대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변용할 지는 모르겠지만, [기생충]의 약진은 봉준호라는 걸출한 “영화작가”의 존재라는 거의 절대적인 요소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단순히 봉 감독의 개인적인 성공이라는 돌발적 에피소드로 끝나는 상황은 아님이 확실하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한국이라는 “지방영화생산체제”는 그 과대평가된 외연에도 불구하고, 점차 세계 영화계의 중심으로 이동할 것이다 (물론 정치세력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뻘짓을 해서 이것을 다 말아먹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한국 사는 사람들은 결국은 국가조직에 엉겨붙어야 “출세”했다고 생각하고 국가가 사회와 경제를 통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그런지, “국가권력”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들이나 특정 조직들을 못살게 구는 거야 잘 하지. 그건 고구려의 연개소문도 잘 했으니까 [비웃음]). 이제 한국 영화계는 K-pop 이나 다른 잘 나가는 문화적 섹터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우리는 변방이고 제 3세계다” 라는 식의 피해자 민족주의 (victim nationalism)가 통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나라 영화계의 모범과 모델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국뽕 민족주의를 빨면서 헐리웃-일본-자본 욕하던 사람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소비자들과 창작자들이 “우리”를 우리가 “그놈들” 을 욕하던 바로 그 시선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지기는 커녕,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트럼프 지지자들과 비슷한 꼬라지의 민족주의적 반동적 개소리들이 창궐하면서, 봉 감독 같은 창조주체들의 한국분들이 아닌 인류를 대상으로 일하는 보편적 괘씸한 태도를 기를 쓰고 깎아내리려고 질알해쌓는 상황이 이미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감지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금의 한국 영화는 결코 약하지 않다. 산업적인 규모로 보나, 창작자들의 퀄리티와 퀀티티로 보나, 각 분야 종사자들의 스킬의 우수성으로 보나, 그 얼어죽을 놈의 “사상” “이념” 이 구태의연하고 몽당연필 같아서 영화가 너절해진다면 모를까, 테크니칼 스탭들의 스킬과 에너지와 안목이 모자라서 한국 영화가 괴로움을 겪는 일은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앞으로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고 김기영 감독이 지금 살아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면, 최소한 외장 (外裝)에 있어서는 [곡성]이나 [부산행]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게 그냥 “세계적인 수준” 인 거다. 자꾸 마블영화나 디즈니 신작을 가지고와서 비교한답시고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지 마시길 빈다. 그런 영화들의 각 편당 수준에 관계없이, 그들에 걸맞는 국내 비교 대상은 [신과 함께] 시리즈 같은 “천만영화 (블록버스터)” 들이지. 그런데, 오해 마시라. 그런 마블영화 같은 “신자유주의” 사상에 쩔은 작품들을 “한국에서 우리 힘으로 만드는” 야무진 꿈을 누가 꾸신다면, 나는 그 분의 꿈을 쌍수를 들고 응원할 것이니까. 난 돈 더 벌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들, 남들이 볼때는 허무하고 바보같아 보이는 프로젝트에 덤비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물론 나에게는 심형래같은 나르시시스트 사기꾼들과 이런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 아, 그리고, 그런 분들께선 이수만 선생을 벤치마킹 하시길. 인터넷의 증오와 혐오를 먹고 사는 버민들에게는 약이 바짝 오르겠지만 슈퍼 M 안 망한다. 앞으로 미국에서 더 잘 나갈거다. 마블영화가 잘 나가는데 왜 슈퍼M 이 잘 안돼? 그 (천박하고 돈 벌려고 환장한)기획이 바로 그 (천박하고 돈 벌려고 환장한)기획인데? ^ ^ 


장광설은 그 정도로 해놓고, 2019년에 개인적으로 내 주위에서 영화 관람 관계로 벌어진 가장 획기적이었던 일은, 우리 집의 거의 모든 전기제품을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65인치 LG 4K Ultra HD OLED TV 를 구입 설치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미 몇 년전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여 Home Theater System 을 셋업해 놓았기 때문에 요번의 설치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최고급의 오디오 시스템에 걸맞는 비주얼 시스템을 마침내 손에 넣었다는 의미가 강하다. 약간 씁쓸했던 것은 이 TV 도 자동적으로 초당 24프레임의 영화를 마치 비데오 돌려보듯이 만들어버리는 “True Motion” 인지 뭔지 하는 기능이 디폴트로 작동하게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덕택에 “스포츠 게임 모드”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백 모드에 들어가서 하나 하나 이 기능을 꺼야 했는데, 미국에서 이런 고가 TV 를 보는 사람들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같은 고전 영화들을 이런 식으로 싸구려 비데오 같이 캐릭터들이 움직이도록 만들어놓고 감상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안 감독처럼 초당 프레임을 늘리는 데 꽂혀버린 유명 감독들도 있긴 하지만) 이 새로운 기기를 통해서 블루 레이를 감상하는 것이 얼마나 눈을 씻겨주는 행복스러운 경험이었나 하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물론 나의 경우, [셋푸쿠] 같은 장엄한 고전 흑백 작품이나 [UFO] 같은 필름으로 찍은 화려한 60년대형 TV 시리즈, 그리고 심지어는 [헬레이저] 시리즈같은 약간 입자에 뒤덮이고 널널한 애니메이션 효과들이 들쑥날쑥하는 80년대 호러영화까지도, 고전 작품들의 4K, 2K 복원의 상태를 그야말로 손가락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몇몇 블루 레이 타이틀들은 그 동안 내가 제대로 감상을 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약간 낮은 평가를 내리게 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까지 생긴다. 


작년의 최고의 블루 레이 글에서 이 부분은 재발췌한다: "최고" 라는 표현은 영어에서 말하는 My Favorite 의 번역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영화사적, 미적, 예술적 가치, 유명세, 심지어는 나의 개인적인 영화적 가치의 평가의 높고 낮음과도 관계없이, 나에게 "놀람" 과 "발견 (또는 재발견)" 의 경험, 다시 말하면 충격과 경외감을 안겨준 타이틀들이 우선적으로 선정되었다. 이 리스트를 처음 읽으시는 분들께는 이 목록은 "죽기 전에 봐야 하는 영화 백편" 같은 류의 극단적으로 멍청하고, 처참하게 쓸모 없고, 결정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아주 벼룩이 성기 정도로 아는 치졸한 "리스트" 와는 대척점에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 드리고, 여기에 선정된 영화의 일부는 "영화사에 남는 명작" 은커녕 일반 평론가나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 취급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언제나처럼 리스트 선정은 어마어마하게 어려웠고, 요번에는 특히 집안의 내열구조를 바꾸고 전기 배선을 다 뜯어내고 어쩌구 하는 과정에서 블루 레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그런 난장판을 겪는 바람에 1월에 들어와서도 후보작 까지도 제대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지난해에서는 결국 너무 선정이 어렵다 보니 통상 20편에서 25편까지 늘리는 꼼수를 썼지만, 요번에는 그렇게 했다가는 아예 작성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어거지로 20편에서 끝내려고 한다. 원래는 선정작을 15편 정도로 줄이고, 대신 영어판 리스트와는 완전히 다 다른 타이틀로 메꾸는 아이디어도 검토를 해보긴 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이 없어서 포기!


그러면 20편 블루 레이 각 타이틀로 진입한다. 영화의 타이틀은 될 수 있는 한 네이버에서 확인한 한국 공개 제목을 가져다 썼고, 특정한 경우 (한국어 제목이 개떡 소떡같은 경우 포함) 에는 원제의 직역을 기입했다.


20. 노스 씨 하이잭 ffolkes (a.k.a. North Sea Highjack) (1980, Kino Lorber, Regio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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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이틀은 VHS 시절에 한 번 본적이 있다가 잊어버린 작품이고, 키노 로버에서 세일할 때 떨이로 구매한 한편인데 우연히 우리 바깥분이 안소니 퍼킨스와 로저 무어가 공연 (?!) 하는 영화라는데 흥미가 당기셔서 같이 감상했는데, “아니, 이게 뭔데 이렇게 재미있지?!”라고 약간 얼떨떨한 반응을 끌어내었다. 감독이 보수적인 서부극 만들던 앤드류 V. 맥라그렌이고, 한 때 알리스테어 맥린 작가의 소설들을 마구잡이로 영화화하던 시절의 구식 영국 “해양모험”영화의 장르에 부속되어 있는 등, 여러 모로 기대가 안되는 한 편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잘못 나갔다가는 여혐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 같은 설정들— 무어가 연기하는 구레나룻을 기른 사설특수부대의 지휘자 루퍼스 엑스칼리버 포크스가 세 명의 누나들과 같이 자라서 여자들을 극도로 싫어하고 대신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배경이라던지— 도 아슬아슬하게 폭망을 비켜나가고—이 한편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위치와 활동량은 결코 적지 않다. 물론 벡델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코멘터리를 녹음한 하워드 버거, 스티브 미첼 그리고 [몬도 디지털] 의 나타니엘 톰슨 평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해양모험” 장르의  답답한 대영제국 찬양론은 많이 빠지되, 엑센트릭하게 장르 컨벤션을 비트는 재미는 쓸데없이 많이 제공하는, “위대하지는 않지만 버리기도 아깝게 애정이 가는” 그런 한 편이다. 


그런 장르적 사양이 아니더라도, 내가 영화광의 양심이 있지, 안소니 퍼킨스가 수염을 기른 털보 로저 무어를 정면으로 째려보면서 “너 여전히 맘에 안든다” 라고 뇌까리는 그런 영화를 싫어할 수는 없다. 딱히 복원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 키노 로버 블루레이는 과거의 미제-영국제 DVD 들은 진짜 “갖다 버려야” 할 정도로 깨끗하고 수려한 질감을 제공해준다. 


19. 우주 수폭전 This Island Earth (1955, Region A, Scream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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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편은 BEM (Bug Eyed Monster) 라는 고전적 우주 괴물의 규정에 아주 모범적으로 들어맞는 메탈루나 뮤턴트가 등장하는 등, 여러가지로 SF영화사에 기념비적인 명성을 떨친 한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선호하는 한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리뷰의 일관된 찬사에도 불구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구입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우주 수폭전] 이야말로 2019년에 구입한 OLED TV의 덕을 가장 본 한편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모두의 타이틀 롤에 깔리는 별들의 입체적인 움직임과 검은색의 심오함 부터가 완전히 이때까지 봐온 판본들과는 다른 트랜스퍼임을 예고해 주었고, 젊은 현대 관객분들께는 “유치” 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고전적 매트 페인팅과 수퍼임포지션에 의한 폭발 등의 특수효과들도 그 원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여전히 자주 할 수 없는 감상경험을 제공해 주었다. 


1.37 과 1.85화면비 판본을 동시 수록했을 뿐 아니라, 기술적, 역사적, 장르적인 관점에서 풍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로버트 스코탁과 데이비드 셱터의 두 종류의 코멘터리 및 깔끔하면서도 SF 팬들의 궁금한 부분을 잘 알아서 해소해 주는 장편 도큐멘타리 등, 서플도 말할 필요 없이 충실하다. 


18. 호협 豪俠 Last Hurrah for Chivalry/소림용호문 少林門 Hand of Death (1979, 1976, Region B, Eure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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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이틀들이 출시되었다는 정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니 이 영화들은 왜 또 복원판 블루 레이로…?” 라는 의문부호가 머리에 떠올랐지만, 결국 어찌하랴, 영국에서까지 새삼스럽게 주문을 해서 또 구입하고 말았네. [소림문] 의 경우는 거의 확실히 홍-한 합작이고, 성룡따거가 누군지도 모르던 중딩 시절에 명륜극장이었던가 2차상영 극장에서 겨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내용만 남겨놓고 한 1시간 10분 안팎으로 왕창 잘려나간 “편집본” 을, 그것도 한국어 더빙으로 감상했던 기억이 새롭다. [호협], [소림문] 둘 다 북미에서 보는 “쿵푸영화” 의 정전에서는 밀려나거나 들어간다 할 지라도 뭔가 “오우삼 감독 치고는…” 이런 식의 어정쩡한 변호가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작품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밀어붙인 기획인지, 완전히 새롭게 만든 2K 복원판을 제작하고 [호협]의 경우 유실되었던 광동어판 모노 트랙을 발굴했다고 하며, 기타 성룡따거의 최성기 작품이 부럽지 않은 융숭한 대접을 받아서 출시되었다. 일별하기만 해도 한 시절 전의 너무나 뺀닥뺀닥하게 모든 “굴곡” 이 제거된 고전 홍콩영화의 “복원” 과는 전혀 다른, 한국의 사찰에서 로케이션한 뭔가 약간 먼지가 나지만 나름 고전적인 플레이버를 지닌 풍광의 멋이 고대로 전해지는 것 하며, 두 작품의 명성을 복구하고 변호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2019년에는 크라이테리언에서 출시된 성룡의 [경찰고사] 를 비롯하여 고전 홍콩영화를 꽤 구입했는데, 결국 연말결산에서 가장 나에게 “놀라움” 을 선사한 것은 그 중 이 두 편이었다고 정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담인데 주인공을 연기한 담도량연기자가 한국인이 아니고 부산 출신의 화교라는 것을 요번에 검색해보고 처음 알았다. 아무튼 [소림문]은 악역인 전준과 홍금보가 전편을 다 저작 (咀嚼) 해버리는 한편이라는 것이 결론. 


17. 젤리에 갇힌 댄디 A Dandy in Aspic (1968, Region Free, Powerhouse Indic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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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편은 디븨디 출시되었을 때 내가 그 해의 연말 베스트 시리즈에 올렸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확인해보려고 집에서 디븨디를 찾으려고 들쑤시고 다녀도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결국에는 파워하우스 인디케이터가 리마스터한 이 블루 레이 판본에 의해 대치되고 말 운명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의 기억의 편린이, 줄이 끊어진 연처럼, 현실과의 연결점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사라진 것 같아서 약간 서글프기도 하다. 이 작품은 영화로서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걸작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는데, 거장 안소니 만이 제작 도중에 급사하는 바람에 주연 배우인 로렌스 하비가 감독을 직접 해서 완성시켰다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마치 안소니 만이 제임스 스튜어트 (그리고 걸작 [서부의 사나이] 에서는 게리 쿠퍼)를 데리고 만들었던 것 같은 어둡고, 신경증적이며 암울한 “심리 서부극” 의 취향을 고대로 재미있게 게임을 하면서 놀아야 할 스파이 액션 장르에 적용한다는 어찌 보자면 말도 안되는 무리수를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플레이버를 지닌 한편이기도 하다. 


인디케이터의 서플멘트는 만 감독의 필르모그래피라는 맥락 안에서의 이 작품의 해석, 주 로케이션이 이루어진 60년대말 베를린에 대한 고찰, 퀸시 존스가 작곡한 거의 아방 가르드한 재즈 스코어, 심지어는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실에 휘감겨서 죽어가는 마리오네트 인형” 을 모티브로 한 메인 타이틀 디자인을 만든 스탭 인터뷰까지, 언제나 그렇듯이 학문적인 관심사부터 저널리즘적인 디테일을 완전히 망라하는 거의 편집증적인 고퀄리티를 보여준다. 


16.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Woman Chasing the Butterfly of Death (1978, Region Free, Mondo Macab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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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김기영 감독의 전 작품— [파계], [화녀 ‘82], [현해탄은 알고 있다], [반금련] 까지 현존하는 작품들은 모두 다—이 복원판 블루 레이로 출시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 사람 여기 하나 있다만, 김 감독의 필르모그래피 중에서도 난해하고 괴팍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까지도 4K 복원판으로 그것도 괴작-컬트작 전문 레벨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몬도 마카브로에서 [깊은 밤 갑자기] 에 이어 출시를 해주니 이 아니 기쁠소냐. 사실, 트랜스퍼의 퀄리티는 영상자료원에서 그 전에 출시한 [이어도] 와 [하녀]에는 못 미치지만, 주연 배우 (아직도 너무나 매력이 넘치시는) 이화시 여사, 정진우 감독 겸 프로듀서, 촬영감독 구종모, 그리고 편집장님 달시 파켓의 인터뷰 등 귀중한 내용의 서플멘트를 보면 얼마나 몬도 마카브로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했는지 알 수 있다. 


다시한번 비나이다 비나이다 김기영 감독의 현존 전작 다 4K 복원판 블루 레이로 내주소서! 


15. 마녀 전설 Viy (1967, Region A, Severin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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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이 한편의 블루 레이는 또 왜 세버린에서 출시되었을까? 이 한편도 뭔가 [전설의 고향] 스럽게 고색이 창연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디즈니 영화같은 동화적 매력이 가득찬, 그러다가 의외로 등골을 써늘케 하는 불가사의한 비주얼의 향연을 펼쳐주는, 말로써는 그 매혹을 다 설명할 수 없는 한편이다. 왜 한국 영화계도 쓸데없이 현대적 가치관을 우겨넣으려고 애쓰지 말고, [삼국유사] 나 그런 고전에 나오는 괴담 같은 것을 그 “유치하게 괴상하면서도 어딘가 자연의 외경스러움에 맥이 닿아있는” 색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상화해보지는 못할까? 만약 콘스탄틴 예르쇼프와 게오르기 크로파쵸프 감독들이 이 한편에 뭔가 소비에트적인 이념적 주관을 주입했더라면 아마도 별 볼없는 범작으로 끝났을 것이다. [Viy] 는 유머러스하고 동화적으로 “귀여우” 면서도 그 내실은 악몽이나 어렸을 때 들은 구전 괴담이 지닌 나름의 괴기한 논리를 충실히 따라간다. 그리고 호러-판타지의 팬이라면, CGI 등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고전적” “카메라 안에서 벌어지는” 특수효과로 현현되는 온갖 흡혈귀, 늑대인간, 그리고 마지막에 듬직하게 교회를 흔들면서 등장하는 악령 비이의 모습들에 현혹되지 않기란 힘들 것이다. 


리마스터는 러시안 필름 카운슬에서 했는지 세버린에서 맡아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디븨디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색조의 특이함, 무엇보다도 그 어두움의, 칠흑같은 검은색의 요사스러운 매력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14. 피와 살에 관한: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집 Of Flesh and Blood: The Cinema of Hirokazu Koreeda (1995- 2008, Region B, The British Film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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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어느 가족] 과 [제 3의 살인] 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으며 이제는 확연히 세계 영화계의 거장 또는 대가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실감했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선호하는 감독 중 한분은 아닌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경우, 무슨 연유에서인지 지난 2년 동안에 영미권에서 블루 레이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애로우 비데오에서 [기적], [그리고 아버지가 된다], [바다보다 아직 깊은] 이 수록된 블루 레이 작품집을 2018년에 내놓았었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구입은 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뭉근하게 펼쳐 보리라 하는 디스크 수집가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위의 최근작 두 편을 보고 나니 최소한 [아무도 모른다] 와 [걸어도 걸어도] 는 디븨디가 아닌 블루 레이의 화질로 다시 감상하고 싶어져서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 마치 내 안달에 부응이라도 하듯 BFI 에서 출세작들인 [마보로시] 와 [원더풀 라이프] 와 함께 상기 두 작품을 묶어서 새로운 작품집으로 내놓았으니, 구입을 망서릴 이유가 있나. 


역시 BFI 답게 원래 일본에서 출시되었을 때 포함되었던 특전영상들에 더해서 2013년에 런던 필름 페스티벌에서 평론가 재스퍼 샤프와 코레에다 감독이 벌인 대담, 구미 영화인들이 새로이 녹음한 코멘터리 등 새롭게 더해진 서플멘트, 그리고 이것도 BFI 답지만, “소” 책자라고 부르기가 머쓱해지는 72페이지 평론집이 수록되어 있다. 


13. 죽음의 순례자 Slaughterhouse Five (1972, Region A, Arrow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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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에 관한 연구서를 구입해서 읽었을 정도로 조지 로이 힐 감독에 심취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이라고 그의 실력에 대한 평가가 낮아진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가 만든 중에서 가장 “예술적” 이고 “작가적” 인 한편으로 일컬어지면서도, [슬로터하우스 파이브] 는 옛적에 AFKN 에서 일별했던 기억밖에 없었다. 모든 내 유년-청년기 기억속에 묻혀있는 명작들이 그렇듯이, 결국은 디븨디-블루 레이 회사들이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감상의 기회를 가져다주게 되었는데, 그것도 애로우 비데오가 자신들이 돈을 염출해서 4K 스캔으로 복원을 한 판본으로 보게 되다니, 어쩌면 이제까지 제대로 된 감상을 미루어왔던 것이 예기치 않았던 축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SF 팬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하는 한편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절대로 영화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소설에 원작을 두고 있으며, 결코 일부에서 말하는 것 같은 기술적인 데 정신이 팔려 사상적인 측면을 놓친 그런 각색은 아님을 보증한다 (그런 "안좋은" 각색의 예를 원하신다면 큐브릭의 [2001년: 우주 오디세이] 를 추천드린다). 


12. 판토마 위기탈출/ 판토마 전광석화/ 판토마 대 스코틀랜드 야드 Fantomas: Three Films Collection (1964, 1965, 1967, Region A, Kino Lo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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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Fantomas 는 나도 이제까지 “팡토마” 라고 읽는 줄 알았는데,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 인물들 (물론 팡토마스 자신도!) 이 “팡토마*스*” 라고 s 발음을 뚜렷이 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아니면 애초에는 묵음이었던게 s 발음을 하는 것이 쿨하게 느껴져서 그렇게 정착이 된 것인지? 아무튼, 팡토마스는 전설적인 무성영화작가 루이 포이야드가 1913년에 연속극으로 제작하기까지 했던 고전 탐정-미스테리 소설의 캐릭터로, 지난 2017년 최고의 블루 레이 리스트에는 17위에 올라갔던 [OSS 117] 스파이 액션 시리즈를 대부분 맡았던 앙드레 위느벨 감독 (이분은 유리 세공 전문의 미술가로서도 유명했던 모양이다. 대단하신 분) 이 그 시리즈와 거의 동시기에, 60년대적 캠피한 어필에 맞게 업데이트를 하였다. 그 세 작품이 이 Kino Lorber 의 판본에 수록되어 있는데 고오몽에서 책임을 진 복원판 블루 레이는 그 색감과 프로덕션 디자인의 우아하면서도 키취적 재미가 넘쳐나는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괴도 팡토마스와 그를 추적하는 기자 팡도르를 맡아 1인 2역을 선보이는 당시 50대 초반의 장 마레 연기자가 톰 크루즈도 얼굴을 붉힐만한 절대적 수준의 육체적 활약을 보이는 것이 감탄스럽다. 이 분은 무려 장 꼭또의 [오르페우스] 등의 주연을 맡았고, [미녀와 야수] 에서도 1인 2역을 맡았던 최고급 연기자인데, 이 시리즈에서는 날렵하면서도 중후하고 또한 분노와 즐거움같은 감정을 거침없이 “크게” 표현하는 모습이 커크 더글러스같은 고전기 미국 스타들을 연상시킨다.


 11. 지미 블랙스미스의 노래 The Chant of Jimmie Blacksmith (1978, Region B, Eureka! Masters of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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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헐리웃에 진출한 다음에 [러시아 하우스], [5번가의 폴 포이티어 Six Degrees of Separation] 같은 중견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하여 명성을 얻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프레드 셰피시 감독의 국제적인 출세작이며, 자신의 나라의 가장 어렵고 다루기 힘든 치부의 역사—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착취와 살륙, 그리고 계속되는 인종차별— 를 정면돌파한 걸작이다. 이미 디븨디로 감상을 한 한편인데, 요번에 오스트레일리아 회사 엄브렐라에서 주도하여 복원한 극장공개판 (2시간 2분 판본)과 아마도 유레카에서 수주해서 따로 복원한 국제판 (1시간 57분 판본)이 동시 수록되어 있고, 둘 다 엄청난 화질의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두 판본은 색감과 톤이 완연히 다르고, 감상자에게 주는 느낌도 미묘하게 틀리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같은 각본을 영화화한 두 편의 독립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어느 쪽을 보시던지, 어정쩡하게 낡은 프린트를 통해 리바이벌 하우스에서 감상하는 것과는 완전히 딴 세계에서 노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이라는 것은 어림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마스터스 오브 시네마 시리즈에 걸맞게 두 종류의 학술적 코멘터리, 수많은 도큐멘터리와 인터뷰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데, 프레드 셰피시 감독에게 철저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2008년에 멜버른 국제 영화제에서의 특별 상영회에서 [샤인] 등의 스타 제프리 러쉬와 행해진 35분에 달하는 GV 인터뷰가 가장 흥미로웠다. 


10. 무리에서 벗어난 숫놈 Rogue Male (1976, Region B, British Film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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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ies 님과 이 한편의 제목이자 주인공 피터 오투울이 연기하는 헌터경을 지칭하는 것이 명백한 Rogue Male 이라는 문구를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겠는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영화와 BFI 의 서플멘트를 보고 나니 원작에서는 “스스로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서 행동하는 숫코끼리”를 일컫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76년에 영국 국영방송 BBC에서 제작된 이 한편은 오투울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잘 알려진 한편이지만, 프리츠 랑이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에 감독한 히틀러 암살을 주제로 한 스릴러 [인간 사냥 Man Hunt] (1941)과 원작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한편에서는 장르적인 스릴보다는 영국 안에서 대놓고 나찌즘을 응원하는 백인우월주의자 및 본토박이 파시스트들에 둘러싸인 채,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매진하는 한 영국인 귀족의 울굴과 우수에 가득찬 심리묘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새롭게 블루 레이 판본으로 감상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영국과 미국을 통털어 가장 위대한 극작가-각본가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해롤드 핀터가 주인공의 유태인 변호사 역으로 등장해서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준수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옛날에 AFKN 에서 보았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명화” 인데— 주인공이 고양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우리는 복수할 것이야. 너의 도움으로 우리는 저놈에게 벌을 내리겠어” 라고 광기서린, 충혈된 눈을 한채 뇌까리는 장면이 꿈에 어른거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 당시에는 당연히 해롤드 핀터가 누군지도 몰랐었다. 


TV 영화라고 해서 BFI 의 특전의 양과 질이 조금이라도 감퇴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며, 영화의 제작과 각본, 그리고 꽤 유명한 제프리 하우스홀드의 원작에 관한 분석과 소개는 물론이고, 1930년대 당시의 영국의 시대상황이라는 역사적 맥락에 초점을 맞춘 서플도 충실하다. 그 중에서도 1937년 10월 3일에 촬영된 영국인 나찌들의 대대적인 시가행진의 기록은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 없는 정경이며, 브렉시트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행태와 겹쳐 보지 않으려 해도 불가능하다.


9. 해머 필름 제 4집: 공포의 얼굴 Hammer Volume Four: Faces of Fear (1958-1962, Region Free, Powerhouse Indic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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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하우스 인디케이터에서 출시하는 해머 필름 모음집은 이미 2020년에 제 5집이 대기중인데, 나오는 족족 매년 최고의 블루 레이 리스트에 직행하더라도 사실 불만은 없을 기획이다. 그런데 어찌 된게 갈수록—그러니까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에서 벗어나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타이틀로 이행해 갈 수록— 인디케이터의 열의는 더욱 더 달아오르는 것 같다. 이 제 4집의 백미는 좌파 사회비판영화의 거장 조셉 로지 감독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망명” 한 후 [하인 The Servant] 등 영국 계급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명작들을 만들기 전에, 해머 필름에 적을 두면서 제작한 [저주받은 자들 The Damned (a.k.a. They Are the Damned)] 일 것이다. 1시간 36분짜리 완전판, 그리고 영국의 검열에 의해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 이 삭제된 1시간 27분짜리 극장공개판을 둘 다 수록한 것부터 시작해서, 연기자들, 스탭들, 각본가들을 망라한 인터뷰, 평론가들의 중층적 코멘터리와 분석 에세이로 꽉 들어차 있다. 


다른 세 편의 작품들— [프랑켄슈타인의 복수], [지킬박사의 두 얼굴], [공포의 맛]— 을 보더라도, 제작 상황에 관한 역사적 탐구, 학문적 분석과 평론, 장르 팬덤을 만족시키고야 말겠다는 결기로 가득찬 인터뷰와 탐문 기사 등의 모든 각도에 있어서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서플이 총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머 필름과 유로호러의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지복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8. 피 한 바께쓰 A Bucket of Blood (1959, Region Free, Olive Signature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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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판권이 아무나 쓸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으로 넘어가 버린 타이틀은 물리 매체 제작자들에게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를 안겨준다. 판권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으니, 싸구려 디븨디 제작자들이 아무거나 너덜너덜하게 훼손된 프린트라도 좋으니 적당히 스캔해서 염가로 출시를 하고, 그런 3류 4류 판본들이 시장을 잠식한 결과 구태여 돈을 들여서 복원을 하려고 마음 먹은 “양심적인” 회사들은 오히려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악순환을 낳게 되는 것이다. 로저 코어먼의 초기의 작품이고 조연계의 컬트 스타 딕 밀러 (50년이 넘는 커리어를 통해서 한때의 기주봉 선생처럼 그야말로 무수한 장르영화를 통해 짧게는 얼굴만 비추고, 길게는 꽤 큰 비중의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신 바 있다) 가 모처럼 주연을 맡아서 열연을 보여주는 심리 호러의 수작인 [피 한 바께쓰]도 오랜 동안 이런 구린 화질과 음질의 싸구려 VHS와 디븨디를 통해서 밖에는 감상할 수 없었던 타이틀이다. 애고 그런데 웬일이여, 고전 영화 출시 레벨이고 최근에 “시그니쳐 시리즈” 를 만들어서 과거 내놓은 타이틀들도 호화애장판으로 둔갑시켜 재발매를 시작한 올리브 필름스에서 새로이 *4K* 스캔을 통한 복원판을 내놓을 줄이야. 


이 한편도 과거에 잘 모르던 시절에는 분위기가 약간 쿨한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코메디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한편인데, 이러한 거의 새로 태어나다시피한 복원판 블루 레이로 감상하자니, 이제는 코어먼의 에드가 앨런 포 영상화 연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을씨년스럽고 강박적인 분위기라던지, 당대의 비트니크 까페 문화에 관련된 모든 희한하고도 흥미진진한 프로덕션 디테일 등,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과 귀에 마구 들어온다. 


7. 짓소오지 아키오 불교영화 삼부작 Akio Jissoji: The Buddhist Trilogy (1970-1974, Region B, Arrow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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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독창성으로만 따지자면 단연코 금년 리스트의 제 1위를 차지해도 이상하지 않을 애로우 비데오의 쾌거인데, 이 자리로 미끄러져 내려온 이유가 영화의 내용과 작가의 태도가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것과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이 되겠지 (비주얼의 아름다움으로 따지자면 완전히 넋을 잃고 감상하지 않을 수 없는 앙리 조르주 끌루조의 유작 [La Prisonniere 죄수]도 작년에 명품 블루 레이로 출시되었지만 결국 비슷한 이유로 이 리스트에서는 탈락되었다). 그 중에서도 로망 포르노 적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성폭행을 로맨티사이즈한다는 혐의가 걸려있는 작품은 [만다라] 인데, 흥미있게도 70년대 일본 영화의 성과 폭력에 대해 고전적 연구서를 집필한 데이빗 데서 교수님이 등장하셔서 아주 머리부분에서부터 “이러한 영화들의 기본적인 시각은 성과 폭력이 해방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단지 이것은 남성 주체의 시각에 한정되어 있다” 라는 것을 명확히 선포하시는 것을 보면, 역시 2019년에 출시된 작품인 것이 맞구나 하는 감회가 새롭다. 불과 7, 8년전에 출시되었어도 이러한 로망 포르노식 “혁명적” 시선은 그냥 찬양의 대상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들수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데서 교수님처럼 짓소오지를 포함한 (오오시마 나기사 같은 “명장” 등도 당연히 그 일부다) 당시의 일본 영화인들의 남성위주 사고방식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을 견지하면서 감상해도, 짓소오지 아키오의 제 작품들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는 충분히 그 비판을 견뎌내고 많은 것을 남겨준다. 무엇보다도 짓소오지 감독의 일상적이면서도 표현주의적인 미장센, 카메라가 원경의 캐릭터들을 향해 들입다 질주하곤 하는 입이 딱 벌어지는 과격한 테크닉, 모래 사장이 마치 흐느적거리면서 녹아내리는 것처럼 파도에 흘러가는 모양새 등 괴이하면서도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탐미적인 영상들이 관객의 뇌수에 겹겹히 촉수를 둘러싸고 놔주지를 않는다. 일단 컬렉션에는 [만다라], [무상 (無常)], [노래 (哥)]이렇게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왜인지 일반적 사양의 내용에는 들어있지도 않지만 [노래]의 블루 레이에 이 “불교 삼부작” 이 아닌 [얕은 꿈을 꾸다 (浅き夢見し)]가 부록처럼 따로 수록되어 있다. 어떻게 보자면 불교 삼부작보다도, 헤이안 시대라는 귀족적이고 유교적 도덕에서 자유로운 과거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 한편이 짓소오지의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같이하는 과격한 탐미성의 극단을 볼 수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들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던 간에, 이러한 작품들을 이러한 정갈하고도 광적인 집요함이 느껴지는 컬렉션으로 내놓을 수 있는 회사는 이 지구상에 애로우 밖에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크라이테리언이 아무리 뻐대겨 봤자다. 


6. 우회 Detour (1945,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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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에 올린 단평에서 발췌한다: 이 한편을 보기 전까지는 "내가 한 억세게 운이 안좋은 사나이를 아는데요..." 로 시작하는 얘기는 꺼내지도 마실 것. 20년대부터 독일에서 영화 활동을 한 ‘B급영화의 왕’ 에드거 울머의 우주의 불합리에 맞잡아 수십년을 갈무리한 울굴과 분노가 마치 독감 바이러스처럼 관객들의 뇌수를 침입하는 한편이자, 필름 느와르의 가장 순수한 규정을 학자들과 평론가들이 찾아 헤멜 때 신기루처럼 그들의 각막 위에서 어른거리는 타이틀이기도 하다. 사실 주연 배우들이 조금만 연기를 더 잘했더라면... 이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랬다면 아마 실제로 보다가 숨통이 막혔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타이틀은 사실 샤우트! 팩토리나 올리브 필름스 (또는 영국의 유레카!) 에서 내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크라이테리언에서 4K 복원판을 출시했다 (단, 당시의 수준으로 봐도 초저예산 프로덕션이었던 한편이니까, 화질이나 음질에 대한 기대 수준은 일정의 조정이 필요하다. 


5. 아이다 루피노 필름메이커 컬렉션 The Ida Lupino Filmmaker Collection (1949-1953, Region A, Kino Lo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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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기 헐리웃에도 여성 감독이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항상 거의 유일한 “예스” 란 답을 가능케 해주는 존재로서 알려졌던 명배우 아이다 루피노 (물론 북미 영화사를 공부해보면 헐리웃의 초창기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여성 제작자-감독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의 역사가 그 이후의 남성들의 “역사 다시 쓰기” 에 의해 말끔히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거리고) 는 각본가이자 제작자였던 콜리에 영과 결혼을 동반한 파트너쉽을 유지하면서 독립 제작자로서도 활약했고, 그 과정에서 [히치 하이커] 라는 유명한 필름 느와르의 수작을 감독했다. 키노 로버에서 UCLA 의 복원팀의 도움을 받아 출시한 이 컬렉션에서는 이 한편에다가 그가 각본과 제작에만 참여한 [아무도 원하지 않는 Not Wanted], 각본과 감독을 맡아서 했으나 출연은 하지 않은 [두려워하지 말라 Never Fear], 감독과 주연에 이름을 올린 [중혼자 The Bigamist] 가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아마비라는 지금은 거의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리지 않지만 한 때는 많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병과 맞서 싸우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차분하면서도 올곶게 그려낸 [두려워하지 말라] 가 올해의 “내가 여태까지 몰랐던 훌륭한 영화” 의 탑 랭크에 들어가는 “발견” 이었다. 그리고 소책자에는 이례적으로 주로 도큐멘터리에 관한 글을 썼지만 이른 시기부터 아이다 루피노의 “작가성” 을 주창했던 [버라이어티] 지의 로니 샤이브 평론가의 (샤이브 자신도 2015년에 타계) 거의 논문이라고 해도 좋을 장대한 스케일의 평론이 수록되어 있다. 키노 로버 또한 어디에도 꿀리지 않고 약진한다! 


4. 클루니 브라운 Cluny Brown (1946,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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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나의 리스트에는 도무지 예상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오래전에 만들어진 (내 기준으로 보면 1960년대 이후는 “오래전” 이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보석같은 “소품” 이 항상 다른 유명작들을 누르고 진입하곤 하는데 (2017년 리스트에서는 1933년 제작의 특촬재난영화 [대홍수]— 이건 사실 내용으로 따져보면 “작은 영화” 는 아니긴 하구먼— 였고, 그리고 작년 리스트에서는 프랭크 보르재기 감독의 [Moonrise] 가 그런 한 편이었다), 금년도 어김없이 이, 보고 있노라면 맑은 물이 흐르는 샘물에 머리를 담그는 기분이 드는, 아름답고 명랑한 고전 코메디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구나. [짓소오지 아키오 삼부작] 이 여성을 다루는 시선에서 명백한 시대적 한계를 노정했다면, 그보다 이십 몇 년 전에 만들어진 이 [클루니 브라운] 은 사뿐 사뿐히 건너 뛰면서 전개되는 솜털처럼 가벼운 코메디인 척 하면서, 영국의 계급적 차별, 그리고 여성의 자아실현—그냥 “사랑” 을 통해서 “행복” 을 찾는 그런 게 아니고 부엌의 수채구멍이 막혀버리면 렌치를 들고 가서 파이프를 꽝꽝 두들겨 패서 그것을 뚫을 수 있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 을 막아버리는 답답한 남성(결혼) 중심의 사회를 마음껏 비꼬아 뜯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한편은 거장 에른스트 루비치의 최후의 감독작품이란 말이지. 그리고 배관공이 되고 싶어하는 소녀 클루니 브라운을 연기하는 제니퍼 존스의 말도 안되는 사랑스러움이란… 이러한 사랑스러움은 아마도 이제는 고전 미국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제는 멸종되고 없어져버린 생물 종 같은 것이 아닐런지. 


3. 고지라 쇼와기 작품 컬렉션 Godzilla: The Showa-Era Films (1954-1975,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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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컬렉션에 대해서는 별 따로 할 말이 없다. 고지라를 위시한 괴수나 일본 특촬물을 애정하지 않는 분들께서도 이러한, 이미 보고 또 보고 또 봐서 뇌수에 거의 프레임 별로 저장이 된 옛날 괴수영화들을 디븨디로 사고, 블루 레이로 사고, 또 다시 하나의 컬렉션에 무지막지하게 근사한 아트워크들을 첨부해서 판다니까 또 고액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나를 비롯한 이 컬렉션을 보면 숨이 꼴깍 넘어가는 이들의 성향을 이해하실 수 있을것인지 궁금… 하지는 (사실) 않다. 다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고지라 컬렉션 정도가 되면, 일본꺼 무조건 좋아하는 오타쿠들이 컴컴한 동굴에 박혀서 마른 침 삼키면서 충혈된 눈으로 감상하는 그런 상황을 상상하시면 곤란하다. 오타쿠들 서비스 하느라고 크라이테리언에서 토오호오와 그 귀찮고 힘든 판권 교섭을 하고, 또 일급 일러스트레이터들을 불러서 초일급의 외장을 장치한 것은 아니지 않겠나. 아무튼 거대한 그림책처럼 좌우로 펼쳐지면 블루 레이들이 꽂혀 있는 디자인하며… 이런 물품을 크라이테리언이 아니면 누가 내놓겠습니까요. 너불거리지 말고 넙죽 엎드려 감사하자! 


2. 울트라 Q ウルトラQ (1966, Region A, Mill Creek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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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당 2019년의 “일본 장르물 컬렉션”자리는 상기의 쇼오와 고지라 컬렉션이 차지해야 했던 것인데, 아니 이럴수가. 무슨 종류의 버섯이 들어간 만두를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고전 특촬 TV물과 헤이세이 가메라 시리즈 등을 나름 준수한 화질로, 그러나 별로 특별한 화질 관리는 없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던 밀 크리크에서, [울트라맨]과 [울트라 세븐]을 블루 레이로 야심차게 출시했다 (보아하니 [돌아온 울트라맨] 과 [울트라맨 A]를 위시해서 60-70년대 고전기 울트라맨 시리즈를 다 블루 레이로 내놓을 계획인 듯 하다). 단, [울트라맨] 의 경우 여전히 디븨디가 지녔던 저급 트랜스퍼의 문제점을 계속 끌어안고 있다는 점은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밀 크리크의 회심의 카드는 [울트라맨] 도 [울트라 세븐] 도 아니었다! 1966년에 아마도 [환상특급] (타이틀 뮤직은 그대로 [환상특급] 의 아방가르드한 멜로디를 재즈풍으로 어렌지한 느낌이다) 을 벤치마킹하면서, 동시에 매 주마다 극장용 영화에서라야지 볼 수 있을 만한 괴수-괴현상들을 TV 스크린으로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시작된 [울트라 Q] 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 깜짝 놀랄 정도로 수준이 높은 전설적인SF 시리즈를 28에피소드 전편을 망라하여 출시해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트랜스퍼의 퀄리티가 [울트라맨] 등에 비하여 너무나 좋다! 쯔부라야 프로덕션의 속사정이 무엇이었는지, 왜 [울트라 Q] 만 이렇게 고퀄의 트랜스퍼가 가능했는지, 여러가지 이론이 들려오지만 그건 다 그렇다 치고, 지금 고전기 일본 특촬물의 독특한 매력을 가장 잘 전달해주는 작품을 영화 TV 막론하고 하나 고르라고 누가 시킨다면, 나는 [울트라 Q] 를 고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삼아 일본에서는 역시 아무런 서플이 없는—당연히 영어 자막도 없다— 4K UHD 버젼이 출시된 모양인데 검색해 보니 가격이 7만7천엥— 7, 700 엥이 아닙니다요— 이다. 그림의 시루떡이란 바로 이런 거;;; ) 


1. 클루트 Klute (1971, Region A,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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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한국어 제목은 [콜 걸]이다. 영화의 내용을 고려하면 딱히 틀린 제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쓰고 싶지는 않았으니 양해 바란다. 


매년 최고의 블루 레이를 선정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1970년대 (강박적으로 분류하자면 1968년부터 1977년까지가 되겠지만) 의 미국 영화—소위 말하는 “뉴 어메리칸 시네마” 를 포함하지만 사실 보통 이 분류에 해당 안되는 타이틀들도 다 포함한다—들은 왜 이리 위대한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이 작품들은 예술적 권위나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시기의 다른 나라의 영화들— 1930년대 스웨덴, 네오리얼리즘기의 이탈리아, 누벨 바그가 휩쓸던 시기의 프랑스, 전후 일본 영화의 황금기—에서도 개별적으로 고르자면 이 시기의 미국영화작품들을 능가하는 타이틀들을 얼마든지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왜. 왜!  70년대 미국영화는 이다지도 위대한 것인가. 왜 70년대 미국영화를 보면 영화라는 매체의 하나의 궁극적인 도달점을 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인가. 왜 그들보다 더 정직하고, 진지하고, 악을 악을 쓰면서 사회적 규범과 상식에 도전하면서, 그러나 그러면서도 관객들을 비웃고 그들을 소외시키지는 않는 활동사진들을 볼 수 없는 것인가. [클루트] 를 보면서, 그 “이념” 이나 “정치적 입장” 따위가 아닌, 그 총체적인 영화— 제인 폰다와 도널드 서덜런드, 로이 샤이더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의 연기를 위시하여— 의 “존재” 에 압도당하여 가슴이 꽉 막히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는 그런 경험을 하신 (또는 하시게 될) 젊은 “한국” 의 영화인들 분명히 존재하시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분들에게 축복이 있을 지언저. 미래의 영화는 그분들의 것일지니. 


그런 연유로 금년의 제 1위는 크라이테리언의 [클루트] 에 갔다.  미국 영화는 위대하고 특히 70년대 미국영화는 진짜 진짜 위대하다.


기타 베스트 카버 베스트 레벨 등등 엑스트라 코멘트는 생략한다. 혹시 기대하신 분들이 계셨다면 (설마?) 죄송합니다. ^ ^ 


읽어주신 분들께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언제나처럼 물리매체의 융성과 발전을 기원하며, 애로우 비데오, 인디케이터, 샤우트 팩토리, 몬도 마카브로, 영상 자료원, 키노 로버, 올리브 필름스, 세버린, BFI 등 고전 영화를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가장 완정하고 원래 의도되었던 모습으로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든 레벨들에게 언제나처럼 머리를 조아려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영화의 보존과 복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옛날” 영화를 잊어버리고 더 이상 찾지 않게 되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 영화” 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고 역사의 뒤켠으로 스러지게 되는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제발, 제발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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