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001- )

2010.03.17 09:20

DJUNA 조회 수:9718

출연: Kiefer Sutherland, Leslie Hope, Sarah Clarke, Elisha Cuthbert, Dennis Haysbert, Penny Johnson, Carlos Bernard, Daniel Bess

연속극은 텔레비전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이어지는 연재 영화를 보기 위해 주말마다 극장을 찾았으니까요. 하지만 영상 매체의 연재물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역시 텔레비전이라는 기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연속극이 지금의 완성된 형식을 갖춘 것도 텔레비전 덕택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연속극은 극장용 영화와 차별화되는 진정한 텔레비전 예술인 것입니다.

그러나 연속극의 형태와 발달 과정은 나라나 문화에 따라 달랐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는 연속극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처럼 해외 수출이나 신디케이트 재방송이 중요시되는 나라에서 연속극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같은 설정을 이용한 에피소드들이 연결된 시추에이션 시리즈들이 더 유리했던 것이죠.

미국 텔레비전 저녁 시간 대에서 연속극의 개념이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트윈 픽스]의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엑스 파일]도 음모론을 기중으로 삼은 커다란 스토리를 등장시키면서 연속극의 힘을 빌어왔고요. 시즌마다 독립된 큰 스토리를 끌어가는 [버피]도 일반 시리즈와 연속극의 어정쩡한 중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런 유행은 2001년 시즌에 두 편의 히트 시리즈가 연속극을 선언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우선 [앨리어스]가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성격만 따진다면 일반 시리즈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지만, 결말을 몇 분 일찍 잘라 나머지 부분을 다음 편 도입부에 붙이는 트릭 덕택에,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클리프행어로 끝났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늘 다룰 [24]인데, 이건 [앨리어스]와 달리 하나의 연속된 사건을 다룬 진짜 연속극이었습니다. [앨리어스]와 달리 [24]가 그처럼 초반에 고전을 했던 건, 미국 시청자들이 그 순수한 연속극의 개념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종 기본 개념이 작품 자체의 질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24]도 그런 예 중 하나였습니다. 그만큼이나 개념의 힘이 강했던 거죠. 24회로 구성된 시리즈는 자정에서 시작해서 다음날 자정에 끝났으며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은 실시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중간 광고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 에피소드의 방영시간은 45분 정도였지만 말입니다.

시즌 1은 데이빗 팔머라는 상원의원의 암살 기도를 소재로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잭 바우어는 태러대응팀이라는 연방 기관에서 일하는 요원인데, 기관 내에 내부 첩자가 있고, 데이빗 팔머의 암살 기도가 있을 거라는 소식을 알게 된 바로 그 날, 딸 킴벌리가 납치되고 맙니다. 바우어는 기관과 적들 모두에게 쫓기면서 암살도 막고 가족도 구해야 합니다.

시즌 1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엇갈리는 복잡한 구조였습니다. 당연했어요. 일단 1시간짜리 단발 에피소드와는 달리 24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끌어가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실시간 진행이라는 트릭을 위해서도 여러 스토리 라인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편집으로 지루한 장면을 그냥 잘라낼 수 없었으니까요. 불필요한 장면을 잘라내는 대신 병행 진행되는 다른 스토리 라인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런 서커스와도 같은 설정 때문에 수많은 문제점들이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빈 시간을 커버하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설정이 삽입되기도 했고 (바우어의 아내 테리의 기억상실 소동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캐릭터가 짜증날 정도로 과장되기도 했습니다 (팔머 의원의 아내 셰리를 생각해보세요.) 종종 스토리는 방향을 잃고 방황했으며, 마지막 반전은 설득력이 떨어졌지요.

24시간 동안 진행되는 단일 사건이라는 설정 자체의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반 년 동안 시리즈를 본 시청자들은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킴이 납치된 뒤 다시 구출되기까지의 이야기도 감당하기가 힘들었고요. 서스펜스는 어느 순간엔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그 결정적인 해소까지 10주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에요. 그래도 1주일에 2회를 볼 수 있었던 우리들은 편했던 셈입니다.

그러나 [24]는 여전히 한 번 감상할 가치가 있는 시리즈입니다. 일단 시리즈는 '24시간 실시간 진행'이라는 개념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구체화시켰습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식 화면 분할처럼 이런 개념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스타일도 갖추고 있었고요, 캐릭터들은 24시간을 끌만큼 인상적이었고 그들의 고민과 고통은 충분히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정도로 강했습니다. 종종 너무 심해서 짜증이 날 정도라 문제지, 서스펜스도 강렬했고요. 아마 시즌 1의 마지막 회가 끝났을 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마치 몇 개월을 끈 힘겨운 여행을 한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겁니다. 경험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다 보고 났을 때는 꽤 뿌듯한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꼭 텔레비전 시리즈가 가볍고 소화하기 쉬운 오락만 선보일 필요는 없지요. 그런 면에서 [24]는 자기 역할을 하는 좋은 오락물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시리즈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입니다. 1시즌 정도는 괜찮았습니다. 우린 이 이야기를 한 남자가 평생에 한 번 정도 겪을만한 엄청난 사건이라고 여기며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즌 2에서도 같은 긴장감으로 시리즈를 볼 수 있을까요? 시즌 3은 어떨까요? 계속 이런 포맷이 이어지면 작위성이 오히려 심해지지 않을까요?

모르겠군요. 시즌 2를 봐야 평가가 가능하겠지요. 지금까지 분명한 건 [24]라는 시리즈가 시즌 1을 통해 이룬 업적만 해도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24]는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형식 실험이 저녁 시간대의 액션 시리즈에서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으니까요. (02/08/08)

기타등등

우리나라에서는 OCN 채널을 통해 1시즌이 방영되었습니다. 곧 미국에서는 DVD로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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