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바라보다가 (2009)

2010.03.21 22:04

DJUNA 조회 수:9867

각본: 정진영, 김의찬 연출: 기민수 출연: 황정민, 김아중, 주상욱, 전미선, 이청아, 백성현, 윤주상, 김광규, 연미주, 이수영, 정동환, 이해영, 박하선

1. 

[그저 바라보다가]는 [노팅 힐]의 영향을 받은 올해 두 번째 한국 드라마로, 평범한 우체국 직원과 영화배우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설정만 따지고 보면 [노팅 힐]보다 프랑스 영화 [발렛]과 더 비슷해요. [발렛]에서 수퍼모델 엘레나가 유부남 백만장자와의 스캔들을 감추기 위해 주차요원 프랑스와의 애인인 척 한다면, [그저 바라보다가]의 주인공인 영화배우 한지수는 서울 시장 후보의 아들인 김강모와의 스캔들을 감추기 위해 우연히 만난 우체국 직원 구동백과 위장 결혼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이 진짜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순서고요.

[그저 바라보다가]에서 가장 눈에 뜨였던 것은 캐스팅입니다. 영화배우 황정민의 첫 텔레비전 드라마이고, [미녀는 괴로워] 이후 줄창 CF만 찍었던 김아중의 복귀작이죠. 초반 시청률이 안 좋았고 두 배우의 연기가 특별히 튀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실패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시청률은 그 뒤 상승했고 드라마가 끝날 무렵엔 두 배우에 대한 호감도도 꽤 높은 편이었지요. 그리고 원래 그렇게 대단한 연기 과시가 필요한 역할도 아니었어요. 이런 역할들을 연기할 때 여분의 에너지를 투여하면 그게 바로 사족이죠. ‘연기력’을 입증하는 게 배우가 할 일의 전부는 아니란 말입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스타의 연인]과 비교한다면, 전 [그저 바라보다가]가 더 좋았습니다. [스타의 연인]이 한류 드라마의 자의식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면, [그저 바라보다가]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일 없이 그냥 가볍게 움직였지요. 어떻게 만들어도 절대로 걸작이 될 수는 없는 드라마였지만 모든 드라마가 전부 걸작이 될 필요는 없겠죠. 비교대상인 [발렛]과 비교해도 [그저 바라보다가]가 더 낫습니다. 적어도 캐릭터와 사건들이 훨씬 재미있었어요.

2. 
[그저 바라보다가]라는 제목의 주어를 보나, 줄인 제목인 [그 바보]를 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화려한 영화배우의 가짜 남편이 된 우체국 직원 구동백인 것처럼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평범한 남자여야 하겠죠.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진짜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선택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구동백이 아니라 영화배우 한지수거든요. 구동백의 역할도 크지만 이 사람의 갈등과 고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지수에 종속되어 있지요. 그도 조금 변화하고 성장하긴 하지만 한지수에 비할 바는 아니죠.

그럼 한지수의 드라마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구동백과 남자친구 김강모를 비교하면서 조건을 버리고 사랑과 인간성을 택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지수의 드라마는 오히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가깝습니다. 여자주인공이 치밀한 고민과 계산 끝에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상대를 찾아 결혼하는 것이죠. 확실히 구동백이 김강모보다 나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한지수가 그를 선택하는 건 아닙니다. 더 좋은 남편감이기 때문에 선택한 거죠.

얼핏 보면 구동백은 김강모와 경쟁이 안 됩니다. 구동백은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외모의 아무개에 불과하지만 김강모는 집안도 좋고 돈도 많고 잘생겼죠. 대부분 사람들은 김강모가 더 좋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한지수라는 캐릭터의 입장에서 보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다시 한 번 볼까요? 김강모와 한지수는 이미 7년 째 사귀는 중입니다. 아무리 남자친구가 잘생겨도 슬슬 지겨워질 때죠. 둘 사이의 사랑이 계속 살아있으려면 외모를 넘어서는 특별한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김강모에겐 그런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이나 취향이 맞는 것도 아니죠. 집안이 좋다지만 그 집 아빠는 자길 아들의 애첩 취급하고 있고 만약 결혼한다고 해도 엄청난 스캔들과 마주칠 게 뻔합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연예인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겠죠. 돈? 한지수는 이미 돈이 많습니다. 보나마나 CF로 몇 십억 이상 벌었겠죠. 게다가 이 사람은 돈 드는 취미도 없고 외출도 잘 안 합니다. 돈 쓸 일이 없는 사람이에요. 남편의 돈에 그렇게 의지할 필요가 없지요. 이렇게 보면 김강모는 도대체 장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동백의 가치를 볼까요? 일단 그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냥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예의바르고 깍듯하고 (그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여자주인공에게 존댓말을 하는 몇 안 되는 한국 드라마 남자주인공입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알지요. 게다가 요리도 잘하고 살림 솜씨도 좋습니다. 대단한 직장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직장은 안정되어 있고 역시 낭비벽 따위는 없습니다. 성격도 맞고 취미도 비슷하며 무엇보다 같이 있으면 김강모와 있을 때보다 좋죠. 거슬리는 친척도 없습니다. 시댁 식구라고 있는 사람은 싹싹하고 귀여운 구동백의 동생 민지 정도인데, 그 사람은 한지수를 거의 여신처럼 숭배하고 있지요. 절대로 평범한 아무개가 아니에요. 엄청 근사한 남편감인 겁니다. 그만큼 희귀한 종자이기도 하고요.

자, 이렇게 보면 한지수의 입장이 겉보기와 정반대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한지수와 김강모를 엮는 것은 이타적인 의무감입니다. 김강모가 그 동안 한지수의 후견인 노릇을 해왔고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니 자기도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7년 사귄 애인의 의리도 있고요. 하지만 구동백은 [오만과 편견]의 피츠윌리엄 다시가 엘리자베스 베넷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지수의 짝으로 디자인된 사람입니다. 심지어 구동백이 사는 ‘네모난 하늘이 보이는’ 낡아빠진 한옥집도 [그저 바라보다가] 버전 펨벌리죠. 아시겠어요? [그저 바라보다가]는 7년의 의리를 깨뜨리고 훨씬 조건 좋은 남자를 선택하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3. 
왜 사람들이 [그저 바라보다가]를 막장 드라마와 대비되는 착한 드라마, 심지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암만 봐도 그런 결백함과 거리가 먼데 말이죠.

설정부터 막장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발렛]보다 더 심각해요. 스캔들을 막기 위해 전혀 상관없는 사람과 위장 결혼하는 설정이 막장이 아닌가요? 시장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아들을 언론재벌 사위로 보내는 아버지의 설정은 막장이 아닌가요? 그런 상황 속에서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며 두 여자 모두를 엿 먹이려는 남자 역시 막장이 아닌가요? 민지 친구 승은이가 구동백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이혼하면 대타로 넣어야겠다는 한지수의 아이디어 역시 엄청난 막장 아닌가요? (전 마지막이 가장 심각한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이것이 구동백의 건전함과 대비를 이루기 위해 넣은 장치이며 이 막장 설정들은 드라마가 전개되는 동안 파괴되거나 극복된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다른 막장 드라마도 마찬가지죠. 게다가 막장성을 극복했다고 보기엔 주인공들이 그리 건전치가 못합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상당한 수준의 변태들이에요. 네, 변태들요. 그리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쾌락을 얻는 사람들요. 여기서 예외가 있다면 민지, 승은, 강모의 약혼녀인 최수연 정도예요. 물론 이들 주인공들을 다 합쳐도 지금 손녀 또래의 처자와 연애질 중인 [찬란한 유산]의 SM 여왕벌 장숙자 여사와 간신히 맞먹을 정도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하죠.

역시 얼핏 보기에 이들 중 가장 변태는 김강모처럼 보입니다. 이 친구는 도대체 똑바른 부분이 없어요. 대가 센 아버지에게 휘둘리는 우유부단한 아들이라고 동정할 수는 있지만 그건 너무 사람을 간단하게 본 거예요. 암만 봐도 김강모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모호한 입장을 이용해서 두 여자로부터 가학적인 쾌감을 느끼는 거죠. 그가 한지수와 최수연 모두에게 얼마나 무례하게 구는지 보셨나요?

하지만 변태로서 그는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더럽고 유치하고 짜증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그게 정상이거든요. 김강모처럼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다루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그는 그냥 자기가 아는 세상의 규칙을 따르는 겁니다. 당연히 변태성은 생각보다 낮아요. 그보다 더 재수 없는 건 짜증나는 음모가인 그의 아버지 김정욱이지만 그의 변태지수는 더 낮습니다. 재수 없는 인간이라는 게 변태라는 말은 아니죠. 여기서 진짜 변태는 개별 구성원들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인 것입니다. 직원이 유명 연예인과 결혼하자 그의 사생활에 멋대로 이용하며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윤국장도 변태스럽게 보이지만 그도 자신에게 주어진 대한민국 직장문화의 권력을 정당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게 뻔하므로 그의 변태성보다는 대한민국 직장문화의 변태성이 더 크죠.

오히려 개별 변태지수가 높은 건 한지수와 구동백입니다. 드라마 초반의 한지수를 보세요. 지옥 밑바닥에서 자기 몸을 막 굴리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나 사회적 위치로 보나, 맘에 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미래가 없는 게 뻔한 관계를 질질 끌면서 재수 없는 남자친구의 애첩 노릇이나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상태를 연장시키기 위해 애꿎은 우체국 직원을 끌어들여 위장 결혼을 하고요. 매저키스트도 아니면서 이런 자학적인 게임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구동백은 어떤가요? 만약 정말 구동백이 주인공이었다면 [그저 바라보다가]는 훨씬 위태로웠을 겁니다. 그는 그의 세상에서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진 스타를 숭배하고 그 사람에게 헌신적인 남자예요. 좋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위험한 스토커처럼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죠. 척 봐도 세상의 규칙을 위반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사는 ‘정상적인’ 세계에서 그는 한지수 근처에 가서도 안 되는 사람인 겁니다. 심지어 전 별 재미가 없었던 드라마 초반에 ‘이 모든 것이 구동백의 음흉한 음모다!’라는 가설을 밑에 깔고 이야기를 재조립하고 있었답니다. 전 이 가설이 여전히 먹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밀고 갈 생각은 없지만.

게다가 이 사람은 보기보다 음흉하고 능글맞습니다. 드라마 초기에 사람들은 구동백이 천사표 바보라고 놀려댔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천사도 바보도 아니에요. 분명 착한 사람이긴 하지만 한지수를 욕망하고 있고 쟁취하려고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김강모가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의 희생과 헌신은 진심이지만, 그는 그것들이 한지수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정말로 이상한 바보입니다. 그의 희생 몇몇은 철저하게 형식적인 것이에요. 특히 마지막 회의 ‘이혼 소동’은 의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한지수가 결코 그걸 그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나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수를 둔 것이죠.

이들의 결혼 생활 역시 변태의 경계선을 달립니다. 하긴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 자체가 그렇죠. [그저 바라보다가]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엔진은 단 하나입니다. 권력이죠. 그 권력은 김강모나 김정욱이 가진 사회적 권력이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정보입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어떤 사람이 상대방의 진실을 알아차리고 그 사실을 상대방에 대한 권력을 잡기 위해 사용한다’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러는 동안 사람들의 권력 관계는 타다닥거리면서 계속 바뀝니다. 예를 들어 구동백이 누군지 모르는 척하고 있는 김강모는 구동백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앞에서 남편인 척 쇼를 하고 있는 구동백이 자신의 권력 하에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구동백은 김강모의 정체를 알고 있으므로 실질적인 권력은 구동백에게 있습니다. 이러다 점점 한지수가 구동백에게 기우는 것 같자, 김강모는 잽싸게 수를 두는데, 그것은 구동백에게 자신이 한지수의 남자친구임을 밝혀서 구동백이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권력을 사전에 무효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군요. 그런데 이런 게 매 에피소드마다 서너 개 씩 있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더 복잡해집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구동백이 한지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지만요. 그가 그처럼 과감한 수를 연달아 둘 수 있었던 것도 이 정보의 권력에서 그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는 시작부터 아름다운 유명인의 인생을 흔들 수 있는 권력을 잡고 있어요. 선량한 사람이니 그걸 이기적인 목적에 이용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겠지만 그래도 권력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는 겁니다. 한지수가 지불하겠다는 물질적 대가를 천진난만하게 거부하는 동안 그의 권력은 점점 더 커지죠.

드라마가 본궤도에 오르면 이 권력 게임은 유희가 됩니다. 특히 구동백과 한지수에겐 거의 성적인 전희입니다. 여러분은 중반 이후 이 드라마의 서스펜스가 이상할 정도로 숨이 짧다는 걸 눈치 채셨습니까? 순진한 사람인 줄 알았던 남자가 원래 남자친구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동생의 사주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거나, 가짜 결혼임이 제3자에 의해 폭로되는 것 설정 같은 건 정상적인 드라마에서는 몇 회를 끌 수도 있는 떡밥입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고민도 엄청 할 거예요.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 갈등이 길어야 20분 안에 종결됩니다. 어떤 건 에피소드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리죠. 왜일까요? 그건 등장인물들이 사건의 무게를 더 이상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겐 이게 모두 놀이예요. 동생의 음모를 알아차린 한지수는 무엇을 하나요? 몇 초 고민을 하다가 자신이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이용해 응큼한 두 남자를 오히려 역습합니다. 한지수에겐 고민보다 게임에서 자신이 우위에 섰다는 것이 더 중요한 거죠. 하긴 그들의 결혼 생활 자체가 게임 아닌가요? 가짜 결혼은 소꿉장난이며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그리고 한지수와 구동백은 이 게임에서 죽이 굉장히 잘 맞습니다.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밖에.

그럼 이 드라마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변태질에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는데, 기왕 변태질을 할 거라면 자기 정신과 몸에 좋으며 민폐도 적은 건전한 변태질을 택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죠. 드라마의 연애 관계에서 우위에 서려면 변태적인 사회에 의존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변태성을 발전시키는 게 더 유리하다는 점도 언급해야겠군요. 나름 열심히 변태질을 했는데 제대로 된 변태취급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낭비인가요. (09/06/19)

기타등등

1. 이 드라마에서 김정욱은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야당후보인데, 이 드라마의 아이디어가 몇 년 먹은 것임을 고려해보면 의미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하여간 드라마는 시장선거날에 끝이 나고 중반까지 악역을 맡았던 배기자도 투표를 하고 왔다고 우쭐거리는군요. 두 주인공들은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 모르겠습니다.

2. 그렇게 현실세계를 충실하게 묘사한 작품은 아닙니다. 김정욱의 수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위험하죠. 그만큼 노골적으로 속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영화 찍으면서 한지수처럼 날래날래 놀 수는 없어요. 그렇게 굴면 몇 년 동안 매스컴과 스태프들의 집단 뒷담화 대상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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