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9 15:05
대선이 끝나고 이삼일 후에 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재인은 대통령 후보감이 아니고 대통령감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재인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인간적인 매력, 뛰어난 외모, 겸손하고 우직한 성품, 살아온 단단한 이력 들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매력적인 대통령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노무현은 매력적인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대통령 후보였죠.
어떤 이가 대통령 '후보감'이란 말은 그가 매력적인 정치인이라는 말과 유사합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언어입니다. 노무현은 아주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공들인 연설까지 모든 영역에서 리버럴 정치인이 가 닿을 수 있는 최상의 지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되고 녹음 상태가 좋지 않은 동영상들에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빠뜨림 없이 120% 전달됩니다.
그를 보면 내가 인간 대 인간으로 그를 마주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는 어떤 이념이나 가치관의 전달자 또는 화신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 오롯한 개인으로 나를 마주 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뻐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는, 그가 자신의 성공과 좌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오는 사람.
그 느낌을 형성하는 핵심은 그가 가진 언어였습니다. 문장이 길건 짧건, 상대가 어른이건 아이건, 그가 발화하는 언어는 마치 여러 차례 강한 교정을 거친 것처럼 초점이 명확하고 의도가 분명하며 간결하고 함축적이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언어의 직조를 통해, 대화와 토론과 연설과 설득을 통해 한 국가를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은 노무현과 똑같은 영역의 경쟁자였습니다. 그가 언론에 그렇게 예민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과거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그의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외모나 보여지는 모습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언어로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노무현의 어록과 대화, 연설, 유서를 기억하고 곱씹었습니다. 그랬던 그의 언어에 대한 기억을 죽이기 시작한 이들은 노무현의 이미지를 자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저 유명한 팬덤, 어둠의 노사모들입니다. 그들은 노무현을 페티시즘의 대상으로 삼고 위험한 유희를 즐겼지요. 지금은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도 그의 언어를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인지, 지금 그와 가장 닮은 사람은 정말로 누구인지, 떠올리기 싫어합니다.
정치인의 성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입니다. 특히 리얼타임으로 전달되는 입말. 상대방에게 최상의 호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고 최악의 적대를 갖게 할 수도 있으며, 지지자들로 하여금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운동해 가게끔 만드는 언어.
그렇다면 대통령의 성패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은 언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재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노무현과 달리 자신의 지지자들을 '언어'로 열광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한다고 노무현처럼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습니다. 이미지? 이미지는 언어와 달라 수동적인 것입니다. 그는 지지자들의 덕질로 생산된 이미지들과 자발적 서포터들이 모아놓은 미담들, 자가생산되는 신화들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많은 지지자들은 일베처럼 이미지의 페티시즘에 빠져 있지요. 정반대 방향의 페티시즘 말입니다.
문재인과 지지자들의 관계는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문재인의 성격으로 봤을 때 그의 입장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의 위상은 다른 국민들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게 맞습니다. 노무현은 큰 착각을 했습니다. 그는 지지자들이 자신을 '감시하겠다'고 했을 때 애닳아했습니다. 그는 지지자들이 자신을 지켜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을 지지자들이 지킨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어떻게 지키나요? 한경오를 길들여서? 그렇게 기자들의 입을 막아 부정과 부패의 기미를 추적하는 일을 자기검열시켰을 때 가장 빨리 망하는 건 대통령입니다.
지지자들이 지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그 나라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어떤 사태가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대통령의 성공 확률은 높아질 겁니다.
2017.05.19 15:30
2017.05.19 15:38
'문재인이 지지자들에게 한겨레 그만 때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가정 자체가 노예적인 상상입니다.
한겨레를 때리는 것이 주체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권갑장, 조기숙, 김어준 같은 저급한 이데올로그들이 만들어놓은 담론 안에서 옹기종기 노는 일입니다. 전혀 생산적인 일이 아니죠. 그 시간에 차라리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해 공부하는 게 낫습니다.
2017.05.19 16:05
링크글에는 기껏 '부탁'이라고 씌여 있는데 노예적이라고 하시면 좀 핀트가 안 맞을 것 같습니다.
저 글들을 보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수준의 고찰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대통령 하나 바뀐 덕분에 한국의 정치는 호접지몽이나 매트릭스 설정, 평행우주 같은 수준까지 논의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2017.05.19 16:17
저는 자유의지를 그렇게 심오한 철학적인 의미로 쓰지 않았습니다. 아주 일상적인 맥락으로, "문재인과 무관하게" 자신들이 스스로 자유로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하는 일이란 의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호접지몽이니 매트릭스니 하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문재인이 하지 말라고 부탁하면 어떡하지' 하는 상상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재인이 왜 그런 부탁을 합니까. 문재인이 조직 보스도 아닌데.
2017.05.19 16:40
'문재인과 무관하게'라는 의미를 전달하시려는데 어떻게 '주체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라는 식의 표현을 끌어다 쓸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주체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데올로그들이 만들어놓은 담론 안에서 옹기종기 노는 일'이란 말과 '문재인과 무관하게'라는 말은
수사적인 과장 정도도 아니고 그냥 완전히 다른 말 같습니다.
https://twitter.com/moonriver365/status/817290452999077889
동지들, 과도한 비난은 하지 말자, 판단이 달라도 배려하자, 이런 글은 실제로 문재인이 쓴 적도 있고
다른 경쟁자들도 문재인에게 지지자들 좀 진정(?)시켜 달라고 얘기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터무니없는 상상이라니
그 말씀이야말로 뜬금없는 상상인 것 같습니다.
2017.05.19 17:37
경선판에서 상호 비난을 자제하자는 것과 일상시기에 '한겨레를 까지 말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죠. 전자의 경우처럼 상호비방 자제를 촉구하는 일은 당내 경선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사실 전례가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지금 지지자들이 비정상적으로 '한겨레를 까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문재인이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그 인지 자체가 힘들 겁니다. 여직 님도 인지하지 못하고 계시잖아요? 문재인은 경선에서도 지지자들의 문자폭탄 등에 관해 '양념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희정이 '문 지지자들이 정말 질리게 한다'라고 호소했을 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반응했죠.
그는 기본적으로 자기 지지자들이 자기를 위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자기가 보스인 것마냥 무슨 말을 해서 지지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타입입니다. 노무현이라면 달랐겠죠. 뭐 그렇다고 문재인 스타일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지지자들이 무슨 일을 하건 그건 자신과 상관없는 팬덤으로 놓아두고 자기 할 일만 꿋꿋이 하는 것도 대통령으로서 나쁘진 않습니다.
문재인이 지지자들에게 '한겨레 까지 마라'라고 부탁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엄청난 대격변이라고 봅니다.
2017.05.19 19:37
음 저는 저 글이 (한겨레는 마침 걸린 소재일 뿐) 문재인이 지지자에게 '뭔가를 하지 말라 부탁한다면' 어떨까라는 게 중점인 것 같은데
easter님은 '한겨레를 까는 것'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신 거군요.
굳이 '자유의지'라는 표현을 쓰신 것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실 건 없으신 건가요.
2017.05.19 16:04
조기숙은 진짜 문제 있어보임 진심
2017.05.19 16:21
조기숙도 문제고, 방송에 불러다가 그 찌라시 수준의 책을 광고해주는 김어준도 정말로 문제입니다. 요즘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손석희의 시선집중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 라디오를 종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2017.05.19 18:09
조기숙씨가 참 큰일하셨죠ㅡ ㅡ;;
2017.05.19 21:47
오골거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요 며칠 가장 찡했던 건 아래 댓글들을 봤을 때였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33525&s_no=333525&page=3
"근데 착한 명왕이 한겨레 그만 때리라고 부탁하면 어떡할거냐?"
- 우리가 앉힌 공무원이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 하고 싶은데로 하는거지!!!
- 이니 월급 내가 준당
- 문통이 시킨다고 시키는대로 하는 거,
그게 바로 파시즘이고 파시스트 집단인거지ㅋㅋㅋ
문빠들을 파시스트로 모는 놈들이 자가당착인 이유ㅋㅋㅋ
- 문재인이 뭐라고 내가 문재인의 말을 들어.
물론 합리적이고 들을만하면 참고하지만, 나의 행위는 내가 결정한다.
누구를 무슨 바보로 아나?
자기 할일도 자기가 결정하지 못하는 줄로 아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