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7 03:15
흔히 삶을 한 편의 영화에 비유하죠.
하지만 제 삶이 한 편의 영화라면 어떤 영화가 될 수 있을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저는 언제나 외롭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에 흥미를 느꼈죠.
외로운 사람이 사랑에 빠져 집착하고 괴로워하면 더 재미있었어요.
제가 좋아한 소설 속 주인공들도 다들 외롭고 불안하고 쉽게 상처받고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죠.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도,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도 다들 참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지만
저는 그렇게 괴로움의 끝까지, 초라함의 끝까지, 허무함의 끝까지 간 사람들이 참 좋았어요.
제 삶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면, 제가 좋아할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외롭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뭐 제 취향이 그러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그런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그 영화를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겠죠.
삶을 영화로 보는 관점은 의외로 제 삶의 많은 것들을 좀 더 쉽게 마주하고 견딜 수 있게 해줘요.
로맨틱 코미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제 삶이 로맨틱 코미디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겠죠.
긴장감 없이 느슨하게 흘러가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제 삶 속의 스릴러도 기꺼이 견뎌야 할 거예요.
주인공의 외로움과 불안, 두려움과 집착, 고통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생생한 순간들이 좋았다면
제가 삶 속에서 그런 감정들을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들,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들 역시 제 삶이라는 영화를
저에게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견딜 수밖에 없는 것들이죠.
제가 좋아하는 영화, 저에게 매력적인 영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화, 다른 사람에게도 매력적인 영화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제 삶을 적어도 저에게는 매력적인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품고 살 수 있다면, 제가 지금까지 겪은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외로움과 불안과 고통과 슬픔이 제 삶이라는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임을 인정하고
기꺼이 껴안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결국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
2018.05.17 08:39
2018.05.17 11:10
제 삶이 영화라면 어떤 영화일지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단언컨데 제 삶이 영화라면 이건 블랙코미디랍니다.
2018.05.17 12:02
제 삶에는 약간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상존하는데 ally 님의 블랙코미디는 그것보다는 좀 세련된 느낌이네요. ^^
희극과 비극이 적절히 섞인 영화 멋져요.
2018.05.18 01:27
전 아무리 생각해도 소재거리가 안돼서 내가 직접 각본 감독을 해야할성 싶군요.
2018.05.18 02:13
소재 거리가 안 되는 삶은 없지 않을까요?? 결국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죠.
자신의 삶을 멋지게 독창적으로 해석해 주면 흥미로운 영화가 되는 거죠.
감독으로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삶에 끌려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통해 얻고 싶은 게 무엇이고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떤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싶은지... 때때로 생각을 해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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