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0 22:13
1. 넷플릭스에서 연속극 라이프를 봤습니다. 미생을 끝까지 보지 못했던 저는 이 드라마가 미생보다 훨씬 현실적이라고 느꼈어요. 미생처럼 과장된 캐릭터들이 연일 사내 징계위원회에나 회부될 일들을 대기업에서 막장으로 저지르고 다니는데 아무도 말을 안하고,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 조차도 항의 한 마디 하지 않는 게 정말 현실적일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끝까지 보지 못한 이유는 속이 천불이 나서예요.
라이프의 등장인물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보였습니다. 제가 의사들 사회는 잘 모르지만 배경이 병원이 아니고 일반 회사로 가져온다고 해도 있을 법한 얘기예요. 이동욱 같은 인물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있겠죠. 모두가 조금씩 비열하지만 또 그들 모두가 완전히 경우없는 사람들은 아닌 정말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요. 그래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의 사주 갑질 비리가 터져나왔을 때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더랬습니다. 대체 저지경이 될 때까지 노조는 뭘 한거야? 그리고 대체 언제부터 저랬던거야? ..
2. 한글날을 맞이하여 저도 한글에 대한 발표를 했어요. 특별히 자원해서. 이 분야는 특히 IT쪽을 부각시키면 저희 회사처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많은 경우 흥미를 끌기에 좋은 주제이기에 적극 이용해보기로 했지요. 한글은 키보드를 어떻게 입력하는가? 전화기 문자 입력은? 타자기는? 등등의 주제를 미끼로 던진다면요. 문제는 이 발표를 하기위해 저도 공부를 해야했는데 그 과정에서 세종이 얼마나 천재적이었는지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성', '중성', '종성' 같은 한글을 설명할 때 필요한 용어들을 영어로 옮기기 위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언어학적 자료를 참고해야 했는데요, 그에 상응하는 언어학적 단어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 언어학 음운론에서 쓰이는 용어들이죠. 한글이야 원래 구조가 초성, 중성, 종성이니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해당 용어의 영어 버전인 'onset','nucleus','coda'는 언어학적 전문용어라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쓰는 단어가 아니죠. 로마자의 사용이 우리말처럼 음절기준으로 적용하는 문자가 아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에서는 소리의 기준을 음절로, 음절은 각 음소로 분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은 15세기에 이미 그것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글자를 만들었어요. 심지어 모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에 음가가 없는 'ㅇ'을 앞자리에 넣는 것과 비슷한 용어가 있었습니다. 'null onset'이라고. 정확하게 null onset은 onset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 (보통 onset은 자음으로 시작하므로) 을 말하지만 어쨌든 세종은 null onset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한글은 그 체계위에 만들어진거고요.
3. 유튜브에 숱한 외국인들의 한국 생활에 대한 비디오들이 돌아다니는데요. 그 중에 한결같이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게 '안전'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안전은 주로 소지품의 안전에 대한 것으로 '내 물건을 훔치려는 사람들이 없다. 얼마나 놀라운 사회인가?' 이런 것인데요. 심지어 카페 테이블에 노트북, 휴대폰, 지갑등을 놔두고 나갔다가 와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오오 개쩌는 한국 사람들이야... 이런 반응이예요.
물론 한국이 항상 지금처럼 안전했던 것 아니죠.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시대만 해도 한국 소매치기들 기술이 예술이여서 가방 속 주머니를 찢고 지갑을 빼가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들 했는데요.
제 생각에 지금과 같은 사회가 된 것은 CCTV의 공로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어디나 카메라가 있으니 뭘 훔쳐가도 곧 찾아낼테니 말이죠. 굳이 실패할 일을 수고할 이유가 없죠. 두 번째는 집단에 대한 신뢰감인 것 같아요. 어떻게보면 오지랖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그 오지랖이 명절에 '결혼은 안 하니?' 이런 걸로 나타나면 무지 짜증나고 생판 모르는 낯선 어른이 한 여름에 '아기 감기 걸리겠다. 왜 이렇게 얇게 입혔냐?'할 때도 짜증나는데 카페에 노트북 같은 걸 두고 화장실에 갈 때는 '저렇게 지켜보고 있는 눈이 많은데 설마 뭘 훔치겠어?' 라는 오지랖에 기댄 신뢰가 아닌가 합니다. 뭐 이건 그냥 제 생각일수도 있지만요. 제가 카페에서 소지품을 테이블에 놔 두고 어딜 갔다온다면 그런 생각으로 안심하고 다녀올 것 같거든요. 이 두가지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4. 욱일기이야기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일본의 2차대전에 대한 전쟁범죄는 거의 잊혀지고 희석되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정치인이나 역사학자, 지역전문가들이라면 모를까 일반 사람들의 지식은 거의 전무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원자폭탄의 희생으로 인해 2차대전 최대의 피해자 국가라는 인식은 엄청 강합니다. 당연히 욱일기에 대한 인식도 없고요. 유니온 잭이 팝 컬쳐로 소비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소비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걸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여야할까요? 그게 사실 훨씬 현실적이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서구 사회가 2차대전, 특히 태평양 전쟁을 조명할 필요가 있을 때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는 무엇을 사용할까요? 예, 그것도 욱일기입니다. 제가 책을 한권 샀는데 2차대전의 1급 전범들이 어떻게 면죄부를 받고 처벌을 피해나갔는가에 대한 탐사저널리즘 이야기인데요. 책표지가 욱일기로 되어 있습니다. 제 직장동료 중 2차대전때 일본이 호주 본토를 침략했을 때 할아버지가 참전했던 사람이 있는데 신문에 욱일기 휘날리고 들어오는 해상 자위대 군함 사진을 보고 '할아버지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시겠네' 라고 경악을 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안다는 얘깁니다. 욱일기가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걸요. 이럴 때는 우리도 '하나만 해라'고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8.10.11 00:40
2018.10.11 07:01
2018.10.11 09:08
저는 라이프를 안봤지만 본 지인이 세상에 그렇게 양심적인 의사가 어딨어.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세상에 착한 사람, 조금은 나쁘고 법 위반도 하지만 착한 사람이 많아. 의사들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라고.
세상에는 moderately bad person이 많죠. 큰 죄는 저지르지 않지만 소소한 법규 위반은 하고 살고 양심을 건드리는 일이 생기면 그래도 일어나서 한마디는 하는 사람들이요. 저도 양자고양이님의 1번 코멘트에 동의합니다만 두 항공사는...(절레절레)
2. 때아닌 세종 자부심이 솟구치는군요. 과학자이며 예술가였고 권력까지 한 몸에 가졌던 사기 캐릭터 조선 왕.
3. 오지랖에 기댄 신뢰 맞는 말 같습니다. 오래 외국에서 살다보니 그 과한 한국 사람들의 오지랖이 정겹게 느껴지더라구요. 물론 이런 말은 한국사람들에게는 안합니다. 개인주의가 더 필요한 한국이니까요. 개인주의와 여성지위 상승은 같이 가니까요.
2018.10.11 09:44
4. 글쎄요. 저는 한국인들의 욱일기 나아가 방사형 태양 문양에 대한 태도가 정상적이라고 보질 않습니다. 집단적 히스테리 수준이죠. 마치 독일인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에서는 산마다 하켄 크로이츠 새겨넣은 사당을 모셔놓고 나치 찬양하더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유명사와 일반명사 차이도 모르는지 욱일기를 전범기로 불러야 한다는 헛소리를 비롯해서 방사형 마크만 보면 죄다 욱일 전범 타령하고 얼마전에는 버거킹 대게버거 포장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난 적도 있었죠. 일본 군함이 욱일기 달고 우리나라 항구에 들어온 게 벌써 한두번이 아닌데 올해에 와선 초청해놓고 욱일기 달지 말라는 비상식적인 요구를 한 배경에는 저런 집단적 히스테리 욱일공포증 애국질 환자들이 점점 저변을 넓혀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게 작용한 겁니다. 독도니 한국 음식 알리기니 뭐니 하면서 애국질하던 서경덕 교수가 잽싸게 저쪽 노선을 컨셉으로 잡은 것을 봐도 알 수 있고요. 적당한 선에서 브레이크가 걸렸으면 좋겠는데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군요.
2018.10.11 12:18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욱일기가 전범기가 아닌건가요? 잘 몰라서 여쭤봅니다... ㅎㅎ
2018.10.11 12:55
욱일기라고 해야 저 빨간 태양에 방사형으로 빛이 뻗어나가는 깃발을 의미하고요, 전범기라고 하면 욱일기만 지칭하는 게 아니라 하켄 크로이츠기같은 다른 추축국 기를 떠올릴 수 있죠. 쉽게 말해 아이폰을 스마트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18.10.11 16:40
길게 쓰신 글에 대해 짧게 댓글을 달자니 좀 죄송합니다만... 일본 우익들도 욱일기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일매국신문(?) 아사히 신문의 마크와 같아서 말이죠. 요즘에 와서야 욱일 비슷한 거라도 나오면 한국, 중국의 욱일공포증 환자들이 대경실색하는 걸 알고 가끔 들고 나온다 하더군요.
아래 트윗의 사진 참조하세요.
https://twitter.com/kcanari/status/870802538198482944
2018.10.11 17:31
글쎄요... 그럼 저 우익들이 우루루 들고 나온 깃발이 왜 죄다 일장기인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2018.10.11 18:10
추가로 하나 더... 윗 트윗 첫번째 사진에도 잠깐 보이지만, 우익들이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는다는 욱일기로 왜 이렇게 아사히 신문을 모욕하는 짤을 만드는 걸까요? 이대로라면 욱일기의 굴욕일텐데 말이죠. 웃기지 않습니까?
https://twitter.com/kcanari/status/870497167491727361
2018.10.11 12:22
1. 저도 라이프 열심히 봤습니다. 결론이 좀 너무 일일 연속극 수준이어서 식겁…하긴 했습니다만 간만에 한국 드라마에 빠지는 계기가 됐죠.
2018.10.11 16:38
2018.10.12 15:27
2018.10.11 18:26
2018.10.12 15:31
2018.10.12 01:59
2018.10.12 15:30
2018.10.12 15:36
3. 공공장소의 소매치기 문제로 국한 시키자면 사실 이건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와 비슷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딱히 한국이 그런면에서 안전하다고 볼만한 증거는 없다는거죠. 유럽의 경우 오래전부터 집시들이 온 유럽의 유명 관광지같은 사람 꼬이는대마다 털어대며 다니느라 관광차 방문한 한국인들 눈에만 위험해 보이는게 아닐까도? 현지인들끼리만 지내는 동네 빵집, 카페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물건 간수에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더군요.
미국의 할렘가와 남미처럼 빈부격차가 큰 나라에선 아무리 노오력해도 잘살기 들른 극빈층이 존재하여 유럽의 집시 소매치기 역할을 하니 비슷한 사정일 것입니다.
중국도 예전에는 시내중심가에 소매치기들이 심심찮게 돌아다녔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뜸합니다. 사실 요새는 핸드폰 말고는 돈이나 돈 될만한것을 전혀 안들고 다니니까요. 상해나 북경등 대도시 소매치기의 주류는 주로 신장 자치구에서 원정온 소수민족들이었는데 그들 역시 계층상승? 혹은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이 위태로운 소외계층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지랖이라던 뭐던 따로 분석할 이유가 없어 보여요.
치안이 좋다는건 그만큼 해당 공동체의 삶의 질이 높아서 처벌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범죄를 저지를 필요없는 정도로 대부분 살 수 있다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이고 육로로 사방팔방 연결되는 유럽과 달리 섬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의 경우 외부에서 집시들이 들어와 도둑질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뿐인거죠.
즉, 한국이 외국?과 다른건 그런 좀도둑질을 상습적으로 할만한 사람들이 적은게 이유라면 이유라는거죠.
3. 난 얼마전에 누가 비온다고 내 우산 가져갔습니다만 참 기분 좋은 반응이네요 뭐 놔둬도 누가 안가져가는거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