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그로테스크 썰

2019.02.10 18:07

흙파먹어요 조회 수:897

계룡산에서 오이 팔다가 사이비교단 본 썰 쓰려고 했는데... 여튼,

때는 수 년 전, 지금처럼 독거뇐네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그때 만나던 분이 길에서, 조실부모하고 인생의 쓴 맛을 삼키고 있던 아기 고양이 한 분을 업어 오셨어요.
버려진 아가 고양이들이 상자에 담겨 에요~ 소리를 낸다면 발라드지만,
길에서 태어난 애가 참치를 받아 놓고도 두려운 눈으로 올려다 본다면 그건 블루스지요.
우리가 또 블루스에 약하지 않습니까?

낯선 곳에 업혀와서 파들파들 떨던 녀석을 씻기고 먹이고 입혀... 입히진 않았고,
그루밍도 반만 할 줄 알기에 손등에 침 발라 시범까지 보여가며 가르쳐놨더니
제법 쓸만한 어린이 고양이로 성장하더라고요.

재밌는 것은 집이 익숙해진 녀석이 이따금 부엌의 한 구석을 유난히도 골똘이 바라보더란 겁니다.
길에서 태어나 그런지 조달을 제1의 국시로 여겨 밥에 집착하던 그녀인데,
돌격하는 군인처럼 식사를 하다가도 문득, 그곳으로 걸어 가 물끄러미 보더란 말이죠.
옆에 같이 앉아서 "뭐 봐?"라고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물끄러미..

전 그래서 역시 고양이는 영물이구나 싶었어요.
사실 그녀가 주시하던 그곳은 제가 종종 낮도깨비처럼 슥 스치듯 뭔가를 보았던 곳이거든요.
생각 같아선 그곳에 달마도라도 걸어두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유물론자였던 그 분께 머리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
팥을 한 웅큼 컵에 담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뿌리는 걸로 불안을 달래곤 했지요. 훠이훠이 쉭~쉭~

사건은 미취학 고양이가 초딩 고양이가 되었던 여름밤에 터졌습니다.
제가 그 집에서 잘 때마다 그렇게 가위에 잘 눌렸는데, 늘 같은 여자가 나왔어요.
여자는 방문을 스르륵 통과해 들어와 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는데,
오래된 대문이 열리듯 입이 끼익 하고 열리면 수백명이 내지르는 고함인지 웃음인지가 터져나왔어요.
우아악하하하와하하하까아하하하

전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야, 저게 바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비명이로구나...
무서운 거는 됐고, 너무너무 시끄러워서 끙끙대고 있으면 그녀의 얼굴이 제 얼굴로 훅 떨어져서는
"너 이거 쟤한테 말 하면 죽여버린다"
라고 협박을 하고 가버리는 걸로 가위가 끝나곤 했습니다.

여기서 "쟤"는 그때 제 옆에서 신나게 주무시던 그 분이었습니다.
아마 귀신도 그 분이 저만큼이나 무서웠나봅니다. 참.. 훌륭한 분이셨거든요.
여튼, 고양이 친구를 데려오고 한참을 잊고 살았던 그 귀신처녀.
그러던 그 여름 밤, 그녀와 정말로 간만에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을 통해 스르륵 들어온 그녀는 또 물끄러미 저를 내려다 보고,
저는 또 다시 몸이 완전히 굳어버린 것이지요. 아 또야? 아 시끄러...

그때였습니다. 몸이 굳어가던 저의 귓가로 초딩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에요~ 에요~
순간 쑥! 하고 뭄이 풀린 제가 고개를 돌려보니 '너 뭐 하냐?'라는 듯한 표정으로 초딩 고양이가 저를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흐믓했습니다. 그래, 인마 너 알지? 내가 너 밥주고 똥꼬 닦아주고!

그로부터 보름쯤 뒤,
당시 애인님께서 밥을 먹다가 뭔가 재밌는 일이 있다는 듯 말씀을 하셨습니다.
(캣 초딩을 가리키며) 쟤, 웃긴다고. 가끔 뜬금 없이 ('그 곳'을 가리키며) 저기에 앉아서 허공에 대고 죽일 듯이 털을 세우고 하앜 거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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