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이게 다 게임패스 서비스 때문입니다. 제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원래는 발매 당시 살 계획이었는데... 발매를 코앞에 뜨고 트레일러나 게임 정보 뜨는 게 영 불안해서 결국 안 샀었거든요. 그리고 결과물은 예상대로 폭망... 그대로 기억 저편으로 밀어 버린 게임이었는데 이게 게임패스에 들어왔고. 그래도 꽤 오래 외면하고 있었는데 이달 15일에 게임패스에서 내려간다길래 그만... 옛 정을 생각해서 엔딩은 봐줄까? 라는 맘으로 깔아서 플레이했습니다. 엔딩도 봤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네요.



 - 그렇게 크게 인정받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저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의 1편은 명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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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점을 꼽으라면 참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는 게임이었죠.

 엑박360이라는 플랫폼의 한계 안에서 좀비 대군을 표현하려다 보니 해상도도 프레임도 저질이었고 오픈월드를 '의도'한 맵 구성도 좀 난잡했으며 로딩은 어찌나 길었는지. 구해주게 되는 시민들의 세상 둘도 없이 멍청한 ai도 스트레스 요소였고 그 와중에 빡빡한 제한 시간까지.


 하지만 동시에 당시 기준으론 '대체불가능'했던 새로운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삼국무쌍'식 액션을 좀비를 소재로 구현한다는 기본 아이디어도 좋았고 제작진의 기술력 & 기기 성능의 한계로 인해 제대로 구현되진 못했지만 한정된 공간에서의 오픈월드식 진행도 좋았구요. 또 시리즈 중 유일하게 스토리가 괜찮은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되게 뻔한 스토리였지만 '쇼핑몰에 좀비와 함께 갖힌 인간과 그 안에서의 싸이코 군상극'이라는 로메로 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쥬가 넘쳐나서 좋게 봐 줄 수 있었구요. 중간 보스격인 '싸이코패스'들의 표현도 훌륭했고 코믹함과 기괴함이 공존하는 분위기도 좋았고... 뭣보다 여러가지 창의적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게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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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의 제작자가 떠나간 후 만들어진 2편은 1편 특유의 싸이코 같은 분위기는 다 죽고 특히 살벌한 느낌이 거의 사라져서 갑자기 양키식 조크만 넘쳐나는 물건이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 조합 시스템'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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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박 독점이라 지나치게 무시당했던 이 3편도 나름 미덕이 많은 게임이었습니다.

 엑스박스 원으로 기기가 업글되면서 최초로 오픈월드 게임 플레이를 그럴싸하게 구현해낸 것도 시리즈 역사상 기념비적인 부분이고. 2편의 무기 조합에 이어 '차량 조합' 시스템을 추가해서 전보다 훨씬 쾌적하고 씐나게 좀비들을 쓸고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좋았던 부분입니다.

 또한 당시 기기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서 키넥트를 이용한 음성 명령, npc 컨트롤에다가 핸드폰에 앱을 깔아서 게임 플레이에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부분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 속에서 무전 연락이 오면 그게 핸드폰에서 들립니다!!!) 

 비록 스토리와 캐릭터면에서 너무 평이하고 임팩트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엔딩 부분에서 이전 주인공들을 소환해서 보여주는 연출은 꽤 괜찮은 팬서비스이기도 했구요. 

 사실 이 시리즈의 '게임성' 측면에선 완성형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앞으로 나올 시리즈는 줄거리 좀 보강하고 그래픽 개선만 해도 좋을 거라 여겼죠.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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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그냥 쓰레깁니다. ㅋㅋㅋㅋ 아 진짜 길게 설명하기도 싫을 정도.

 그냥 못만든 게임이야 많죠. 하지만 이만큼 나태하고 게으르게 대충 만든 게임은 단언컨데 흔치 않습니다.

 아마 제가 그동안 엔딩 보며 살아온 게임들 중에 이 게임보다 더 게으른 느낌이 드는 게임을 찾으려면 대략 10년은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야할 거에요.

 물론 그렇게 10년을 거슬러올라가도 못 찾을 수도 있구요.



 그냥 대충 말해보자면 이렇습니다.


 1. 애초에 1편 주인공이 귀환해서 1편의 배경으로 돌아간다는 게 홍보 포인트였는데, 1편의 배경은 안 나옵니다. 같은 이름의 쇼핑몰이 나오지만 리모델링 했다는 핑계로 그냥 새로운 장소에요. 홍보가 사기성이 짙었던 거죠.


 2. 기껏 3편에서 오픈월드식 진행을 확립해 놓고 다시 구역별 분리 맵으로 돌아갔습니다. 각각의 구역이 넓고 즐길 거리가 많기라도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구요.


 3. 시리즈 전통의 매력포인트였던 중간 보스(사이코패스)전이 그냥 사라져버렸습니다. 


 4. 무기, 차량 개조는 그대로 있지만 3편의 아이템들보다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구요. 전반적으로 아이디어가 되게 게을러서 평이한 물건들 밖에 없어요.


 5. 가장 희한한 건, 3편에서 만들어 놓은 재료들을 그냥 재활용해버린 흔적이 계속해서 눈에 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나오는 건물들, 도로들, 장애물들이 하나 같이 다 예전에 본 것들인데 텍스쳐만 조금 다르게 고쳤구요. 그 와중에 맵 곳곳에 있는 '안전 가옥'들은 거의 다 텍스쳐만 바꿔서 다른 곳인 척 하는 같은 장소에요. 


 6. 그 외에는... 그냥 총체적 무성의함이 게임을 지배합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 안 나게 생긴 정말 대충 디자인한 npc들. 저더러 쓰라고 해도 1주일이면 이보다 낫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시나리오. 해상도만 조금 높아진 (하지만 역시 1080p가 안 되는) 그래픽 퀄리티. 게임 난이도는 너무 쉬워서 존재하는 시스템들을 쓸 일이 없구요. (예를 들어 안전 가옥은 처음 개방하고 나면 한 번도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위에서도 말 했듯이 그냥 1자로 진행되는 전개 때문에 맵을 탐험할 일도 없었고. (어차피 해봐야 다 똑같이 생기기도 했구요) 그 와중에 플레이 타임도 엄청 짧습니다. 대략 기억에 제가 3편을 깨는데 걸린 시간의 1/3도 안 걸린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와중에...



 진짜 엔딩을 dlc로 팝니다. ㅋㅋㅋㅋㅋ

 정확히 말하면 충격과 공포의 클리프행어로 끝내고 그게 엔딩인 척 한 다음에 그걸 수습하는 스토리 dlc가 나왔죠. 허허.



 게임을 끝내고 나니 제 머릿속에 남은 건 게임의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총체적 쓰레기가 나오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입니다.

 제작진이 이 시리즈를 그만 만들고 싶어서 일부러 태업을 한 걸까요. 그렇다면 차라리 이해는 됩니다.

 뭔가 야심차게 만들어 보려다가 일이 꼬여서 갈아 엎고 엎고를 반복하다가 돈도 모자라고 시일에도 쫓겨서 걍 전편의 재료들을 재활용해서 어떻게든 게임의 형태만 갖춰서 내놓았을 수도 있겠죠. 이런 경우는 은근히 드물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 간에 이건 6만원을 받고 고객들에게, 특히 시리즈의 팬들에게 팔겠다고 내놓을 물건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평가도 폭망, 판매량도 폭망하면서 프랜차이즈를 땅에 묻고 관짝에 못질까지 해 버렸으니 시리즈 팬이었던 제 입장에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싶습니다만,

 뭐 일개 게이머가 어쩌겠습니까. 피눈물을 흘리며 보내주는 수밖에요.



 이상. '이 게임 재미 없으니 하지 마세요. 공짜라도 하지 마세요'를 아주 길게 적어봤습니다(...)



 그럼 이제 오늘 밤부턴 또 뭘 하고 놀까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어쨌든 오랜만에 게임을 했으니 게임패스에 새로 들어온 것들이나 이것저것 건드려 보려구요.

 그러다 할 게 없으면 또 넷플릭스로... 



 + 언젠가 돈 많은 우주 재벌 잉여가 나서서 1편을 최신 게임기 사양에 맞춰 리메이크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그럴 일은 없겠죠. 어차피 5편이 나올 일이 없어 보이니 해 보는 망상입니다. ㅠㅜ


 ++ 근데 솔직히. 이렇게 욕하면서도 금방 클리어하긴 했습니다. 원래 시리즈 팬이다 보니 좀비들 쥐어패는 건 아주 재미 없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아무에게도 추천은 안 하는 걸로. ㅋㅋㅋㅋ 사람에 따라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게 정말 대충 막 만든 무성의하고 엉성한 물건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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