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도배 죄송합니다!! 근데 다들 참 글을 안 올리시네요. 4일동안 한 페이지가 안 넘어가다가 이 글로 넘어갔어요(...)



 - 암튼 2021년작이고 런닝 타임은 2시간 17분. 장르는 액션. 스포일러 없을 거에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러시아 영화니까 포스터도 러시아 버전으로!)



 - 과거인 듯 합니다. 해변에서 못된 남자애들 너댓명이 개 한 마리를 괴롭히고 있어요. 급기야는 짱돌로 개를 내려치려는 순간, 금발 꼬맹이 하나가 용감하게 막아서지요.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안 보여주고 장면 전환.


 현재 러시아 시점에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 강도질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한 복면 쓴 악당들이 은행 현금차를 몰고 달아나고 있어요. 그리고 그를 뒤쫓는 한 형사가 있는데... 뛰어갑니다. ㅋㅋㅋ 달리는 자동차를 뛰어서 쫓아가요. 이런 건 리쎌 웨폰 이후로 참 오랜만이네... 라고 제가 추억에 잠기는 동안 어찌저찌 일망타진. 방금 그 형사가 바로 '메이저 그롬' 입니다. 좀 게으른 번역제네요. 여기서 '메이저'는 계급이거든요. 극중에선 '경감'이라고 하네요.

 암튼 이 주인공님은 여러모로 리쎌 웨폰의 마틴 릭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간입니다. 혼자 살고 대충 먹고 개 좋아하고 동료 경찰들에게 따뜻하며 악당들에겐 무자비한 가운데 단독 플레이를 즐기는 정의 구현 중독 사고뭉치죠. 


 그런데 이 양반이 최근에 잡아 넣은 사람들 중에 음주 뺑소니로 어린 소녀를 치어 죽인 재벌집 자식이 있거든요. 요 놈이 법을 농락하며 무죄로 풀려나 깔깔대며 세상을 비웃는 와중에... 대략 배트맨 코스프레에 얼굴에만 역병 의사 마스크를 쓴 수퍼 히어로 비슷한 녀석이 홀연히 나타나 그 놈을 죽여버려요. 그리고 '이 도시의 악을 내가 정화해버리겠어!!'라고 SNS를 통해 선언하고 어둠의 자경 활동을 개시합니다. 뭐 나름 좋은 일(?)을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범법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주인공은 그 놈을 잡겠다고 온 시내를 다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하겠죠. 하지만 시민 여론은 그 범법자에게 우호적으로 돌아가고...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러시아산 마틴 릭스, 우리 주인공님이십니다.)



 - 첫장면 말고도 보다 보면 정말로 '리쎌 웨폰' 생각이 자꾸 나는 90년대식 형사물입니다. 어리버리 순둥한 파트너 당연히 나오죠. 맨날 호통치고 구박하지만 사실은 속 깊은 직장 상사 나오죠. 맨날 장난치고 월도질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들 순수하고 성실한 동료 무리들 나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대놓고 위법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악당은 잡겠다며 설치고 다니구요. 이렇게 성실한 민초(?)들이 잡아야 할 악당은 당연히 그런 백성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손 닿을 길 없는 거물입니다. 다만 여기서 특이한 점이라면 그 거물이 정체를 숨기고 복면 수트 착용하고서 자경단 놀이를 하고 다니는 '자칭' 정의의 사자라는 것.



 - 사실 포스터 이미지를 보고서는 '역병의사'가 주인공인데 이름이 '메이저 그롬'일 줄 알았어요. ㅋㅋ 이 '역병 의사'란 놈은 아무리 봐도 배트맨 코스프레 같은 캐릭터인데, 그냥 모양만 베낀 게 아니라 작정하고 패러디한 듯 합니다. 그러니까 수퍼 히어로가 나오긴 하는데 갸는 빌런이고, 수퍼 파워 같은 건 쥐뿔도 없는 (다만 장르 특성상 수퍼 히어로급으로 튼튼하고 체력 좋은) 평범한 일반인 형사 따위가 갸를 잡으러 다닌다... 라는 점에서 좀 신선한 면이 있는 이야기인 거죠.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이것저것 떡밥들을 늘어 놓습니다. 러시아의 빈부 격차와 공권력 부패로 인한 하위 계층 사람들의 울분이라든가. 정의 구현을 위해 법을 어기는 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든가. 결국 자기도 범인 잡겠다고 위법 저지르고 다니는 주인공 놈이 빌런한테 뭐라 할 자격은 있는 것인가라든가... 


 하지만 결국에 이건 블럭버스터 액션 무비이고. 그것도 포스터 이미지와 다르게 아주 경쾌 발랄한 톤의 영화에요. 저런 주제의식 같은 것들은 그렇게 깊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리 그래도 법은 지켜야지' 라든가. '평범한 사람들의 선량한 힘을 모아 우리 사는 세상을 지켜나가세!'라든가 하는 정도의 나이브한 결론으로 끝나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도입부를 맡은 '조커' 흉내 악당들)



 - 처음에 메인 빌런인 척하고 등장하는 그 갑부집 자식 때문에 한국 영화 '베테랑' 생각이 났어요. 근데 사실 전 이 영화를 아직도 안 봤는데. ㅋㅋ 뭐 비슷한 류(?)의 한국 경찰 영화들하고 뭔가 비슷한 정서 같은 게 있거든요. 근데 한 번 '리쎌웨폰' 생각이 나니 그게 그냥 그 패턴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이 뇌 속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선 제가 얼른 '베테랑'을 봐야겠다. 뭐 그런 쓸 데 없는 생각도 들구요. 아직 넷플릭스에 있겠죠.



 - 레퍼런스가 '리쎌 웨폰'이 되었든 '베테랑'이 되었든 간에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영화니까 이 영화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살짝 복고적인 느낌의 민중의 지팡이 경찰 수사극에 히어로물의 요소를 살짝 비틀어서 집어 넣은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야기의 분위기는 단순하고 경쾌하고 밝아요. 절대 가볍거나 쉽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밝은데, 그래서 후반부 전개에 살짝 당황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일이 굉장히 커지면서 동시에 상당히 살벌해지거든요. 그래서 잠시 우리의 주인공들도 진지한 척을 하지만... 결국 그 거대하고 살벌한 상황은 애초의 톤대로 대충 밝게, 심지어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 버리죠. 

 잠시 '이게 뭐꼬!?'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보고 나면 대충 납득은 갑니다. 오히려 잠깐이라도 그렇게 살벌한 전개를 보여준 게 신선했다는 느낌. 헐리웃 블럭버스터들에선 쉽게 보기 힘든 전개거든요. ㅋㅋ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조커를 좋아하니 배트맨도 좋아하시는 듯한 참 취향 알기 쉬운 감독님.)



 - 음... 더 할 얘기가 뭐가 있을까요.

 당연히 여기 나오는 배우들 중 제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만. 다들 이미지에 어울리게 잘 캐스팅된 느낌이구요.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이다 보니 중간중간 좀 쳐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시간은 잘 흘러가는 편입니다.

 액션은 대단할 건 없지만 평타 이상은 꾸준히 쳐 주는 정도이고. 슬쩍슬쩍 들어가는 개그 요소들은 살짝 싱겁지만 그래도 적절해요.

 그리고 헐리웃 영화의 관광지성 배경이 아닌 본토 사람들이 직접 찍어서 보여주는 러시아의 모습은 또 그리 흔치 않은 구경거리인지라 좋았구요.

 그쪽 물가가 어떤지, 제작비가 어떤진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나름 스케일이 큽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치곤 꽤 '블럭버스터' 느낌이 잘 나는 영화였네요.



 - 아 그리고 한 가지. 영화의 의도인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부분은 우리 '메이저 그롬' 캐릭터를 영화가 다루는 태도였어요.

 앞서 말했듯이 영화가 시작될 때 주인공은 마틴 릭스의 불곰국 버전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시대에 좀 안 맞습니다. 뭐 릭스야 그 시절 기준으로도 상당한 고렙 사회부적응 돌아이 캐릭터였지만 어쨌든 그땐 그래도 멋지다고 봐 주던 모습들 중에 요즘 기준으론 좀 별로거나 애매한 부분들이 많잖아요.

 처음엔 그래서 그냥 러시아 사람들은 아직 비교적 복고 정서인갑다... 하면서 영화를 봤는데. 의외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양반이 갈등을 겪고 깨달음을 얻고 그러다가 마지막엔 21세기 기준으로 봐도 대충 납득 가능한 캐릭터가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런 변화를 주인공의 '성장'으로 묘사하면서 마지막엔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을 시키더라구요. 네. 21세기입니다. 잠시나마 본의가 아니게 좀 무시해서 미안해요 러시아. ㅋㅋㅋ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하지만 민중의 지팡이들은 정말 너무 정겹기만 해서... 구식이라고 의심할 만도 했다구요. ㅋㅋㅋ)



 - 종합하면.

 정말 제가 지겹도록 써먹는 표현이지만, '큰 기대 없이' 러시아산 액션 영화는 어떨까... 라는 정도의 맘으로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론 기대보다 썩 괜찮아서 만족했습니다만. 제가 워낙 평소 잘 못 보던 나라의 영화들에 관대하다는 건 감안을 하셔야겠구요. ㅋㅋ

 이야기의 강력한 나이브함이 맘에 안 드실 수도 있겠지만, 뭐 기본적으로 못 만든 영화는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볍고 유쾌한 러시아산 블럭버스터 액션'이라는 표현에 호기심이 생기시면 한 번 보세요. 아니면 말구요. 하하.




 + 저도 구글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지만 암튼 원작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인기 코믹스 시리즈라나봐요. 그리고 몇 년 전에 나온 그냥 '메이저 그롬'이란 제목의 영화도 있는데, 30분도 안 되는 단편에다가 감독, 배우 모두 다르니 그냥 코믹스 원작 영화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말에 쿠키가 두 개나 있어요. 깜찍하게도 정말 수퍼 히어로물 비슷하게 시리즈를 이어가고픈 모양인데, 전 뭐 괜찮게 봤으니 잘 되길.



 ++ 글을 다 적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사실 위에서 제가 '헐리웃 영화에선 보기 힘든 전개'라고 했던 그 전개가... 근래 히트한 헐리웃 영화에서 이미 나왔었네요. 음. 영화 도입부도 그렇고 감독님(혹은 코믹스 원작자)의 취향을 알 것 같습니다.



 +++ 저 '역병의사' 마스크를 볼 때마다 참 그로테스크하게 멋지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내친 김에 검색해보니 이게 참 어이 없는 물건이었군요. 전염병이 '냄새'로 전염된다는 착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저 부리 부분에 향초 같은 걸 잔뜩 넣어서 나쁜 냄새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ㅋㅋㅋㅋ



 ++++ 계속 마틴 릭스랑 비교를 했는데... 문득 깨달았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네요. 이 영화의 주인공에겐 마틴 릭스같은 트라우마도 없고 그래서 마틴 릭스 캐릭터의 핵심이었던 자기 파괴적 충동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근데 뭐 어차피 그 양반의 그 캐릭터도 2편으로 끝 아니었나요. 3편부턴 트라우마도 털고 많이 철도 들어서 그냥 '귀여운 반항아' 정도였죠.



 +++++ 계속 나이브하다, 나이브하다... 라고 구박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이브하게 처리하지 않았음 푸틴님께서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을 것 같...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