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수어사이드 스쿼드 2>를 B급 영화로 정의한 것이 조금 두루뭉실했던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히어로 영화 장르에서 주류와 다른 노선을 추구하는' 영화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수많은 히어로 영화 중에서 자신만의 변별점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욕설과 신체훼손 말고 히어로 영화 장르안에서의 전제와 결론은 동일하니까요. 선과 악의 구도가 있고, 주인공들은 선 혹은 대의를 실천하고, 연대를 소중히 여기고, 최후의 도덕을 절대적으로 지키려합니다. 이걸 빼면 결국 고만고만한 히어로들이 정의를 위해 희생적으로 복무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다른 히어로 영화의 기시감을 들게 하는 영화를 보는 건 좀 맥이 빠지는 일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참신한 결론이나 개념의 전복 대신 엇비슷한 히어로 영화가 조금 더 잔인하고 성인용으로 어레인지된 걸 보고 싶다고 할 지 모릅니다. 그것 역시도 히어로 영화를 즐기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르적 다양성이 내부적으로 이미 포화상태에 치달았을 때 아주 새롭거나 골때리는 것을 준비한 듯한 광고를 해놓고 여기서 뭘 더 바래? 라고 한다면 글쎄요. 저 역시도 히어로 영화로서 이 작품이 아주 혁신적이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주제의식이 광고영상속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새로움과 조금은 더 결부되었으리라 믿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히어로 영화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는 작품들이 장르의 틀 안에서 안전하고 뻔하게만 논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장르 안에서도 분명히 새로운 걸 꾀할 수는 있겠죠. '그거 어차피 다 정의로운 놈들이 자신들만의 초능력으로 나쁜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 아냐?' 라고 누군가는 물을 것입니다.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죠.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가장 뻔한 지점은 바로 이 영화가 마초남성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주류 히어로 영화들의 공식, 꼭 히어로물이 아니어도 액션 장르들의 고질적인 공식에 우리는 이미 다들 질려있잖아요. 근육질의, 정의로운, 백인 남성이, 아주 사악하고 이기적인 다른 남성을, 쌩고생 끝에 두들겨패서, 마침내 사람들으 구한다는 그 이야기와 이미지들은 이미 영화의 역사 이래로 반복되어오던 것입니다. 히어로 영화의 양대산맥이라는 디시와 마블도 이 구도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마블, 슈퍼맨과 배트맨의 디시가 다양한 히어로의 원형으로 근육질의 선한 남성을 제시하고 있죠. 그래서 제 아무리 다양한 능력을 발현해도 결국 거기서 거기인 자가복제가 나온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스쿼 시리즈 또한 참신함을 외치는 가운데에서도 식상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르다!'는 선언 때문에 엇비슷한 부분만이 더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수스쿼 시리즈에서 주인공을 담당했던 이들은 근육질의 마초적인 흑인 남성들입니다. 인종적으로는 다양성을 꾀하고 있다고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터프가이 흑인 영화들이 넘쳐나는 가운데에서 윌 스미스나 이드리스 엘바는 최근 헐리우드에서 가장 핫하고 정석적인 남성적 배우들입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들 중에는 말하고 걸어다니는 악어나 상어가 있지만 결국 이 극을 끌어가는 건 여타 액션영화에서의 멋지고 강인한 "정상적" 남자들이죠. 윌 스미스의 데드샷과 이드리스 엘바의 블러드스포트가 다른 초능력이 아니라 "총기를 잘 다루는" 능력이 있다는 것 또한 상기해볼만 합니다. 이 괴짜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는 이들은 가장 멀쩡하고 덜 유치하며 실제의 폭력과 가까운 도구를 쓰는 능력이니까요. 이 주인공들은 괴상한 조연 캐릭터들을 늘 타박하며 영화의 주요 시선을 주류의 시선으로 못박아놓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수스쿼 시리즈는 괴짜들을 다 끌어모았지만 결국 이 시리즈가 가질 수 있는 개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 영화에는 이미 관찰자 시점을 가진 릭 플래그가 존재합니다. 그는 괴짜들을 통솔하려 부던히 애를 쓰지만 생각만큼 잘 되진 않습니다. 그는 말안듣는 괴인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동조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운명공동체적인 연대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다른 괴짜 캐릭터들의 자율권이 더 보장되는 쪽으로 갔다면 영화가 훨씬 더 좌충우돌에 산발적으로 터지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지, 그 잠재력이 아쉽습니다. 수스쿼 시리즈는 히어로 세계의 뒷골목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거나 히어로 영화의 감상법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관객을 초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들은 늘 릭 플래그의 구박에 맞춰, 오히려 릭 플래그보다 더한 정의로움과 우정으로 최종 악당을 응징하는 히어로 서사만을 써냅니다. 1편에서도 2편에서도 "나의 친구들" 타령을 하는 건 늘 똑같습니다. 아니 왜? 


<수어사이드 스쿼드 2>에서는 이 마초적 고정관념이 더 해진 느낌입니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두 축인 피스메이커와 블러드스포트가 티격태격하면서 전 세계적인 위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적인 싸움까지 하니까요. 전작에서 가장 실질적인 축이었던 할리 퀸은 오히려 따로 떨어져서 독무대를 하는 느낌이고 스토리 진행을 위한 갈등에서 소외되어버립니다. 아버지와 딸, 혹은 타지인(이민자)들에 대한 올바름을 둔 드라마적인 갈등은 블러드스포트와 피스메이커가 다 하고 이들의 선택과 결정이 결국 영화 전체의 태도를 정합니다. 위대한 아버지라... 이건 이미 숱하게 써먹은 서사 아니던가요. 그러니까 안괴상하고, 안신선합니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환영이나 증오와 싸우고 있던 폴카도트를 조금 더 조명했으면 어땠을지 아깝기도 하구요.


메이저 감성을 유지하면서 세부적인 디테일들만 바꾼다고 그것이 관객들에게 새로울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기 편집본은 훨씬 암울했고 굉장했다던 수스쿼 1이 늘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캐릭터 장사가 전부라지만 그래도 아직 유행중인 히어로 장르에서 조금 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안되네요. 수다와 피투성이가 전부인 악당영화라면 아예 타란티노를 영입하는 게 더 지름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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