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3 20:29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065.html
젊은 문학평론가가 뽑은 2000년대 최고의 한국문학 입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건, 저도 제목을 그렇게 달았지만
한국 문학에 왜 저들만 들어가는지 의문입니다. 장르소설은 문학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선 딱히 할말이 없습니다.
그건 각자의 기준이 다르고, 결국 가치를 정하는 건 공식적으로는 전문가들이거든요.
제가 어떻게 말하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럴만한 능력도 안되고.
주목하고 싶은 건, 이것들이 돈이 되는가 입니다.
물론 이 책들은 돈이 될려고 파는 책들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김훈은 돈 벌려고 책을 썼겠지만요.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독자와의 직접적인 승부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얼마나 팔렸는지 기사가 있습니다. 2007년 기사지만요.
http://webzine.munjang.or.kr/archives/8020
많이 팔리지는 않나봅니다. 몇몇 작품 빼면 고만고만해요.
전 굳이 팔릴 의도가 없는 문예지 단편 모아서 나온 소설집에 대한 폄하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팔려고 만드는 소설이 다수를 이루고, 이런 팔 생각 별로 없는 척 하는 책이 소수인 이미지를 갖는 게 맞다고 봅니다.
문예지 관련 작가들이 한국문학의 전부인것처럼 여겨지는 건 이상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그런 소설들이 대중소설과 대체로 딱히 구분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읽어보면 드는 생각은 뭔 차이지??
박민규의 핑퐁이나 이나중 탁구부나?? (물론 후루야 미노루가 훨씬 낫지만)
김연수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라든가요. 뭐가 특별하게 다른거야.
문학평론가는 그 차이를 짚어내고 칭송하지만, 니들이 그런 작품에만 의미를 부여해서 평가하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니들이 평론할 소설 범주 설정의 근원은 뭐냐.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 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 롤링☆걸즈 홍보봇 (@Aran_426) 2014년 4월 23일
@MaeYeonJWA 상당히 있습니다. 한편, 순수 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 문학의 종언>, 도서출판 비, 65~66쪽)
— 롤링☆걸즈 홍보봇 (@Aran_426) 2014년 4월 23일
2015.09.03 21:07
2015.09.04 09:47
마치 개신교의 범주설정 같군요. 이쪽은 대단 나머지는 그닥. 신도가 되어주면 띄워주고요. 저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sf읽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냥저냥인 작가라고 들었습니다.
2015.09.03 23:26
윗기사는 2010년 기사네요. 5년동안 아주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고 봐요.(출판 및 읽기방법도 바뀌었고, 팟캐스트나 웹진,새로운 문학잡지, 주류로 평가되는 작가들에 편입되는 리스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죠.) 기사에서 언급한 소설들은 대부분 정말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다는 못봤지만ㅋㅋ)
지난 5년새 출판시장이 전체가 침체쪽으로 흘렀지만 동시에 '순수문학'은 그들만의 판을 더 공고히해왔는데, 그나마도 장사 안되는 순수문학이기때문에, 전문가(대학위주) 평론까지 거의 세트로 베스트셀러 마케팅을 부추긴 측면이 있고요. 문학상 운영의 주체들이 그나마도 없는 독자를 나눠먹고싶지 않아서?? 그러니까 그들의 권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보수성의 이유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와중에 정유정이나 천명관 박민규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류가 된다면 점차 조금 더 평평하고 넓어지겠죠. 일본의 경우처럼?
장르문학이라고 분류되는 작품들 중, 특별하게 주목을 받아 독자들이 많이 찾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자주 생긴다면 조금 더 수평적으로 변모해갈것같아요.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악스트(은행나무)나 미스테리아(엘릭시르) 창간도 결국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주류까진아니고 주류 근처의 출판사들의 새로운 시장창출의 시도를 한 것인데,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미스테리아의 경우 엘릭시르가 문학동네 계열이니까, 문학동네쪽도 이제 장르소설에 있는 미래의 시장성?을 본 것이겠죠?)
2015.09.04 09:52
나름 시도들이 있군요. 도서관에선 그걸 잘 느끼지 못했지만요.
제 바램은 단순한데 그런것들이 소수가 되고, 장르소설쪽이 다수가 돼야 맞다고 봅니다. 그게 거꾸로라서 결국 외면 받는 거거든요.
2015.09.04 00:07
작가들은 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기대하면서 글을 쓸겁니다. 김훈만 그런게 아니라요. 당연한거죠.
글이라는게 읽히는 것을 본질로 하는 매체 일텐데. 무슨 생각으로 그럴리 없다 확신하시는지 어이가 없군요.
지금 흔히 말하는 한국문학에 글빨로 치면 한손에 꼽힐 박민규가 누군가와 비교되어 훨씬 못하다는 평이 당연하게 쓰여지고
그나마 꼽을만한 김연수는 뭐가 특별한거지 찾을 수도 없는 작품의 예에 들어가는 이상황이 참....
누군가들이 말하듯 실제로 한국문학 수준이 최악이라 그런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비극적인 글이군요.
2015.09.04 09:55
읽히길 기대하겠죠. 팔려고 내놓은건 아니란겁니다. 도서관에서 읽으면 그만이니까요.
당연합니다. 박민규는 후루야 미노루보다 못해요. 핑퐁은 후루야 미노루의 영향이 큰데 열화된 버전이죠. 후루야 미노루가 누군지 모르시는것 같지만요.
김연수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읽어보셨나요? 여기에 그냥 대중소설과 구분되는 특별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특별하지 않다면 왜 문학평론가는 이런 글만 평론하고 있는건가요. 평론할 소설 범주 설정의 근원을 묻는 겁니다. 별반 다르지 않은것도 많으니까요.
2015.09.04 11:01
2015.09.04 11:11
전 김연수가 별로라는게 아니에요. 대중소설과 차이점이 없다는 거고, 그 예를 케이케이로 들었죠. 저한테는 별 차이없는데 차이가 정말 있다면 설명하시면 됩니다. 김연수가 조사를 기가맥히게 쓰나요.
후루야 미노루가 박민규보다 낫죠. 확신합니다. 능력이 안된다는 건 그걸 문학평론가처럼 화려하게 설명하고 설득할 능력이 안된다는거지 제 판단이라는 게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글쎄요. 2000년대 베스트로 꼽은걸 두고 그보다 뛰어난 장르소설을 대보라니요. 논의의 대상의 범주가 2000년대 베스트인가요?? 한국의 문학평론가는 2000년대 베스트만 평론했나보군요.
2015.09.04 11:36
2015.09.04 13:42
"능력이 안된다는 건 그걸 문학평론가처럼 화려하게 설명하고 설득할 능력이 안된다는 거지 제 판단이라는 게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결국엔 이게 문제의 핵심 아닐까요? 어떤 작품이 어떻게 훌륭한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게 바로 비평이죠. 또 어떤 작품이 왜 별로인지 설득력 있게 까는 것도 비평이고요. 자신의 판단을 그냥 선언만 하는 것은 비평이 아니고 또 그것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어요. 그런 선언은 비평가란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르 문학과 순문학 사이 작품성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소위 장르 문학 중에 훌륭한 작품이 많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작품에 대한 비평으로 독자들을 설득할 일이지 관심 없는 다른 사람 보고 왜 비평을 안 하느냐, 왜 무시하느냐 투덜거리는 것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네요. '젠장,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데 아직도 몰라주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람들이 나서서 열심히 비평을 해야 하고, 그 비평이 설득력 있다면 그 작품의 위상도 올라가겠죠.
어차피 H. P.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도 그의 팬에서 출발한 연구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비평도 써서 이제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American Library 시리즈 작가로 선정될 만큼 미국 문학계에서 위상이 올라간 거죠. 처음부터 컬럼비아대나 뉴욕대 문학부 교수 직함을 달고 있는 비평가들, 소위 영문학자들이 비평해줘서 지금의 위상을 얻게 된 건 아닙니다.
2015.09.04 11:29
2015.09.04 05:02
김훈은 돈 때문에 글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김훈이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 되는 게, 김훈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솔직히 걍 부끄러워서 겸연쩍어 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내용이거든요.
2000년도에 시사저널의 편집장이었던(정확한 직책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뭐 대충 편집장 그런 거였겠죠) 김훈은 한겨레의 쾌도난담 코너와 인터뷰를 했죠. 여기에서 한 여러 가지 발언들이 안 좋은 후폭풍을 낳아서, 시사저널 측에선 김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때 김훈은 사과를 하는 대신에 직책도 버리기로 선택합니다. 시사 저널 측에선 걍 사과만 요구했는데, 김훈 본인이 빡쳐서 그만 두었다고 밝혔죠. 김훈은 사과문에서 '시사저널의 정의로움을 훼손한 점을 사과합니다' 이런 식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김훈이 무직 상태가 되어서 쓴 소설이 '칼의 노래'였고, 초판의 서문에선 '나는 그해 겨울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결별했다' 이런 대목이 있죠.
김훈이 돈 때문에 소설을 쓴는 건 사실 관계에 어긋나죠. 김훈에게 정말로 직장이, 생계가,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중요하다면 걍 사과를 하는 선에서 그치고 직장에 남아 있어야겠죠. 하지만 김훈은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칼의 노래>를 쓰면서 독자를 세상에 한 명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글을 썼다기 보다는 걍 직장을 떠나서 야인으로 떠돌던 시절이었던 거죠. 김훈이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탄 다음에 '내가 이 돈으로 빚도 갚고 가족도 먹이고 참 좋다' 이런 식의 말을 하면서 마치 소설의 가치가 돈에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 발을 붙이고 사는 한 저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김훈이 소설로 돈을 벌어서 가장의 업무를 다할 수 있었던 건 걍 우연에 불과합니다. 동인 문학상을 받은 건 우연이었죠. 김훈이 '동인문학상을 타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생각하고 저 글을 썼을 리가 없으니까요. 노무현이 칼의 노래를 읽은 것도 우연에 불과하죠. 사실 김훈이 말은 '돈 때문에 글을 쓰니'하는데, 물론 사람이 돈을 안 벌 순 없으니까 소설가로 상업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아마 다른 직업을 찾아 갔긴 했겠지만, 애초에 김훈이 직장을 버리고 글을 쓰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객기였던 거죠.
하여튼 김훈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 문학이 '평론해야 되는 소설과 평론해선 안 되는 소설'을 나누는 범주야 뭐 일반적으로 자기들의 문예지에 발표하면 평론해야 되는 거고 발표 안 됐으면 평론 안 하는 거겠죠.
2015.09.04 09:57
책 팔려고 글을 쓴 건 아니군요. 분명 많이 팔고 싶은 마음이 컸던것 같은데 아닌가봅니다. 팔 생각도 없는데 많이 팔았다니, 김훈 스럽군요.
평론한 소설과 평론하지 않은 소설을 나누는 범주가 그거라면, 그건 평론가가 아니라 친위대죠.
2015.09.04 16:16
아, 이영도의 새 시리즈가 없는 2000년대 한국 최고 문학 리스트라니. 인정할 수 없어요.
소위 말하는 한국문학계에 들어가야 인정 해줍니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곳에서 SF를 출시하면 위대한 상상력 우주와 지구와 시대를 초월하는 휴머니즘 운운하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SF를 출판하면 그게 뭔데 어디 순문학도 아닌게 까불어 나는 니들 관심도 없어 뭐 이런식이죠.
가끔 순문학계들이 만화나 영화 또는 SF나 환타지 설정을 대충 빌려와서 마음대로 써먹던데 그렇게 하면 문학비평가들이 아주 그냥 환장을 합니다. 뭐 엄청난 상상력 운운하는데 미친놈들 같더라구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같은 문학계에서 출판하니까 엄청나게 칭찬하는데 솔직히 SF좀 읽어본 사람을 다 알죠. 베르나르가 쉽게 잘읽히는거 빼면 그 아이디어와 소재는 이미 SF계에서 오래전에 취급했던 한물간거라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