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동성애, 노인, 그리고 감성

2015.09.03 23:25

고구미 조회 수:3958

개, 동성애, 노인, 그리고 감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다 끝난 이야기의 재탕이 맞습니다. 불편하고 피곤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의견이 있다는 사실은 남겨두고 싶어 자판을 두드립니다. 



1. 개 


감성적인 이유로 타인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그 감성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어야 합니다.

'개는 가족이다', '개는 예쁘다', '개는 영리하다', '개가 먹을 데가 어디 있냐' 라고 하는 것은 누구의 감성입니까? 


애초부터 감성적인 논쟁을 하고 싶었다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감성적인 측면도 존중해야 합니다. 

'개고기는 맛있다', '살결이 부드럽다', '독특한 향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한 번 먹어보면 생각이 바뀔 거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예의 없고 비열한 사람' 이라고 손가락질한다면, 이미 감성적인 논쟁은 물 건너 간 겁니다.

개한테 심하게 물리거나, 조금 극단적으로 개한테 가족을 잃은 사람 앞에서 '개는 가족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과련 예의 있는 행동입니까?  


개를 식탁에 올리는 일은 논쟁의 가치가 없습니다. 

수많은 고기 중에 '개'만 먹지 말라는 주장은 이미 태생부터가 말이 안 돼요. 

<워낭소리>를 본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게 소를 먹지 말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통째로 삶아진 개를 본 트라우마로 개를 먹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먹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에요. 내가 안 먹으면 그만이지 남이 즐겨 먹는 음식에 훈장질을 왜 한단 말입니까. 


타인의  식습관에 깊숙이 관여하고 싶다면, 그 정신 승리로 무장한 감성 카드는 넣으시고 이성적인 이유를 가져오세요. 

개고기를 먹는 것이 도보 중에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패악질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달라는 말입니다. 



2. 동성애


동성애도 똑같습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타인의 취향에 관여하는 일이죠. 


개고기를 반대하면서 동성애를 찬성하는 것은 정말 비열한 행동합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타인의 취향을 무시하는 그야말로 이중잣대 아닙니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를 제시합니다. 

비 위생적이고, 보기 안 좋다는 이유 말이에요. 당신의 감성이 아니라 나의 감성이 우선입니다.   


저는 동성애를 하지 않고, 할 마음도 없습니다.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에요. 제가 이성을 좋아하면 됐지, 남의 연애사에 왜 훈장질을 한단 말입니까. 


개고기를 반대하는 것까지는 만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개고기는 반대하면서 동성애를 찬성하는 것은 일억 보를 양보해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3. 노인


이 와중에 뜬금없이 나온 키워드가 '노인'이었죠. 

그리고 동성애는 찬성하고, 개고기는 반대하며, 여성 문제에는 혐오만 있고, 노인 문제에는 비판만 있다고 생각하는 작지 않은 어떤 분이 묘한 논리를 펼치셨습니다. 


1. 노인의 80%는 독재자의 딸을 '빨아주는' 사람들이다.

2. 독재자의 딸은 부정 선거를 저지른 '존나' 나쁜이다. 

3. 위 두 개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으면 너는 더러운 욕설을 하는 '여혐종자'와 다를 것이 없다. 

4. '빨아주다'와 '존나'는 비속어일지언정 욕설은 아니다. 


대충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핀트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찌르고 다니더군요. 

덕분에 저를 비롯해 몇 분들은 더러운 욕설을 하는 '여혐종자'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 나라가 이 꼴이 된 데에 노인들의 투표가 한 몫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그들이 그들의 자유의지로 한 표의 권리를 행세한 사실 자체를 '존나' 나 '빨아준다' 등으로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장 비난 받아야 할 사람들은 SNS에서만 줄기차게 엄치를 올리고, 정작 선거 일에는 노느라 투표하지 않았던 20~30대 젊은이들이 아닐까요?

MB가 당선되던 그 때, 저는 투표도 하지 않고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을 닦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 때는 투표보다는 봉사가 더 값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태안 앞바다의 기름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저는 기름 닦는 시간을 조금 줄여서 투표를 했겠죠.  


노인은 그 자체로 존경의 대상도 폄하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냥 나이가 많은 사람이지요. 

'노인'은 젊은 사람들에게 되도 않는 훈계를 하는 사람, '노인'은 냄새가 나고 느린 사람, '노인'은 독재자의 딸이나 뽑는 사람,

이라는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혐오'가 아닌 '비판'을 한다고 감히 말한단 말입니까.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비판'에도 '여혐종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편견에 의해서 과장되고 확대된 전형' 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는가 하면, 

50대 이상의 남자는 100% 여성을 혐오한다는 단정까지 짓습니다.


그렇게 혐오 정서를 비판하고 치를 떨어하면서,

정작 자신의 정서는 건설적인 비판이라 포장한다면 누구라도 코웃음을 치겠죠. 



4. 그리고 감성 


어쨌든 저는 모든 사람들의 감성을 존중합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취향을 비난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개도, 동성애도, 노인도 모두 자신의 감성에 맞게 생각하고 판단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판단으로 타인을 설득하려면 잣대가 명확해야겠죠.


곰곰이 생각해 보잔 말입니다. 

혹시 내가 개고기는 반대하면서 동성애는 찬성하고, 노인에 대한 편견은 비판이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은 혐오라고 생각하진 않는지. 


다시 말씀 드리지만, 

감성으로 무언가 바꾸고 싶다면, 그 감성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어야 합니다. 


이상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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