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간론파 1, 2


제목엔 간단하게 적었지만 원래 이 게임들은 '단간론파: 희망의 학원과 절망의 고교생', '슈퍼 단간론파 2: 안녕 절망학원' 라는 기나긴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네. 요즘 라이트 노벨들 제목이랑 비슷한 느낌이죠. 내용의 스타일이나 수준(?)도 대략 그 정도 수준이니 어울리긴 합니다.


저는 사실 '요즘' 덕후 취향의 게임이나 아니메들에 대해선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전무한 사람입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덕후 소리 듣던 시절이라고 하면 무려 에반게리온(...) 리즈 시절이니까요. 그 외엔 뭐...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아니메판 1시즌 정도는 보긴 했네요.

 하지만 어쨌거나 예전엔 제법 허접하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아니메나 게임들을 즐겨 본 경험이 있고, 또 근래에도 웹서핑하다 이래저래 주워 듣고 보고 있는 게 있으니 일본 덕후 취향 & 중2병 스타일에 대해 사람들 말하는 '항마력'이란 건 갖추고 있는 사람... 이라고 믿었죠.


 며칠 전, 이 게임들을 하기 전까진 말입니다.


(그림체와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있겠지만 오프닝 무비는 꽤 감각적으로 잘 뽑았습니다.)



- 간단히 소개하자면, 스파이크 춘 소프트라는 소규모 회사에서 내놓은 일본산 게임입니다. 장르명은 '추리 어드벤쳐'라고 스스로 주장했던 바 있구요.

 첫 발매 플랫폼은 무려 10년 묵은 기기 psp였었고. 여기에서 꽤 히트를 치면서 나중에 모바일로도 이식해서 또 팔고, 나중엔 psp 후속 기기인 비타로 이식해서 또 판 후에 스팀을 통해 PC로까지 진출했다가 최근엔 플스4 버전까지 내놓고 있는 사골중의 사골 인기작입니다. 이런 류의 히트 게임들이 다 그렇듯이 아니메, 소설, 다양한 외전 게임들로 프리퀄, 시퀄, 외전 등등을 쏟아내며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고 있구요.


 아. 정작 장르명을 빼먹었네요. '추리 어드벤쳐' 라고들 하는데 실상은 전형적인 미연시(...) 진행 방식의 스토리 전개 파트가 2/3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리듬 액션 게임 형식에 아주 약간의 추리 요소를 결합한 미니 게임으로 채우고 있는 물건입니다.



- 얼마 전에 '그것이 알고 싶다' 덕에 본의 아닌 유명세를 치르면서 한국의 팬들을 좌절 시킨 에피소드가 있었죠. 인천 초등학생 토막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범인이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와중에 이 게임의 화면을 갖다 쓴 건데... 사실 범인이 활동했던 커뮤니티는 이 게임 커뮤니티가 아니었다고 밝혀졌지만 이미 화제가 되어 버린 통에 한글 자막까지 준비해서 정식 발매를 앞두고 있던 이 게임의 3편이 심의를 통과 못 하면서 발매가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져 버렸거든요. 저야 뭐 아쉬울 것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심의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스토리에 외전격으로 발매된 다른 게임은 최근에 당당하게 심의를 통과해서 잘만 팔리고 있거든요. =ㅅ=;;



- 어쨌든 게임 얘기로 돌아가자면...

 게임 자체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미연시처럼 게임 속 좁아 터진 배경을 돌아 다니며 처음 보는 물건 클릭해서 설명 읽고, 맘에 드는 캐릭터와 대화하며 호감도 올리기를 두어 시간 하다 보면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러면 또 한 시간 정도 여기저기 클릭하며 자료 조사를 한 후에 한 시간 정도 추리를 빙자한 리듬 액션 게임으로 '학급 재판'을 진행하며 범인을 잡는 패턴이구요.


 굳이 평가를 해 보자면.

 여기서 미연시 비스무레 파트는 너무 느슨하게 되어 있어서 지루합니다.

 사건 수사는 클릭해야만할 곳이 정해져 있고 그걸 또 대사와 강제 이동으로 다 알려주기 때문에 그냥 단순 노가다일 뿐이고.

 범인 잡기 게임은 조금은 머리도 써야 하고 순발력도 따라 줘야 해서, 그리고 그 동안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재미가 있긴 합니다. 

 근데 게임 플레이시 범인 잡기 부분은 대략 1/4 정도라서 전반적으로 '재미 있는 게임'이라고 보긴 좀 그렇죠.


 이 단점들을 극복해내려면 아마도 전체 스토리가 재미가 있거나, 사건의 미스테리가 기발하고 신선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어서 정이 가거나... 이렇게 이야기와 관련된 부분들이 훌륭해야할 텐데.


 1. 전체 스토리는 그냥 말도 안 되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중2병 설정과 연출의 연속입니다. 심지어 그 안에 거대해서 눈치 못 챌 수가 없는 구멍들이 숭숭숭.

 2. 사건 미스테리는 늘 처음엔 너무 뻔하고, 그대로 재판에 돌입하면 갑자기 툭 튀어 나오는 듣도 보도 못 한 정보들로 반전이 이루어지는 반칙 플레이의 연속이라 범인 추리를 통해 느끼는 지적인 즐거움 같은 건 기대할 수 없구요.

 3. 캐릭터들은 그냥 역할과 생김새만 봐도 빤히 보이는 전형적인 일본 아니메들의 캐릭터와 그 성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정을 줄 일이...;


 그러니까 한 마디로,


 "사지 마세요."


 입니다. ㅋㅋㅋㅋ



- 제가 이 게임을 하면서 정말 힘들었던 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중2' 취향 때문이었습니다. 와. 전 정말 제가 여기에 내성이 있는 줄 알았거든요.

 뭐 17세(?)의 고등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살인도 하고 범인도 잡고 지구도 구하고 하는 건 그러려니 합니다. 여기엔 익숙해서 별 불만이 없어요.

 문제는 디테일이죠.

 배경 설정이나 사건 전개, 등장인물들의 능력치와 힘 같은 것이 환타지 레벨인 건 괜찮아요. '그렇구나' 라고 받아들여주면 될 일이죠. 하지만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그 모든 설정을 받아 들인다고 해도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설정들이 끊임 없이 이야기에 구멍을 만들고 발목을 잡아요. 그리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무리수가 등장하는데 거기에 또 구멍이 있고 속편으로 가면 그 구멍을 다시 메우기 위해 더 큰 무리수가 등장하고... 의 무한 반복.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그것을 진지하게 연기(?) 하는 등장 인물들 사이에서 생기는 위화감 때문에 도저히 이야기를 즐길 수가 없었네요.

 근데 이게 지금까지도 유사 장르 팬들에게는 최고의 갓겜(...)으로 칭송받고 있는 걸 보면 이제 그냥 비슷한 장르 게임들은 다 회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스팀 유저평 같은 걸 보면 거의 불후의 명작 수준으로 칭송 받는지라;;



2. 아날로그: A hate story


벌써 나온지 5년이 지난 물건입니다만.


이 게임은 그 배경 스토리로 유명했었죠. 

제목에 적은 그대로 한국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캐나다의 게임 제작자가 도서관에서 조선 관련 영어 문헌을 뒤져가며 만든 조선 세계관의 SF(...) 게임이라는 것.

그리고 이 게임이 나름 화제가 되자 제작자가 직접 한국의 전문 번역가와 접촉해서 한글 자막을 추가하는 성의를 보였고 결국 여러모로 화제가 되면서 게임 전체 판매량의 10% 이상을 한국에서 책임지게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 속편까지 자동 공식 현지화. ㅋㅋ

덕택에 귀찮게 패치할 필요도 없고, 번역의 퀄리티도 꽤 좋습니다.


(영어판 트레일러입니다만. 영상 썸네일을 잘 보시면 굉장히 익숙한 단어가 보입니다. ㅋㅋㅋ)


게임의 장르는 비주얼 노벨, 영상 소설이에요.

그 와중에 '영상'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이 게임엔 움직이는 그림이 등장하질 않습니다. 

문서 목록에 있는 글 읽다가 좌측의 여성 a.i. 아이콘 클릭해서 글에 대한 의견을 듣거나 도움이 될 자료를 받거나... 하는 것이 게임의 90%.

막판에 가서야 어떤 이벤트(?)가 벌어지면서 게임 '플레이'에 긴장감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걸 해결하는 방식이 도스창(...)에 타이핑하기라서. 

끝까지 스펙터클이나 액션 같은 거랑은 철저하게 벽을 쌓아 놓고 흘러가는 게임입니다. 그래도 시간 제한 때문에 나름 긴장감은 있더군요.


덤으로 줄거리를 조금만 소개하자면,

오랜 세월 우주 공간을 떠돌다 발견된 거대한 난파선을 조사하러 주인공이 혼자(왜?;) 투입되는 거죠.

배 안에 들어가서 터미널에 접속하니 인간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현애'라는 이름의 a.i.가 홀로 반겨줍니다.

그래서 이 현애와 대화를 나누며 배 안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인데 배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말기랑 비스무리한 풍습이랑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고... 라는 건데요.


음....


사실 이게 


1. '조선'이 소재라서 

2. 주제(여성 차별을 다루는 게임이라니!)가 독특해서


이렇게 유명해진 건가? 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실존했던 과거의 듣보잡 국가의 역사나 풍습을 차용해서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SF 게임!!! 이라니 하니 뭔가 기발하잖아요?


근데 뭐 줄거리를 잘 뜯어 보면...


애초에 이게 장르가 비주얼 노벨이나 스토리가 거의 90% 이상 먹어주는 게임이라고 봐야 할 텐데...


아무리 봐도 별롭니다. ㅋㅋㅋㅋㅋ 완전히 나쁘진 않은데 딱히 칭찬할 만한 부분도 안 보여요.



일단 세계관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속편으로 어느 정도 구멍을 때우긴 했다고 하지만 그거야 속편 얘기고 그냥 이 이야기만 보면 시종일관 비약이 너무 심해요.

그냥 작가의 사고 실험(?)을 위해 대충 최소한의 설정만 던져 놓고 '좀 봐 주세요'라고 얘기하는 듯한 느낌.


그리고 (플레이어와 주인공 입장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매우 적고 짧으면서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를 문서 속 과거의 인물들 이야기로, 그것도 요약본에 가까운 문장들로 접하게 되기 때문에 딱히 몰입이 되는 느낌도 없구요. 그렇게 요약된 이야기 자체도... 위에서 적었듯이 '미래를 배경으로한 본격 우주 조선 SF!! 게다가 순수한 외국산!!!!' 이라는 요소를 빼놓고 생각할 때 그렇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현애는 도대체 날 왜 좋아하는 거야


마지막이자 했던 말의 반복으로 뭣보다 개연성. 스토리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주선 안에 살고 있던 기껏 수천명 규모의 인구로 이야기 속 그런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리가 없어 보이거든요.

그냥 작가의 나름 흥미로운 사고 실험 정도. 딱 그 정도 느낌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주제도 그리 깊이 있게 파해쳐 본 것 같진 않구요. 그냥 흥미로운 소재 정도?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는 있고 또 크게 실망스럽진 않습니다.

왜냐면 게임이 원체 짧아서 그렇습니다. ㅋㅋㅋ 세 시간이면 무리 없이 엔딩이거든요.

독특한 기본 설정의 약빨이 다 할 때 쯤에, 시스템과 세계관에 익숙해져서 이야기와 게임 자체의 허술함을 느낄 때 쯤엔 어느새 엔딩이라서요.

끝낸 후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 '이게 뭐꼬?' 라는 기분이 들긴 하는데 플레이 하는 와중엔 수많은 문서들로 조각 나 있는 이야기 퍼즐 맞추느라 그럴 틈이 없어요.

또 읽게 되는 문서들이 대부분 일기 내지는 편지 형식이라 남의 얘기 훔쳐 보는 재미도 있고. 그리고 위에서 말 했듯이 파편화 되어 있어서 다 읽고 머리 속에서 짜맞춰야 하기 때문에 나름 머리 굴리는 재미도 없지 않구요.

전체적인 이야기는 좀 허술해도 '잔약공주'의 처지는 나름 감정 이입할만한 구석이 없지 않기도 했습니다. 현재보다 더 여성 인권이 신장된 사회에서 살다가 갑자기 조선 말기 양반집에 뚝 떨어져 버린 여성의 삶이라니 정말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뭐 재미가 없진 않았습니다. 

장점도 있구요. 뭣보다 다른 거 다 떠나서 a.i. 현애가 귀엽습니다!(...)


하지만 (스팀 기준) 만 오백원을 주고 구입해서 해 볼만 하냐... 고 묻는다면 글쎄요.
저야 뭐 50% 이상 세일할 때 구입했으니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뭣보다 현애가 귀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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