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7 00:43
시인 이상의 러브레터가 공개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arcid=0008535407&code=41171511&cp=nv
기사를 보니 이상의 '이런 시'가 떠오르더이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平生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을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런 시' 중 발췌)
'금홍아 금홍아'라는 영화 라스트신에서 배우 김갑수의 서늘한 목소리로 낭송되던 시입니다. 영화는 쌈마이스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이상의 '언어'들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그게 너무 매혹적이었습니다. '그다지 사랑하던', '꾸준히 생각하리라', '내내 어여쁘소서'.. 쉬운 말들인데 흔히 쓰이지 않는 방식으로 조합되어 있어 생경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 당시에는 흔히 쓰이던 표현이었을까. 이상이라는 천재의 언어가 남다른 것일까.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2014.07.27 01:19
2014.07.27 01:53
2014.07.27 16:15
앗, 같은 백석 평전을 읽었는데 왜 이렇게 다르게 읽었을까요? 제가 읽기로는 2001년에 최정희의 딸에 의해 백석이 최정희에게도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냈음이 밝혀졌고 그래서 백석이 많은 오해를 샀다고 알려져 있지만, 평전을 쓴 안도현 시인은 그것보다는 백석이 시를 잡지에 싣기 위해, 당시 문학지 편집인이던 최정희에게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낸 것이었다는 추측인 듯 보였는거든요. 그리고 나타샤가 최정희를 뜻한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설명도 나오죠.
2014.07.27 21:03
오, 재밌네요. 불경스럽지만 문학지 편집인인 최정희의 도끼병이 문학사에 오해를 낳았다는 가설이 생기겠네요.
2014.07.27 09:36
이상의 글이 이상하게 외롭고 슬픈 것은 그가 폐병을 선고받은 20대 초반부터 죽음과 마주하고 그 공포와 허무를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제맘대로 상상해 봅니다. 그의 고통과 외로움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객혈의 아침>이라는 시를 베껴왔습니다.
사과는 깨끗하고 또 춥고 해서 사과를 먹으면 시려워진다.
어째서 그렇게 냉랭한지 책상 위에서 하루 종일 색깔을 변치 아니한다. 차차로---둘이 다 시들어 간다.
먼 사람이 그대로 커다랗다 아니 가까운 사람이 그대로 자그마하다 아니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그 어느 누구와도 알지 못하니 말이다 아니 그들의 어느 하나도 나를 알지 못하니 말이다 아니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레일을 타면 전차는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담배 연기의 한 무더기 그 실내에서 나는 긋지 아니한 성냥을 몇 개비고 부러뜨렸다. 그 실내의 연기의 한 무더기 점화되어 나만 남기고 잘도 타나보다 잉크는 축축하다 연필로 아무렇게나 시커먼 면을 그리면 연분은 종이 위에 흩어진다
리코오드 고랑을 사람이 달린다 거꾸로 달리는 불행한 사람은 나 같기도 하다 멀어지는 음악 소리를 바쁘게 듣고 있나 보다
발을 덮는 여자 구두가 가래를 밟는다 땅에서 빈곤이 묻어 온다 받아 써서 통념해야 할 암호 쓸쓸한 초롱불과 우체통 사람들이 수명을 거느리고 멀어져 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의 뱃속엔 통신이 잠겨 있다.
새장 속에서 지저귀는 새 나는 콧 속 털을 잡아뽑는다
밤 소란한 정숙 속에서 미래에 실린 기억이 종이처럼 뒤엎어진다
벌써 나는 내 몸을 볼 수 없다 푸른 하늘이 새장 속에 있는 것같이
멀리서 가위가 손가락을 연신 연방 잘라 간다
검고 가느다란 무게가 내 눈구멍에 넘쳐 왔는데 나는 그림자와 서로 껴안는 나의 몸뚱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알맹이까지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는 둥
피가 물들기 때문에 야윈다는 말을 듣곤 먹지 않았던 일이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종자는 이제 심어도 나지 않는다고 단정케 하는 사과 겉껍질의 빨간 색 그것이다.
공기마저 얼어서 나를 못 통하게 한다 뜰을 주형처럼 한장 한장 떠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호흡에 탄환을 쏘아넣는 놈이 있다
병석에 나는 조심조심 조용히 누워 있노라니까 뜰에 바람이 불어서 무엇인가 떼굴떼굴 굴려지고 있는 그런 낌새가 보였다
별이 흔들린다 나의 기억의 순서가 흔들리듯
어릴 적 사진에서 스스로 병을 진단한다
가브리엘 천사균(내가 가장 불세출의 그리스도라 치고)
이 살균제는 마침내 폐결핵의 혈담이었다(고?)
폐 속 뺑끼칠한 십자가가 날이면 날마다 발돋움을 한다
폐 속엔 요리사 천사가 있어서 때때로 소변을 본단 말이다
나에 대해 달력의 숫자는 차츰차츰 줄어든다.
네온 사인은 색소폰같이 야위었다
그리고 나의 정맥은 휘파람같이 야위었다
하얀 천사가 나의 폐에 가벼이 노크한다
황혼 같은 폐 속에서는 고요히 물이 끓고 있다
고무 전선을 끌어다가 성 베드로가 도청을 한다
그리곤 세번이나 천사를 보고 나는 모른다고 한다
그때 닭이 홰를 친다---어엇 끓는 물을 엎지르면 야단 야단---
봄이 와서 따스한 건 지구의 아궁이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모두가 끓어오른다 아지랭이처럼
나만이 사금파리 모양 남는다
나무들조차 끓어서 푸른 거품을 자꾸 뿜어내고 있는데도
2014.07.27 10:18
맥류 두 분/부디 그러하소서.
underground/일요일 아침에 정성스레 긴 시를 적으셨네요. 고맙습니다.
2014.07.27 11:12
저도 기사를 읽었습니다. 편지를 쓸 때 스물네 살이었던 이상의 젊음이 부럽더라고요. 그 오글오글함이 열정일 수 있는 나이겠구나 싶어서 살짝 부러웠어요.
네(냉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