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민란의 시대 (스포)

2014.07.27 02:57

dmajor7 조회 수:3792

늦은 시간에 보고 들어왔네요.  

 

우선, 결론부터. 전 재밌게 봤어요. 가족들도. 아쉬운 부분이 넘치지만 여튼 재밌었습니다.

전제할 것은 이 영화는 그냥 여름용 오락영화입니다. 스타 잔뜩 데리고 타란티노식 썰렁 유머 서부극을 찍은 거죠. 특히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가장 많이 연상되더군요.

초반부터 서부영화 음악을 틀어대고 여자 성우가 나레이션으로 되도 않는 썰렁 개그를 구사합니다. 감독이 첨부터 관객들에게 정직하게 얘기하는 거죠. '민란의 시대' 제목이나 조선 후기 도탄에 빠진 백성의 고통 등등 때문에 착각하지 마시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성, 사회성, 스토리의 밀도 등 측면에서 진지한 비판을 하는 분들이 있던데 글쎄요,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인 듯. 아, 명백히 걍 오락활극이라고 정체를 뚜렷이 한 영화잖아요?

'놈놈놈'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 영화입니다. 오락영화로서의 기능에 충실한지가 판단 기준이어야 할 듯해요.

 

그 기준에서 봐도 부족한 점은 많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인 건 충분히 알겠는데, 군더더기가 많아요. 특히 여자 성우의 나레이션은 정말 에러입니다. 웃기지도 않고, 의미 있지도 않고. 웃길려면 한번 제대로 웃기고 말든지. 어설프게 '헤어 스타일' 운운하는 개그를 치니까 손발이 오그라들더군요. 남 웃기는 건 정말 천재들의 영역이예요. 그래서 묘한 표정 씰룩 한번으로 사람을 웃기는 하정우 같은 배우들이 감독보다 훨씬 천재적인 것이겠죠.

어차피 좀 웃기다가 화려한 액션으로 승부할 영화인데 중간 중간 대사나 나레이션이 너무 길어서 늘어지는 부분이 많아요. 30분 이상 편집에서 쳐냈으면 더 리듬감 살았을 듯.

 

그리고 개성있고 매력적인 도적들 캐릭터를 잘 구축해 놓고 정작 메인 게임에서 잘 활용 못해서 아쉬워요. 수호지의 양산박 호걸들처럼 각자 특기가 다른 인물들인데, 강동원 칼 휘두르는 앞에 서면 양떼 목장의 양들 수준인 것 같고, 하정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수레에서 꺼내 난사하는 기관총 한 정보다 못한 존재들인 것 같고. 말 나온 김에 이 기관총 씬이 너무 게으르게 느껴졌어요. 하정우 혼자  막강한 적을 어찌할 방법이 없고 러닝타임은 끝나가니 대충 생뚱맞은 기관총 하나 끌고 와서 갈겨서 아랫것들 정리하고 제일 중요한 강동원과의 대나무숲 대결 씬으로 어여 어여 넘어가자는 느낌. 뭔가 김성균 등 백성들과 내통하여 기발한 작전으로 승기를 잡는다든지 여튼 그래도 후반부 하이라이트인데 좀더 머리를 짜냈어야지!  도적들의 1차 대공습 역시 아쉽습니다. 조진웅 앞세워 의금부 관원으로 변장만 하고 가면 중앙무대에서 무관 노릇을 했던 강동원 및 그 부하들의 면도날 눈초리를 피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어설픈 작전입니까. 조진웅은 영화 초반 나주목사 칠 때는 역관으로 변장하더니 무슨 미스틱인가 봐요. 옷만 갈아입으면 다 믿어주니까요. 이왕 각자 주특기가 다른 유사 어벤져스 도적단 구축해 놓았으니 각자의 특기를 살려서 좀더 치밀한 머리싸움 작전으로 강동원 일당과 대결을 벌이면 좋았을 것 같아요. 2차대전때 대탈주 영화라든지 지능적 도둑단 케이퍼 무비처럼. 그러면서 조마조마하게 들킬 뻔 들킬 뻔하며 성공할 뻔하다가 치명적 실수로 하나가 죽고 그를 구하려다 또 하나가 잡히고..하는 식으로 관객 애간장을 녹이는 것이 도적들을 잘 활용하는 방법아니었을지. 일면으로는 너무 쉽게 변장만으로 대성공, 일면으로는 강동원의 밸붕 초절정 무공으로 만나는 즉시 몰살. 낭비입니다. 낭비.

 

이런 걸 보면 헐리웃 영화의 위대함은 오락영화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아까 언급한 2차대전때 포로수용소 대탈주 류의 오락영화들을 봐도 다양한 매력 있는 캐릭터 구축 과정 및 이들에 애정을 느낀 관객들이 손에 땀을 쥐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웃고 울게 잘도 사람을 가지고 놀지요. 그게 다 시스템의 차이겠죠. 경험 많은 프로 작가들 여럿이 돈도 많이 받으며 오랫동안 치밀하게 각본을 준비하는 헐리웃. 시나리오 작가에게 최저생계비도 보장이 되지 않아 양성이 안되고 감독이 시나리오도 쓰고 북치고 장구 치고 해야 하는 우리나라.

 

타란티노식 오락영화를 찍으려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보다보니 타란티노가 얼마나 뛰어난가 절감하게 되더군요. 예기치 못한 잔혹함, 뭔가 비장하고 잔혹한 세계를 묘사하다가도 껌 질겅질겅 씹으며 이거 어차피 다 영화잖아? 너희도 알면서 보고 있잖아? 하는 식의 블랙 유머. 그리고 의도적이고 장식적인 과잉. 이 영화에도 그런 영향이 엿보이기는 하는데 어설픕니다. 어설퍼요.  '킬빌'이 얼마나 걸작인가를 이 영화를 보는 중간에 자꾸 생각했습니다. 뭐 세계 최고 레베루의 선수와 비교하는 게 불공정한 얘기지만 그런 좋은 교과서가 있으니 열공하면 좋잖아요? 루시 리우가 야쿠자 두목 회의 자리에서 기모노 자락을 걷고 탁자 위를 내달려 개기는(?) 보스 머리를 일본도로 날려버리는 장면의 군더더기 없는 호흡 같은 것이 일류의 감각이라는 거지요.   

 

이쯤되면 욕만 잔뜩 해 놓고 뭐가 재밌었다는 거냐 물으실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습니다. 그 공의 대부분은 배우들 몫입니다. 나오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매력 있어요. 주연들 뿐아니라 이경영, 마동석, 윤지혜, 주진모(그 주진모 아님), 송영창, 정만식 등 조연들이 다 씬 스틸러들입니다. 마동석의 그 거대한 '덩어리' 느낌의 몸과 귀여운(?) 표정연기만 봐도 즐거워요. 이 잔뜩 나오는 좋은 배우들이 클로즈업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뭔가 한 칼들이 있으니 위에서 잔뜩 욕한 단점들에 불구하고 일단 보는 동안 즐거울 수밖에요(그러니 이 좋은 배우들을 더 잘 활용했으면 하는 거죠). 도적단 두목으로 카리스마 짱이어야 할 이성민이 좀 아쉽습니다. 1차 대공습 결의 장면에서도 뭔가 두목답게 후까시 절정이어야 하는데 어설픈 느낌. '18세' 하정우가 더 카리스마 있으니 아이러니. 조진웅도 '끝까지 간다'에서의 대체불가능성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는 좀 아쉽죠.  

 

저는 영화라는 시각 예술에 있어 배우의 '얼굴', '몸' 자체가 결코 시나리오나 연출에 뒤지지 않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 '얼굴'과 '몸'을 가장 매력적으로, 또는 인상적으로 보이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연기'고요. 첨밀밀에서 장만옥의 얼굴을 한참 클로즈업하는 씬이 두 번인가 나오는데, 그녀의 얼굴 자체가 천 마디 명대사보다 낫고, 스펙터클한 풍경보다 낫더군요. 그런게 배우의 힘입니다. 매력 있는 배우의 연기를 큰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표 값은 한다고 봐요.

 

자, 그래서 결론은 이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는 한 아름다운 생명체의 우아한 움직임과 표정, 목소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강동원은 '전우치'에서도 '나도 이제 달라져 볼까' 운운하며 묘하게 중얼거리며 우아하게 부채를 펼치는 모습으로 중독성 있는 매력을 보여주더니 이 영화에서는 20세기 순정만화(베르사이유의 장미나 황미나)에 나오는 냉혹하고 아름다운 중성적 악역으로 관객들의 도덕감각을 마비시킵니다. 온갖 악행을 하는데도 죽는 장면에서는 모든 여성관객들이 달려가 그를 끌어안아주고 싶은 모성애 넘치는 표정이 되더군요. 이해합니다. 남자가 봐도 아름다운 존재예요. 늘씬한 팔다리에 작은 얼굴뿐 아니라, 특히 사극에서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몸짓이 참 우아합니다. 나비의 날갯짓 같달까요. 긴 칼을 휘두르는 궤적이 긴 팔다리 때문인지 '선'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더군요. 이건 결국 그가 액션 연기를 잘 한다는 얘기죠. 타고난 '몸'이 좋다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움직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말꼬리를 흐리는 듯한 애매한 대사처리 역시 캐릭터에 잘 어울려요. 오히려 '엘라스틴' 하는 장면에서는 처녀귀신 같아서 좀 별로였음. 아, 마지막 대결에서 하정우가 처음으로 그의 도포자락이나마 베는데 성공하니까 얇은 입술을 냉소적으로  약간 비틀고 있는 표정에서 처음으로 변화가 생기는데 그게 또 멋지구리. "어 쫌 하는데?"하며 적에게 살짝 감탄해 주는 표정이랄까. 이런 섬세한 표정연기도 좋았습니다.

 

영화를 예술로서만 진지하게 생각하는 분들께는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9천원 지불하고 2시간 동안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제게 가격 만큼의 쾌락을 제공하면 만족합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인파라 떼들이

 뛰어가는 그 우아한 다리 근육의 움직임만 보고 있어도 아깝지 않듯이 시각적 쾌락만 제대로 제공해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액션영화, 무협영화는 원래 발레, 현대무용처럼 배우들이 몸을 사용하여 시각적 성찬을 제공하는 일종의 무용이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최소한 강동원이 등장하는 장면들에서 관객들에게 충분한 시각적 쾌락을 제공한다고 봐요. 그건 강동원의 우월한 유전자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장면들이 기능적으로 잘 연출되었다는 이야기겠죠. 강동원 나오고도 그지 같은 영화가 더 많았다는 점을 상기해 보건대.  앞에서 다른 좋은 배우들이(하정우조차 약간) 낭비되고 있다고 투덜거린 것에 비추어 보면 감독의 편애가 명백합니다. 

 

여하튼 매력적인 배우들과 한 아름다운 생명체 덕분에 충분히 티켓 값을 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기대했다가 대실망한 혹성탈출 2.보다 재밌었어요. 혹성탈출2가 왜 그리 재미없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이것도 한번 나중에 써보려고요.    

  

p.s. 영화보다가 불쑥 든 생각 하나 여성분들께 칼맞을 위험을 각오하고 말씀드림. 얇은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강동원 클로즈업이 자주 나오는데, 누군가 닮은 것 같다 생각하다보니 뜬금 없게도...............공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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