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살 인턴

2014.07.31 10:28

dmajor7 조회 수:3192

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

 

재산 분쟁을 원만하게 합의로 해결하는 조정절차가 있다. 이를 담당할 상근조정위원 선발을 위해 고심했다. 경력 많은 변호사, 소년 등과한 젊은 변호사 사이에 눈에 띄는 이력서가 있었다.

올해, 39세에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그는 산골 출신이다. 농림 공무원으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일은 군 시절에 일어났다. 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합판을 롤러로 뽑아내는 일을 하다 손목을 절단당했다. 어머니는 그가 탈영할까봐 알리지 않았다. 그는 휴가를 나왔다가 어머니의 잘린 손을 보았다.

그는 법서를 공부해가며 책임을 회피하는 공장측과 협상을 벌여 보상금을 받아냈다. 공대 졸업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던 그는 이 일을 겪으며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결혼한 상태에서 다시 법대에 들어가 7년 도전 끝에 사시에 합격한 그는 8세 딸의 아빠다. 스펙 좋은 젊은이가 넘치는데 로펌에서 늦깎이를 찾을 리 없다. 그는 일자리를 찾는 가장이다.

하지만 동정심으로 공무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따로 있다. 인턴에 해당하는 법원 시보 기간 동안 다른 연수원생은 보통 경험 삼아 한두 건의 조정 사건을 맡아 처리한다. 그는 판사들을 찾아가 사건을 달라고 졸라 무려 23건의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했고 성공률도 높았다. 대화를 해보니 다른 후보들보다 대화의 기술도 나았다. 모험을 하기로 했다. 두 달간 기회를 주고 좋은 실적을 보이면 정식으로 일을 맡기기로 했다.

쉽지 않은 의료사건을 맡겼다. 병원 상대로 수술의 잘못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이다. 감정의 골이 깊다. 2년 넘게 끈 분쟁이다. 그는 몇 시간씩 쌍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번 대화를 한 끝에 합의안을 제시했다. 쌍방이 더 고민해보기로 하고 돌아간 다음날, 그는 장문의 이메일을 받았다.

피해자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기 얘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여 준 것은 그가 처음이었기에 결과에 관계 없이 감사드린다는 내용이다.

두 달이 지났다. 그의 조정성공률은 74%였다.
이제 정식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를 보며 늘 배운다.
행운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1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3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34
125849 정치 뉴스 몇개(호위무사 인요한, 진중권, 김경율) new 왜냐하면 2024.03.29 17
125848 프레임드 #748 [2] update Lunagazer 2024.03.28 45
125847 의사 증원 2000명이 천공 밈화 되는 걸 보면서.. [1] update 으랏차 2024.03.28 326
125846 이미 망한 커뮤에 쓰는 실시간 망하는중인 커뮤 이야기 [6] update bubble 2024.03.28 547
125845 몬스터버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돌도끼 2024.03.28 101
125844 롯데 인스타에 [12] daviddain 2024.03.28 194
125843 고질라 곱하기 콩 봤어요 [3] 돌도끼 2024.03.28 232
125842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4.03.28 327
125841 데드풀 & 울버린, 배드 보이즈:라이드 오어 다이, 더 배트맨 스핀오프 시리즈 더 펭귄 티저 상수 2024.03.27 124
125840 하이브 새 아이돌 아일릿(illit) - Magnetic MV(슈퍼 이끌림) [2] 상수 2024.03.27 165
125839 프레임드 #747 [4] Lunagazer 2024.03.27 47
125838 [핵바낭] 다들 잊고 계신 듯 하지만 사실 이 게시판에는 포인트란 것이 존재합니다... [11] update 로이배티 2024.03.27 422
125837 예전 조국이 이 게시판에 글을 쓴 적이 있지 않습니까? [4] 머루다래 2024.03.27 659
125836 ZOOM 소통 [9] update Sonny 2024.03.27 271
125835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사람 catgotmy 2024.03.27 216
125834 문득 생각난 책 [1] daviddain 2024.03.27 142
125833 종교 유튜브 catgotmy 2024.03.27 107
125832 [왓챠바낭] 엉망진창 난장판 코믹 호러, '좀비오2'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3.27 154
125831 보아 신곡 -정말 없니?/그거 아세요? 귤에 붙어 있는 하얀 것은... 상수 2024.03.27 183
125830 토드 헤인즈 감독, 줄리안 무어, 나탈리 포트만의 메이 디셈버를 보고 - 나는 괜찮고, 알고 있다는 착각들(스포있음, 내용 보충) 상수 2024.03.27 2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