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아래에 어려운 말씀을 꺼내주신 안수상한사람님과 직접 연관된 게시물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다만 ‘쓰게 된 계기’정도는 맞겠네요. 저로 인해 혼란을 느끼신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별 문제가 아니라면서, 그것도 제 학위까지 언급을 해가면서 그런 말을 하니 헷갈리셨을만도 합니다. 다만 ‘문제는 없는데 왜인지는 안 알랴줌’의 태도는, 불가피했습니다. 본문을 쓰신 분이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이신 후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댓글)를 듣고 계시는데, 그 청자가 본인도 아닌 다른 분과 ‘저 사람 문제 없어’투의 대화가 오가는 모양새를 보이는 건 일단 심리적인 무엇을 떠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이렇게 ‘따로’ 쓰는 것도 그 이유고요.

 

각설하고, 적습니다. 우선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인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님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늘 공허하고 죽고 싶다기에 진심으로 환영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 반복하는 상황. 얼핏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하는 이들 중에는 정말 정신과적인 응급의 상황에 있는 분들도 상당히 계세요. 하지만 ‘그냥 다 모르겠고 지구에 운석이나 떨어졌음 좋겠네’하는 약간의 체념과 무기력으로 일상을 사시는 분들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생각을 통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일상의 공허를 해소하고 계시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보다, ‘요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와 ‘늘 그런 생각을 했다’는 완전히 다릅니다. ‘나 스스로 나를 죽이고 싶다’는 욕구와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또 완벽히 다른 욕구고요. 후자는 차라리 죽음의 불가피성을 일상적 태도로 수용하는 성숙함, 나아가 일상의 ‘귀찮음’을 죽으면 끝날 일 정도로 취급해 거기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조적 노력이라 보는 것이 도리어 타당합니다.

 

또한, 죽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떠올리며 일상을 운영하는 분들은,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애써 회피하거나 죽음을 굳이 생각하지 않는 분들에 비해 죽음에 대해 나름의 철학을 알게 모르게 가지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일부러 죽음을 늘 생각하려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는 점을생각하면 이해가 쉽죠. 무의식이 계속해 죽음이란 주제를 상기시킬 땐 그만큼 개인에게 효용이 있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그것도 좋은 쪽으로.

 

‘죽고 싶다’는 타인의 말을 가볍게 듣지 않으려는 듀게 회원님들의 모습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혐오발언들이 화를 돋구지만 그래도 듀게는 듀게다,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다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 해당 글을 쓰신 분은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것이 아니라 ‘이거 내가 이상한건가’에 대해 안도감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그리고 사실이기도 합니다. 정말 안 이상해요. 댓글에도 많이들 언급하셨지만 그런 생각 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또한 그냥 죽으면 끝날 일, 정도로 인생의 ‘귀찮음’에 대한 태도를 정리하고, 그러면서 꾸준히 자신의 일상을 ‘유지’해나가시는 그 분의 모습은 참 ‘강한’것이었습니다. 잘 하고 계시다는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죽음에의 욕망은 곧 삶에의 의지입니다. 주어진 만큼의 하루, 또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냈음 합니다. 마침 또 주말이네요. 모두에게 좋은 휴식이 허락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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