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대화...(희망)

2016.10.27 12:10

여은성 조회 수:725


 #.일기글에 등장하는 사람들 말인데 Y는 Y예요. Q는 당연히 Q고요. 아무 부연설명 없이 그냥 사장이라고 하면 대체로 중구~강북 어디엔가 있는 사장을 뜻해요. '변호사'는 십몇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어떤 사람이고요. 그리고 친구는...친구죠. 친구라고 언급되는 사람이 글에 등장할 때마다 '대체 어떤 친구를 말하는 거지?'라고 헷갈릴 필요가 없어요. 내겐 친구가 한명뿐이거든요.


 듀게글을 보면 알겠지만 요즘 부쩍 친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친구를 설득하려고까지 하려는 건 아니예요. 그저 내가 좋다고 여기는 관점을 짜증나지 않을 정도로 말해주려고 해요. 그야 이건 내 의도일 뿐이고 상대에겐 짜증날 수도 있지만요. 요즘 이러는 이유는 불안함 때문인데...그건 밑에 써놨어요.



 1.친구와 얘기하다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지난번 미켈란젤로에 비유한 이야기는 별 감명을 주지 못한 것 같아서요. 새로운 비유로 친구에게 희망에 대해 설파했어요.


 '희망이란 뭐라고 생각하나? 희망이란 유동성이지. 유동성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네. 이젠 그렇게 되어버렸어.' 


 라고요. 의외로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어요. 확실한 희망이라는 게 이 세상에 하나 있다면 그것은 유동성일 거라고요. 뭔가 이야기가 잘 풀려가는 것 같아서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가 말했어요. 투자를 하면 그 희망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 내버려두겠다고요. 



 2.이건 잘못된 소리였어요. 애초에 희망이란 건 달과 같거든요. 아무리 거대해 봤자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요. 반사할 빛이 비춰지지 않으면 애초에 희망은 빛날 수 없고, 빛나지 못하면 그건 희망이 아닌 거죠. 언젠가 썼듯이 미켈란젤로가 돌을 피에타로 바꿔놓지 않았다면 그 돌은 여전히 그냥 돌일 거니까요. '이 돌은 그냥 돌이 아니야! 이 돌은 피에타가 될 수 있었던 돌이야!'라며 추켜세워질 일은 없어요. 미켈란젤로가 아닌 사람들의 눈에는 돌은 그냥 돌이니까요.


 그래서, 판도라가 희망을 상자에서 놓아줬듯이 자네도 자네의 희망을 세상에 풀어줘야 빛날 수 있는거라고 말했어요. 자네의 희망을 적금통장이라는, 어둡고 축축한 감옥에 가둬두고 있으면 빛날 기회조차 없을거라고요. 친구는 조금 뭘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맞는 말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덧붙였어요.


 '그런데 말야, 네가 지금 말하는 것 하나 하나가 사망 플래그야.'



 3.이건 꽤 맞는 말이었어요. 친구의 말대로 이게 친구가 주인공인 영화라면 이 모든 게 사망, 멸망 플래그의 클리셰고 나는 친구를 망하게 만드는 언설을 주워섬기는 얍삽한 인간이겠죠. 아니, 현실에서도 사람을 앉혀놓고 이런 소리를 하는 녀석은 99%확률로 악당이긴 해요. 그래서 말해 줬어요.


 여기는 영화의 세계가 아니라고요. 여기가 영화의 세계라면 그야 나는 악당이겠지만 여기는 현실 세계고 지금 나는 현실에서 승리하는 중이라고요. 내가 안타까워하는 건 바로 이거예요. 큰 눈덩이를 가지고 산 위에 서있는 남자가 있다고 쳐요. 뭐든지 될 수 있었을 것 같던 어렸을 때는 그냥 그걸로 괜찮아요. 꼭 그걸로 뭘 어쩔 필요가 없어요. 가끔씩 눈덩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우리는 눈덩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잘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눈덩이보다 더 나은 뭔가가 우리에게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주곤 했어요.


 하지만 몇 년 동안 그 남자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면? 몇 년 전에 그 눈덩이를 굴렸다면 최소한 그 남자는 더 큰 눈덩이를 가진 남자는 되어 있을 거거든요. 그래서 이젠 소리지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젠 정말로 네가 가진 그 눈덩이를 굴려야 할 때가 됐다고 말이죠. 


 왜 지금인가? 왜 그동안 발휘하지 않았던 오지랍을 이제 와 발휘하는가라고 하면...위기감 때문이예요. 이 위기감의 실체는, 현실 세계에서 이제 우리는 노벨상을 탈 수가 없게 됐다는 거예요. 누군가는 이렇게 비아냥거릴지도 모르죠.


 '이게 무슨 소리지? 이봐, 너희들은 원래부터 노벨상을 탈 수 없었어. 탈 수 없게 된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탈 수 없었다고. 몰랐던 척 하지 마. 너희들이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인간이었던 시절 같은 건 단 한순간도 있지 않았어.'


 라고요. 어쩌면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인식이예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진짜로 노벨상을 탈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사실이 어떻든,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거예요. 이제는 우리가 노벨상을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믿음이 전혀, 1그램조차도 들지가 않아요. 말 그대로 '유동성만이 희망'인 인간이 되어버린거죠. 내가 친구에게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거였어요. 이젠 시간이 지나가 버렸고 우리는 유동성만이 희망인 그런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요. 


 이제는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동원해서 현실을 제대로 상대해야 한다는 걸 말이예요.



 4.휴.



 5.듀게글을 봤다면 잘 알 수 있듯이 나는 흐물흐물한 인간이예요. 누군가가 조금 띄워만 주면 뭐든 쉽게 지껄여버리죠. 한데...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피트니스나 바에서 아무리 예쁜 사람이 괜찮은 종목을 말해달라고 해도 그것만은 모른다고 해요. 그야, 몰라서 말 안한다는 건 완전 거짓말은 아니예요.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해요. 이 세상에 100%란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100%가 아니더라도 내가 알아냈다고...또는 내가 찾아냈다고 믿는 퍼즐조각의 모양만큼은 아무에게도 말해주고 싶지 않은 거예요. 친구만 빼고요.


 정말 정말로 IBI 이수현이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안 가르쳐줄 거예요. 듀나게시판은 내 일기장인데 일기장에 거짓말을 왜 쓰겠어요?



 6.친구도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자네 말이 맞아. 이제 무언가는 시도하긴 해야 해.'라고 동의했어요. 친구가 뭘 하기로 했든, 뭔가를 시도하기로 했다는 점이 기뻤어요. 헤어지기 전에...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그런데 자네, 돈을 좋아하긴 하는 건가? 지금까지 얘기한 건 그걸 전제로 한 건데...'


 친구가 나를 이상한 듯이 바라보다가 '당연히 좋아하지.'라고 대답했어요. 아니 그야, 좀 바보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친구라면 정말로 돈을 안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지난 십수년동안 돈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서요.(돈을 아까워하는 모습은 보이긴 했지만요.)



 7.어떤 사람에게 하는 어떤 말이 조언인지, 오지랖인지, 꼰대질인지는 하는 사람이 규정하는 게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예요. 그게 뭔지는 듣는 사람이 결정하는 거겠죠. 하지만 한가지는 확신해요. 친구가 아닌 모든 인간에게 하는 말은 부풀려진 자의식 때문에 하는 거지만 친구에게 하는 말은 부풀려진 자의식을 더 부풀리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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