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 그 자체를 글로 옮기는 일

2016.10.27 16:43

칼리토 조회 수:1742

요즘 황현산 선생님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를 읽고 있습니다. 


책의 중간에 그리스 시인 야니스 리초스가 딸을 잃고 쓴 시를 소개하고 계십니다. [부재의 형태]라는 서른두 편의 연작시중에 서른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조금만 옮겨보자면


어린이 놀이터에, 작은 요람 하나 비어있다. 

루나 파크에, 목마 하나 기수 없이 서 있다.

나무 아래, 꿈에 잠겨, 그림자 하나 앉아 있다. 

빛속에, 실현되지 않는, 먼 침묵 하나.

그리고 언제나, 목소리들 웃음소리들 한가운데, 간격 하나. 


후략..


부모에게 아이의 부재는 세상의 무엇으로도 메꿀수 없는 부재입니다. 선생님은 슬픔은 잊혀도 이 슬픔의 형식은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문학이 늘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부적이라고 하시면서도 지금 우리에게는 부재의 형식조차도 사치가 아닌가 말을 건네고 계십니다. 네. 세월호 이야기입니다. 


세월호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죽음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악이기 때문이고 나태와 무책임에 형식이 없듯 악의 심연에도 형식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실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모양으로 놓아둘수 없다는 다짐이라고도 하십니다. 


끔찍스럽지만.. 세월호의 아이들을 일부러 희생시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을때 대통령은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 굿판이 사이비종교 교주의 환생을 기원하는 인신 공양의 형식이었다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믿고 싶지도 않고 있을수도 없는 이야기가 생명을 얻어 퍼지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이미 인간의 도를 넘어선 악의 심연에서나 벌어질 일이기 때문일것입니다. 지금의 이 바람이 언제 잦아들지 어느 쪽으로 바뀌어 불지 불안한 가운데.. 다른 건 몰라도 세월호 사건만큼은 철저하게 규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 말도 안되는 끔찍한 이야기가 실은 무능과 무지, 나태와 착각의 소산이었다고 위로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위로가 되겠냐만..)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일독을 권합니다. 소문대로 글이 참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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