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오른쪽, 문재인의 왼쪽

2017.03.26 22:57

윤주 조회 수:2022

한 때는 전 세계적으로 중도가 대세였죠. 폭넓은 이념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지지층을 모아 집권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중도의 뉴딜이 전후 타협을 기반으로 승기를 잡았으나 뉴딜은 실패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배했습니다. 이런 중도 집권의 결과는 위기의 반복과 양극화였습니다.


제3세계 독립국가이자 분단국가로서 한국에 이런 분석틀이 고스란히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독재국가와 발전국가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지만 이들은 반독재에서 경제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이행자가 되었으니까요. 극우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신자유주의라는 통치 이념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남은 선택지는 복지국가일텐데 서구 역사에서 뉴딜로서 복지국가는 이른바 축적과 정당성을 둘 다 확보해야한다는 근본적 모순을 보여주며 실패했고 현재 그 빈틈 사이를 극우가 비집고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이 복지국가가 된다면 이런 실패를 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죠.


얘기가 길었네요. 안희정은 문재인의 오른쪽을 맡고, 이재명은 문재인의 왼쪽을 맡고 있다는 말이 있더군요. 박근혜와 함께 극우가 몰락한 가운데 안희정의 우경화 전략은 갈 곳 잃은 보수에게 어느 정도 먹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독재 중도 정당으로서 민주당의 정체성 내에서 이런 우경화는 한계가 있습니다. 안희정이 당을 깨고 나오지 않는 이상은요. 때문에 승산은 오히려 안철수 쪽에 있다고 봅니다. 문재인의 왼쪽을 맡고 있는 이재명의 부상은 한국에서 중도에게 흡수되고 순치된 진보 세력의 궤멸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재명 역시 중도 정당인 민주당 내에 있는 한 한계가 명확하죠.


가령 중도 정당의 한계는 이런 것입니다. 박근혜 하야와 탄핵 국면 초기에 중도는 극우의 정치공세에 휘둘려 민의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습니다. 광장이 민의를 드러내고 나서야 보수여당 의원들까지 움직였죠. 중도가 아니라 진보세력이 민의를 모으고 이를 대표해 단호하게 움직였다면 상황은 달랐겠죠. 진보세력이 힘을 못쓰는 건 중도가 진보를 흡수하고 체제 내로 순치했기 때문입니다. 결선투표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제도가 미비한 점도 크고요.


문재인이 집권하고 나서 노무현이 극우의 정치공세에 휘둘려 실패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해요. 극우와의 싸움과 보수와의 논쟁을 "나중"으로 미루기만 한다면 실패할 확률은 더 높아지겠죠. 때문에 중도의 이점을 이용해 단기적인 이익을 취하는 대신 스탠스를 분명히 해 장기적인 발전을 선택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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