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대화들...

2017.05.23 03:07

여은성 조회 수:1057


 1.몇달 전 Q와 Q의 부하 중 한 명과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Q의 가게에 온 거였죠. 뉴페이스인 Q의 부하는 기가 센 20대 초반의 여자였어요. 술이 좀 들어가자 요즘 왜 이렇게 발길이 뜸하시냐고, 핀잔을 주듯이 말했어요. 도전적인 태도로요. 별로 대답해줄 말이 없었어요. 이 가게는 Q를 보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Q의 부하는 내게 인격체가 아니라 물체니까요. 가게 벽을 장식하는 타일이나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 같은 존재죠. 아니면 그보다 못할 수도 있고요. 타일이나 제빙기는 내 샴페인을 축내지는 않으니까요.


 Q는 부하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혼을 냈어요. 물론 손님에게 건방지게 굴면 안된다는 뜻으로 혼을 내는 건 아니예요. 이곳에서 손님에게 건방지게 굴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고 서열을 상기시키는 행위죠. 


 그렇게 부하를 몇 대 후려친 뒤 Q가 말했어요. '은성이는 나한테 질린 거야.'라고 말이죠. Q는 자신에게 삐져서 안 오는 사람은 다시 오게 만들 자신이 있지만 자신에게 질린 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어요. 맞는 말 같기도 했어요. Q의 부하는 Q의 얼굴을 가리키며 


 '아니 어떻게 이 와꾸에 질릴 수가 있어요!'


 라고 외쳤어요. 그러면 안된다는 듯이요. 좀 궁금했어요. 이렇게 과잉행동장애에 걸린 행동대장처럼 굴면 Q가 오른팔로 삼아주기라도 하는 건지...아니면 월급이라도 올려주는 건지 싶어서요.



 2.ss가 우머나이저를 아냐고 물어봤어요. 뭔가...오르가즘으로 가는 길을 도와주는 기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실하지가 않아서 모르겠다고 했어요. ss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며 내게 실망했다고 말했어요. ss는 '다른 것은 상대도 안 되는 것'이라는 말로 우머나이저를 설명했어요.


 그래서 돌아와서 그게 뭔지 검색해보니 겁이 났어요. 여기에 써있는 말들...이게 다 사실이라면 우머나이저는 남자들을 좀더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 나라도 나서야 하는건가...? 누군가는 21세기의 러다이트 운동을 시작해야하지 아닐까? 하고 잠깐 고민했어요. 

  


 3.선거 전에 어머니가 지나가다가 말하셨어요. 너처럼 팔자좋은 놈은 없을 거라고요. 유담 걔는 고작 그걸 받고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욕을 들어먹고 있더라...고 하시는 걸 보니, 아마도 성당 사람들이 유담을 디스하는 말을 듣고 오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유승민과 유담이 욕먹는 이유는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들이 욕을 먹는다면 그건 그냥 그들에게 적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라고요. 


 인식의 차이를 알아보고 싶어져서 질문을 한번 해봤어요. '어머니는 진짜로 팔자가 좋은 놈들이 누군지 아십니까?'라고 하자 '네 기준엔 한 재벌쯤 되었어야 팔자가 좋은 거냐?'라는 조소가 돌아왔어요.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사실을 정정해 드리기 위해 한 마디 올려야 했어요. 


 '어머니, 진짜로 팔자가 좋은 놈들은 태어나지 않은 놈들입니다. 나는 태어나서 열심히 사느라 힘들다니까요?'



 4.휴.



 5.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서울 북쪽에 있는 학교에 다녔는데 넉넉잡아서 가는 데 한시간 오는 데 한시간 정도 걸렸어요. 어느날 별 생각 없이 3학년 과실에 놀러갔어요. 한 남자(3학년)가 있었어요. 그는 주중에는 학교에서 사는 사람이었죠. 당시 학교에는 그런 자들이 꽤 있었어요. 온갖 세면 도구나 갈아입을 옷, 침구류 등을 가져다놓고 매우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먹고자고 하는 사람들 말이죠. 솔직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가 통학에 시간을 얼마나 쓰냐고 물어보길래 별 생각 없이 하루에 2시간 정도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그의 눈이 빛나는 걸 본 것 같았어요. 아직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가 개발되기 전이었죠.



 6.그가 꽤 장황하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어요. 학교에서 먹고 자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효율적인 것인가에 대한 이론이요. 학교에 있으면 온갖 리소스에 접근하기도 편해서 과제의 질을 높일 수 있고 무엇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요. 그는 주워섬겼어요.


 '자, 너는 통학에 하루에 두 시간을 써. 응? 이 두 시간은 말 그대로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야. 하루에 두 시간이면 일주일이면 얼마? 열시간이네? 그럼 한달이면 얼마지? 40시간! 일 년이면? 방학을 따로 빼놔도 대충 300시간이야. 300시간! 학교에서 먹고 자면 넌 300시간을 아낄 수 있어!'


 ...라고요. 물론 나는 그런 말에 속지 않았어요. 그런 말에 속기엔 이미 모모를 너무 여러 번 읽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의 시간 계산이 전혀 맞아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죠. 그러나 그 3학년은 모모를 읽지 않은건지, 아니면 현실에 나타난 회색사나이인 건지...버려지는 300시간에 대해 계속 설파했어요.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 300시간에 대해 죄책감이라도 느끼라는 듯 더욱 모질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7.그는 나를 결국 설득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못내 아쉬운 듯 나를 붙들고 '속는 셈치고 오늘 학교에서 하루만 자 봐.'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씻는 문제도 있고 해서요...패스할께요.'라고 하자 '그럼 내 세면도구를 빌려줄께.'라고 했어요. 어째서 그는 내가 남의 세면도구를 쓸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8.하지만 한 가지는 궁금했어요. 그가 학교에서 노숙을 하는 생활을 대가로 거슬러받는다는 하루 두 시간을 대체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요. 그래서 가끔씩 3학년 과실을 염탐하러 가곤 했어요. 한동안의 조사와 관찰 끝에 그는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의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가 주로 하는 일 중 첫 번째는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거였어요.


 그가 주로 하는 일 중 두 번째는 스타크래프트를 같이 플레이할 동기나 후배를 찾아다니는 거였어요. 


 그는 거의 그 두 가지 중 하나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어요.


 나는 조사를 마치고 중얼거렸어요. '모모, 네가 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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