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별 종교에 관한 긴 바낭

2018.07.20 04:24

라ㅤ 조회 수:1329

*주의주의주의* 자극적인 세 화제가 모두 제목에 있지만 그렇게까지 자극적인 글은 아니며 시류에 따른 화제와는 몹시 매우 동떨어진, 사적이고 시시콜콜하며 쓸데없이 긴 바낭글입니다 *주의주의주의*

흔히 가장 민감한 화제를 대라고 하면 주로 튀어나오는 게 저 세 가지죠. 저 화제들은 제각기 분리되었다기보단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굳이 하나만 골라 무엇이 가장 민감하고 자극적인가 하고 묻는다면 예전엔 성별 이슈라고 생각했어요. 나머지 화제에 별로 큰 관심이 없어서였기도 하고 별 생각 없이 웹서핑을 하다보면 어디서든 성별이슈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많이 보였으니까요. 듀게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기도 하구요.

1. 정치

그치만 트위터를 시작하고 나니 정말로 민감하기 그지없는 화제는 정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팔로잉하는 분들이나 팔로워가 되어주시는 분들 모두 정치화제를 중심으로 트윗하시는 편이라서 타임라임에 들어가면 언제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정치 이야기를 보는 걸로 마무리하게 되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약간 피곤하긴 하지만 여태껏 정치라는 내 삶에 직결된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만큼 이것저것 알려주시는 분들의 정보를 흡수하면서 제 나름의 정치관이 형성되는 걸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정치가 민감한 화제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던 계기는 제 타임라인에서 정치문제로 하루종일 싸움이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서인데 듀게처럼 게시판 형식에서 일어나는 싸움과 트위터에서 타임라인을 통해 일어나는 싸움은 그 피로도의 정도가 비교가 안 되더라구요. 음...일단 저는 특정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A라는 정치인이나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 저와 견해가 판이하게 다른 분이라도 B라는 사건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거나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견해라도 왜 그분이 그런 의견을 고수하는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일단 팔로잉을 해두는 편이거든요. 견해차 때문에 다른 좋은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게 너무 아까워서...그래서 다소 불편한 느낌이 드는 트윗을 하는 분이라도 팔로잉하는 편인데, 문제는 A라는 건에서 견해가 일치하지 않으면 B나 C에서 일치하건 말건 넌 블락이다!!! 주의의 분들도 트친으로 두고 있어서 곤혹스러운 상황이 많이 생기네요.


그분들의 대응방식을 존중하는 거랑은 별개로 타임라인에서 제가 팔로잉한 트친 A님과 B님이 서로 맹렬한 인신공격을 퍼부으며 열정적으로 키배를 뜨고 계시면 어찌할바를 몰라진달까...엌 두 분 싸우시는구나 좀 이따가 와야지(머쓱타드 하고 잠시 자리를 피해도 기분이 상하신 B님이 A님과 트친관계인 분들을 한꺼번에 블락해버리시면 졸지에 저도 블락당하는 유감스러운 사태가 생기거나, 블락당하지 않더라도 B님의 눈치가 보여서 그 후로는 A님의 트윗을 리트윗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마음만 찍는다거나 하는...정치 이슈로 발생하는 복잡미묘한 인간관계의 갈등에 이러저리 휩쓸려다니는 느낌이 들어요.  


평소에 하하호호하던 트친분들이 어떤 정치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사이가 험악해지는 걸 보면 정치가 우리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영역이긴 하구나 싶고, 전 현실에서도 이런 복잡한 인간관계에 에너지가 소모되는 걸 정말 좋아하지 않아서 가급적이면 공동체 속에서 지나치게 밀접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트위터에서 관계 때문에 골머리를 썩게 되다니 약간 웃음도 나옵니다. 근데 이건 이것대로 신선하고 재미있어요. 이전까진 전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영역이라 골치아픈 이 느낌조차 재미있게 다가오네요 ㅎ

어쩌면 이런 골치아프고 피곤한 느낌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그만큼 정신이 단련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몇년 전만 해도 트위터는 커녕 완전 익명인 곳이 아닌 이상 제 닉을 걸고 어딘가에 글을 쓴다거나 리플을 남긴다는 행위가 너무 꺼림칙하고 두려웠거든요. 그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매우 취약한 상태였어서 그 행위로 인해 복잡한 일에 휘말려든다거나, 누군가의 생생한 적의를 받는다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도저히 각오가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고 듀게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나 트위터에서 글을 남기고 수많은 적의와 공격을 받아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무렇지도 않은 느낌이더라구요. 그때보다 상황이 나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상태라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불쾌하긴 해도 금방 떨쳐내고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가 있어서, 대체 여태껏 내가 두려워했던 건 뭐였던 거지 하고 어리둥절했었네요. 사람이 좋은 말만 듣고 살 수 없는 건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걸 계속 기피해왔으니...

호의와 선의를 주고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가끔씩은 적의와 악의를 주고받는 것도 색달라서 재미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뒤틀리게 표현된 것이 악의를 발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백 번의 듣기 좋은 말보다 더 강하게 임팩트를 남기는 게 한 번의 악의 넘치는 말이니까, 어찌보면 효율적으로 적은 노력을 들여 상대방의 뇌리에 내 존재를 각인시키는 행위인 셈이니까요(감정의 방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강도만을 신경쓴다는 가정 하에).

헛 어쩐지 정치화제의 민감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갑자기 자기고찰이 되어버렸네요. 뭐지... 더이상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전에 얼른 다음 화제로 넘어가야겠네요.

2. 성별

성별이라...으음. 전 성별갈등이 갈수록 노골화되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아주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이제 대놓고 표면에 드러난 것 같아서 씁쓸한 감정이 들어요. 분노도 논쟁욕도 아닌 순수한 안타까움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런 종류의 극과 극의 갈등이 종결을 맞기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양측간의 타협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런 타협점이 성사될 만한 공론화의 장이 완전히 파괴되어 황폐화된 상태 같아서요. 


처음 위험신호 비슷한 걸 감지했던 건 들끓어오르는 성별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중간적인 위치를 잡고 갈등을 중재해보려 하는 분들이나 스탠스가 애매하던 분들을 두고 모 아니면 도, 양쪽 중 하나를 확실하게 편들지 않으면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는 발언이 무수한 공감을 얻을 때부터였어요. 그것이 설령 옳은 말이라 해도 중간적인 포지션을 지닌 분들이 사라지면 타협점이 생길 여지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양극의 대립이 영원히 이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거든요. 어떤 종류의 입장 갈등을 해소하려면 가장 낮은 단계까지 내려가서 양측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을 찾고(이를테면 각종 멸칭으로 욕먹고 여혐하는 사람만 모여있다는 시선을 받는 남초커뮤에서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에 다같이 공분하며 꾸준한 서명운동을 통해 재수사를 이뤄낸 건 정도가 있겠네요. 비록 대다수의 남초커뮤에서 페미니즘을 향한 뚜렷한 적의가 보이더라도 이런 사건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공통적인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는 게 보여서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서히 한 단계씩 올려가며 토론하고 양측의 의견을 교환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타협점이 있다면 타협하는 그런 모양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와서 이런 얘기를 해봤자 너무 이상적이거나 나이브한 것 같고...다른 것보다 이 갈등이 어떤 형태로 끝을 맺을지 궁금하네요. 아무리 봐도 어느쪽이든 백기투항하거나 상호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 보여서. 평행선 두 개가 겹쳐지지 않은 채 끝없이 이어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어쩐지 막막해지네요.


3. 종교

헉헉 드디어 마지막 화제네요. 으음...전 가톨릭 신자이긴 하지만 그다지 신실한 편은 못 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미사때 성당에 앉아있어도 신성한 느낌(?) 비슷한 게 차오르는 느낌은 전혀 없고, 멍하니 서거나 앉거나 하며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하는 생각이나 졸거나 이런저런 잡생각을 더 많이 하거든요. 신부님 말씀에 귀기울여 본 적도 몇년 전 얼굴을 보고 일대일로 했던 고해성사의 기억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시피 하고 전도같은 것도 그걸 왜 해야하지???? 하는 편이라. 당연히 온라인에서 제 종교나 절 포함한 신도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글을 보거나 얼마 전 크게 화제가 되었던 성체훼손 건을 봐도 별다른 느낌이 없고요. 적어놓고 보니 독실한 분에게 그럼 넌 왜 성당에 나가는거니 네가 가톨릭이긴 하니(한심한 눈빛)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 없는 수준이네요...

그래도 가톨릭이라는 종교는 제게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서 아무리 게으르고 불성실한 신자라도 신자이길 그만둘 순 없을 것 같아요. 먼저 미사에 대해 별 느낌이 없긴 해도 그건 '사람이 가득한 성당'이기 때문이지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성당, 특히 새벽 5~6시경의 성당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이 되더라구요. 정갈한 느낌이 든달까...그래서 한때 밤을 세우고 새벽미사가 끝난 텅 빈 성당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었네요. 지금은 새벽미사는 커녕 저녁 미사도 귀찮아서 거의 안 나가지만요.

그리고 전도... 전 솔직히 전도의 필요성을 머리로 이해하는 거랑 달리 실천은 도저히 못 하겠어요. 일단 타 종교인분을 제외하고 나면 전도 대상은 종교가 없는 일반인이나 무신론자일텐데, 일반인에게는 몇달간 교육받아야 하고 매주 일요일에 일정한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귀찮은 걸 권유해야 하나...하는 회의가 들고, 무신론자분에겐 앞선 이유에 더해 확고한 스탠스로 종교가 필요없다는 분에게 굳이...??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놓고 말하자면 인생에 종교라는 요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분들은 그냥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게, 종교가 필요할만한 계기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게 그분들에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뭐랄까...아무리 미사에서 느끼는 점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일순간이라도 미사에 집중할 때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순간이 없으면 자꾸만 자의식이 부풀어서 언젠가 뻥 터져버리거나 누군가 찔러 터뜨릴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 종교라는 수단을 통해 그때그때 조금씩 바람을 빼 주는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부풀어오르는 자의식에 찌르는 날카로운 바늘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종교가 저런 느낌이라면 신은...전 인격신이라는 관념보다는 일종의 느낌이나 기분? 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정말 막연하고 애매한 설명이지만 이런 거랑 비슷해요. 제가 너무나도 두려워하고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조마조마하고 미칠 것 같은데 매달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을 때, 그리고 그 최악의 순간이 바로 목전에 도달했다고 느껴서 두 눈을 힘주어 꽉 감았는데 의외로 잠잠한 거에요. 그래서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사태는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고, 어리벙벙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무형의 무언가가 씩 웃으며 제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그 순간의 허탈하면서도 유쾌한 느낌이 가장 비슷한 것 같아요. 또는, 조마조마해하다 눈을 떠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최악의 상태가 벌어져 있어서 으아니 멘붕하고 충격받고 휘청거리다 바닥에 완전히 쳐박혀 쓰러지려는 저를 간신히 떠받치는 바닥과의 약 1cm 정도의 간격같은 느낌이랄까, 여하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저런 느낌과 유사한 무형의 틀 안에 내가 속해있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일종의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들이 종교적으로 신실한 사고방식은 결코 될 수 없겠지만요...

흐아...다 적고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영양가없는 글이라 올리기 면구스러운데 그래도 이런 글을 구구절절 늘어놓기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곳 외엔 적절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아서, 길 잃은 아이처럼 정처없이 온라인을 헤매이다 결국 다시 이곳으로 흘러들어와서 슬쩍 올려놓고 다시 방황하게 되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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