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2021.03.07 22:51

잔인한오후 조회 수:879

시간이 흐르다 보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단점을 자각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자신의 기질과 총체에서 오기 때문에 일부분만을 쉽사리 고칠 수 없고, 평생의 숙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도 단순히 생각해 볼 때 현명한 소비를 하지 못하는 점과 타인에게 협력을 구하지 못하는 점이 곧바로 떠오릅니다. 보통 이런 단점들이 자신과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체념과 분노, 하소연과 수용을 때때로 불러 일으킵니다. 


혼자 일을 다하려다 머리를 쥐어뜯다가 망쳐버리는 스타일인데, 다른 사람이 (예를 들자면) 거래처와 하하호호 인간적으로 웃고 대화하며 문제를 이리저리 조율하고 수정하는 것을 보면 매우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부분은 음성적일 때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협력할 문제가 크고 복잡할 때 궁색한 상황을 더 쉽게 해결하는게 부럽습니다. 우습게도 이런 문제들을 어디서 따로 하소연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짧은 조언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아마 다들 자신의 그러한 부분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겁니다. 너무 고질적인 문제라서 딱히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며, 개선하려던 역사가 삶의 역사와 동일한 문제들을.


개인적으로 어떤 웹사이트의 관리자 역할을 맡아 수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그와 평행인 문제들이 산재합니다. 어떤 관리 주체의 행동 양식은 초기 이미지가 중요한데, 저는 그런걸 진행하면서 매끄럽게 인간성을 가진 존재로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비인간적이고 규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자 역할을 진행 중입니다. 이런 선택은 사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본 바탕은 다수에게 공평하기 위해서인데, 초기 속도나 신뢰를 까먹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길이죠. 장기 목표가 있는 계획이지만, 얼마나 오래 살 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 문제들을 꺼내서 써 본다 해도, 위로나 조언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외로워질 거라고 알고서도 선택한 것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진 조언과 위로 전문 평론가가 됩니다. 그렇게 되기 때문에 애초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죠. 다른 이들에게 무례하기 싫으니까요.


비슷한 다른 동네들이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곳은 광고가 아주 많은데, 다른 곳은 광고가 하나도 없기도 하더라구요. 도대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하지만 제가 맡고 있는 곳의 독보적인 차이는 이야기 주제를 고르는데 사실상 어떤 것도 막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정치 등 온갖 이슈들의 금지 목록이 긴 곳들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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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속상하고 답답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과연 이 세상이 개선되어 가기는 하는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사실 요새 추세는 세상이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진다가 국룰 아닌가요 하하. 듀나님은 20세기식 종말론과 달리 21세기식 종말론은 모든 것들이 조금씩 삐걱이며 긴 기간 말라비틀어진다는 쪽이라고 하셨죠.


위에서 언급한 어떤 웹사이트의 이용자 한 분이 탈퇴하신 일도 속상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웹사이트의 이용자들 모두를 적당히 애증합니다. 사적으로는 애와 증의 크기차가 나기도 하겠지만 한 명 한 명이 소중합니다. 탈퇴하신 분이 썼던 조언 요청글과 그 댓글도 읽었는데, 일상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의 조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까탈스러운 위로와 조언 감별사로서, 상대방을 더 깊게 생각해야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고 그런 조언들은 소중합니다. 우리가 인터넷 세계라는 몸을 잃은 불안정한 공간에서 대면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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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지긋지긋합니다. 몸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 말이에요. 


( 그렇다고 과거처럼 만나는 것도 못할 일이겠지만. ) 


우리는 이 이상한 네트워크 사회에서 편재성을 획득했지만, 실제로는 물질이라는 걸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 피할 수 없는 살덩어리 안에서 자신을 보살펴줘야 하는데 말이지요. 실제로 만나도 개인이라는 총체에 다가서기 어려운데, 이렇게 많이 분절된 낱말과 문장, 잘려진 사진들과, 유령같은 수로 환원되는 상황에서 구식 뇌는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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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답답한 이야기를 조금 써야겠어요. 최근 동남아에 대해 아는게 도대체 뭐가 있나해서 [동남아시아사]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아마 이 두께로 봐서는 다 읽을 일은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아는게 없었나 싶습니다. 최근의 미얀마 사태도 답답하고 속상하는 일 중 하나군요.


[헤러웨이 선언문]이라는 책을 조금씩 읽고 있어요. 사이보그 선언 이후 반려종 선언을 읽고 있는데, 사실 이 책은 [오늘의 SF #1]의 칼럼을 읽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책이지요. 사이보그란 무성적 존재를 통해 양성의 정반합을 뛰어넘는 철학을 펼치고, 종을 뛰어넘는 관계를 통해 종 내의 다툼도 해소하는 방향을 그려보고 있네요. 요새는... 아주 잘 써진 책을 뇌에 집어넣으면 여기 저기로 흩어지고 튕겨져 나가 앞 뒤가 안맞는 글자 부스러미가 되는 기분이라 독서하는 의미를 찾는데 더 많은 힘이 들어갑니다. 의미라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되는데 말이죠.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을 다 읽었습니다.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었다가 코를 찌르는 독함에 정신을 그만 잃고 말았습니다.


[평형추]를 읽었는데, 이건 가능하면 다른 글로 써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르키디아에도 나는 있었다]처럼 영영 글로 써지지 않겠지요. 흑흑.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이라는 책을 빌렸는데, 도대체 무슨 책인가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도서관 실패기'를 읽고 깔깔 웃었다는 정도는 남겨두고 싶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태워버리는 사각형 액정에게서 열심히 도망치고 있습니다. 가끔은 마치 작은 전자기기에서부터 뻗어나와 구성된 기생체가 내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거기에 붙어 있지 않으면 말라 죽는 것처럼 손 더듬이들이 자의를 가진 것처럼 귀신같이 전자기기를 찾아 틀거나 밥을 줄 때마다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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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저의 몸은 내일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요일의 깊은 곳으로 갈수록 기분이 다운되고 있군요. 대부분 그러시겠지요. 잠시간 같이 비슷한 현기증을 느끼시고 있을 분들을 위해 눈물짓는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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