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후기 (스포 잔뜩)

2019.05.26 21:29

일희일비 조회 수:1144

봉준호 감독님 황금종려상 소식에 C'est bon! 란 댓글 보고 웃었네요. 봉씨들은 불어권에 가면 좋겠어요. 뭘 해도 '좋음, 잘했음'이 됨. (성씨로 하는 말장난이 또 뭐가 있을까요? 정씨들은 심리학 전공하면 융의 자손이냐는 오해를 대충 해명하지 않고 넘어가고 싶을 것 같고요. 원씨들은 영어권에서는 뭘 해도 ** Won이 되어 **가 이겼다는 뜻이 되니 어딜 가나 짱 먹는 기분일 듯.)


기생충 보기 전에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복습하려고 넷플릭스 들어가서 검색했더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산행도 뜨네요. 언젠가는 보고 싶었던 영화라 클릭. 좀비영화치고는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는 말에 마음 속에 킵해두고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좀 남는 영화였네요.


1. 첫 장면의 트럭 운전자와 교통통제요원의 연기가 느무 어색함. 내가 영화감독이고 연기지도를 잘 할 자신이 없다면, 다른 단역들은 몰라도 반드시 첫 장면의 단역만은 메소드 연기의 달인들로 뽑겠어요.


2. 영화 속 여자들을 왜 그렇게 무력하게 그린 겁니까. 현실 재난에서 저렇게 손 놓고 있을 리 없잖아요. 좀비들이 힘이 센 편이라서 일대일 대응은 어렵다 해도 남성 캐릭터들이 싸우고 있을 때 도울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영화 통틀어 여성 캐릭터가 좀비에 대응한 건 마지막 1량짜리 기차 위에서 김의성이 공유 공격할 때 정유미가 잠깐 때린 것 말고는 없는 것 같네요. 게다가 언니가 좀비 되었다고 짠하게 쳐다보다가 격리하는 열차 문을 열어버리는 여동생 할머니는 뭡니까. 그리고 그 배우도 연기 엄청 어색함. 전혀 공감도 안 되는 행동이었고, 그 자체가 너무 심하게 민폐 캐릭터잖아요. 정유미가 13호 화장실로 구하러 오라고 남편 닥달하는 부분도 어이없고요. 


3. 뚫고 온 부상자들을 바깥쪽 연결구에 나가 있으라고 하는 부분이 매우 야속하게 그려졌는데, 사실 격리해야 하는 것 맞다고 봅니다. 서로서로 격리하는 게 맞아요. 많이 몰려 있으면 뭐 하게요. 그리고 쫓아내듯이 연결구에 나가라고 하는데, 그쪽 공간이 좀비들에서 더 먼 쪽이라서 더 안전하고 편리한 거 아닌가요;;; 실제로도 그래서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만 살아남았고요. 

야속함에 감정이입한 관객들은 할머니가 문을 열여젖혀서 괘씸한 15호 생존자들이 몰살되는 장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15호 생존자들이 모두 한통속으로 악인인 것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그 생존자들을 나쁜 사람들로 모는 것이 내러티브에 무슨 도움이 되죠? 좀비가 발생한 더 큰 사회적 맥락을 거세하고 생존자들 중에 얄미운 사람을 처단하는 통쾌함만 강조한 것은 얄팍한 관점입니다.

 

4.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과 액션이 연달아 펼쳐지니까 인물 설명에 공을 들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다들 평면적인 인물이란 점이 아쉽네요.


5. 좀비 되기 직전의 공유가 갑자기 새하얀 빛 속에서 아기 수안을 안는 회상을 하는 부분은 오글오글. 해지 마!! 해지 말라고!!


소희와 최우식은 살 줄 알았는데. 나름 충격이었습니다.



정유미는 중간에 산통이 오고 출산 장면이 나오는 거 아닌가, 감독은 과연 그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영화 끝부분으로 밀어버렸군요.

마지막에 수안이가 갈라진 목소리로 음정 안 맞게 알로하 오에 부르는 장면에서는 신파인 걸 알면서도 눈물이 왈칵 터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어설프지 않고 액션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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