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불펜게시판이나 pgr같은 곳에선 때로 결혼을 안 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글이 올라와요. 뭐 나도 내가 결혼에 잘 맞는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지만...사실 그런 글은 말도 안 돼요. 결혼을 해보기 전에는 결혼이 실제적으로 좋은지 나쁜지, 자신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요.


 어쨌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결혼에 대해 쓸 수 있는 건 두가지뿐이예요. 결혼에 대한 상상을 쓰거나, 아니면 결혼한 주위 사람들의 리액션뿐이죠. 결혼을 한 사람의 리액션이 행복인지...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관찰하는 게 그나마 결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사실 결혼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가 결혼이 두려워진 이유는 그거겠죠. 슬슬 주위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있는데, 결혼에 대한 그들의 리액션이 그리 좋지는 않다는 점이요. 그걸 보면 '결혼이란 거 정말 위험한 일인 것 같은데?'라는 의문이 들죠.


 

 2.어떤 사람들은 그런 리액션을 보고 '역시 결혼을 안 하는 게 최고라니깐!' '결혼을 안 하면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지!'라고 단언하곤 해요. 하지만 글쎼요. 


 결혼이 좋으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이거예요. 20대의 인간이 아는 건 20대까지의 자신뿐이거든요. 30대의 인간이 아는 건 30대까지의 자신뿐이고요. 그 누구도 자신이 30대나 40대가 되면 어떤 사람으로 바뀔지...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게 될지 알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이 아는 거라곤 그때까지의 자신뿐이니까요.



 3.사실 취미활동을 마음껏 하거나 여행이나 레저를 마음껏 즐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내 인생이 게임이나 하고 드라마나 보고 여행이나 다니기 위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요. 한 30대까지는 그런 삶을 동경할 수도 있겠죠. 마음껏 놀고 마음껏 여행다니는 삶이요.


 그러나 40살 먹고 게임하고 다니고 50살 먹고 여행하고 다니는 건 글쎄요? 그 나이에 그걸 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예요. 하지만 취미 생활을 하고 여행을 하는 걸 남아도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취미생활과 여행같은 걸 하기 위해 인생의 다른 가치들을 포기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느끼면 기분이 꿀꿀해질 걸요.


 물론 누구나 노는 것과 놀러다니는 건 좋아해요. 다만 '여가'라는 말이 남을 여와 틈 가라는 한자로 조합되어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 하죠. 자신의 진짜 진면목을 보이거나 진짜 책임을 지는 일을 하는 사이사이에 존재해야 즐거움이 되는 거예요. 전에 샌드위치에 노는 걸 비유했듯이요. 샌드위치의 사이사이에 끼어져 있는 것들은 샌드위치의 사이에 끼어져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것만을 먹으며 사는 건 균형적이지 않은 거예요. 샌드위치 사이에 넣어서 먹으라고 있는 걸 그냥 먹으면, 처음엔 맛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질리거든요.



 4.휴.



 5.물론 이런 말은 꽤나 꼰대 소리긴 해요. 꼰대들이 '너 지금은 괜찮겠지만 나이 먹으면 어쩔거냐? 그때는 결혼 안해서 외롭지 않겠냐?'라고 말하는 것 자체는 옳은 소리예요. 


 그러나 일반적인 남자들이 현대 사회의 결혼을 감당하려면? 결국 젊은 시절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죠. 최소한 전세값은 모으고 결혼식 비용은 모아야 해요. 어떤 남자들은 여자가 왜 돈을 많이 안 쓰냐고 툴툴대곤 해요.


 하지만 여자는 그럴 필요가 없죠. 여자는 그냥, 이 남자에게 자신의 첫번째 결혼 기회를 배팅한다는 선택 자체가 고비용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실과는 관계없이, 사회와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건 사실이 되는거고요.



 6.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예요. 사회나 시대에 따라 제도들은 다르게 해석되는 법이니까요. 어쨌든 한국의 결혼문화는 이제 '기반을 갖춰놓은'남자가 여자와 결혼하는 구조가 되었어요. 물론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반을 함께 갖춰가는 게 아니게 됐어요. 남자가 기반을 상당히 갖춰놓은 후에야 결혼을 해볼 자격을 획득한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면 그게 사회의 상식이 되고요.


 그리고 그건 남자에게 힘든 일이죠. 대학과 군대를 모두 해결하고, 직장에 빨리 입사하고 열심히 돈만 모아도 30대 초중반에야 가능한 일이예요. 최소한 거주지의 전세값과 결혼식 비용, 미래에 대한 괜찮은 전망까지 마련되어 있어야 하죠.



 7.물론 우리 인간들은 미래를 위해 살아요. 하지만 미래만을 위해 사는 것 또한 건전하지는 않죠. 한데 요즘 주위에서 결혼하는 걸 보고, 거기에 드는 자금의 규모를 보면 진짜 시간낭비 없이 열심히 달려야만 30대 중반이 되기 전에 그 수준을 맞출 수 있어요. 금수저가 아니라면요.


 금수저가 아닌 어떤남자가 서울에서 좋은 여자와 결혼을 하려면 '미래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미래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그건 정말 힘든 일이예요. 물론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결혼할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만 주위에 그런 경우는 별로 없어요. 주위의 여자들을 보면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니까요. 



 8.나는 어떨까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주로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살고는 있지만 역시 '오늘만을 위해'사는 것 또한 팍팍한 일이거든요. 한동안 오늘만을 위해 살고 나면 완전 허무감이 들어요.


 물론 나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열심히 살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도, 미래를 위해 살고는 싶은 법이거든요. 미래에 무언가...더 나은 걸 위해 말이죠. 나의 평판이 더 나아지는 것 또는 나의 재정상태가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 또는 나의 주위의 사람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뭐든간에요.



 9.어렸을 때는 결혼의 문제를 '한번 하면 되돌리기 힘들다는 점'으로 꼽았어요. 결혼이란 건 비용도 많이 들고, 결혼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면 이혼한 뒤에도 대미지가 크니까요. 하지만 그건 어렸을 때에 느끼는 결혼의 최대 리스크고 나이가 들면 생각이 바뀌어요. 결혼의 진짜 무서운 점은, 시기가 지나면 해볼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이거든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은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예요. 남자에게도 젊음의 가치는 생각보다 높아요. 남자가 50살 넘고 60살 먹고 결혼하려면 젊지 않다는 사실을 커버하기 위한 재력이나 권위를 갖춰야 하죠. 


 그리고 나이가 들면 제일 무서운 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후회하게 되는가...라고 생각해요. 결혼에 있어서는 '결혼을 한 걸'되돌릴 수는 있어도 '결혼을 안한 걸'후회하게 된다면 그건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물론 '결혼을 안했다는 사실'자체는 어떻게든 바로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여자와 결혼을 안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 바로잡을 수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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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요즘은 젊음의 최고 장점이, 후회할 일이 없는 게 아닐까라고도 생각해요. 어리고 미래가 있다는 점이 1~20대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가 없다는 점...아예 후회할 과거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어린 시절의 장점이 아닐까도 싶어요.


 아무리 합리적인 선택을 해도 그건 그 시간축에서의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거든요. 나중에 좀더 시간이 축적된 후에 그 선택을 바로잡는 건 꽤 고비용이 드는 법이예요. 뭐 돈은 들어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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