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죽음과 진실

2020.07.23 19:44

Sonny 조회 수:2509

그런데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된 배경이나 원인은 아무도 몰라요. 그 자신의 유서가 너무 추상적이었던 탓이죠. 그래서 뭣도 모르는 인간들이 이러쿵 저러쿵 고인의 삶과 죽음에 자기들 생각을 묻히고 있을 뿐이죠. 난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만들어진 서울시와 고인의 주변인들의 드러난 문제점은 짐작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드러나있어요. 그런 요인들이 없었다면 고인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까지는 닿지 않았을거라는 소리에요.


박원순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학교 폭력의 사례를 다시 끌고와 봅시다. 어떤 학생이 자살을 했는데, 유서에는 "모두 안녕"이라고만 적혀있습니다. 그는 공부도 잘했고 얼굴도 준수하고 교우관계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몰래 일진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돈을 뜯기고 흔적이 남지 않게 폭행을 당해왔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자기들이 괴롭힌 건 맞지만 죽고싶을 정도로는 괴롭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경우 그 학생이 자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영 알 수 없는 저 너머에 진실이 묻혀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누구든 그 학생이 자살한 사유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타임머신도 없고 텔레파시 능력도 없으니 현실적으로 그가 자살을 택했던 이유를 추론해서요. 그 전까지는 전혀 죽을만하지 않았다가, 죽음을 결심할 수 밖에 없던 삶의 커다란 고통과 수치는 무엇이었는지 보편적 인간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입니다. 아주 우울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죽음을 결심할 수 밖에 없던 커다란 동기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자살하는 이유, 학급 내의 따돌림이나 학업적 스트레스라든가 가정의 불화라든가 연애의 실패라든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아주 예외적일 수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충분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많이 자살하고 사회의 상태에 따라 자살율은 올라가거나 내려갑니다. 이 경우 이 학생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학교 폭력이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보편적 이유일 것입니다.


어떤 폭력이 있고 그 피해자가 자살을 했을 때, 우리는 그 자살을 폭력과 연결합니다. 물론 누가 자살한 이유를 100퍼센트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그 이유만으로 자살을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비밀이 있고 표면적인 것과 다른 인과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살한 학생이 학교 폭력을 당해왔다면,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그것이 인과관계는 아닐지언정 상관관계로는 충분히 작용했을 것입니다. "학교 폭력을 당한 건 그가 자살한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라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학교 폭력을 자살을 종용하기에 충분한 요인이고 그가 안죽었더라도 사실이 드러난 이상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학교 폭력 가해자를 "살인자"라고 비판하는 것에 부당하다고 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살할 만큼은 괴롭힌 건 아니고, 자살은 우리가 괴롭힌 것 때문은 아닐 수 있다고 하는 게 학교폭력이라는 이들의 실질적 죄목과 무슨 관련이 있겠습니까? 어느 학생의 자살에 상관관계만으로 작용했어도 이들의 죄는 충분히 무거운 것입니다.


박원순의 사례로 돌아가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박원순의 자살이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정확히 추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경우 100%의 완벽한 진실이 알리바이로 등장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박원순이 성추행 가해 사실에 수치와 불안을 느껴서 죽었을 수 있지만, "정말 정확한" 자살의 사유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되물어봅시다. 이 세상에 그 사유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는 자살이 있습니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지금 상황에서 적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박원순은 지금 문학 수업에서 그 심정을 완벽하게 헤아려야 할 분석용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 어떤 인물에게도 불가능한 100%의 독해를 박원순에게 특별히 적용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박원순이 나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박원순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박원순의 죽음에 대해 모든 판단을 단정적으로 내리던 사람들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아주 이상한 상황이죠)


자살한 학생과 그가 당한 학교 폭력에서 최소한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박원순의 자살과 박원순의 성추행 피소에 대해서도 우리는 당연히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름 잘 나가던 한국 최초의 3선 서울 시장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살아있는 것이 당연하고 딱히 죽을만큼의 문제나 고민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반발하며 매우 멀쩡해보이던 사람도 우울증이나 개인적 고통으로 갑자기 자살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 해석이 온전하게 들어맞기 위해서는 "박원순이 성추행 피소를 당했다"는 사실관계가 없어야 합니다. 그 맥락이 없으면 우리는 박원순의 자살을 미스테리하게 여기며 그를 추모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박원순은 성추행피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그 다음날 자살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비논리적인 인과인지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서울 3선 시장에 대선 후보로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전도유망한 남자 정치인이, 자신의 모든 정치커리어가 끝나고 범죄자로 전락해 욕만 먹고 살지도 모릅니다. 누가 생각해도 이것은 아주 큰 위기입니다. 서울 시장직이 어떤 자리인지 구체적으로 몰라도 그냥 옆에서 볼 때 "X됐네..."라고 탄식하기에 충분히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충분히 자살할만큼 큰 중압감과 절망감이 느껴지는 이 계기를 두고도 진실을 알 수 없다고 하면 그건 정확한 독해가 아닙니다. 완벽한 진실을 알리바이로 삼아서 독해를 포기하는 거죠. 


박원순의 자살을 미스테리로 남겨놓는 것은 추모를 위한 또다른 신비주의입니다. 박원순에게는 죽기에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어버리면서 얻어지는 여러 효과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자살을 낭만화하고 고인을 매혹적으로 그리려하는 사람들은 "예의"를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이 그렇게 어려운 존재입니까?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군가 죽었는데 죽기 전에 성추행으로 피소당하는 일을 쓴다고 칩시다. 그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그 캐릭터가 왜 죽었을 것 같습니까? 어떤 상황과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맥락이 그 인간을 설명하고 그 인간의 심리를 대답합니다. 지금 우리는 데이빗 핀처의 환상적 세계가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익을 추가하는 보통 사람들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빌려놓고 돈을 다 쓴 다음에 죽었다? 돈 못갚을 것 같으니까 죽은 겁니다. 성폭행범이나 연쇄살인범이 경찰의 추격 끝에 자살했다? 잡혀서 감옥에 가기 싫으니까 죽은 겁니다. 박원순의 죽음을 절대적인 비밀로 만들기 위해서 인간의 보편적 추론능력을 뭉개는 것은 인간 지성에 대한 모욕입니다. 박원순은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아니고, 박원순의 자살도 그렇게 흐릿한 사건이 아닙니다. 쉬운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문제를 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끌고 오는 변명입니다. 경찰서에서 유력한 용의자들이 자기 죄를 진술할 때 뭐라고 할까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잘 안납니다..." 상황을 흐릿하게 만들고 싶은 겁니다. 그래야 어려워져서 가치판단이 불가능해지니까요. 


박원순에 대한 추모를 하면서 피해자를 생각하고 위로한다?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인터넷에서 그걸 완벽하게 양립시키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해자를 이야기하면서도 박원순의 죽음과 성추행 행적은 끝까지 어둠 속에 묻어놓을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간단한 논리문제입니다. 박원순이 성추행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피해자는 마땅히 보상을 받고 2차 가해는 멈춰져야 하지만, 박원순이 정말 성추행을 했고 그것 때문에 자살했는지는 미지수다? 가해자는 사라지는데 피해자만 남아있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자연스럽게 박원순을 욕할 필요도 없고 피해자는 적당히 위로하고 남은 2차 가해자들이나 민주당만 욕할 수 있는 논리적 환경이 조성됩니다.


박원순의 자살에 대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박원순의 성추행과 연결됩니다.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해봅시다. 그럼 당연히 그의 성추행도 모호해집니다. 왜냐하면 죽을 이유가 그것 말곤 없기 때문입니다. 제일 타당한 자살의 동기가 사라져버리면, 그 동기였던 "성추행 후 피소"라는 사실도 자연히 흐려지고 "성추행"이라는 폭력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 결과 어떤 서사가 탄생하느냐. 박원순은 자기가 성추행을 해놓고 그 책임을 지기 싫어서 죽음으로 도피한 사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되고 박원순의 문제점은 없어집니다. 서울시나 주변인들도 문제가 있었겠죠. 그러나 이번 성추행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성추행범 당사자인 박원순입니다. 박원순이 자살한 이유는 박원순 자신이 수치스럽고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논리적 귀결을 애써 부정하면, 그 논리는 아예 통째로 추론불가의 상태가 되서 전제부터 리셋이 됩니다. 


https://www.ted.com/talks/jackson_katz_violence_against_women_it_s_a_men_s_issue


이것과 연관된 테드 영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자의 문제다" 라고 주장한 잭슨 카츠의 영상입니다. 잭슨 카츠는 언론에서 가해자 남성을 지우고 피해자 여성을 문장 제일 첫머리에 위치시키는 습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 남자는 사라지고 여자가 죽거나 맞거나 강간당하는 재난 같은 상황만이 계속 언급됩니다. 가해자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여성폭력을 제대로 이야기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박원순 지지자들은 이걸 계속 시도하면서도 본인의 정의로움만큼은 의심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건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입니다.


박원순이 성추행을 한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의 죽음을 성추행 피소에 대한 도피로는 해석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논리전개일까요. 박원순이 성추행을 했다고 치면, 그 행위와 행위의 주체에 대한 가치판단이 당연히 뒤따르게 됩니다. 그 가치판단은 "성추행 후 자살"이라는 인관관계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효과를 얻게 될까요. 박원순의 성추행 사실이 거의 기정사실로 밝혀졌던 언론보도 당일부터 해서 박원순을 비판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 모르니까요. 왜 죽었는지 모르는 사람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망자모독죄"를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모두 알겠지만 분노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 감정입니다. 가장 시급하고 뜨겁게 타올라야 할 때 "함부로 분노하지마!" 라고 일단 그걸 억누르면 시간은 그대로 가고 제 떄 터졌어야 할 분노는 불씨만 남아서 아른거리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박원순에 대한 분노는 유보되고 박원순을 "모독"하는 사람들에게만 분노가 쏟아집니다. 


아주아주 관대하게 보자면, 박원순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일단 고인으로서의 예를 다하고 그 이후에 참아왔던 분노를 장례식 끝날 떄부터 터트린다는 "순차적 분노"만이 거의 유일한 양립적 태도입니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원래 자기 일이 제일 바쁘고 중요해서 사회적 이슈에 그렇게 화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요. 박원순을 추모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박원순에게 분노할까요? 아마 못할 겁니다. 그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니까요. 그렇다고 분노란 감정을 자제하고 이 사태의 참담함에 그저 묵묵히 슬퍼하는 것인가. 그런 것도 아닙니다. 박원순을 "모독"하는 사람들한테는 분노를 아끼지 않습니다. 본인들 마음속의 장례식을 <아수라>의 피날레씬처럼 개판으로 만드는 것에 아무 주저함이 없습니다. 박원순을 추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고 성폭력을 은폐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냥 침묵을 택하죠) 주장도 계속 한 쪽에 쏠려있고, 분노도 계속 한 쪽에 쏠려있습니다. 그런데 본인들의 갸륵한 진심과 정의만큼은 의심을 하지 말아야 한다니, 이것은 좀 아귀가 안맞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한번 또 길게 쓸 생각입니다)


애초에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박원순의 죽음을 도피로 해석하는 저나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당위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박원순이 그러면 안됐다는 겁니다. 그러면 안됐는데 그랬던 이유는 무엇인가. 박원순의 자살에 대한 당위적 해석은 자연스레 또 다른 당위적 해석으로 이어집니다. 하면 안되는데 그가 자살을 해야 했던 이유는, 그 당위를 배반하고서라도 챙겨야 했던 본인의 최후의 명예와 추모에 대한 욕심이었을 것입니다. 그걸 우리는 박원순을 독심술해서 얻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박원순이 자살을 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모든 걸 설명하잖아요. 죽은 후에 이렇게까지 애도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아주 확실한 건, 그가 죽어버리면서 살아서 먹어야 할 욕을 충분히 덜 먹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원순은 그러면 안됐습니다. 당연히 법정에 출두하고 혹은 자수를 하고 피해자한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상을 했어야죠. 그걸 안하고, 자살을 한 겁니다. 그걸 안하려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박원순은 왜 그랬을까? 가치판단을 하기 싫으니까, 즉 비판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계속 박원순의 심리를 <멀홀랜드 드라이브> 읽어내기처럼 읽어내려고 합니다. 당연히 빙빙 돌고 답은 안나오겠죠. 박원순이 죽은 이유를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런데 박원순은 왜 죽었을까? 그걸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걸 알아낼 수 있는 건 신밖에 없습니다. 신을 증인으로 부를 것도 아니면서 왜 절대로 알 수 없는 대답에 대한 질문만 스스로 던질까요. 모르는 채로 놔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는 이번 사건에서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박원순이 성추행의 책임에서 도망치려고 죽었든,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었든, 시청과 다른 사람들 때문에 죽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박원순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무슨 결과를 불러왔는지 그 무책임한 선택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그걸 어떻게든 해석해야 합니다. 그 모든 책임과 여파는 도외시하고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 죽음 이전과 이후를 편집해놓은 채로 박원순의 죽음 바로 그 순간만을 손에 쥐고서 계속 왜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이 이야기만 뻐꾸기처럼 떠들면 뭐합니까? 본인들이 되돌아봅시다.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 본인들은 박원순의 삶과 죽음에 의문을 던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안합니다. 알 수 없는 상태로 놔두면 추모하는 자기 입장도 챙길 수 있고 그러면서 피해자도 챙길 수 있으니까. 


인간의 죽음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학적인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그 문학적 상상력은 피해자에게 몽땅 쏟아내도 그 고통과 분노를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망자가 아니라 사망자고, 그냥 사망자가 아니라 자살한 사람입니다. 뭐가 괴로워서 자살했냐면, 본인이 성추행 피소 사실을 감당해야한다는 앞날이 두려워서 자살한 사람입니다. 그 결과 피해자는 박원순을 죽인 사람이 되어서 온갖 욕을 다 먹고 있구요. 박원순은 대체 왜 그랬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해보십시오. 그게 그렇게 진짜 어려운 추론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본인부터 제발 되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 서울시장이, 몇년간에 걸친 성추행 피소를 당했다" 이것만큼 객관적인 증거가 또 없습니다. 다른 모든 건 객관적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박원순에 대해서만큼은 아뜩한 미스테리를 그만 좀 뒤집어 씌웁시다. 이걸 뛰어넘지 못하는 이상 절대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정의로워지거나 당당해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피해자는 이유 없이 자살한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아무튼 피해만 받은, 귀신한테 뭔가 당한 사람처럼 동정만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건 지금 사태에 아무런 도움도 안됩니다. 사실관계 이전에는 항상 진실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좀 생각을 해봅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2152700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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