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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두서 없이 씁니다.


- 아무리 45분씩 끊어본다고 해도 한화 한화를 연결해서 보는 입장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개가 뚝뚝 끊어지는 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뚝뚝 끊어지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이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맥켄지가 나오고, 명백한 적이 나오고, 이상현상들이 그 적에 의한 결과물이고, 이걸 막기 위해 안은영과 홍인표는 힘을 합쳐 싸워야합니다. 왕따 문제와 빈자 혐오를 지적하던 지형이의 에피소드에서도 이 주제의식은 맥켄지라는 또 다른 이능력자와의 대결 구도에 다 휘말려버립니다. 거대 세력들간의 대결에 안은영만 새우등 터지게 생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옴잡이 혜민과 친구 강선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감성도 휘발되는 부분이 크다고 느낍니다.

- 제가 가끔씩 미드를 볼 때마다 품는 의문을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면서도 똑같이 느끼게 됩니다. 이야기를 위한 갈등이 아니라 갈등을 위한 갈등이 계속 생겨나고 해소되면서 정작 이야기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그 위화감을 가장 심하게 느꼈던 드라마가 워킹 데드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좀비라는 현상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잖아요. 좀비 자체가 이야기의 가장 큰 목적이자 갈등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고 무리를 짓다 보니 그 안에서 누가 누구와 싸우고 누가 어떻게 배신을 하고 이런 이야기들만 이어집니다. 이러면서 극 중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극중 좀비는 별 문제도 아니고 정원에 날아들어온 파리 쫓듯이 으깨 죽입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젤리 귀신들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맥켄지와, 일광소독과, 안전한 행복과, 학교 설립자가 가장 의미심장한 숙제가 됩니다. 새로운 갈등이 사람 사이에서 계속 생겨나고 안은영은 귀신보다 신경쓸 일이 많아집니다.


- 하나의 줄거리로 통합되지 않는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 각 에피소드들이 안은영이 보는 세계의 부분들이고 그 자체로 의미와 목적을 띄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될 뿐이지 그게 안은영의 각성과 성장을 위한 퀘스트 같은 것이 아닌 거죠. 보건교사 안은영이 비판하고 있는 인식론 자체가 그런 것이잖아요. 미래를 위한 현재, 나를 위한 타인, 성적을 위한 도둑질, 회사 이익을 위한 노동자... 그런데 정작 드라마의 구조 자체는 커다란 무엇을 위해 밟아나가는 에피소드들로 전락해버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화수는 좋은 친구였지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광소독의 일원으로서 은영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니까. 이 반전을 위해 안은영의 이상하고 평온한 일상 한 부분이 거대한 음모의 톱니바퀴로 소모됩니다. 다른 교사들도 일상의 조각이 아니라 그 음모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능적 존재가 됩니다. 꼭 그래야 할까요...??


- 이 떡밥과 갈등이 연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1화에 나왔던 귀여운 CG들도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무거운 마음까지 하나하나 구현하던 CG는 그 양이 팍 줄고 귀엽게 생긴 해파리나 젤리들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징그럽게 생긴 옴들만이 잔뜩 나오는데 안은영은 그 옴을 처리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야광검을 휘두르고 비비탄 총을 쏘는 귀여운 활극 자체가 사라져버립니다. 6화 내내 안은영이 검과 총을 사용하는 전사가 될 순 없겠지만, 이러면 조금 낚인 기분이 안 들 수가 없죠. 세상이 1화만큼 귀엽지 않고 활기가 넘치지 않는데... 저는 적어도 세상을 별로 안좋아하고 그래도 야광검 휘두르면서 뭔가를 해치우고 귀여운 젤리가 넘쳐나는 세상을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길 바랬습니다.


- 에피소드가 진행될 수록 "무당"으로서의 안은영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좋았습니다. 이런 부분은 세상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자의 고통을 역으로 생각해보게 되는데, 특히나 그 고통을 해소하고 싶어도 개인으로서 무력한 한계에 부딪히는 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안은영은 어떤 혼령도 성불시켜주지 못합니다. 고통을 감지하지도 못한 채 한없이 머물러있거나, 고통스러워하면서 사라져버리거나. 이 덧없는 혼과의 대화들 속에서 안은영이 보여주는 자발적 피학의 태도는 그의 무뚝뚝함만큼이나 용감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은, 당해야한다." 우리의 세계는 불행이 가득합니다. 그 불행은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것을 견뎌내야 합니다. 특히나 타인의 불행과 억울함에 대해서 안은영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가 그렇게 당했던 일을, 남의 일이라고 나는 외면하거나 피하지는 않겠다... 인간은 행복만을 좇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자신의 행복만을 좇으면 타인의 불행은 자연스레 피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 서사로서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걸리는 지점이 참 많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떤 세계를 대할 때 새로운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재미보다는 의미로서 다가오는 부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세상에서 여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쌍욕을 뱉어야 합니다. 솔직하게 짜증내고 남이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거리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한숨쉬고 피로를 느껴도 뭔가 할 수 있다면 하려고는 해봐야죠. 그것은 여자가 다정하고 친절해서가 아니라, 그 예민함을 나를 위해 발휘하면서도 타인에게 아끼지 않을 수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여자가 어떻게 자애 가득한 성모가 아니라 욕을 달고 사면서도 할 일 다하는 bad ass 히어로가 되는가. 그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 안은영이 홍인표를 지하실에 버리고 갔던 장면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떡밥 무지하게 많이 남겨놨다는 점에서 시즌 2를 무조건 찍을 것 같습니다. 안은영은 아직 아무도 패배시키거나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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