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2021.01.07 20:25

은밀한 생 조회 수:414

아주 짧은 한 순간이나 말 한마디로 인생이 달라지는 그런 경험.
꼭 타임슬립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경험들은 우리의 삶 도처에 도사리고 있죠.

예전에 다니던 소위 대기업 어쩌고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
당시 창업주의 동생의 딸이면서 길 가다 누구나 한번씩 돌아보게 되는 용모의 언니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나요. 별 뜻 없이 주고 받는 회식용 토픽에서 누군가 살짝 무리수를 던졌는데. 개그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죠. 어 방귀냄새 난다! 뭐야 뭐야 아무 냄새 안 나는데? 너 개코냐 누룽지 냄새겠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갑자기 그 언니가 우아아앙 정말 아기같이 서럽게 우는 거예요. 나 안 꼈어요!!! 이러면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무도 니가 꼇지 안 했는데. 정말 아기 같이 엉엉 울더라고요. 나 아녜요!! 나 방귀 안 꼈어요!! 서너번 외치면서 계속 우는 그 언니를 앞에 두고 나머지 사람들이 우왕좌왕 각자의 방법대로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애쓰던 기억이 나요. 어어 그래 너 아냐 우리 김대리가 많이 힘들구나 아 왜 갑자기 울고 그래 언니 어디 아파여? 한 사람의 통곡으로 모두가 우렁차게 합심하던 어느 연말 회식 자리.

이후로 제가 그 나인투파이브 물신 숭배의 세계를 결국 버티지 못해 관두고 난 뒤 종종 소식을 전해주던 귀여운 친구가 말하길, 그날 그 언니가 파혼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파혼당한 이유가 약혼자의 외도로 인한 거였다고.. 그런데 그날 회식 자리에서 그 언니를 가장 적극적으로 위로하던 한 남자. 그리고 나 방귀 안 꼈어를 만들어냈던 바로 그 남자. “어 방귀냄새 난다”고 외쳤던 그 남자와 결혼 날짜가 잡혔다며 청첩장이 왔었어요.

잘 살겠죠.
잘 살기를.

구수한 둥굴레차 냄새를 맡으면서 난 왜 이 일화를 떠올린 건지....
따뜻한 차 한잔이 소중하네요.
한파속에서 듀게분들 모두 무사하시기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20년 게시판 영화상 투표 [19] DJUNA 2020.12.13 165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612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14080
115486 듀게인) 애플 기기 질문 [6] 잉크화 2021.02.06 401
115485 조조 래빗(2019) catgotmy 2021.02.06 343
115484 [유튜브 생중계] 선우예권 피아노 리사이틀 [3] underground 2021.02.06 258
115483 이야기구성의 한계, 번개! [2] 여은성 2021.02.06 354
115482 김훈의 책상 [16] 어디로갈까 2021.02.06 1080
115481 Christopher Plummer 1929-2021 R.I.P. [9] 조성용 2021.02.06 356
115480 [넷플릭스바낭] '승리호'를 보았습니다 [27] 로이배티 2021.02.06 1694
115479 승리호 다들 보실 거죠? [7] woxn3 2021.02.06 831
115478 이런저런 잡담들(게임, 아이돌) [1] 메피스토 2021.02.05 233
115477 윌리엄 샤트너 [7] daviddain 2021.02.05 449
115476 싸이월드 부활 [4] tomof 2021.02.05 592
115475 개인정보 도용해서 연락하면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건 그냥 당연한 상식 아닌가요? [7] eltee 2021.02.05 798
115474 [넷플릭스바낭] 대만제 환타지... 를 빙자한 멜로물 '미래상점'을 봤습니다 [6] 로이배티 2021.02.05 426
115473 판사는 신이 아니다 [5] 사팍 2021.02.05 522
115472 [주간안철수] 안철수 대표 여론조사 3등... (....) [6] 가라 2021.02.05 685
115471 [펌글] 벌거벗은 세계사 다시 논란…설민석이 문제인 줄 알았더니 [14] Bigcat 2021.02.05 887
115470 영화 <친구> 김보경 암투병 중 사망 [7] 수영 2021.02.05 814
115469 정신없는 금요일이네요 [3] 미미마우스 2021.02.05 309
115468 거리두기의 금요일... [1] 여은성 2021.02.05 238
115467 한국의 뛰어난 에세이스트는? [32] 어디로갈까 2021.02.05 111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