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핀 흰 목련 같은 기억입니다.
그 별의 이름은 아스라 Asra,
지구와 쌍동이처럼 닮았으나 몇 가지 다른 특성을 지닌 별이었죠.
'맑은 산'이라 불리우던 신비스러운 산이 그 중 하나였어요.

'맑은 산'은 신묘한 기운을 자랑하는 장소였습니다.
깊은 밤, 그곳에 올라 저녁 달을 우러르면 
마음 속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하나씩 사라졌어요.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통증이 엷어지는 게 아니라
고통스런 기억 자체가 스르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둠 속에 핀 흰 목련 같은 기억입니다.
아스라에는 '맑은 산'보다 더 신비스러운 현상이 있었어요.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그 감정을 자각하는 순간 모두 죽게 되는 것.
어떤 힘의 작용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하늘의 '짙푸름'이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그는 한 줌의 재로 소멸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아스라에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지구만큼이나 많았어요.
매일 아침 거리로 나서보면 소멸의 재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고,
재의 안개라고 불리는 기상 현상이 발생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었지만, 
사랑과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던 거겠죠.

어둠 속에 핀 흰 목련 같은 기억입니다.
아스라에서 사랑에 빠져 소멸하는 사람은 암청색 하늘을 날아가는 흰 새들을 봤어요.
'아아!' 탄성을 내며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동시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함께 재로 변하는 일도 있었어요.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거짓된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비극적인 경우인데, '맑은 산'에 올라 달을 기다리다가 재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잊고자한 기억과 고통이 문득 사랑으로 변화한 것이었겠죠.

마음은 끊임없이 물결치고,
언제 사랑과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답니다.
그것도 아주 조용히.     


덧: 어렸을 때 할아버지 무릎에서 들었던 신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 -;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반복해서 돌아갈 곳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할아버지는 제게 그걸 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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