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로맨스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이 여러 시상식의 후보에 오르고 배우들이 상을 받으면서 갑자기 오래전에 보았던 트루 로맨스가 생각났습니다.

트루 로맨스는 타란티노가 각본을 써서 팔고 토니 스콧이 만든 작품이죠.

저는 타란티노의 영화들을 접하기 전에 트루 로맨스를 먼저 보았는데 당시에는 그 폭력성에 충격을 받고 '아니 뭐 이 따위 영화가 다 있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에도 '올드 보이' 같은 걸 극추천하는 걸 보고 '저 사람은 정신병자가 틀림없다'고 여겼지요.

지금이야 타란티노의 영화 속 폭력이 만화같은 미적 요소로 여겨지고 예술적으로 인정을 받지만 (그리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같은 경우에는 보기 힘든 폭력적 장면도 굉장히 덜하고요.) 

트루 로맨스 시절만 해도 아니었나봐요. 평론가 리뷰가 좀 양극화 되어 있더라고요. 아주 낮은 평가를 한 비평중엔 저처럼 '꼭 그런식으로 폭력을 보여줘야 했나?'는 것도 있었어요.

게리 올드만 같은 배우를 소모시키고 젊은 시절의 빛나는 브래드 피트가 마약중독자 백수 단역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려고 스트리밍 써비스를 찾았는데...아니 이게 없는 겁니다. 아이튠즈에도 없고 넷플릭스에도 없어요. 이거 우리 지역만 그런가? 이동네 라이브러리가 타 국가들에 비해 굉장히 부족한 건 사실인데 라이센스 정책이 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먼지쌓인 상자를 뒤져서 DVD를 찾아서 다시 봤습니다. 20년쯤 지나서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놓친 것들도 보이는 법이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음악. 아주 잔혹한 폭력적 장면에서 로맨틱한 음악으로 편집하는 건 자주 쓰이는 방법이지만 이 영화의 로맨틱한 음악은 정말 잘 어울렸어요.

그리고 그 만화적, 비현실적 폭력 장면들은 80년대 홍콩 느와르와 스타일이 굉장히 비슷하죠. 심지어 여주인공이 방에서 혼자 기다리며 TV를 보는데 영웅본색을 보고 있어요.

어디서 본 듯한 총 싸움과 어디서 본 듯한 이 분위기는 다 영웅본색에서 온 것이었나봐요. 홍콩 느와르도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이긴 마찬가지인데 엄청 비장하고 멋진 척 할 뿐이죠.


*요즘 다큐멘터리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넷플릭스에 접속하니 제일 먼저 뜨는 트레일러로 '판데믹'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뜹니다.

현실과  맞물려서 흥미를 끌기 딱 좋은 주제라 에피소드 1을 보다가 중간에 그만뒀습니다.

뭔가 낚시같아요.

제목을 저렇게 지어놓고 저는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나 바이러스에 대해 기술적인 정보를 기대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그냥 여러 도시에 거주하는 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게 다예요. 물론 기술적 내용들을 슬쩍 슬쩍 끼워넣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전에 유행하던 '경찰 리얼리티 쇼' 같은 그런 느낌이예요. 카메라가 사람들이 일하는 걸 따라다니면서 흥미로운 걸 촬영하고 중간 중간 인터뷰도 끼워넣고. 그런데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편집도 하나의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여기 저기 바꿔가며 바쁘게 움직여서 산만하기도 하고요. 정보를 전달한다기 보다는 각종 직업 (의사, 질병통제센타 직원, 백신 개발자 등등)에 촛점을 맞추고 심지어 그 사람의 배경이나 사생활까지도 소개하는!


이걸 보다가 보니 일전에 비행기에서 낚시에 걸려 보게 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마야 문명 지하 도시의 미스터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납니다. 아포칼립토를 막 본 직후라서 마야 문명에 대한 관심이 잔뜩 생겼을 때죠. 그런데 이런 제목의 다큐가 있다니 잘됐다. 봐야지 하고 틀었는데 먀야인이 건설한 지하도시의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을 안 해주는 다큐였어요. 그것도 그럴 것이 이 다큐는 그 지하도시를 발굴하러 가는 사람을 따라 다니며 촬영한 그냥 경험담이예요. 리얼리티 쇼였죠. 해설자는 당연하게도 고고학자이고 마야 유적의 전문가입니다만 이제 그걸 발굴하러 가는데 지하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게 당연하잖아요? 카메라는 시종일관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그가 어떤식으로 발굴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금 이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밧줄을 타고 동굴속으로 내려가며 '아 너무 너무 떨려요!' 라고 말함) 그런 것들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었던 거예요.


'왜 때문에?' 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제가 너무 구세대인가봐요. 다큐멘터리에서 지식을 기대하다니! 그래도 말이죠. 넷플릭스는 그렇다고 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목가지고 낚시를 해서야 되겠어요? 이건 마치 낚시성 유튜브 채널의 전문가 버전같잖아요. 예를 들면 '공부할 때 집중력 높이는 꿀팁!' 이라고 제목을 달아놓고 막상 틀어보면 '여러분 요즘 공부할 때 집중 안되어서 힘드시죠? 오늘은 공부할 때 집중력 높이는 꿀팁을 공유합니다. 좋아요와 구독 많이 눌러주세요. 저도 공부할 때 산만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요. 특히 시험이 가까울수록 더욱 집중이 안 되어서 힘들어요. 진짜 공부 해야 하는데 편의점 가서 커피 사먹고, 너무 더워서 밖에서 바람쐬고 오고 공부좀 하려다가 딴 생각 나서 핸폰으로 인터넷 좀 하고 그러다보니 공부는 하나도 못하고 시간이 다 갔더라고요. 여러분 우리 모두 어려워도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요. , 그럼 오늘은 공부할 때 집중하는 꿀팁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대체 영상 어디에 집중력 높이는 꿀팁이 있다는 건지?


요즘 세대는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하는 것보다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일까요? 다큐든 드라마든 단 1초라도 지루하면 가차없이 채널이 돌아가죠.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도 마찬가지라서 파일럿 5분안에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져야만 합니다. 그래도 저는 이 다큐를 포기할 때까지 30분 이상은 봤어요. 저는 구세대니까요. 


*카산드라 크로싱

판데믹에 대한 영화들은 쎄고 쎘지만 단 한가지만 추천하라면 아직도 '카산드라 크로싱'을 꼽겠습니다.

마틴 쉰과 소피아 로렌이 나오는 꽤 오래된 영화인데 정말 어릴 때 봤거든요. 

미국 정부의 생화확 무기에 대한 비열한 음모,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과 일행들. 서스펜스와 액션도 풍부하고 로맨스도 있고 국제적 음모와 긴장감 넘치는 클라이막스도 있죠. 이 영화는 아이튠즈에서 렌트할 수 있는데 화질은 옛날 필름 그대로인 것 같아요. 좀 괜찮은 품질로 봤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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